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팬더 추리 소설 걸작 시리즈로 처음 접했었던 셜록 홈스 시리즈를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의 드라마 <셜록>을 계기로 다시 읽게 된 게 벌써 수년 전이다. 자연히 셜록 홈스라는 인물을 창조한 아서 코난 도일에 대해 호기심을 품고 있던 차에, 마침 중고 서점에 꽂혀있던 다소 두터운 코난 도일의 전기를 발견하게 되었다. 독특한 스타일로 구성된 표지도 재미있었지만, 무엇보다 풍부한 사료들을 기반으로 성실하게 기술한 전기 작가 마틴 부스의 필력이 상당했다. 거기다가 이제는 절판된 귀한 책이다.
하지만 좋은 책을 골랐다는 자부심에 취해 거침없이 책을 읽어나갔던 것도 잠시, 언젠가 경험한 바 있는 기시감이, 책의 행간을 훑어 나가던 중 출현했다. 코난 도일의 전기 189쪽, 아서 코난 도일이 “범인의 어리석음 아니라 자기 실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과학적인 탐정”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는 부분이었다. 다시금 망막 변성의 악화된 징후가 나타난 것이다. 안구 주사를 처음 맞은 지 정확히 2년 4개월 만이었다.
처음에는 왼쪽 눈의 증상이 악화되어 둥근 회색 암점이 커진다. 선이 심하게 구부러져 보이고 글씨가 이탤릭처럼 드러눕거나 오그라져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머지않아 양쪽 눈을 뜬 상태에서도 불편함이 느껴지는데, 이때가 바로 병원을 방문해야 할 시기다. 자칫 신생혈관이 터져 심각한 상황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혈관 조영 촬영으로 정말 진단을 마친 후, 담당 의사는 아무래도 다시금 안구 주사를 맞는 편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과연 불길한 예감일수록 틀리는 법이 없는 법.
안구 주사를 맞은 이후의 며칠은, 실질적으로 작업에 몰입하기도 힘겹고, 그렇다고 책을 읽기에도 부담스러운 시간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뭘 해야 하지? 눈을 쓰지 않으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지? 그렇다. 바로 오디오 북! 태블릿으로 책을 보거나 오디오 북을 듣는 걸 좋아하지는 않지만, 닥친 현실 앞에서는 차선을 택하는 도리 밖에 없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도래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런 식의 독서에도 어느 정도 적응해 둘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어느덧 내 머릿속에서는 책에 대한 나의 감상적 신념에 위배되는 너무도 이성적인 목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밀리의 서재에 회원 가입을 하고 몇 권의 오디오 북과 전자책을 다운 받아 두었다. 애석하게도 내가 한창 흥미롭게 읽어나가던 아서 코난 도일의 전기는 서재에 비치되어 있지 않았기에 잠시 미뤄두어야 했다. 그러나 이 부득이한 휴지기 동안 내가 얻게 된 뜻밖의 행운이 있었으니, 그 책은 바로 제롬. K. 제롬의 『보트 위의 세 남자』이다.
내가 『보트 위의 세 남자』를 미래의 독서 목록에 올려 둔 건 코니 윌리스의 『여왕마저도』의 서문을 읽고 나서였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의 두 번째 산책로를 장식한 『앨저넌에게 꽃을』을 소개받은 곳도 역시 코니 윌리스의 같은 책 서문이 아니던가. 앞서 언급했듯 코니 윌리스는 자신을 공상과학 소설 작가로 이끈 책으로 하인라인의 『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을 꼽았는데, 그 책에서 “주인공 킵의 아빠가 제롬. K. 제롬의 『보트 위의 세 남자』 첫 장을 읽었고, 셰익스피어의 『폭풍우』는 지구를 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소개한다. 그 덕분에 나는 제롬. K. 제롬의 『보트 위의 세 남자』라는 책을 머릿속에 단단히 기억해 두었던 것이다. 이렇게 나는 밀리의 서재 속에 펼쳐진 첫 전자책의 오솔길, 아니 첫 전자책의 회로(전자책에는 왠지 이 단어가 더 어울리는 듯하다)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이 책을 오디오 북으로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어느새 듣기를 포기한 채 아직은 온전치 못한 눈으로 전자책을 흘끔거리고 있었다. 전자책의 경우는 활자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확실히 작은 글씨보다는 눈의 피로가 덜했다. 오디오 북의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 AI의 목소리는 나름 분위기 있고 쾌적했으며, 친절했다.
그러나 오디오 북의 문제점이 오로지 목소리의 취향 문제로 귀착되는 것은 아니다. 목소리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문자가 내 눈을 거쳐 뇌에 들어오는 과정과, 소리가 내 귀를 거쳐 뇌에 들어오는 과정이 책을 전혀 다르게 느끼게 만든다는 데에 있었다. 문자를 거쳐 들어온 책의 내용은 내 마음 깊은 곳까지 닿아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반면, 책을 읽어주는 소리는 왠지 듣는 순간 멀리멀리 날아가 버리는 느낌이어서, 온전히 집중하기가 영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디오 북과 활자화된 전자책 사이를 우왕좌왕하며 『보트 위의 세 남자』를 완독 할 수 있었는데, 이 책은 그야말로 영국식 유머의 정수이자, 언어로 얼마만큼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지를 보여 준 매우 색다른 책이었다. 한동안 오디오 북으로 도무지 집중되지 않는 독서를 하면서도 이 책 덕분에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이 책은 침체되어 있던 나에게 활력을 선사했고 다시금 계속 읽고 싶다는 의욕을 심어 주었다.
제롬. K. 제롬의 『보트 위의 세 남자』와 나와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코니 윌리스 덕에 기억하고 있던 이 책의 제목이, 마침 내가 읽고 있던 아서 코난 도일 전기에 다시금 등장했던 것이다! 제롬. K. 제롬은 한 때 코난 도일과 막역한 친분을 과시했던 사이이다. 무언가 짜릿한 비밀을 나 혼자만 간직한 듯, 쾌감이 밀려들었다. 그렇게 나는 어느새 두터운 아서 코난 도일의 전기로 되돌아와 있었다.
책의 매 장마다 서서히 밝혀지는 코난 도일의 새로운 면모가 나를 놀라게 했다. 그 사람은 결코 ‘셜록 홈스의 아버지’라는 호칭에만 갇혀있을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코난 도일은 과학 소설을 비롯해 환상 소설, 공포 소설, 역사 소설은 물론이요 희곡까지 집필한 경력이 있는 다재다능한 작가였다. 그의 문학적 스펙트럼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채로웠다. 아서 코난 도일이라는 인간의 그 다각적 면모, 이성적이면서도 충동적이며, 지극히 합리적인 반면 쉽사리 비합리성에 경도되는 이 모순된 인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육체와 정신이 시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경험하고자 했던 한 사람의 인생에 나는 매료되고 말았다.
영국을 대표하는 탐정인 셜록 홈스로 인해 간혹 영국 작가로 오해를 받는 코난 도일은 사실 아일랜드의 핏줄을 타고났다. 그러나 아일랜드 출신인 그의 아버지 찰스 도일이 스코틀랜드에 정착하게 되면서 코난 도일의 주 활동지는 에든버러가 된다. 그가 대대로 예술가 집안이었던 가문의 전통을 깨고 의학도가 되었다는 점 역시 책을 통해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이었다. 셜록 홈스의 모델이 코난 도일의 은사였던 실존 인물 조셉 벨 교수였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아서 코난 도일은 조셉 벨 교수가 솜씨 좋은 의사였던 반면, 그의 진정한 강점은 “직업과 성격에 대한 진단”이었노라 언급한다. 의사는 의학적 지식에 능통해야 할 뿐만 아니라, 환자와 관련된 모든 요소들을 해석해야 한다고 벨은 생각했다. 제대로 된 진단을 위해서는 눈으로만이 아니라 모든 감각을 동원해 냄새를 맡아야 한다고 그는 충고했다.
벨 교수는 매주 한번씩 왕립 병원에서 외래 환자를 진단하는 과정에 학생들을 참관시키며 공개 클리닉을 열었다. 이때 벨 교수 밑에서 서기 역할을 맡았던 이가 바로 코난 도일이다. 벨이 정확한 진단을 위해 활용했던 “추론에 의한 관찰력”의 실례로부터 우리는 미래의 셜록 홈스가 어떻게 등장했는지를 목격할 수 있다.
한 번은 그가 어느 민간인 환자에게 말했다.
“선생은 군에 복무했군요.”
“그렇습니다, 선생님.”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말이오.”
“그렇습니다, 선생님.”
“스코틀랜드 연대였고?”
“그렇습니다, 선생님.”
“하사관이었고?”
“그렇습니다, 선생님.”
“바베이도스에 주둔했군요?”
“그렇습니다, 선생님.”
그가 설명해 주었다.
“제군들도 보다시피 이 환자는 예의가 바른 사람인데도 모자를 벗지 않았다. 군대에서는 모자를 벗지 않는다. 이 환자도 제대한 지 오래되었다면 민간인 예절을 익혔을 것이다. 이 환자는 체면을 중시하는 듯 보이므로 스코틀랜드인이 분명하다. 바베이도스라고 추정한 것은 이 환자가 걸린 병이 상피병이기 때문이다. 이 병은 영국이 아니라 서인도 제도에서 걸리는 것이다.”
벨 교수 밑에서 수학한 후 코넌 도일은 자신의 의학 지식을 발휘할 기회를 찾아 나선다. 그는 위험이라든가 낮은 보수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으며, 받게 될 보수 이상으로 모험을 원했다. 그는 선상의 의사, 선의의 자격으로 400톤급 증기 포경선 ‘희망 호’에 오르는 것을 시작으로 생의 첫 모험을 시작했다. 코난 도일의 삶은 활기에 넘쳤고, 건강한 신체를 타고난 그는 운동에도 능했다. 의사로서의 직업 활동과 집필 활동을 병행하느라 육체적 피로에 시달렸으리라 상상했던 그의 삶은 오히려 이와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운동은 건강과 힘을 주지만 무엇보다도 정신의 균형을 잡아준다. 서로 양보할 줄 아는 일, 성공을 겸허하게 패배를 용감하게 인정하는 일, 불평등에 맞서 싸우는 일, 핵심에 집중하는 일, 상대방을 무시하지 않고 친구의 고마움을 아는 일... 이런 것들이 바로 진정한 운동에서 받게 될 교훈이다”라고 코난 도일은 썼다.
뿐만 아니라 코난 도일은 스키라는 스포츠를 처음 접한 후 이를 현대의 대중적 스포츠로 발전시킨 인물이며, 영국 최초의 자동차 운전자라는 타이틀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비록 좌절에 그쳤지만, 에든버러의 한 지역 선거구에 입후보했던 정치 경력도 있다.
그는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지닌 채 인생에서 가능한 모든 것을 경험해 보겠다는 신념으로 살았다. 적지 않은 나이에 보어 전쟁에 참전해 서구의 실상을 폭로하는 글을 썼는가 하면, 새로운 세계를 향한 탐험을 결코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항상 체험을 통해 얻은 것들을 글로 썼다. 저자인 마틴 부스는 “코난 도일의 글은 언제나 논리적이었고, 주장은 독창적이고 개인주의적이었으며, 결론은 신중하고 현명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추론의 제왕인 셜록 홈스의 아버지이자, 해박한 지식으로 각종 문학 장르를 섭렵했던 그가 말년에 심령술에 경도되었다는 점은 의외의 반전이다. 심령술을 옹호하는 순회 강연회를 열 정도로 그는 이 분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훌륭한 학문적 업적을 쌓은 최고의 합리주의자들과 과학자들이 종국에는 비합리주의나 신비주의로 빠져드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말년에 연금술에 심취했던 과학자 뉴턴의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인생이라는 롤러코스터에 올라탄 채 두려움 없이 모든 질곡을 겪어 낸 이 기이한 인물에게, 『보트 위의 세 남자』를 쓴 제롬. K. 제롬은 자신의 에세이 선집을 헌정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마음과 정신과 몸집이 모두 큰 친구 코난 도일에게 이 책을 바친다.”
저자인 마틴 루스의 표현대로 “셜록 홈스보다 더 흥미진진한 사나이”의 생을 오랜 시간 마주하자니, 지금 내게 닥친 이 고난이란 그저 사소한 것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충분히 극복 가능한 그리 심각한 일은 아니라는 대담함이 마음속에서 고개를 든다. 고통이나 시련에 재빨리 굴복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앞으로 누릴 수 있는 다른 것들까지를 미리 포기하는 것이라고 어떤 의지가 나에게 소리쳤다. 시련의 강도는 그 시련을 당하는 당사자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렸다. 니체의 말처럼, 고통은 해석일 따름이다. 타인의 판단이 결코 내 시련의 경중을 판단할 수 없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서 코난 도일의 묘비명처럼 “강철처럼 진실하고 칼날처럼 올곧은” 사람이 되고 싶은, 오직 나 자신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