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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 Mar 19. 2024

로컬 라이프의 시작

사랑, 방황, 발버둥


1.


2021년 봄, 엄마의 권유로 '의정부시 행복기자단'에 지원했다. 행복기자단은 의정부시와 관련된 행사, 정책 등을 주제로 블로그 기사를 쓰는 의정부시청 소속의 시민 기자단이다.


엄마가 나에게 모집 공고문을 보여주던 날이 생생하다. 엄마는 안방으로 나를 불러 엄마 폰을 보여주며 내가 글을 잘 쓰니 지원서를 꼭 넣어보라고 말했다. 중학생 때부터 블로그에 글을 써왔기에 블로그 형식의 글쓰기는 자신 있었고 '원고료 6만 원'을 보고 지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

우리 엄마는 노인성 질환인 파킨슨 증후군을 앓았다. 파킨슨 증후군은 불치병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근육이 굳어 점점 움직일 수 없게 되는 병이다. 2021년 여름, 엄마의 상태는 급격히 악화되었타인의 전적인 도움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해졌다. 나는 곧바로 휴학을 내고 알바 그만두고 집에서 24시간 엄마를 돌보았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알바를 구해 한 번도 용돈을 받지 않고 생활하던 나는 엄마를 돌봄과 동시에 수입이 줄었고, 기자단 활동은 소소한 용돈벌이가 되었다. 스무 살 때부터 모아둔 돈과 기자단 원고료로 엄마와 맛있는 음식과 디저트를 먹고 싶을 때마다 마음껏 시켜 먹곤 했다. 가끔 취재를 위해 집 밖에 혼자 나갈 때면, 엄마를 돌보는 '딸', '간병인'으로 점점 희미해져 가는 '23살 강민지'의 정체성을 상기할 수 있었다.


나는 아침에 엄마와 장애인콜택시를 타고 대학병원에 가는 30분 동안 택시 안에서 의정부시청 홈페이지와 의정부 관련 뉴스, sns 계정 들어가 기삿거리를 찾곤 했다. 요즘도 동네 사람들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그런 정보들은 다 어디서 알게 된 거예요? 의정부에 대해서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라는 질문을 받는데, 이때 알아 둔 내용인 게 많다.


엄마는 밤 10시가 되면 침대에 누웠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매일 밤 9시부터 병원 물리치료 시간에 옆에서 보조하며 배워온 전신 스트레칭을 엄마에게 해주고, 안방 화장실로 같이 걸어가 양치해 주고, 세수해 주고, 볼 일 보는 걸 도와주고, 침대에 눕혀서 스킨과 로션을 발라주고, 약을 챙겨주고, 이불을 덮어주고, 가습기 물을 채고 불을 다.


엄마 침대 머리맡에는 핸드폰 거치대가 항상 고정되어 있었고, 이 시간에 엄마는 손가락 사이에 터치펜을 끼고 네이버 카페를 구경하거나 인터넷 쇼핑을 하거나 유튜브를 봤다. 엄마는 이 시간에 지역 맘카페에서 찾은 의정부 관련 기사 링크를 나에게 자주 보내주며 이것도 써보라고 했다.




방황

2022년 봄이 오기 전, 엄마는 나를 떠났다.


엄마랑 나는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눈을 감을 때까지 함께였다. 한 침대에서 잤으니 눈을 감았을 때도 함께였다. 그런 엄마가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린 일은 나에게 충격, 공포, 비통함, 억울함과 분노를 안겨주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서로 다른 감정들이 번갈아가며 내 몸과 정신을 지배했다.


엄마가 사라지고 나는 삶을 잃었다. 엄마는 내 존재 이유였고 엄마를 돌보는 일은 내 삶이었다. 내가 하던 유일한 일은 엄마를 돌보는 것이었는데, 엄마와 함께 나의 시간은 완전히 길을 잃었다.


엄마의 약을 챙겨주던 8시, 1시, 5시가 되면 본능적으로 시계를 봤다. 평소 1시간이 기본이었던 식사 시간이 혼자가 되니 10분으로 줄었다. 안방 화장실에서는 눈치 없게 엄마의 바디워시와 샴푸 냄새가 짙게 났고, 엄마와 함께 자던 침대에도 엄마의 향기가 남아 있었다. 매일 켜져 있던 tv에서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집은 적막했다. 매일이 물리적, 정신적 공허함의 연속이었고 나는 내 상태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흘렀을 때, 깨달았다.


'아, 지금 방황하고 있구나. 지금 이건 방황이구나.'




발버둥

학교로 돌아갈 수 없었다. 알바도 할 수 없었다. 뜬금없이 눈물이 터져 나오는 나의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나는 아직 살아 있어서, 살아야 했다. 그래서 책을 읽고, 블로그에 글을 쓰고, 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노래를 듣고, 조금씩 외출하기 시작했다.


2022년 봄, 우연히 '문화도시의정부 기자단' 공고를 봤다. 문화도시의정부 기자단은 의정부문화재단 소속 시민 기자단이다.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나에게 무조건 지원하라고 했을 거다.


운이 좋게도 붙었고, 이때부터 난 취재를 명분 삼아 집 밖으로 나가 열심히 의정부를 돌아다녔다. 새로운 장소에 가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처음 보는 사람들 이야기를 나누고, 자연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나는 조금씩 일상을 회복하고 나를 치유했다.


이것이 나의 로컬 라이프의 시작이었다.

<보여줄게 로컬에서 사는 법>은 매주 화요일 연재되는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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