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열심히 하는 거죠.
군대 다녀온 거 아닙니다.
전문대, 그것도 여대에서의 휴학은 흔치 않았다. 복학은 더욱 그랬다. 전문대는 편입이나 재수를 위한 휴학이 대부분이기에 복학생을 바라보는 눈빛은 마치 동물원의 멸종 위기 동물을 보는 듯하다. 그들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 4명의 복학생 언니가 한 번에 돌아왔으니 말이다.
단체로 휴학하지 않았다. 같이 어울리던 무리도 아니었다. 왜 휴학을 했는지 서로 묻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스며들며 우리가 된 친구들이다.
4명의 복학생 무리는 자발적 아웃 사이더가 되기로 한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더라. 한 살 차이로 이렇게 세대차가 날 줄이야.
'아, 나 빠른 생이었지.'
현타가 오지만 이럴 때는 그냥 학번을 따르기로 했다. 나이를 오픈해서 좋을 게 없다는 빠른 판단력이라 해두자. 점심시간과 공강 때마다 친구들과 뭘 먹을지 고민하는 것만으로 행복했기에 미팅도 소개팅도 없는 대학 생활이지만 그리 나쁘지 않았다. 골목길 음식점의 도찐개찐 메뉴 고민은 잠시나마 일탈을 꿈꿀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평일은 '집-학교-도서관-집' 동선을 고집했다. 딱히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갈 곳도 없었다. 어쩌면 가정을 돌봐야 한다는 압박감에 저절로 발길이 옮겨진 듯하다. 주말에도 온종일 알바를 하면 일주일, 한 달이 금세 지나가는 바쁜 나날들이었다. 그렇게 한 학기를 보냈을 뿐인데 성적 우수생으로 장학금을 준단다.
'아싸! 등록금 굳었다.'
그저 열심히 했을 뿐인데 돈까지 준다니 공부 의욕이 솟구쳤다. 그렇지, 이런 게 보상이지.
< 여기서 잠깐! 성적 장학금 받는 꿀 tip >
앞자리를 사수해라. 교수님께 눈도장 쾅쾅, 아이컨텍은 필수.
녹음기가 되어라. 교수님 말씀은 토시 하나 빠뜨리지 않고 미친 속도로 교재에 받아 적는다. 쉬는 시간 교재에 필기한 내용을 노트에 옮겨 적는다. 수업이 끝난 후 노트에 적은 내용을 다시 교재에 볼펜으로 예쁘게 적으면 된다.
지각과 결석은 금물! 과제도 기한을 지켜서! 성실함을 보이자.
고리타분하고 꼰대라 해도 사실이다.
인간 녹음기는 반복학습의 최고봉이었다. 수업시간에 적고, 노트에 옮겨 적고, 다시 교재에 적는 세 번의 필기로 반복학습을 세 번이나 한 셈이니 의도하지 않았지만 노력형 인간의 당연한 결과 아니었을까. 지금은 단순 무식한 반복학습은 안 먹히겠지. 시대를 잘 타고나서 감사하다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새벽 2시, 허벅지를 꼬집으며 겨우 졸음을 쫓고 시험공부를 한 적이 있다. 다음 날 아침 피딱지 흥건한 야들야들 허벅지 안쪽살을 보고는 얼마나 놀랬는지 모른다. 어찌 꼬집으면 이렇게 된단 말인가. 없던 빈혈이 생겼던 아침이었다. ‘수능공부를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라는 아쉬움이 있지만 인생은 다 때가 있는 법.
연이은 성적 장학금에 졸업 때는 과수석, 달콤한 인생이 계속될 줄 알았다. 사회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는 애송이는 달랑 자신감 하나로 관세 공무원을 준비한다.
'야, 너두 공무원 준비해?'
'공무원이 그렇게 만만해 보여?'
'취업하려고 전문대 온 거 아니었어? 돈 벌어야 하는 거 아니야?'
마음속 온갖 것들과 사투를 벌이며 그렇게 일 년을 공무원 준비에 매진했다.
하지만 시험운은 대학시절에 다 썼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