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입찰/협의를 통한 본계약 : ‘진술보장’이 가장 중요하며, 여기서도 업종별 특수성에 대해 신경 많이 써야 함. 에스크로(Escrow) 혹은 예금질권 설정 등 담보 확보 방안도 유의
최초 입찰 단계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거나 / 협의를 통해 계약예정자가 되고, 해당 기업의 가치평가가 끝나 거기에 경영권프리미엄까지 더한 금액으로 ‘잠정적인 가격 합의’까지 되었을 때. 드디어, 본계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M&A 본계약서. 앞서 말씀드렸듯이, 두껍고 방대합니다. ‘반 파운드 짜리 계약서’라는 말의 무게감이 손으로 느껴집니다. M&A 계약 5개 정도 합치면 (명작만화 베르세크에 나오는 ‘이단자 처형 신부’처럼 “이 불경한 자!”를 외치면서) 사람 한 명 구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러면 안 되겠지만 아무튼 그러합니다.
처음에는 그 분량에 압도되긴 하는데, 사실 알고보면 SPA - 사고 파는 계약 – 입니다. 큰 틀에서는 부동산 매매계약과 비슷해요. 가격, 대금지급기일, 물건의 현황 및 하자담보, 등기이전절차, 기타 세금 문제 등 매매계약에서 나올 만한 얘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계약이 틀어질 때를 대비해 계약금 10%를 선지급하는 것도 비슷합니다. 물론 M&A의 특성상 이 계약금은 ‘해약금으로 추정할 수 없다’는 조항 및 ‘일방 당사자의 귀책이 있을 경우 몰취 또는 배액상환 하되 위약금으로 추정할 수도 없어 추가 손해에 대해서는 배상해야 한다’는 조항도 들어갑니다.
그 다음에 결정적으로 길고 장황하고 중요한 조항이 나오는데요. [진술보장]입니다.
진술보장은 일반적인 매매계약에서 ‘물건의 현황 및 하자담보 설명’과 비슷한 지위를 갖고 있습니다. 부동산매매에서 해당 물건의 연식, 상태, 하자 없음에 대한 확약 등을 하는 것처럼, M&A 본계약의 진술보장도 ‘인수 대상 회사가 잘 돌아가고 있고, 이를 인수하려는 매수예정자도 멀쩡한 사람(법인)이다’라는 취지입니다.
그런데 왜 길어지느냐? 일단 이게 미국 쪽에서 넘어오면서 처음부터 긴 버전으로 들어왔을 것 같습니다. 미국 계약은 원래 길거든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가급적 다 반영한다’는 취지 때문에 길어집니다. 온갖 경우의 수를 다 집어넣죠. 진술보장 항목이 50개 넘어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매도인, 매수인 모두 진술보장을 하는데요. 통상적으로, 우리 회사 멀쩡하다 / 적법하다 / 나쁜 짓 안 한다 / 파는 사람은 제대로 된 회사 팔고 사는 사람은 합법적으로 마련한 자금만 쓴다 정도 문구는 다 들어갑니다. 너무 당연해 보이는 말도 꽤 길게 씁니다.
물론, 당연한 말만 쓰고 끝내지 않습니다. 좀 더 중요한 게 있는데요. [적법한 운영] 부분은 상당히 복잡해집니다.
일전에 공정거래법/하도급법 관련한 얘기도 잠깐 했었는데, 어느 산업이든 법률적 규제가 있고 이 규제를 담당하는 규제기관이 있습니다. 거기서 행정처분을 받을 수 있고, 이 행정처분은 과징금/과태료뿐만 아니라 ‘벌점’으로 영업을 제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각한 경우 형사처벌로 이어질 수도 있구요.
예를 들어, A건설사를 매각했는데 ‘매각 전 사정’으로 A건설사가 과징금 10억원 및 벌점 2.5점을 받았다고 해 봅시다. 건설사 쪽 사정이라면 주로 담합(부당공동행위) / 하도급법위반(갑질)인데, 아무튼 이렇게 받았다 칩시다.
진술보장에서 매도인이 다른 단서 없이 ‘적법한 운영’을 보장했다면, 이 과징금 10억원은 매도인이 책임져야 할 것입니다. 적법하게 운영한다고 호언장담했는데 공정거래법-하도급법 위반 뙇! 진술보장 위반이죠. 10억 토해내야 합니다.
그런데, 벌점 2.5점은? 이건 어떻게 될까요?
벌점 5점이면 관급공사 입찰제한 걸리고, 벌점 10점이면 영업정지입니다. 최근 3년 간 누계 벌점을 합산해서 처리하구요.
그런데, 벌점이 5점 안 되더라도 관급공사 참여시 불이익이 있을 수 있습니다. PQ (Preliminary Qualification) 점수에서 공정위 등이 부과한 벌점을 고려하여 합산점수를 감점할 때가 있거든요. 이 벌점 감점분을 만회하려면 가격을 더 싸게 써야 할 것이구요.
그렇다면, 벌점 때문에 수주 탈락하거나 / 더 싸게 입찰 참여해야 경우가 생길 수도 있겠죠. 이 또한 손해입니다. 3년 간 지속적으로 도트데미지 발생하는 손해죠.
(디X블X의 ‘독Charm’처럼 도트데미지 들어갑니다…)
다만, 이 ‘벌점에 따른 도트데미지’는 (디X블X와 달리) 그 총액을 산정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인과관계 입증하기도 어렵습니다. 매각 후 몇 건의 관급공사가 있을지 알 수 없고, A건설사가 그 중 몇 건을 수주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며, 구체적으로 얼마의 이익분을 날렸는지도 확인할 수 없습니다.
결국 진술보장에서는 이러한 장래의 사정을 다 감안해야 합니다. 벌금/과징금/과태료처럼 명확하게 한 번에 금액 확정되는 거면 그나마 쉽지만, 위 ‘벌점에 따른 PQ점수 감점’처럼 당장 계량화하기 어려운 것들은 어떻게 처리할지 기준을 정해 합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여, 진술보장 부분에서는 [~% 이하의 변동은 상호 문제삼지 않기로 한다]는 조항이 들어갈 때가 많습니다. 그 동안 적법하게 운영했다는 점을 보장하긴 하지만 여기서 적법(適法)은 ‘안 걸렸다’는 의미이므로 혹시 걸리더라도 매도인 탓은 하지 말고 적당히 떠안되 너무 타격이 크면 매도인 불러라, 뭐 그런 느낌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적법운영]의 범위가 산업마다 다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건설업에서는 건설산업기본법/공정거래법/하도급법 정도만 신경쓰면 되지만 다른 산업에서는 또 다른 법령들을 신경써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와는 별 관련 없지만, `80 ~ `90년대 화학산업을 생각해 봅시다.
예전 대한민국의 화학산업은 상당히 위험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입니다만, 요즘은 처리시설 잘 갖추고 유출방지 관리를 엄격하게 하며 혹시라도 유출되면 중하게 처벌하긴 하죠.
다만… 예전에는 관리 안 됐습니다. 대략 D기업에서 시전한 “낙동강 페놀 사건”이 있었죠. 그것도, 둘씩이나.
D기업은 낙동강에 페놀을 두 번이나 방류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지속적인 M&A를 통해 그룹 체질을 바꿨죠. 중간에 “사람이 미래다” 광고를 시전한 뒤 “그렇지만 니 미래는 해고다”를 행동으로 보여 주기도 했었구요.
아무튼, 이렇게 대형 오염 사고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회사를 M&A로 매각한다면?
당연히 계약서 진술보장사항이 매우 늘어날 것입니다. 매수인 입장에서 덤테기 쓰고 벌금 민사배상 크리티컬 치명타 터질 수가 있으니, 사전에 매도인에게 온갖 조건 다 받아내려 할 것입니다. 그거 제대로 안 써주면 M&A고 나발이고 다 때려쳐야죠.
화학산업을 예로 들긴 했는데, 이러한 산업적인 법령 외에도 ‘매매대금의 산정 기준에 대한 진술보장’도 중요할 것입니다. 특히, 앞에서 가치평가의 예로 든 DCF법이나 그 변형 기준에 대해서는 진술보장을 통해 ‘적정한 가치평가’라는 걸 확인해 둬야 합니다.
물론, DCF법이라는 것 자체가 ‘미래 가치 예측’이기 때문에 정확할 수는 없습니다. 시장상황이라는 건 언제든 변하는 것이고, 매도인과 무관한 제3의 사정으로 매각대상 회사의 사업성이 꺾이는 건 매도인에게 책임 물을 수 없죠.
다만, 매도인이 ‘내부적인 허위자료’를 통해 DCF법 내지 그 변형 평가의 근거를 부풀렸고 그게 실사 결과 드러났다면, 이건 진술보장 위반으로 감액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법무담당자는 그 특이한 사정이 M&A계약에 반영될 수 있도록 사전에 신경써야 하는 거죠.
당연히 외부자문 들어온 변호사도 신경 씁니다. 한 건에 몇억원씩 받는데 신경써야죠. 문제없이 잘 마무리되어야 다음에 또 일감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고객관리 차원에서라도 신경써야 합니다.
하지만, 최종적인 책임은 결국 ‘회사’가 지는 겁니다. 회사 오너가 가장 큰 책임을 지겠지만 ‘회사원’도 일정 부분 책임은 있죠. 진급하고 포상받고 이후에도 잘 나가려면 자기 회사가 속한 산업의 특성을 이해하고 M&A계약 진술보장에 반영하는 정도는 해 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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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보장 얘기가 길어졌는데, 이 진술보장은 결국 손해배상으로 귀결되는 것이고 손해배상은 ① 손배예정 또는 위약벌 ② 적정한 담보 확보 로 연결됩니다. 천문학적 금액이 오가는 M&A에서는 둘 다 꼼꼼히 챙겨야 하구요.
손배예정 또는 위약벌은 정하기 나름입니다. 위 ‘벌점에 따른 PQ점수 감점’ 같은 것도 ‘공정위 또는 국토부의 행정처분으로 인해 벌점 발생할 경우 해당 벌점 1점 당 1억원’ 하는 식으로 정해 둘 수 있습니다. 물론 같은 산업 내에 다른 M&A에서 비슷한 선례가 있었는지는 알아 보고 해야겠죠. 괜히 나댔다가 ‘저 법무담당자 ㄸㄹㅇ 아냐?’ 라는 얘기 나오면 좋을 것 없습니다.
적정 담보 확보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M&A 계약에 직접 반영되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에스크로(Escrow) 계좌 내지 예금질권 설정이죠.
M&A에서도 계약금 10%를 미리 내고, (대부분 중도금은 생략하는데) 실사 끝난 후 별 문제 없으면 잔금 지급합니다. 이 계약금 중 일부를 계속 예치하거나 / 잔금 중 일부를 별도로 예치해 두는 경우, 해당 예치금이 담보로 기능하겠죠.
‘에스크로’는 은행이 직접 관리하는 계좌를 개설한 후 매도인-매수인 쌍방 명의로 해당 계좌에 입금하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제가 직접 해 본 적은 없구요. 통상 은행 측이 수수료를 떼 가기 때문에, (한국 기준으로) 수수료 무서워서 잘 안 하는 것 같습니다.
예금질권은 좀 더 쉽습니다. 다들 법학 배우실 때 물권법 부분에서 질권-저당권 편 보셨을 텐데요. 예금통장에 들어간 현금을 질권으로 잡아 두는 겁니다. 매수인 동의 없으면 매도인이 인출 못하게 막아버리는 거죠.
통상적으로 예금질권 방식을 선택했을 경우, 진술보장기간이 지난 후 해당 예금질권 해제에 동의하는 방식으로 풀어 줍니다. 진술보장기간을 1년으로 설정했다면, 1년 동안 예금질권에 해당하는 5~10%를 조용히 묶어 놨다가 진술보장기간 끝나는 시점에 다시 만나 해제에 동의해 주는 식이죠. 중간에 진술보장위반에 따른 감액사유가 발생했다면 그 감액금액만큼 질권설정된 계좌에 압류 때릴 거구요.
물론, 위에서 언급한 것 외에도 진술보장에서 신경써야 할 게 많습니다.
- 직원들 관리에 있어서 ‘근로기준법 및 기타 제반법률을 위반한 게 없다’, ‘근로자들을 대표하는 대표자 외에 별도의 노조가 없다’ 등의 조항이 나올 것이고,
- 부동산을 비롯한 각 자산의 평가에 대해 ‘매년 회계법인의 적정한 평가를 받고 있으며, 현재 자산 가격에 대해서는 최신 자료로 정당하게 평가받은 것이다’라는 조항도 있을 것이며,
- (매수인의 진술보장으로) 해당 인수대금을 적법하고 정당하게 마련했다는 조항도 경우에 따라서는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고용보장’ 조항이 들어가기도 합니다. “~인수 완료 후 [3]년 동안은 인수대상 회사의 일반 직원들을 부당하게 해고하지 않는다. 단, 인수 시점 기준으로 임원(집행임원 포함)에 대해서는 예외로 하며, 각 개인에 대해 근로기준법 및 취업규칙 상 개별적인 해고사유가 발생한 경우에도 해당 법령에 따라 정당하게 해고할 수 있다.” 정도의 조항입니다. 뭐 이런 조항 있어도 해고하려면 뭔가 사유 발굴해서 해고하긴 합니다만… 일단은 그렇습니다.
본계약상 진술보장, 담보 등도 신경써서 봤다면 거의 끝난 것 같지만… M&A에서 가장 시간 많이 잡아먹는 절차가 있습니다. 바로 ‘실사’인데요.
실사 부분과 그 이후는 챕터 나눠서 설명하겠습니다. 생각보다 내용이 길어지네요… 아무튼 끝까지 다 설명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