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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서스 Nov 17. 2023

[건설법무] 신탁, 주택조합, 공공택지


1. 서론


신탁, 주택조합, 공공택지. 오늘 챕터의 주제로 뽑은 3개의 키워드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별 관계 없을 것 같은 단어들인데요. 이 세 가지가 2010년 이후 건설업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했고, 상당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본론 진행하면서 각각의 개념만 가볍게 정리하고, 2010년대 건설업 관련 얘기를 해 보겠습니다. 이번 글은 간단한 구조라서 본론 쓰면서 바로 목차 정리하겠습니다.



2. 본론


(1) 부동산신탁회사의 사업 확대


우선 신탁(信託)이란 ‘믿고 맡긴다’는 겁니다. 신의 말씀을 듣는 신탁과는 다르고, 위탁자와 수탁자 간 물건관리/사무관리 등을 믿고 맡기는 제도입니다.


대학에서 민법 공부하신 분들은 ‘명의신탁’에 대해서 들어보셨을 겁니다. 위탁자 A가 자신의 물건(주로 부동산이나 주식)의 소유권을 수탁자 B에게 넘겨 대외적으로는 수탁자 B가 소유권을 갖도록 하되, 내부적인 관계에서는 여전히 A가 소유권을 갖는 구조입니다.


기존의 명의신탁은 주로 ‘세금회피’ 의도가 강했습니다. 한 명이 부동산이나 주식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세금이 많이 나오니, 이걸 자기 가족/지인/부하직원 등에게 명의만 돌려 놓는 거죠. 물론 이게 문제가 되니 ‘부동산 실권리자 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 등으로 제재를 가했었구요.


또한, 명의신탁은 배신(背信) 문제가 있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수탁자 B가 소유자이기 때문에 B가 수탁받은 부동산/주식을 팔아치우고 잠수 타는 경우도 많았겠죠. 이 때 위탁자 A는 B에게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게 건설업에서는 좀 다른 제도로 정착되는데요. [부동산 전문 신탁회사]가 탄생하게 됩니다.



2005년이었는지 2010년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당시 신입사원 아니면 (무늬만) 대리였던 저는 회사 일로 국내 건설 전문 변호사님(감히 대선배님 실명 밝히면, 법무법인 율촌의 박주봉 변호사님이십니다.)을 찾아갔었습니다. 그리고, 회의 내용과 별 관련 없이 ‘부동산 신탁’ 얘기가 나왔습니다.


당시 변호사님이 하신 말씀.

“이 나라의 민간에서 발전한 신탁제도가 아예 법으로 만들어졌어요. 민초들이 주도적으로 법 만든 거죠. 대단합니다.

이 신탁제도는 건설 판을 바꿀 겁니다. 건설업 전반이 달라질 거예요.”


당시의 저는 ‘신탁이 건설업을 바꾼다’는 말을 제대로 이해 못했습니다. 그걸 이해할 만한 경험이 없었어요. 그냥 그러려니 했죠.


그 뒤 2012년 말에 건설업을 떠나 2016년 말에 돌아왔었는데… 진짜로 건설업 판도가 달라져 있었습니다. 일단 아파트 중심으로 바뀌었다는 점은 명확했고, [부동산 신탁 없으면 사업이 안 된다]는 점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박주봉 변호사님의 예언(!) 그대로였죠. 부동산 신탁이 건설업 판도를 바꿨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건설개발사업 전반에 신탁회사가 개입하게 되었고, 신탁회사 없이는 시행사업이 안 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그 전에도 부동산 신탁회사들이 있긴 했습니다. 소위 ‘한토신’이라 불리는 한국토지신탁 등이 부동산 신탁업무를 했었고, 2010년 이후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은 민간 주도 신탁회사들이 훨씬 더 많구요.


부동산 신탁이 불과 몇 년 만에 이렇게 활성화된 이유. 그건 “자금관리의 신뢰성” 때문이었습니다.



이전의 개발사업은 ‘시행사’가 주도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시행사들이 입지 좋은 곳에 땅 매수작업을 하고, 가계약금만 걸어서 대략 80% 정도 확보하게 되면 시공사를 물색하고, 시공사의 연대보증을 통해 금융권 대출 일으켜 토지 중도금+잔금 치르고. 분양 시작되면 시행사가 분양대행사 끌어들여서 수분양자 모집. 대략 그런 방식이 많았습니다.


물론 지금도 시행사들이 많고, 예전 시공 중심이던 건설사들이 자체시행사업을 늘리면서 직접 시행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행사업 자체는 여전히 건재(健在)합니다.


여기서 ‘부동산 신탁회사’가 개입하는데요. 금융권 대출과 관련한 자금관리 업무를 신탁회사가 흡수한 겁니다. 즉, 시행사가 돈 관리를 하지 않고 신탁회사가 돈 관리를 하게 된 거죠.


아주 사소한 차이 같지만, 이게 의외로 큰 파급효과를 불러왔습니다. 대다수 시행사들은 자금력이 약하고 상대적으로 영세한 편이었는데, 이 영세한 시행사들에게 돈을 맡기지 않고 ‘나름 금융권 계열로 안정된 자금관리가 가능한 신탁회사’에게 돈을 맡긴 겁니다. 이것만으로도 사업이 확 안정되죠.


그리고, 자금관리가 안정되면 공사관리도 안정됩니다. 예전에는 시행사를 믿지 못해 ‘시공사의 연대보증’으로 신용을 보강했었고 그 결과 ‘덩치 크고 자금력 좋은 시공사’를 선호했었던 반면, 자금관리 부분에 신탁회사가 들어오면서 시공사의 규모가 작아도 사업이 가능하게 된 거죠.


즉, 신탁회사가 자금관리를 맡아 주는 것만으로 ①사업이 안정되고 ②시공사의 규모가 작아도 사업 추진 가능 한 구조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③아파트 가격 상승 이 더해졌고, 전에 수 차례 강조한 대로 ④전국에 아파트 현장소장 할 사람이 5만 명 넘는 상황 까지 더해졌습니다. 이게 대략 2013년 ~ 2020년 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는 중견건설사들에게 큰 기회가 되었습니다. 아파트 현장에 근무할 기술인력은 ‘프로젝트 계약직’으로 단기고용하면 그만이었고,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니 입지 좀 딸리는 곳에 지어도 다 완판되었으며, 신탁사가 자금관리하니 금융권 대출도 잘 나왔습니다. 아파트, 상가, 오피스텔 등으로 매출 몇천억 올리는 건 [참 쉽죠?]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2가지가 추가됩니다. 주택조합, 공공택지.


우선 주택조합부터 봅시다.



(2) 진격의 주택조합


재개발은 ‘영세한 지역 전체를 광역개발’하는 방식이고, 재건축은 ‘이미 인프라 구축된 곳에 특정 단지만 다시 짓는’ 방식입니다. 재개발/재건축 모두 ‘토지 소유권을 가진 사람들이 해당 토지 소유권을 조합에 넘겨 사업’한다는 점에서 동일한데요. 이렇게 토지 소유권을 조합에 넘긴 뒤 신축 아파트를 분양받고, 조합원 분양분이 아닌 일반분양분은 사업비에 충당’하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반면, 주택조합은 ‘토지 소유권이 없는 사람들’이 조합을 이뤄 진행합니다. 즉, 공동으로 출자하여 땅 사고 그 땅으로 사업하는 구조입니다.


2010년 이전에는 주택조합이 거의 활성화되지 않았습니다. 삼성전자~삼성후자 등 대형 사업장의 직장주택조합이라면 모를까,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한 지역주택조합은 거의 안 됐습니다.


예전의 지역주택조합이 잘 안 된 이유. 뻔하죠. ‘돈 문제’입니다. 땅 없는 사람들이 돈 내서 땅 사고 아파트 짓는데 돈 문제가 원활할 리 없죠.

게다가, 가장 치명적인 크리티컬 문제가 있습니다. [돈 갖고 잠수탄다]는 문제.

지역주택조합은 그 자체로 하나의 법인이지만, 결국 운영하는 것은 ‘사람’이 합니다. 주택조합장이 주택조합 통장의 돈 빼서 잠수타면 분명 ‘업무상 횡령’이지만, 국내에 없으면 어쩔티비. 다들 대혼란의 카오스에 빠져드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신탁회사’가 등장합니다. 함부로 돈 빼서 도망 못 가게 뽷 자금관리 해 주는 회사. 무려 금융권 소속 회사!


물론, 신탁회사 있어도 사기칠 놈은 여전히 사기칩니다. 야구에서 내려갈 팀이 내려가듯 (DTD) 부동산 판에서도 사기칠 놈은 사기치고 돈 갖고 잠수타는 놈은 여전히 잠수탑니다. (Submarine is Submarine 정도 되려나요?)


다만, 예전에 비해 사기-잠수 규모가 많이 줄었습니다. 지금 주택조합 판에서 업무상횡령-배임-사기로 잠수타는 규모는 ‘업무대행사 수수료’ 정도입니다. 조합 가입자가 계약금+대행사수수료 합계 2천~3천만원 정도를 내는데, 이 중 50~60%만 대행사 측이 관리할 뿐 나머지 계약금은 모두 신탁회사 계좌로 들어가고, 중도금부터는 전부 신탁회사가 관리합니다.


업무대행사 입장에서는 사소한 푼돈 수수료 먹고 잠수타는 것보다는 그냥 주택조합사업 완수하는 게 낫습니다. 한탕 크게 먹고 잠수타면 다른 사업을 못 하는데, 주택조합사업 완수하면 다른 사업 또 하잖아요. 그냥 계속 일하는 게 낫죠.


이리하여, 주택조합사업이 성공하게 됩니다. 2010년까지 혼돈의 카오스였던 아사리판이 갑자기 잘 돌아갑니다. 주택조합으로 지은 아파트가 완판 성공하고, 땅 없이 조합원이 되었던 사람들은 자기부담금도 별로 안 내고 아파트를 갖게 됩니다.



이러한 주택조합사업 또한, 중견건설사들에게 큰 기회가 됩니다. 아니, 아예 중견 수준도 안 되던 중소건설사들도 주택조합의 붐을 타고 중견 레벨로 올라옵니다. 재개발 재건축 쪽에는 감히 명함도 못 내밀던 중견~중소건설사들이 주택조합을 통해 매출 몇천억원대 회사로 발돋움했고, 1군 건설사 중에서도 중상위권에 이름을 올립니다.


그러나. 주택조합과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파도가 또 있었습니다. 그 파도에 올라탄 건설사들을 몇 조 단위 대형기업으로 올려 줄 파도.


그 파도가 ‘공공택지’였습니다.



(3) 공공택지 : 벌떼입찰의 명암(明暗)


앞에서 ‘예전 시행사업’을 잠깐 언급했었는데요. 자금력 약한 시행사가 가계약금 5%만 걸고 땅 사서 대략 소유권 80% 확보하면 시공사 찾아다니면서 연대보증 해 달라고 영업하고, 연대보증할 시공사가 나서면 그 때 금융기관 섭외해 본계약금+중도금+잔금 치르고 분양 시작하는 구조. 이게 과거의 시행사업이었습니다.


이 때 눈치빠른 토지 소유주 1명이 안 팔고 버티면… 그게 바로 ‘알박기’입니다. 땅 하나만 더 사면 되는데 안 팔고 버티는 사람 있으면 시공사 금융기관 모두 똥줄타겠죠. 가끔 알박기로 대박 나는 사람들 있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해 주는 게 ‘공공택지’입니다. 국가 또는 공기업이 주도적으로 택지개발 해서 팔아버리면 알박기 문제 따윈 생길 수가 없겠죠. 심지어 전기/상하수도/교통인프라까지 갖춰서 택지 공급해 줍니다. 어익후 좋아라.


다만, 공공택지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완전히 새로 개발하는 신도시예정지 인근에 공공택지 분양을 하기 때문에, 잘 될지 안 될지 모른다는 것. 자칫 잘못되면 미분양으로 쪽박 찬다는 것.


이 문제점이 크게 우려되었던 곳이 ‘세종시 인근’입니다. 지금은 잘 모르시겠지만, 세종시 처음 개발할 때만 해도 ‘이거 미분양 나면 어쩌지?’라는 우려가 컸습니다. 201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대형건설사는 세종시 그리 선호하지 않았어요.


대형건설사는 잘 안 들어오고, 택지분양은 해야 하고. 그 와중에 (공공기업답게) ‘중소기업 사업 활성화’도 신경써야 합니다. LH를 중심으로 한 택지분양 공공기관들은 ‘중소건설사도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입찰제도’를 만들었고, 그 입찰제도로 공공택지를 분양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악명 높은 입찰방식이 등장하죠. 바로 [벌떼입찰]입니다.


중소건설사도 Dog나 Cow나 다 입찰 참가 가능한 방식. 건축면허 중에서도 주택면허만 있으면 다 참가 가능하고 실적 따윈 아몰랑. 자본금 1억짜리 회사면 아무나 다 받아 줌. 그 입찰참여자가 다른 회사의 계열사인지도 아몰랑.


몇몇 건설사들은 이 입찰제도의 맹점(盲點)을 알아차렸습니다. [100개의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서 입찰 넣어도 다 유효하구나!] 라는 점을 바로 알아차렸고, 그대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공공택지 하나 나오면 200~300개 회사가 입찰 들어오는데 이 회사의 95% 이상이 자본금 1억에 생긴 지 한 달도 안 되며 기술자로 등록된 사람들도 다 돌려막기 형태인 상황. 그리고, 그 종이뿐인 회사의 지분관계를 따져 보면 결국 2~3개 회사로 압축되는 상황. 이게 벌떼입찰이었습니다.


벌떼입찰을 한 업체들은 공공택지를 쓸어담습니다. 이미 토지소유권 정리 끝났고 기반시설도 갖춰진 공공택지를 수주받아 아파트만 올리면 끝. 거기에 전국적으로 아파트 열풍이 불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분양 완판. 낙찰받는 순간 순이익 1천억 확정되는 사업. 진정 ‘참 쉽죠?’가 완성되었습니다.


공공택지 벌떼입찰 업체들은 거대한 파도를 타고 하늘까지 올라갑니다. 도급순위 10위권에 진입하고, 고래를 집어삼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20층 건물을 못 짓는다던 회사들이 아파트 짓는 기술력 하나만으로 대한민국 건설업 판도를 뒤흔듭니다.


그렇게, 격동의 2010년대가 지나갔습니다.



(4) 소결


신탁회사 자금관리, 그를 통한 주택조합 활성화, 공공택지. 이 3가지 요소로 ‘아파트 중심 건설사 킹왕짱’ 시대가 열렸었습니다. 아파트만 지어도 도급순위 10위 진입 가능하고 3~4위권 공룡을 집어삼킬 수 있는 시대, 그런 시대가 202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었습니다.


이제 2023년. 앞으로는 또 어떨지 모르죠. 아파트 기술력만 가지고 하늘까지 치솟은 건설사들이 환골탈태하여 ‘기술력 중심의 건설사’가 될지, 그냥 하던 대로 다시 아파트 붐을 기다릴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다들 함께 지켜봅시다. 아파트 공화국의 일원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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