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산책로 - 『비 온 뒤』

by 르노르망


다섯 번째 산책로 - 『비 온 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이제껏 윌리엄 트레버라는 작가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내게 윌리엄 트레버라는 작가를 알려준 이는 다름 아닌 조 퀴넌이다.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에서 조 퀴넌은 윌리엄 트레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내가 30대 중반이었을 때 존 업다이크의 열광적인 찬사에 고무되어 윌리엄 트레버를 찾아 읽었다. 업다이크의 찬사를 접하기 전까지는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작가였다. 나는 업다이크의 평가를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였기에 이후 18개월 동안 트레버의 책을 전부 독파했다. 윌리엄 트레버는 곧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 되었다.”


나 역시 조 퀴넌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일까에 대한 호기심으로 윌리엄 트레버의 소설을 읽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운 좋게도 내가 중고서점을 산책하다 구매할 수 있었던 윌리엄 트레버의 첫 책은 『루시골트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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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첫 부분이 다소 답답하게 흘러갔고, 작가의 출생지인 아일랜드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했으므로, 초반에는 썩 편하게 읽히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읽어나가면서 윌리엄 트레버 특유의 온화하고 섬세한 문체에 점차 매료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그의 여성적 필치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아니, 그건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그가 유독 여성적 필치를 지녔기보다는, 여심을 이해하는 데에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고 표현하는 편이 옳겠다. 등장인물들이 한결같이 지니고 있는 고유의 선량함도 매력적이었다. 누구라면 그대로 지나쳐버렸을, 자기 합리화로 충분히 가릴만한 과오를 저지른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그러나 그 과오를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오로지 선량한 그들은 자신이 범한 과오에 대한 죄책감을 언제까지나 간직한다. 그 죄책감은 시도 때도 없이 떠올라 그들을 괴롭히지만, 어느덧 독자들은 그들의 괴로움을 바라보며 그들의 갸녀린 양심에 경의를 표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고요하게 인간의 슬픔을 잘 표현하는 작가가 또 있을까.


무지막지한 인간이 범죄를 저지르거나, 자신에게 범죄를 저지른 자들에게 무지막지하게 복수하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처연한 슬픔’을 제공해 주진 못한다. 기껏해야 ‘통쾌한 기분’ 정도겠지. 대부분의 인간은 자신의 과오에 관대하다. 하지만 트레버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인간이기에 다가갈 수 있는 양심의 깊은 곳까지 다가가, 행여라도 그로 인해 상처 입었을 영혼들에게 기꺼이 손을 내민다. 내게 어떤 식으로든 해를 끼쳤던 사람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자신의 과오에 대한 양심의 가책만으로 순수하게(처벌이 두려워서가 아닌) 괴로워했다면, 그 사람을 용서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윌리엄 트레버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작은 일에도 가슴 아파하는 선한 존재이며, 그렇기에 누군가를 온전히 미워하는 일도 불가능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그의 단편 소설 하나하나가 적정량의 슬픔을 담고 조금씩, 마치 기차의 한 량 한 량이 뒤에 따라붙듯 슬픔을 차곡차곡 쌓아나간다.


『루시골트 이야기』로 힘을 받은 나는 며칠 후, 마치 일부러 윌리엄 트레버로 향하는 나의 산책로를 개척해 주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 누군가 중고 서점에 내놓은 트레버의 소설들을 무려 세 권이나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는 필히 윌리엄 트레버와 함께 하라는 운명일지니! 그날 내가 산 책들은 『비 온 뒤』, 『그의 옛 연인』이라는 두 권의 단편선과 『여름의 끝』이라는 장편 소설 한 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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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작품들이 하나같이 훌륭했지만, 단편집인 『비 온 뒤』에 실린 첫 단편 소설 <조율사의 아내들>은 특히나 나의 심금을 울린 작품이다. 첫 문장에서부터 이미 윌리엄 트레버의 저력이 드러난다. 어떻게 단 한 문장 속에 소설의 전 내용을 이토록 명료하게 담아낼 수 있을까?


바이얼릿은 피아노 조율사가 젊은 시절에 결혼했다.
벨은 그가 늙었을 때 결혼했다.

제목이 왜 <조율사의 아내들>인지가 규명되는 순간이다.


주인공인 피아노 조율사 오언 드롬굴드는 시각 장애인이다. 유독 소리에 민감한 그는 전처 바이얼릿의 도움을 받아 마을의 이곳저곳을 돌며 피아노 조율사 일을 해왔다. 처녀 시절부터 그를 사랑했던 벨은 그러나 아름다운 그녀의 외모에도 불구하고 젊은 시절 드롬굴드에게 거절당했었다. 홀로 자신의 사랑을 지켜나가던, 그러면서도 사랑했던 남자가 다른 여인과 오랜 결혼 생활을 이어가는 것을 몸소 지켜보던 벨은, 전처인 바이얼릿이 죽고 나서야 드롬굴드와 결혼한다. 하지만 벨은 그간 남편의 눈과 발이 되어 주었던 첫 부인 바이얼릿이 그에게 끼친 영향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것은 한낱 같은 사람을 사랑하는 여인의 질투가 아니다. 벨은 바이얼릿이 남편 속에 남겨둔 삶을 인정한다.


“아주 오랫동안 남편의 팔을 잡아주었던 여자, 피아노를 살살 달래 되살아나게 하는 남편을 여러 집으로 방으로 안내한 여자가 여전히 자기 존재를 주장하고 있었다. 성가신 유령, 불확실하게 존재하는 어떤 용서 없는 망령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일부가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 안에 새겨진 것 같았다.”


두 여인의 사랑을 받음과 동시에 두 여인 모두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이는 드롬굴드이다. 바이얼릿은 젊은 날 그를 위해 헌신했고, 지금 그녀의 빈자리를 채운 벨은 젊은 날 드롬굴드 부부를 지켜보며 홀로 외로움을 견뎠다. 이제 피아노 조율사는 두 여인 사이에 존재하는 시선의 차이를 조율해야 할 입장에 처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드롬굴드에게 두 여인은 각기 다른 눈이 된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현재의 소리를 들려주는 사람은, 이름 그대로 ‘벨’이다.


“결국 피아노가 있는 집마다 그 나름의 모순이 생겨났다. 늙은 퍼털 부인이 찬 진주는 오팔이고, 킬리아스에 있는 문방구상의 창백한 피부에는 주근깨가 있고, 오그 힐 위의 두 줄로 늘어선 떡갈나무가 사실은 너도밤나무라고? “아무렴, 아무렴.” 오언 드롬굴드는 동의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공정했기 때문이다. 벨이 자기주장을 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었고, 그런 주장에 따라 피해를 입거나 파괴당하는 뭔가가 생기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었다. 살아있는 사람이 늘 이기는 법이니 결국에는 벨이 이길 터였다. 그 또한 공정해 보였으니, 바이얼릿은 처음에 이겨 더 나은 시절을 누렸기 때문이다.”


트레버가 작중 인물들을 묘사하는 방식은 분명 문학적 묘사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단지 문체의 독자성을 넘어선, 트레버가 인간을 대하는 방식 자체일 것이다. 굳이 악한이 등장하지 않아도 인간의 선량함이 돋보이는 그의 소설들은, 인간에 대한 공감 능력과 삶의 온기를 전달해 준다. 상처받은 인간들이 세파에 시달렸음에도 결코 악해지지 않았고, 자신의 상처로 타인의 상처를 위로하는 독특한 존재 방식. 우리가 언제까지나 변치 않는 선한 마음을 지닐 수 있다는 믿음. 타인을 질시하고 배타하기보다는 어떻게든 상처를 껴안아 주려는 사람들. 트레버의 소설을 통해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어 하는지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트레버의 소설에서 항상 등장하는 두 장소는 아일랜드와 이탈리아이다. 특히 조국 아일랜드에 대한 그의 묘사에서는 유독 서글픈 향수와 애환이 느껴진다. 처음에는 다소 낯설었던 아일랜드의 역사와 지명들이 천천히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이들의 생활 방식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 그들의 정서에도 남몰래 동화되어 간다.


감명 깊게 보았던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 생각난다. <피키 블라인더스>는 마침 내가 즐겨 보고 있는 드라마이다. 그러고 보니 두 작품의 주인공이 모두 킬리언 머피였다. 나는 늘 그의 서글픈 눈매를 좋아했었지. 그의 눈빛은 아일랜드를 닮았다. 급기야 아일랜드에 방문해 보고 싶은 충동이 인다. 그들의 삶과 풍경을 직접 경험해 보고 싶어 진다.


윌리엄 트레버의 작품들을 읽으며, 다시금 조 퀴넌의 책에 대해 생각한다. 윌리엄 트레버를 알려준 조 퀴넌 덕분에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신비에 성큼 더 다가섰다. 이 산책로는 어떤 길보다 잔잔하고 부드럽게 우리를 인간의 선한 심연으로 이끈다. 조 퀴넌의 섬세한 취향에 감사한다. 조 퀴넌과 윌리엄 트레버를 다룬 장이 다소 길어진 이유 역시 감사의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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