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편에서, 향후 리테일의 승자는 포맷의 혁신을 이루어내는 리테일러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런데 이번 편에서는 리테일의 진정한 승자는 리테일러가 아니라 브랜드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리테일 산업 내에서의 경쟁이 SNS, 콘텐츠, 포털서비스 등으로 확장되고, 정보의 비대칭성이 해소되면서 시장의 희소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또한 리테일러는 본질적으로 시간과 장소라는 유통의 효용을 제공함으로서 가치를 가졌던 것인데 인터넷 이후 다양한 기술 혁신이 유통효용을 보다 효율적으로 제공하면서 존재의 이유조차 희미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볼 때, 기존 리테일러의 미래는 매우 불투명하다.
** 용어정리
▷ 유통업(流通業)과 소매업(小賣業)
유통업에 소매업이 포함된다. 유통은 생산품이 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의 모든 경로를 의미한다. 유통경로란 <생산자 - 수집/중개 - 도매 - 소매 - 소비자>의 재화 이동 과정을 의미한다.
▷ 리테일(Retail)과 리테일러(Retailer)
소매업을 의미한다. 따라서 리테일러는 소매업자, 소매업체이다. 리테일 및 리테일러를 크게 분류하면 점포, 무점포, 방문판매의 3가지 형태이다. 대개 소매업은 손님이 상인에게 가거나, 상인이 손님에게 가는 형태로 크게 나뉘는데, 카탈로그 판매, 홈쇼핑, 전자상거래가 차례로 대두하면서 무점포 판매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
1. <시장의 희소성>이 사라진다
나는 앞으로 리테일의 진정한 승자는 브랜드(제조사)가 될 가능성을 훨씬 높게 보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시장의 희소성"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 스마트폰 보급 전까지 시장은 항상 <희소성>을 유지했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구매(쇼핑)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장소(적어도 책상 위 PC의 앞으로라도)에 가야 했다. 지금은 어떤가? 우리는 그저 스마트폰을 열기만 하면 된다. 심지어 음성으로 부르기만 해도 즉시 시장이 열릴 수 있다. (아래 표는 강의용으로 만든 표인데, 상업의 역사를 연대기순으로 요약한 것이다. 팍스넨 유통포럼에서 진행한 강의인데, 리테일의 역사에 관심있으신 분들을 위해 링크를 남긴다 / https://www.youtube.com/watch?v=-6XdMXl8chk)
시장의 희소성이 점차 사라져가는 과정에서 거래의 주도권도 이동했다.
① 고대~근세 : "이동수단"과 "선별(큐레이션)능력"을 보유한 상인집단이 수 천년의 주도권을 가져갔지만,
② 근대~현대 : 백화점이나 할인점 등 대형 리테일러가 포맷의 혁신을 앞세워 등장하면서 양상은 달라졌다.
③ 동시대 : 그리고 현재 시장의 주도권은 플랫포머(온라인과 모바일의 마켓플레이스를 운영 社)가 가져간 상태다. 아마존, 알리바바, 쿠팡이 "넘볼 수 없는 <가격>, 빠르고 예측가능한 <배송>, 압도적인 <상품구성>"을 앞세워 리테일을 평정하는 쓰나미를 일으켰고 결국 승리를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런데 고대에서 동시대까지 역사 발전 과정에서, 거래의 주도권(헤게모니)이 이동하는 "기간"이 너무 짧아진 것이 문제다. 전자상거래 플랫포머들이 헤게모니를 영구히 가져간 듯 보였지만, 최근 <가격, 배송, 상품구성>이라는 리테일 경쟁력의 3대 구성 항목을 구현하고자 하는 경쟁자들의 등장은 합종연횡을 통해 더욱 강력한 힘을 갖게 되었다. 앞으로 시장 점유율이 한쪽으로 치우칠 일은 단언컨대 "없다". 아마존과 알리바바가 50% 이상의 점유율을 가져갔고, 한국 시장에서 쿠팡도 30%를 목표로 했지만 아무도 영속성을 예측하지는 못하고 있다.
요약하면 이렇다. 리테일 산업에서는 압도적 승자가 출현하지 못할 것이다. 리테일이 영위하고 있던 <시장의 희소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2. 레거시 리테일의 진짜 위기는 온라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와의 접점(D2C)을 만들어내면서 빠르게 모바일로 진입한 브랜드들이 경쟁 격화의 수혜를 받고 있다. 주요한 브랜드사들은 이미 리테일러의 전형적인 방식(리테일러가 상품을 매입하여 판매하는)에 의존하는 레거시 리테일에서 벗어나고 있다.
전통적으로 유통산업에서 리테일러와 브랜드의 역할은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리테일러의 핵심 역량은 소비자와의 접점을 확대하고 유지하는 데 있으며, 집객력은 곧 리테일러의 경쟁력을 의미한다. 반면 브랜드는 소비자를 향하되, 제품 혹은 서비스의 퀄리티를 높이는 데 핵심역량을 투입한다. 브랜드와 리테일은 시장에서 분업을 통해 효율을 추구했던 것이다.
하지만 변화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대다수의 브랜드들이 고객 접점 확보를 목표로 직접 리테일에 나서고 있다. 나이키, 삼성전자, LG전자 LF패션과 같은 대형 브랜드들은 이미 직접 리테일에 나서고 있었고, 이들의 목적이 폭넓은 브랜드 마케팅의 일환이었다는 점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현재까지는 리테일러에 의한 매출(거래액)이 훨씬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앞으로는 양상이 달라질 것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브랜드사들은 리테일러 간에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경쟁국면이 더 크고, 더 넓게 벌어지기를 바란다. 혼란의 와중에 브랜드사들은 고객접점을 다양한 형태로 확보할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더 명확하다. 소비자들은 크게 차별화되지 않은(혹은 금방 격차가 좁혀지는) 여러가지 혜택(멤버쉽과 같은)으로 인해 리테일러에게 Lock-in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러한 잠금장치들은 너무나 헐겁다. 연령대별로 볼 때 젊은층일수록 더욱 다양한 앱(App)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스마트폰에서앱에서 앱으로 이동하는 것은 여기저기 가게(상점, 점포)를 이동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행위이다.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 앱이 있다면, 브랜드사가 직접 운영하는 채널로 들어가는 것이 너무 쉽고, 또 당연하게 느껴질 것이다. (브랜드 채널이 존재한다면)
게다가 소모성이 높은 생활용품이라면 아예 가게에 방문하는 일조차 없어질 수도 있다. 세탁기가 세제를 자동주문하고, 냉장고가 우유를 주문하는 것은 이미 일정 수준에서 구현 가능한 일이며, 키친이나 바스, 냉장고와 팬트리의 재고를 관리하는 IoT 기술은 더욱 정교하게 발전할 것이다. 적어도 FMCG 카테고리에서는 마트에 갈 일이 현저히 줄어들 것이며, 모바일로 쇼핑하는 일도 마찬가지로 줄어들 것이다.
앞으로 기술에 의해 벌어질 소비자의 활동 변화를 미루어 짐작해보면, 브랜드가 (고객접점 확보 때문에) 리테일러에게 의존할 이유는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인다.
시장의 희소성이 사라지면서 리테일러의 기회도 사그라드는 현상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는다. 이제 더 이상 유통경로 상 필요했던 생산자와 리테일러 간의 분업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정리한 표를 다시 한번 소환해보면, 이동제한, 거래투명성, 개방성 등 모든 측면에서 예전과 달리 거래 마찰이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에 거래의 주도권이 플랫포머에서 브랜드로 이동할 개연성은 충분하다.
많은 대형 브랜드사들이 쿠팡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네이버를 비롯한 오픈마켓과의 협업을 강화하고 있다. 라이브커머스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이유도 동일하다. 신규 런칭하는 중소형 브랜드의 경우 카카오 메이커스나 와디즈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또한 직접 고객접점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브랜드사들은 이른바 상품전문가를 양성하여 전면에 내세우는 활동을 하게 될 것이며, 플랫폼은 인간 MD가 하던 일을알고리즘과 인공지능으로 대체하여 객관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게 될 것이다. 한편 소비자들은 무미건조한 객관성보다는 뚜렷한 주관과 취향을 통해 스토리를 들려주는 브랜드의 활동에 이목을 집중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희소성은 사라지고, 거래 마찰도 줄어들며, 정보의 비대칭성 마저 사라진 지금, 현재까지의 리테일은 이제 레거시 리테일로 불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