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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 Mar 26. 2024

여기는 송트럴파크입니다

잊지 못할 순간은 홀연히 찾아온다


2.


미국 뉴욕 맨해튼에는 센트럴 파크가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바쁜 도시 중 하나인 뉴욕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거대 공원 센트럴 파크는 도시인들의 휴식과 힐링의 장소가 되어 준다.


의정부에도, 정확히 말하면 내가 사는 동네 민락동에도 센트럴 파크처럼 주민들의 쉼터가 되어주는 공원이 있다. 바로 '송산사지 근린공원'이다. 물론 미국 센트럴 파크처럼 규모가 크거나 마포구 '연트럴파크'처럼 유명하진 않지만, 나는 이곳을 '송트럴파크'라고 부른다. 아직 나만 이곳을 이렇게 부르는 것 같지만, 언젠간 의정부 사람들의 힐링 야외 공간으로 송트럴파크라는 이름이 널리 사용되길 바란다.


'그저 평범한 집 앞 공원'에 불가했던 이곳이 송트럴파크가 된 이유는 어느 봄날의 기억 때문이다.




내 방 창문에서는 큰 공원이 하나 보인다. 2022년 봄, 이 공원에서 야외 음악회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취재하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였다.


음악회에 대한 사전 정보가 거의 없었던 나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비눗방울 공연을 하네.. 이 밴드는 처음 보는데.. 다 큰 성인이고 아이도 없는 내가 즐길 수 있을까? 게다가 야외 공연이라니. 풀밭에 엉덩이를 대고 그냥 앉는 건가? 돗자리를 챙겨야 되는 건가?' 걱정했다. 아이가 있는 가족들 사이에 껴서 홀로 외롭게, 나와 어울리지 않는 곳에 온 듯한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빨리 취재하고 집에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음악회는 토요일 오후에 열렸다. 사람들이, 그것도 가족들이 모여있는 곳에 혼자 가기는 뻘쭘할 것 같아서 남동생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내향형에 집돌이인 동생은 주말 오후에 외출이라니 귀찮아했지만, 집 바로 앞인 데다가 금방 돌아올 거라고 꼬드겨서 결국 같이 가게 되었다.


공원을 돌아다니며 기사를 위한 사진을 어느 정도 다 찍었을 때, 동생과 함께 무료로 나눠주는 1인용 돗자리를 깔고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어쿠스틱 밴드의 공연 차례였다. 밴드는 바이올린, 콘트라베이스, 기타 말고도 처음 보는 신기한 타악기를 이용해 밝고 리드미컬한 음악을 연주했다. 유럽 어느 작은 마을에서 머리를 땋은 소녀가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들과 둥글게 모여 춤을 추는 모습과, 봄볕을 맞으며 나른한 오후 창가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의 모습이 떠오르는 노래들이었다.


앉은 자리에서 고개를 들면 보였던 나무

연주를 들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에 높은 나무들이 사락사락 소리를 내며 흔들렸고, 나뭇잎 사이로 들어온 따뜻한 오후 햇살이 피부를 쬐었다. 삼삼오오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발소리와 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렸고, 녹색으로 가득한 작은 공원 숲의 꽃과 풀 냄새가 코를 맴돌았다. 오감을 자극하다 못해 내 감각의 모든 수치를 100으로 꽉꽉 채워주는 것 같았다.


부러 연출하려고 해도 어려울 만큼 자연스러운 광경이었다.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사람들의 호응과 박수소리가 들렸다. 집과 병원을 왔다 갔다 하느라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사람의 활기였다.


내가 마지막으로 풀밭에 털썩 앉아 있던 게 언제지? 돗자리 옆으로 삐져나온 잔디를 만지며 생각했다. 초등학생 때 갔던 소풍이 떠올라 다시 아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탁 트인 하늘 아래서 음악 소리를 듣고, 사람과, 하늘과, 나무를 바라보는 이런 풍족한 마음은 오랜만이었다.


어울리지 못할 거라는 걱정은 괜한 것이었다. 그곳에는 아이가 있는 가족만 있는 게 아니었다. 우리 뒷자리에는 백발의 어르신이 앉아 계셨다. 너무 당연한 사실이지만, '우리 동네에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나 혼자 사는 게 아니구나.' 생각이 들었다. 요즘 같이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르는 세상에서 동네 이웃들을 잔뜩 보게 되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제는 사라져 버린 옛날 '잔치' 같기도 했다. 앞으로도 자연을 배경으로 한 야외무대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단지 같은 장소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함께'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날 송트럴파크에 반했다. 취재만 금방 하고 집에 온다던 나와 동생은 공연이 다 끝날 때까지 자리에 앉아있었다. 해가 지면서 변하는 공원의 색깔도 아름다웠다. 가슴 아주 깊숙이 삶의 의지가 충전되는 느낌이었다.


송트럴파크의 모습

날이 풀리면 송트럴파크에는 연을 날리는 아이들, 반려견과 산책하는 사람들, 돗자리를  사람들이 찾아온다. 잔디밭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예약도, 티켓도 아무것도 필요 없다.


봄이 오면 송트럴파크에 가야지.

봄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보여줄게 로컬에서 사는 법>은 매주 화요일 연재되는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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