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PF 혹은 PFV. 가끔 경우에 따라서는 SPC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건 한국 한정으로 SPC그룹이 있어서인지 요즘은 주로 PFV로 부르는 것 같습니다.
일단 개념 정의를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PFV
: Project Financing Vehicle. 주로 건설업 분야에서 사업자금 조달을 위해 여러 투자주체가 참여할 경우, 이 투자주체들이 지분출자 형식으로 제3의 법인을 페이퍼컴퍼니 형태로 설립하고 해당 사업 종료시까지 자금관리 등 일체를 담당하도록 하는데, 이 한시적 법인을 ‘프로젝트 자금을 태워 두는 운송수단’이라는 의미로 PFV라 부름
- PF
: 위 PFV를 설립하기 위해 투자주체들을 모으는 과정. PFV와 혼용해서 쓸 때도 있음.
- SPC
: Special Purpose Company. 특수목적회사. 특정 목적 수행을 위해 임시로 설립되는 법인으로 원래 PFV보다 더 넓은 개념이며 굳이 페이퍼컴퍼니일 필요도 없으나, 통상적으로 PFV 방식의 한시적 페이퍼컴퍼니를 부르는 용어로 많이 쓰임.
- AMC
: Asset Management Company. PF의 규모가 커질 때 해당 PFV의 자금관리 부분만 별도로 위탁하여 운용하는 추가 페이퍼컴퍼니. 주로 사업 기간이 길고 중간에 PF 투자주체가 바뀌는 경우 등을 고려하여 설립하는 것 같음.
용어 정의를 알고 보면 별 거 없습니다. 그냥 덩치 큰 사업 할 때 쩐주 여러 명이 공동으로 출자해야 되는데 그 출자금을 잘 관리하기 위해 임시로 법인 하나 설립하는 거예요. 공동출자자를 ‘조합’으로 하느냐 / 별도 법인격을 하나 만드느냐 중에서 ‘법인격 창설’을 선택한 겁니다.
요즘은 대부분의 건설사업장에서 PF가 진행되는데, 예전 제가 신입사원이던 시절(대략 18년 전인 2005년)에는 한국 내에서 나름 최신 금융기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때 여기저기 주워들었던 걸 바탕으로 오늘 설명 진행해 보겠습니다.
2. PFV의 시작 및 한국 적용
(1) 최초의 PFV
제가 신입사원으로 주워들을 때에는 PFV라는 용어보다는 ‘SPC’라는 용어를 더 많이 썼는데요. 어차피 ‘프로젝트 금융조달 법인’이 ‘특수목적회사’의 한 유형이니, 대충 같은 의미로 섞어 쓰면 됩니다.
이러한 금융조달 방식이 처음 도입된 건, 유럽의 [영-불 해협 해저터널 공사] 때였다고 힙니다. 도버~칼레 사이를 잇는 50.45km짜리 터널이며, 1994년에 완공되었다고 하네요.
이 해저터널 공사 관련 다큐멘터리를 영국 BBC 채널에서 봤었는데요.
(제가 다른 장르에서 글 쓸 때에는 BBC로 말장난을 하기도 합니다만… 오늘 글의 주제는 그런 것과 무관하니 그냥 영국국영방송사 채널이라는 것만 언급하겠습니다;;)
아무튼 이 공사 당시 양 쪽에서 같이 공사해서 결국 가운데에서 만났는데, 오차가 몇십 cm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20세기 엔지니어링 기술의 대승리라고 할 수 있죠.
지금은 중국 쪽에서 더 긴 해저터널을 완공했지만, 1994년 당시에는 이 영-불 해저터널이 지상 최대 공사였습니다. 당연히 돈 엄청 들었겠죠. 지금 찾아보니 18조원 들었다고 하네요. 인플레이션 고려하면 현재 돈으로 40조원 이상일 것 같습니다.
이렇게 큰 사업이어서, 영국과 유럽의 은행들이 독자적으로 전액 대출해 주는 건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혼자 대출해 줬다가 위에서 언급한 ‘가운데에서 만나기’에 실패해 버리고 ‘여기가 아닌가벼.’ 상황이면 대략… 멀쩡한 은행 하나가 그냥 공중분해 될 겁니다.
결국 여러 은행이 제휴하기로 했는데, 문제는 투자금 관리였습니다. 기존처럼 공동출자 조합 형식으로 하면 계산이 복잡해졌나 봐요. 공사기성률에 따라 자금집행해야 하는데 그때마다 전체 출자자 지분 계산하고 하려면 많이 번거롭겠죠.
그래서, PFV가 탄생했습니다. 출자자들이 조합을 이루는 게 아니라 ‘출자금을 자본금으로 하여 주식을 보유하는 형태’로 하고, 이 자본금을 기반으로 임시 설립된 페이퍼컴퍼니 이름으로 자금집행을 하는 방식. 지금은 보편화되었지만 당시에는 획기적인 금융기법이었다고 합니다.
(2) 한국 적용
이런 PFV 방식이 한국에 언제 도입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신입사원이던 2005년에는 이미 꽤 확대되어 있었어요. 아직 제도적으로 완전히 안착된 건 아니었지만 많이들 했었습니다.
제 생각에, 대충 IMF 직후 한국 금융시장을 대거 개방하면서 PFV도 함께 도입되었을 것 같습니다. IMF가 대한민국 산업 구조를 영구적으로 바꿨다고 하죠. 그 과정에서 고통받은 사람도 많았지만… 어느 정도 ‘지나간 옛 이야기’가 된 것 같습니다.
아무튼, 한국에서는 21세기 초반에 PFV가 유행했습니다. 그리고, 순수하게 ‘금융기관만 출자자’가 되는 방식이 아니라 ‘시공사도 일부 출자’하는 형태가 더 많았습니다.
이 시공사 일부 출자 때문에 (당시 제가 신입사원으로 있던 기업 한정으로) 조금 골머리를 앓았었는데요. 이건 항을 바꾸어 서술하겠습니다.
3. 몇몇 건설사들의 특수한 사정 : 출자총액제한
지금은 없어졌는데, 과거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게는 ‘출자총액제한’이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당시 그룹 순위 재계 30위 안에 들면 (이후 전체자산 10조 또는 자산이 한국 GDP의 0.5% 이상 등으로 변경) 상출집단으로 지정되고, 상출집단 소속 회사는 자기자본(순자산)의 25% 이상을 다른 회사에 출자할 수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 외 상호출자금지, 순환출자금지, 채무보증 제한~금지 등 조항도 있었고 이는 조금씩 변경되면서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이후 이 출자총액제한은 그 상한을 40%로 올렸다가 / 나중에 아예 없어졌습니다. 대신 3단 지주회사 체계를 도입하면서 3단 체계의 제일 하단부 ‘손자회사’가 ‘증손자회사’를 가질 때 그 증손회사 지분 100%를 소유해야 한다는 규제가 생겼죠.
아무튼, 2005년 당시에는 출총제한 규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제가 재직했던 회사는 ‘동부건설’이었고… 동부그룹의 미래 희망이었던 (혹은 그렇게 주장하고 있었던) ‘동부반도체’에 출총제한 한도까지 출자 완료한 상태였습니다.
즉, 당시의 동부건설은 ‘다른 회사 주식을 매입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출자총액제한 상한인 순자산의 25%까지 모두 출자해 버렸으니, 다른 회사 주식을 더 사들일 수 없었고 신설회사 자본금에 출자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PFV가 활성화되었죠. 공사자금 출자하는 쩐주(금융기관) 측에서는 ‘시공사도 PFV에 일정 지분 출자해라. 그래야 니들도 주주로서 책임감 갖고 더 잘 하지 않겠냐.’라는 입장이었습니다. PFV에 출자 안하면 공사 자체를 수주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뭐, 정부에서 예외 인정해 주면 쉽습니다. PFV 자체가 ‘특정 공사의 수행을 위해 관계자들이 출자하여 한시적으로만 운영하고 기간 경과하면 해산해 버리는 특수목적회사’이니, 재벌들의 문어발 확장과 아무 관련이 없고 건설공사의 새로운 금융기법일 뿐이라는 점을 인정해 줬으면 ‘참 쉽죠?’가 됩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그 ‘참 쉽죠?’가 참 어렵습니다. 밥 아저씨 그림 따라 그리는 것만큼 어렵습니다. 제가 따라 그리면 폭망합니다.
당시 제도적으로는 ‘공공 성격의 사회간접자본시설’에 한정해서만 PFV가 인정되었습니다. 즉, 민간투자도로 등 SOC 공사에만 출자총액 예외가 인정되었고, 민간이 자율적으로 시행하는 공사에서 PFV를 일으키면 여기에는 출자총액제한이 엄격히 적용되었습니다.
(동부건설 입장에서는 아쉬운 일이지만) 출총제한 때문에 PFV 출자를 못해서 공사 따내지 못한 건이 몇 개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신입사원이라 자세히는 모르지만, 저 조건 때문에 입찰조건이 안 되서 타 건설사에 공사 뺏기기도 했었습니다.
이후에는 이 문제가 해결되었죠.
- 사회간접자본시설에 한정해서 PFV 인정하던 걸 전체 영역으로 확대시켜 줬고,
- PFV인 게 명확하면 해당 PFV의 수익으로 잡히는 것에 대해서는 법인세를 95% 감면 ~ 전면면제 시켜 줬으며(이후 배당 단계에서 각 귀속법인의 이익으로 처리하여 그 때 법인세 징수합니다),
- 결정적으로 출자총액제한제도가 없어졌습니다. 동부건설은 순자산 25% 범위를 넘어 다른 회사 주식을 매입하거나 출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동부건설이 망해서 법정관리 갔을 뿐. 동부그룹은 DB그룹으로 변신했지만 동부건설은 그냥 이름만 ‘동부’ 유지하고 다른 회사가 되었을 뿐.
물론, 적절한 시기에 적절하게 법령이 바뀌었다고 해도 동부건설이 법정관리 가는 결론은 바뀌지 않았을 겁니다. 오히려 동부반도체에 더 많이 출자하면서 더 빨리 법정관리 갔을 수도 있죠. 역사에 만약은 없습니다.
그래도 아쉽긴 합니다. 오래 전 일이긴 하지만, ‘명백하게 공정거래법의 취지와 무관하게 임시 설립된 페이퍼컴퍼니의 정산 편의를 위해 출자하는 건’인데도 예외 인정을 못받았고 / 법 개정이 현실을 못 따라온다는 게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 아쉬움 때문인지, 아직도 그 때 내용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뭐 이거 기억한다고 해서 제가 돈을 더 버는 건 아니지만, 잡글 한 챕터 채우기는 하네요^^.
4. 현재의 PFV : ‘자금회수 트리거’가 가장 무서움
앞 역사 / 한국사례 등을 장황하게 쓰긴 했는데, 실제 법무검토 단계에서 PF 계약을 받아보면 딱히 수정할 게 없습니다. 전 세계 어디서나 그러하듯이 [금융이 갑]이거든요. 아주 그냥 슈퍼 갑이죠.
PFV 자체가 금융기관의 출자와 이익분배를 쉽게 하려고 탄생한 것이고 일종의 ‘금융기법’입니다. 금융기관 표준양식은 매우 정교하게 잘 짜여져 있고 출자한 금융사가 손해볼 일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냥 따라가는 수 밖에 없죠.
PF 계약서 검토를 한다면, 계약 자체의 내용을 수정하기보다는 그냥 ‘계약 내용 이해하고 넘어가자’는 생각으로 보는 게 좋습니다. 어차피 그 돈 대출 일으켜야 사업 진행이 되는데 괜히 수정의견 냈다가 대출 지연되면 모두가 난감해지죠. 일 잘 되게 하려면 빨리 검토하고 끝내야 합니다.
이렇게 수정은 안 되지만, PF 계약에는 무서운 얘기가 많습니다. 진짜 조금만 삐끗하면 시행사 시공사 모두 폭망하는 조항들이 곳곳에 등장합니다.
그 중 매우 강력한 게 ‘자금회수 트리거(Trigger)’인데요. 말 그대로 ‘방아쇠를 당기는 조항’입니다. 총알빵 빵야빵야.
아파트/상가 등 선분양 진행하는 공사 건이면 ‘분양률 저조’가 트리거 조건일 때가 많습니다. 얼마 전 문제된 레고랜드 건에서는 ‘해당 지자체의 연대보증 이행 여부’가 트리거 조건이었던 것 같네요.
예를 들어, 아파트 1000세대 지어 분양하는 데에 공사기간 2년 포함 총 사업기간 3년이라고 합시다. 시행사가 사업 주관하고 이 때 이미 시공사가 내정되어 있으며 시공사의 자금력 등을 보고 금융출자자가 모이겠죠.
금융기관들은
1) 토지매입 단계 대출 (브릿지론)
2) 본 PF 설립하되, 각 단계를 나눠 1차투자 / 2차투자 등 여러 금융주체가 각기 다른 조건으로 출자
3) 시행사는 시공사 브랜드를 활용하여 선분양 진행
4) 분양계약자는 별도의 ‘집단중도금 대출’을 통해 중도금을 납입하고 해당 중도금은 위 브릿지론 및 본 PF 선회수 주체에게 먼저 지급됨
5) 공사완료되면 수분양자 잔금 받아서 최종 자금 회수하고 그 단계에서 PFV 청산
하는 순서로 진행합니다.
이 때, ‘선분양’이 저조하다면?
그런 때를 위해 트리거 조항을 둡니다. 트리거가 발동되면, 금융기관은
1) 시행사 갈아치우고 /
2) 시공사가 책임준공 이행하면 살려 두는데 그게 잘 안 될 것 같으면 시공사도 갈아치우고 /
3) 공사 계속 여부를 판단해서 토지 등을 다 팔아버릴 수 있는
강려크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시행사 및 시공사는… 뭐 다 망하겠죠.
2022년 말부터 ‘부동산 PF가 건설업의 뇌관이다’라는 얘기가 나오고 금융권에서 PF관리에 바짝 긴장하는 이유가 저겁니다. 일단 분양률 저조해서 트리거 발동하기 시작하면 여러 회사가 줄줄이 망합니다. 아파트/상가 짓던 건 중단되고 그 상태에서 경매 넘어가 헐값에 팔릴 것이며, 결국 금융기관도 손실 보게 됩니다.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될까요?
모르겠습니다. 2008년 말 금융위기가 오고 2010~2012년 경에는 꽤 많이 현실화되었습니다. 아파트 미분양 때문에 숱한 시행사와 시공사가 픽픽 쓰러졌습니다.
2023년 말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만… 앞으로 지켜봐야겠죠.
지켜보도록 합시다. Watching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