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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 Apr 09. 2024

관람객에서 현대미술 도슨트로

로컬에서 만난 사람들 ① 귀를 기울이면 들리는 이야기


4.


우리 동네에는 의정부 명물, 미술도서관이 있다. 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위치한 이곳은 이름 그대로 미술에 특화된 도서관이라 미술 관련 서적들이 많고 건물 디자인도 매우 감각적이다. 1, 2, 3층 내부가 뻥 뚫려 있어 탁 트인 개방감을 자랑한다. 인기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의 배경으로 여러 번 등장했고, sns에서는 'BTS RM이 방문한 도서관'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소개되기도 한다.


나는 이 공간을 좋아한다. 깔끔한 내부, 정갈히 진열된 책, 조용한 분위기까지 눈이 즐겁고 마음이 편안한 곳이다.




2022년 어느 여름날, 도서관 1층에 있는 전시장 앞에서 이런 안내 표지를 봤다.



'정규 도슨트 전시해설은 매일 11시, 14시에 진행됩니다. 해설을 원하시는 관람객은 전시관 입구로 모여주시면 됩니다.'


도슨트? 구미가 확 당겼다. 미술도서관에서 시민 도슨트 양성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것은 전에 기사로 다룬 적이 있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이곳에서 도슨트 해설은 들은 적이 없었기에 궁금했다. 무엇보다 시민 도슨트 개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왜 도슨트가 되고 싶었을까? 도슨트가 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여기서 무슨 일을 하는 걸까? 이곳의 도슨트는 어떤 사람일까?


그래, 다음 기사는 시민 도슨트 인터뷰라고 마음먹었다.




2022 『다르게, 조금 더 가깝게 展』

주말 오후 2시, 전시장에 도착했다. 입장에 앞서 도슨트 님께서는 교과서에 이미 설명되어 있는 고전과 달리 현대 미술은 해석이 중요하기 때문에 도슨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전시의 주제는 '식물'이었고 시장은 3명의 작가님의 작품 섹션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도슨트 님의 존재는 마치 파파고 번역기 같았다. 혼자 전시장을 둘러볼 때는 별생각 없이 '오..'에서 끝났던 나의 감상이 해설을 듣고 나서 '아~ 이런 의미가 담겨 있구나! 그래서 이렇게 표현한 거구나!'로 바뀌었다. 고대 그리스어읽는 한국인처럼, 눈앞에 있지만 내가 보지 못한 의미를 읽어주셨다.


전시장 한 바퀴를 돌고 해설이 끝났고, 도슨트 님께 시민 기자단임을 밝히고 기사 주제를 말씀드리며 인터뷰가 가능한지 여쭤보았다. 현장 섭외 인터뷰라 거절당할까 걱정했지만 흔쾌히 수락해 주셨다. 도슨트 님과 3층 카페로 걸어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중년 여성이셨던 도슨트 님께서는 자신을 미술관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평범한 시민으로 소개하셨다. 의정부에 살고 있고, 미술도서관에 방문했을 때 우연히 시민 도슨트 양성 과정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보고 신청하게 되셨다고 했다. 사전에 예상 질문을 준비하면서, 인터뷰 대상이 (1) 비전공자 (2) 의정부 시민이길 바랐는데 운 좋게도 두 조건을 모두 충족하시는 분이었다.


아래는 도슨트 님과의 원본 인터뷰 내용을 발췌해 다듬은 내용이다.


Q. 도슨트는 처음 보는 사람을 대상으로 설명을 해야 하는데, 두려움은 없으셨나요?

있었죠. 하지만 우리 지역에 있는 이런 좋은 곳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미술도서관을 가끔 방문했는데, 미술도서관 안에 이런 전시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시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지역민으로서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시민 도슨트가 자원봉사이기 때문에 돕고자 하는 마음에서 지원하게 되었어요.


Q. 도슨트 양성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실제 활동을 하면서 얻은 것이나 느낀 점이 있으신가요?

작품에 대한 전문 지식인으로 변화한다는 점을 느꼈어요. 저는 그림을 좋아하긴 했지만 관람자의 입장에서 '좋다, 마음에 남는다' 정도로 감상을 했었는데, 지금은 해설을 해야 하니까 작품을 분석하게 돼요. 도슨트가 관람객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미술도서관에서 많은 자료를 제공해 주세요. 그 자료를 내 스타일에 맞게 더하고 빼면서 만들어 내는 과정을 즐겼고, 아마 다른 도슨트 선생님들도 그걸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Q. 전시 내용에 대한 설명은 어떻게 준비하시나요?

'작가와의 만남'이 있어서 저희가 "이런 해석이 맞나요?" 질문하면 작가님들께서 "그렇게 해석해도 됩니다." 답변을 해주세요. 그리고 도슨트가 작품 해설 시나리오를 먼저 작성하면 담당 큐레이터님께서 첨삭을 해주세요. 피드백을 받고 시연까지 해서 통과하면 이제 진짜 도슨트 활동을 할 수 있는 거예요. 매번 작품을 할 때마다 그렇게 합니다.


Q. 참여하신 시민 도슨트 양성 과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전 너무 좋았어요. 특히 저 같은 비전공자에게는 고전미술부터 현대미술까지 설명을 해주셨고, 도슨트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세, 발음 등에 대해 배웠어요. 마지막에는 아동 미술에 대한 설명까지 들었어요. 도슨트 전반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을 통해 저희가 도슨트를 할 수 있게 해 주었다고 생각해요. 강사분들께서 수강생이 비전문가임을 염두에 두고 설명해 주셔서 좋았습니다. 저는 미술도서관 전시 공간이 존재하는 한 도슨트 양성 과정은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30명의 수강 신청자 중 8명이 최종 테스트까지 통과하여 이번 전시에서 도슨트 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들었다. 관람객을 대상으로 풍부하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도슨트 역할에 맞게 양과정이 탄탄하게 설계되어 있었고, 인터뷰 대화를 통해 얼마나 많은 양의 자료를 공부하고 연습하셨는지 알 수 있었다.


전공자가 아니어도 원하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교육을 받을 수 있, 공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미술도서관 전시장에서 관람객과 만나 도슨트로 활동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매력으로 느껴졌다. 도슨트 활동을 꿈꾸는 시민에게 정말 좋은 제도라고 생각했다.




Q. 도슨트 활동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저번 주에 가능초등학교 6학년 친구들이 현장체험학습을 왔어요. 한 반이 와서 저는 여학생을 대상으로 해설을 했는데, 그 아이들이 전시를 너무 좋아했어요. 15명 중에 4명이 미술을 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었거든요. 근데 가능동이 멀어서 그런지 미술도서관에 온 게 처음이래요. 이런 곳이 있었냐고..

고전 작가가 나의 역사 수업이라면 현대 작가는 아이들의 꿈이거든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박수이 작가님의 작품 설명을 하면서 이런 얘기를 해주었어요. 작가님이 뜨개질을 하고, 염색을 하고, 건축을 공부해서 조형물을 만든 것처럼 "지금 우리가 하는 모든 경험이 너의 자산이 되어 네가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될지 모른다. 네가 색종이를 오리든, 그림을 칠하든, 체육 활동을 하든 그 어떤 활동이 되어 예술가가 될 수 있다. 경험을 많이 해 봐라." 말해주었어요. 그랬더니 아이들이 그렇냐고, 초등학생 아이들이 왜 이렇게 예쁜지!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서 저도 뿌듯한 마음에 기억이 남아요.


Q. 마지막으로, 앞으로 바라는 점이나 아쉬운 점이 있으신가요?

관내 학생들을 대상으로 도슨트 전시 홍보를 해서 체험학습으로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 특히 초등학생의 경우, 관람을 20-30분 하고 올라오면 색칠 활동을 해요. 붙이고 하는 2시간 프로그램이거든요. 그런 체험활동을 하면 좋겠는데, 여기 민락동에 초등학교가 3개나 있는데 한 번도 안 왔대요. 너무 아쉬워요.

현대미술은 학생들한테 꼭 중요하거든요. 그림을 많이 봐야 성인이 되었을 때도 그 관람의 태도를 유지하는 것 같아요. 그림을 볼 수 있는 눈도 키울 수 있고요. 그래서 지역 사회에 홍보가 더 되었으면 좋겠어요. 먼저 우리 지역에서 홍보가 돼야, 우리 지역이 우리 지역을 사랑해야 더 널리 퍼질 텐데... 우리 관내에 있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친구들에게만 홍보를 해도 될 텐데, 그게 좀 어려워서 아쉬움이 있어요. 더 많이 오셨으면 좋겠어요.


나도 기자단으로 지역에서 하는 여러 행사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건 이 좋은 걸 나만 알아서 너무 아쉽다는 것이었다. 거의 다 무료로 진행되는데홍보가 안 돼서 사람들이 모르는 안타까운 경우가 많았다.


도슨트 님의 생각도 나와 비슷해 보였다. 더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미술가를 꿈꾸는 아이들이 이곳 전시장에서 현대작가의 작품을 눈으로 보고 감상하며 도슨트 해설을 함께 듣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어서 준비해 간 질문보다 더 다채로운 내용을 기사에 담을 수 있었다.




인터뷰는 내가 몰랐던 세상을 알게 해 준다. 난생처음 보는 낯선 사람과 대화를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그들의 경험과 통찰이 묻어난 이야기를 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인터뷰는 어려우면서도 신비하다. 인터뷰 요청을 하는 순간은 매번 떨리지만 인터뷰가 끝나고 집에 오는 길은 마음이 두둑하니 든든하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만큼 소중하고 특별하기에, 나는 인터뷰를 계속 한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이야기고 살아간다.

이야기는 귀를 기울이면 들리는 이야기다.

<보여줄게 로컬에서 사는 법>은 매주 화요일 연재되는 에세이입니다.
● 원본 인터뷰 읽기 → https://m.blog.naver.com/ccity_ujb/222833096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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