1. 서론
제목에 ‘부당지원’이라고 썼는데, 저건 그냥 법률용어일 뿐이고 실제 어떠한 부당행위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닙니다.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행위 요건에 해당하지 않으면 그냥 ‘정당거래’죠. 법무검토 과정에서 계속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이기도 하구요.
통상적으로 공정거래법 관련 업무를 ‘컴플라이언스(Compliance)’라고 부릅니다. 2010년대 초~중반부터 준법경영/ESG경영/지속가능경영/사회적기업 기타등등 어화둥둥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법 잘 지키고 오래오래 살아남는 기업’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그러면서 컴플라이언스 업무가 강조되었습니다.
각 회사 법무조직 중에는 컴플라이언스 업무가 통합된 경우도 있고 / 별도 조직으로 분리 운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 나름 ‘프로이직러’라 자부(!)할 정도로 여러 회사를 다녔었고, 통합운영 / 분리운영 다 경험해 봤습니다.
(둘 다 장단점이 있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계열사 법무팀 소속 실무자로서 지주회사 컴플라이언스를 보는 관점’입니다. 그리 좋은 얘긴 안 나오겠죠? 이 얘기는 프로이직러 경험 관련해서 나중에 다시 하도록 하겠습니다.)
컴플라이언스 조직이 있는 경우, 대부분 공정위 관련 업무를 컴플라이언스 쪽에서 수행합니다. 평소에는 준법지원, 공정위에서 조사 나오면 불법방어(?). 뭐 회사생활이 다 그런 거죠.
공정위 업무를 다 얘기하려면 이것도 할 말이 엄청 많긴 한데, 일단 오늘은 ‘부당지원’에 대해서만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주력분야가 건설법무니까 주로 건설업 중심으로 설명하고, 언론 등에 보도된 주요 사건도 간략히 언급하겠습니다.
(1)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 개요
(2) ‘시장가격 책정’의 어려움
(3) 건설공사에 ‘적정 시장단가’가 있는가?
(4) 계열사 공사
(5) 공사 아닌 ‘계열사 장사’
1) 시장가격 자체가 없는 경우 : 특허사용료, 브랜드 제휴
2) 그룹 CI 상표사용료
3) 사실상 독과점 형성된 영역
4) 보안성을 이유로 드는 경우
5) 삼성 웰스토리 사례
순서로 서술하면 되겠네요. 바로 본론 넘어갑니다.
2. 본론
(1)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 개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가 사법시험 1차 과목으로 공부할 때는 주로 ‘독점규제법’으로 불렀었는데, 최근에는 ‘공정거래법’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제사법경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의 핵심 법률이죠.
공정거래법상 ‘경제력집중 억제’, 즉 재벌들의 확장을 규제하기 위한 다양한 절차적 장치들도 중요합니다만, 이는 본 챕터에서 다루지 않겠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다루지 않을 것 같네요. 이건 공시대상기업집단 이상 규모 대기업 법무팀에서 신경쓰는 영역이고, 그 정도 규모에서 공정거래 담당하시는 법무/컴플라이언스 담당자라면 이미 잘 알고 계실 테니까요.
제목에 썼듯이, 오늘 저는 ‘부당지원’에 관해서만 언급하겠습니다.
공정거래법 상으로는 45조 불공정거래행위 중 1항 9호 가.목 및 나.목, 47조 특수관계인 부당이익 제공 금지 이렇게 2가지가 있습니다. 물론 하부 시행령 별표 및 공정위가 고시한 지침까지 다 포함해서 보셔야 합니다만, 일단 큰 틀은 2가지로 나뉩니다.
(편의상 45조에 따른 부당지원행위는 ‘일반부당지원’, 47조에 정한 것은 ‘대기업계열사 부당지원’이라 하겠습니다. 대기업계열사 부당지원부터 설명하겠습니다.)
대기업계열사 부당지원 관련 47조 및 그 하부규정은 ‘공시대상기업집단 이상 규모의 기업집단’에 적용됩니다. 계열사 자산 합계 5조 이상이면 공시대상기업집단 / 10조 이상이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이었는데, 최근에 ‘GDP의 ~%’로 개정되었다고 합니다. 아마 상출집단 쪽은 0.5%로 확정되었고 공시집단 쪽이 미개정 상태인 것 같은데, 금액 기준으로는 기존 자산합계 기준보다 조금 올라갈 듯 합니다.
아무튼, 이렇게 공시집단~상출집단으로 지정된 기업집단 소속 회사는 같은 기업집단 소속 회사와 거래를 할 때 여러 가지 신경쓸 게 많습니다. 당연히 부당지원행위 하면 안 되니 ‘정당한 거래’임을 증명할 수 있는 절차적 장치를 갖춰야겠죠.
대기업계열사 간 거래에서 ‘정당한 거래’임을 소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입찰]입니다. 즉, 해당 대기업계열사와 임의로 협의하여 수의계약하는 게 아니라 [해당 기업과 무관한 제3자가 참여했는데 우리 계열사가 가격 제일 싸고 합리적인 조건 제시했다 카더라]는 근거를 만드는 방식입니다.
(왠지 조작하고 있다는 투로 얘기했지만 실제로 그런 건 아니고, 진짜 제대로 입찰해서 경쟁 붙여야 합니다. 다만, 입찰조건 자체를 계열사에 유리하게 하는 정도는 할 수 있겠죠. 재무상태, 기존 매출 규모 등으로 제한해서 사실상 2~3개 업체만 입찰에 참여하게 하는 등등…)
물론 모든 거래에서 다 입찰 붙일 수는 없습니다. 조달청 통해서 나오는 국가계약이라면 모를까, 민간 거래를 다 입찰 붙이라고 하면 이건 사회적 비용낭비일 뿐만 아니라 계약자유원칙에 대한 침해가 되겠죠. 예외사유 만들어 둬야 합니다.
예외사유로 나오는 게 47조 2항 [효율성ᆞ보안성ᆞ긴급성]입니다. 해당 계열사와 거래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거나 / 회사의 경영비밀에 대한 보안 확보가 필요하거나 / 긴급하게 계약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부당지원행위로 보지 않습니다.
(사유 딱 보면 나오지만 주로 ‘전산 데이터 관리’가 예상되겠죠? 아래에서 따로 서술합니다.)
대기업계열사 부당지원 관련해서 ‘정당거래’가 되려면 입찰하거나 / 효율보안긴급 확보해야 하는데, 이런 거 없더라도 무조건 부당지원이 되는 건 아닙니다. 부당지원이라는 건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면서 일방이 타방을 지원해야 되는데, 그냥 딱히 유리할 거 없이 정상적인 가격으로 거래했다면 그냥 정상거래죠.
여기서 ‘정상적인 가격’이 뭐냐가 문제되는데요. 공정거래법시행령 별표3에서는 “특수관계인 아닌 자와의 정상적인 거래에서 적용되거나 적용될 것으로 판단되는 조건의 차이가 100분의 7 미만이고 + 해당 연도 거래총액이 50억원(상품ᆞ용역은 200억원) 미만”이면 문제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
즉, 정상적인 시장가격의 +- 7% 범위 내에 있고 연간 거래총액이 상품 기준 200억원 미만이면, 공정위도 딱히 신경쓰지 않습니다. 물론 저건 시행령 별표의 내용일 뿐이니 굳이 따지고 들자면 조사 가능하겠지만, 이거 아니라도 할 일 많은 공정위가 그렇게까지 하진 않겠죠.
대기업계열사 부당지원을 먼저 설명했는데, 일반부당지원은 좀 더 쉽습니다. 일단 절차적 제약이 없으니 ‘입찰 또는 효율보안긴급’을 고려할 필요가 없고, 정상적인 시장가격 정도만 신경쓰면 됩니다.
실제로 규모 작은 회사 간 지원행위는 자주 일어납니다. 가장 직접적으로 돈 빌려 주는 ‘자금차입’이 있고, 물류회사가 철근 사서 계열사인 건설회사에 빌려 주고 대금회수는 늦게 한다거나 등등의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물론, 공정거래법 외에 다른 규정들은 신경써야겠죠. 상장회사의 경우 금융 쪽 법령에 별도 규제가 있고, 상속 및 증여세법상 ‘증여의제’에 따른 세금추징 문제도 있습니다. 제가 여기까지는 자세히 알지 못해 얼버무리긴 합니다만, 실제 업무 진행시에는 각 사안 별로 회사 재무팀 추가검토 받아야 합니다.
대부분 자금차입의 경우 연 이자율 4.6% 단리로 하고, 상품이나 용역을 넘길 때에는 적정마진을 신경써서 계약합니다. 대금회수 늦어지면 이자 가산해야겠죠. 담보도 잡아 두는 게 좋구요.
현실적으로, 공정위가 이 일반부당지원 영역까지 신경쓰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공시대상기업집단이 80개가 넘고 그들 대상으로 모니터링하는 업무만으로도 과포화 상태인데, ‘그 미만 잡’에 해당하는 듣보르자브 중견기업끼리 밀어주고 땡겨주는 것까지 다 살피긴 어렵죠. 뭐 누군가 하명(下命)했거나 / 신고했으면 모르겠습니다만.
부당지원행위 개요만 살폈는데 양이 꽤 나오네요. 일단 여기까지만 보면 그리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정상적인 시장거래가격’만 뽑으면 거기서 +-7% 범위 내에 들어가는지 살피면 뙇 결론 나올 것 같습니다. ‘참 쉽죠?’로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 ‘참 쉽죠?’가 참 어렵습니다. 밥 아저씨 그림 실제로 따라 그리면 폭망하는 것처럼 어렵습니다.
항을 바꿔서 살펴보겠습니다.
(2) ‘시장가격 책정’의 어려움
대충 쌍팔년도 무렵에 ‘권장소비자가격’이라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새우깡 100원, 오징어땅콩 200원, 양파링은 무려 300원! 양파링 나왔을 때는 그 가격이 충격과공포 수준이었죠.
그 시절의 저는 ‘아 모든 상품에 기본가격이 정해져 있구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관광지 같은 데에서 부라보콘 하나에 천원 받으면 어린 마음에도 ‘아 이런 사람이 사기꾼이구나. 겁나 짱난다. 나중에 크면 이런 사람들 무시하고 살아야지.’라고 생각했었구요.
그런데 말입니다.
저렇게 권장소비자가격이 형성될 수 있는 영역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꼬꼬마 국딩(초글링 아니고 국글링) 시절에 과자 사먹으며 인식한 ‘기본가격’ 따위는 세상에 적용하기 어려웠습니다.
우리가 아는 상당수 제품의 가격이 매일매일 변합니다. 일단 기름값부터가 그날그날 다르죠. 석탄, 철광석, 각종 광물, 유류비도 시시각각으로 달라집니다. 거기에 환율도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마르크스경제학에서 가치는 고정되어 있다고 하지만) ‘가격’은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바뀝니다.
모든 가격을 국가에서 통제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 상품과 용역의 시장가격은 계속 변합니다. 그게 자본주의 체제의 속성이에요. 좋다 나쁘다를 따지기 전에, 일단 그게 현실입니다.
물론, 특정 시기에 특정 상품을 딱 찍어서 살펴보면 평균가격 뽑을 수는 있겠죠. 시멘트 생산 7개 업체가 잠재적으로 서로 눈치보며 (담합은 아니지만) 서로 가격수렴하는 것처럼, 어느 정도 유효한 경쟁이 있는 영역이라면 나름대로의 시장가격이 나오긴 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쉽지 않습니다.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기 시작하면 적정한 시장가격이 크게 흔들리거든요.
규모의 경제. 제가 직장생활 한 경험 범위 내에서, 체급 차이가 심하게 나면 이걸 특허/신기술/세상을바꾸는아이디어 등등으로 뒤집는 게 매우매우매우 어렵습니다. 그냥 덩치 크면 짱이에요. 덩치가 커지면 구매력과 판매력 모두 압도적인 우위에 섭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우선, 건설사 말고 다른 사례를 들면) ‘셋톱박스 구매계약’이 있습니다.
지금은 통신3사의 IPTV가 대세지만, IPTV 이전 유선방송이 있었고 그 유선방송이 디지털 전환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때 나름 ‘대기업 계열 MSO’와 각 지역 권역 1개만 가진 ‘지방 SO’가 공존했었죠.
권역 1개만 가진 지방 SO가 셋톱박스 1개 당 10만원에 구입한다면, 대기업 계열사인 MSO는 8만원 이하에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거의 소매가/도매가 수준으로 차이났습니다. 셋톱박스 제조업체가 장기적 안정적으로 계속 생산할 수 있도록 몇만대의 물량을 제공해 주면 가격이 할인되는 거죠.
이 경우, 지방 SO가 구입하는 셋톱박스 단가를 ‘정상가격’으로 볼 수 있을까요? 그것보다 -20%나 싸게 산 대형 MSO의 구입단가를 ‘비정상적인 지원가격’으로 볼 수 있을까요? 중소기업인 셋톱박스 제조업체가 대형 MSO에게 싸게 팔면서 부당지원행위를 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전혀 아닙니다. 저건 그냥 ‘정상거래’예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각자의 구매력과 협상력에 맞게 최선을 다해 상호 협상한 결과물일 뿐입니다. ‘자본주의 그 잡채’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역으로, 어떤 기업이 대량판매 시스템을 갖춰 내부적으로 원가절감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100대 팔았을 때에는 이익률 5%였는데 이걸 1000대 팔아서 설계원가를 희석시키고 일괄제조로 생산비 줄여 이익률을 10%로 올렸다면, 이건 [규모의 경제 실현에 따른 혁신]이지 절대 부당한 게 아닙니다. 이 또한 ‘자본주의 그 잡채’죠.
공정위의 부당지원행위 조사가 어려운 게 이 ‘정상가격 확정’ 때문입니다. 공정경쟁을 촉진하는 건 궁극적으로 경쟁을 통해 각 기업이 혁신하고 더 싸고 더 좋은 물건을 만들도록 하기 위함인데, 정상가격 잘못 산출했다가는 ‘규모의 경제를 이루어 더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기업을 제재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거든요.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지만 현대의 어른이들은 무분별한 불량 불법 기업조사로 인해 비행 전과자가 되고 마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정도의 느낌적인 느낌?)
글 쓰다 보니 어느새 너무 길어졌습니다. 이 쯤에서 끊고, ‘건설공사의 적정 시장단가’에 대해서는 챕터 바꿔서 서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