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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 Apr 02. 2024

베스트셀러 작가님을 만나다

기회는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


3.


지금까지 매년 나의 신년계획에는 독서가 있었다. 2022년 1월 어김없이 독서를 목표로 두고, 약간의 강제성을 더하기 위해 의정부 가재울도서관에서 주최하는 비대면 독서 챌린지 '몰입'에 참여했다. '몰입'은 매주 정해진 분량을 읽고 미션을 해결하면서 책을 완독하는 프로젝트다.


첫 번째 책은 김초엽 작가님의 <지구 끝의 온실>이었다. 이 책은 '2022년 의정부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어 이름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표지가 알록달록하니 무척 예뻐서 궁금했는데 마침 챌린지 도서가 되어 반가웠다. 미션은 주로 '00페이지까지 읽고 인상 깊은 구절 쓰기'였다.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인상 깊은 구절들을 표시해 둔 덕분인지 책을 더 깊고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챌린지를 시작한 지 4주 차가 되었을 때 엄마의 장례식을 치렀다. 일상은 마비되었고, 마음은 고장 났다. 텅 빈 시간을 채우기 위해, 그리고 뭐라도 하기 위해 2주가 지났을 때쯤 다시 책을 펼쳤다. 글자에 집중했고 결국 끝까지 읽었다.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완독한 국내소설이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미술도서관에서 김초엽 작가님의 북토크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뒤늦게 안 사실이라 신청하지 못했고 이미 마감된 상태였다. 힘든 시기를 버티게 해 준 의미 있는 책이라 작가님을 꼭 뵙고 싶었다. 북토크 날짜가 다가올수록 그 마음은 점점 더 커졌다.


북토크 당일 아침, 오늘을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창문 너머로라도 작가님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무작정 <지구 끝의 온실> 책을 들고 도서관에 갔다. 전에 기자단 활동을 하며 도서관 프로그램 몇 개에 참여해 본 적이 있는데, 무료라서 그런지 항상 노쇼 때문에 한두 자리씩 빈자리가 났던 것이 생각났다. 정말 운이 좋으면 들어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3층 강연장에 도착하자 큰 폴딩 도어 너머로 앉아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강연장 주변을 서성이다 관계자분께 혹시 빈자리가 생기면 들어가서 볼 수 있는지 여쭤보았다. 상황을 봐야 한다고 하셨다.


55분.. 56분.. 57분.. 북토크 시간이 다가올수록 노심초사한 마음으로 핸드폰 시계와 주인 없는 의자들을 번갈아 쳐다봤다. 59분 30초! 들어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대박!'


입구에서부터 점찍어둔 중앙에서 살짝 오른쪽, 앞에서 두 번째 자리에 후다닥 가서 앉았다. 에어컨 덕분에 강연장엔 시원하고 차분한 공기가 내려앉아 있었다. 작가님을 기다리는 조용한 관객들 사이에서 나는 안도감, 기쁨, 설렘이 섞인 상태로 무릎 위에 놓인 책을 만지작거렸다.


취재 습관 때문에 평소 펜과 노트를 들고 다니는데, 이날은 북토크를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해서 챙기지 못했다. 오늘 이 순간만큼은 두 눈으로 다 담겠다는 각오로 초집중 모드로 강연을 들었다.


북토크가 끝나고 싸인 타임이 있었다. 나는 준비해 간 책을 들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줄을 섰다. 작가님의 책이 나에게 힘이 되어주었다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팬이라는 말만 전했다. 작가님을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뻤다.


'질문하지 않으면 대답은 언제나 NO'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일단 가기 너무 잘했다, 역시 문은 두드려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껍질 잃은 가재처럼 한없이 연약했던 그때의 나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쉽게 삶의 의지를 얻었다. 연장에 들어가던 그날의 기분을 잊지 못한다.


독서 챌린지<지구 끝의 온실>을 읽게 해 준 가재울도서관, 김초엽 작가님의 북토크를 열어준 미술도서관.


이건 어쩌면 의정부가 나에게 준 선물이 아니었을까.

<보여줄게 로컬에서 사는 법>은 매주 화요일 연재되는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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