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부당지원' 등과 일부 연결됩니다.)
1. 서론
[건설법무 개론]에서 하도급법과 약관규제법을 간략하게 언급했었는데요. 하도급법은 현장시공 전문공사업체 관리 / 약관규제법은 분양계약서 부분에서 자주 다룹니다. 건설회사 법무담당자라면 관련 법령 자주 찾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계열사 공사에서의 공사가격 문제는 부당지원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도 다른 글에서 정리했었습니다. 일반불공정거래행위의 한 유형인 부당지원은 ‘정상적인 시장가격 기준 +- 7%를 넘을 경우’를 기준으로 하는데, 건설공사의 정상시장가격 산정하면 표준품셈 등의 요소로 인해 가격이 크게 높아질 수 있고 결국 계열사 공사가격은 정상시장가격 범위 내에 들어오게 됩니다.
오늘은 공정거래법의 큰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부당공동행위(담합)”에 대해 살펴보고, 담합 사건 터졌을 때 법무담당자가 뭘 해야 하는지 간략히 정리하겠습니다. 그런 다음, 이전에 다뤘던 하도급법과 약관규제법 관련사항도 조금 더 보완설명하는 내용 덧붙이도록 하겠습니다.
2. 본론
(1) 부당공동행위(담합)와 리니언시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고 유효경쟁을 촉진하는 경제사법경찰 공정위. 이 공정위에게 가장 좋은 일감(!)이 ‘독과점적 지위 남용’과 ‘부당공동행위(담합)’입니다. 공정위 설립 취지에 가장 잘 맞는 일거리이기도 하고, 과징금 등 행정처분도 쎄게 먹일 수 있죠.
건설업에서 ‘독과점 지위 남용’이 일어나기는 어렵습니다. 상위 TOP5 건설사들 매출 다 합쳐도 전체 건설매출의 10% 조금 넘는 수준일 거예요. 공정위가 좋아하는 ‘유효경쟁’이 충분히 보장되는 시장입니다.
다만, 이렇게 경쟁이 확립되면 ‘경쟁을 줄이는 상호 합의’에 대한 유혹이 커집니다. 경쟁사업자 간 상호합의를 통해 경쟁을 회피하고 가격을 올리는 기술 – “담합”이 등장하게 됩니다.
건설사들 간 담합은 꽤 자주 / 쉽게 일어납니다. 특히 ‘입찰’을 할 경우 담합이 자주 일어나는데요. 대다수 건설사 영업팀들 간에 개인적-조직적으로 연락 가능하고, 이를 통해 타 회사의 주력 입찰 건을 확인할 수 있으며, 상호간 출혈경쟁을 줄이기 위해 미리 가격을 협의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게 되면… 미리 만나서 사전 모의를 하게 됩니다.
물론, 대한민국 공정위도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건설사 담합 털어먹는 게 하루이틀도 아니고, 아주 잘 털어 줍니다. 잊을 만 하면 한번씩 건설담합 적발 뉴스가 뜨죠.
건설 입찰 담합은 기존 사례가 많고 조사 노하우도 충분히 쌓여 있어서, 일단 한 번 조사 시작하면 빠져나가기 어렵습니다. 영업담당자 카톡, 문자메시지, 메일, 회의일정, 회의일정 관련 수첩메모 등이 모두 증거가 되고, 한 명씩 불러서 새벽2시까지 조사해 버리면 하나하나 진술 쌓입니다. 그럼 관련회사 모두 과징금 몇십억씩. 참 쉽죠?
늘 그렇듯이, 공정위 사무관들에게는 쉬운 일이지만 건설사 입장에서는 피말리는 일입니다. 특히, 영업팀에서 이런 담합 논의 한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다가 덜컥 적발된 다음에 대응해야 하는 법무팀은 더더욱 당혹스럽습니다.
회사가 담합 사건으로 조사를 받게 되었을 때. 법무담당자는 뭘 해야 할까요?
일단 상황 판단을 빨리 해야 합니다. 진짜로 담합이 있었는지 / 어쩌면 담합 같은 건 없었는데 누군가 모해(謀害) 목적으로 허위신고한 건지 알아봐야겠죠. 뭐 대부분 진짜 담합 사실이 있을 겁니다.
담합 건이 맞다고 판단되면, 곧바로 고려해야 할 게 ‘리니언시(Leniency)’입니다. 린저씨 게임 리니지 말고 리니언시. 좋게 말하면 ‘자진신고’, 나쁘게 말하면 ‘먼저 꼬바르기’를 시전해야 합니다. 더 나쁘게 말하면 ‘배신’이죠.
뭐, 회사는 냉정합니다. 공정위에서 ‘서로 먼저 꼬바르세요. 과징금 면제받고 싶다면 서두르셔야 합니다.’라는 제도를 만들어 놨다면 어서 빨리 서둘러서 과징금 면제받아야 합니다. 다른 회사에 대한 의리? (으~~~리?) 아몰랑.
실제 담합사건 적발되면 대기업일수록 더 빨리 자진신고 하러 갑니다. 심지어 적발 당일날 불과 몇 분 차이로 1~2위가 갈리는 경우도 있어요. 모두가 서둘러서 먼저 배신선빵 날리는 분위기니까 더 서둘러야 합니다.
이런 걸 ‘죄수의 딜레마’라고 하긴 합니다. 뭐 어쩌겠습니까. 회사는 돈 버는 게 제1목표인 조직이고, 과징금 아끼려면 배신선빵 날려야 합니다. 법무담당자라면 (컴플라이언스 관점이든 전투적인 관점이든 무관하게) 최대한 빨리 자진신고 해야 합니다.
담합 걸리면 즉각 자진신고. 다른 회사 사정 고려하지 않고 자진신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진신고. 이렇게 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혹시 3위로 밀려나면… 어쩔 수 없죠.
(2) 하도급법 위반 대응
[건설법무 개론]에서도 잠시 썼었는데, 대한민국 하도급법은
- (건설업 기준) 매출 1천억 이하 중소기업을 보호 (계약상 대금지급 관련해서는 2천억까지, 원청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인 경우 3천억까지 상향 보호)
- 철저한 문서주의. 원청이 문서 다 준비해서 교부해야 함
- 위에서 돈 받으면 15일 내에 대금 지급. 위에서 돈 못 받아도 60일 내에 대금 지급.
- 기술탈취, 경영간섭, 부당특약, 기타 일체의 갑질 금지
- 물가변동 있었을 경우 (원청은 물가변동 인정 못받더라도) 일단 하수급인 측이 협의 요청하면 협의에 응해야 함. 납품단가연동제 도입되면서 더 강화됨. ‘물가변동 인정 못할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원청이 이를 입증해야 함.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법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지만, 현실 적용이 매우 어렵죠.
하도급법이 적용되는 현실에서, 일단 문제의 시발점은 ‘업체가 손해보는 상황’입니다. 돈 남는 상황이면 계속 일해서 돈 더 벌고 다음 공사 따내려고 하지, 공정위 갈 일 없어요. 손해 난 업체가 공정위에 신고합니다.
손해 나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원청의 공사지역이 바뀌면서 새로운 지역으로 따라간 하청업체가 적정한 건설경험 근로자 모집하는 데에 곤란을 겪다가 손해나는 경우도 있고, 아예 딴 일 하다가 돈 날린 걸 이쪽 건설현장 선급금 빼서 막았다가 이쪽 현장 공사를 제대로 못해 타절당하면서 손해 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원청의 갑질 문제도 있을 거구요.
이렇게 손해 본 업체가 공정위에 신고하면, 통상적으로 ‘하도급분쟁조정원’을 먼저 거치게 됩니다. 이 조정원에서 조정합의가 이루어지면 공정위 신고 안하게 되죠. 조정이 결렬되면 해당 하도급업체가 별도 신고를 하게 되구요.
하도급조정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조정이 다 그러한데, 조정 과정에서는 ‘법리적 판단’보다는 ‘현실적 손해 분담’이 우선합니다. 즉, 손해 발생한 원인이 주로 하도급업체 귀책으로 인정되더라도 일단 손해가 크다면 상생 차원에서 손해 분담해라, 뭐 이런 형태가 일반적이죠.
법리와 무관한 ‘현실 손해 기준 협의’. 그리고 이를 거부하여 조정결렬되면 공정위 신고로 이관되면서 하도급법위반 조사를 받는 상황.
이러면 조정 수용하는 게 유리…하겠죠?
이런 판단은 법무담당자가 바로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정원 조정 있을 때 현업 분과 함께 갑니다. 현장의 자금사정, 원가율, 발주처의 입장 등을 고려하여 수용할 수 있는 선을 미리 정하고, 어느 정도 수용 가능한 수준에서 조정이 이루어진다면 ‘현업이 인정할 때 수용’하는 것으로 합니다.
물론, 턱없이 많은 돈으로 합의할 수는 없습니다. 개론에서 설명드렸듯이, 문서주의 위반 등 상대적으로 경미한 사항은 2회 적발까지는 ‘경고’로 끝나고 벌점도 0.5점입니다. 업체가 금액 부풀려서 몇십억 요구하는데 적당한 선으로 타협 불가하다면 그냥 경고 받을 수도 있죠.
비유하자면, 야구에서 ‘삼진아웃’ 같은 느낌입니다. 스트라잌 3개 쌓이면 쫓겨나지만 역으로 말하면 스트라잌 2개까지는 감수할 수 있습니다. 하도급업체 측이 하도급법을 자신의 전용무기인 양 휘두르면서 돈 더 뜯어내려고 한다면, 그까이거 스트라잌 하나 먹어 주고 끝까지 가면 됩니다. 사전에 경영진 보고 잘 해야 하구요.
이건 ‘실전(實戰)’의 영역입니다. 법무담당자 개개인의 역량과 성향에 따라 잘 판단하시면 됩니다.
(3) 약관규제법 : 분양계약서 관련 분쟁에서 ‘허위ᆞ과장광고’와 연계해서 판단
이 또한 [건설법무 개론]에서 잠시 말씀드렸었는데, 공정위가 배포하는 (아파트)표준공급계약을 준용하면 쉽습니다. 그대로 준용하지 않고 일부 조항을 삭제/편집하거나, 해당 현장 특약사항을 잔뜩 덧붙일 때가 문제겠죠.
실제 분양현장에서는, 분양계약서 문구에 대해 공정위에 ‘추상적 심사’를 구하기보다는 / ‘분양계약 취소’를 주장하며 소송 과정에서 약관규제법상 해당 약관 무효 여부를 따지는 ‘구체적 심사’가 더 많습니다. 약관규제법은 공정위만 보는 게 아니라 법원도 재판 과정에서 주요 법리로 활용하고 있고, 개별적 사건에서 직접 판결을 내리는 건 법원이죠.
기존에 무효로 판단된 분양계약 조항은
① 분양계약 해제시 기존 납입금에 대해 무이자로 반환한다는 조항
② 납입기일을 도과하여 연체료 부과할 때 납입기일에 따라 연체료 증가시키면서 과중한 연체료 부담시키는 조항
③ 위약금을 계약금 2배인 20%로 설정하는 조항
등이 있고, 이와 별도로
④ 분양계약 사본을 계약체결 당시에 교부하지 않는 행위
⑤ 특약사항을 과도하게 많이 규정하고 해당 특약사항들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행위
등에 대해서도 약관규제법상 무효 법리를 적용할 때가 있습니다.
이 중 ‘설명의무’와 관련된 사례들은 실제 소송에서 ‘허위ᆞ과장광고’와 연결되는데요.
대략 예를 들면 “지하철역 도보 5분 거리”가 있습니다. 분명 도보 5분이라고 하는데 어디 이봉주 황영조 전성기 시절 속도로 달리지 않으면 절대 5분 나올 수 없고 저처럼 허약체질이 걸어가면 15분 나오는 경우. 꽤 과장되어 있죠?
이런 과장광고는 애교(?)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인근 지역 개발가능성’인데요. 지하철역 개통 임박 / 초대형 상권 조성 / XX 직통도로 개통 예정 등, 구체적인 개발계획과 시기를 언급했는데 이게 아무 근거 없는 것이라면 허위광고로 문제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허위광고 건 분양계약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 특약사항 등에 “~는 당사가 진행하는 사항이 아니고 (~카더라 통신에 따른) ~~지자체 간 협의를 거쳐 시행될 예정사항일 뿐이며 당사와 무관한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호갱님)” 등의 문자가 살짝 기재되어 있을 겁니다. 미리 계약서에 다 써 놨다 이거죠.
이 특약. 유효할까요?
약관규제법상 ‘설명의무’가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특약사항을 40항 이상으로 길게 쓴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고, 관련 내용을 설명해야 합니다. 분양대행사 직원들이 내용 다 빠삭하게 알고서 특약사항 하나씩 다 설명해야 한다는 거죠.
현실적으로 그게 잘 될 리 없습니다. 특약사항 중 2~3개만 설명해도 잘 하는 거예요. 어마무시하게 많은 특약사항 써 놓는다고 해서 다 설명할 수도 없고, 설명 안 된 특약들은 약관에 편입되지 않습니다.
다만, (분양하는 건설-시행사 입장에서 본다면) 약간은 다행인 것이, 법원에서도 ‘어느 정도의 상업적 멘트는 허용한다’는 겁니다. 위에서 말한 (이봉주 황영조 전성기 시절 달리기 실력으로) 5분 거리 정도는 상업적 멘트로서 계약을 무효에 이르게 할 만한 과장광고는 아니고, 지하철 등 교통인프라 구축 또한 해당 사업시행자의 권한 범위 밖인 점을 통상적인 수분양자가 다 예측할 수 있으므로 이 또한 계약해제 사유는 아니다. 뭐 그 정도입니다.
물론, 건물의 형상 등을 임의로 변경하거나 / 특정 상가를 용도대로 사용할 수 없을 정도의 하자가 있다면, 이는 특약 기재 여부와 무관하게 계약무효-해제 사유가 되겠죠. 결국 케바케로 소송 해 봐야 압니다.
글 쓰다 보면 늘 느끼는 건데, 방대한 사례와 다양한 경우의 수를 몇 개 문장으로 압축하는 건 상당히 어렵습니다. 결국 개론 수준의 글을 읽는 걸로는 한계가 있고, 최종적으로는 현실에서 직접 경험해 봐야겠죠. 물론 글 쓰는 제 입장에서는 개론 수준으로도 최대한 이해하실 수 있게 잘 써야 하구요. 세상 일이 다 그렇듯이 쉽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