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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y 23. 2024

힘들면 힘든대로

오는 운명이 있다면 가는 운명도 있는 법

``그래, 어떻게 사람이 좋은 때만 있겠니?

엄마가 너무 오래 사시게 되니 좋은 모습도 안 좋은 모습도 보게 되는 거 아니겠니?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고 잘했잖아.

이것도 인생인데

받아들이고 수용해야지 어쩌겠어?

순리대로 살자.``


엊그제 언니와의 통화였다.

더웠던 호찌민의 건기는 5월 초 비를 시작으로 점점 한낮의 지열을 식혀가고 있었다.

그 더운 열기 속에서 남편은

30여 년 동안의 청춘을 걸었던

이 땅에서 내몰리고 있었다.


젊은 청년이었던 남편의 시작은

한국에서 내몰린 사업을 이어가기 위함이었다.

중국과 베트남 , 인도네시아 등

인건비 저렴한 곳을 물색하던 중 찾게 된 곳이 베트남이었다.


아버님의 병환으로 입사를 포기하며 선택해야 했다.

가업을  버릴 수 없어 맡게 된 무거운 책임감으로

남편의 사회생활은 시작되었다.


버겁고 무서운 마음도 들었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기겠다는 마음으로 버텨내었다.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돌아다니는 거리의 걸인들

더운 날씨 탓에 거리 곳곳에 아무 데나 널브러져 잠을 창하는 거리의 부랑자들

그때의 베트남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오토바이보다는 자전거가 흔했고

외국인이 드물던 그때

어딜 가든 자기들 보다 머리 하나는 큰  이방인을 그들은 외계인 보듯 쳐다보았다.


공장 건물을 짓고 직원을 채용하고

공장 기계가 돌아가기까지

많은 시간을 공들여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여기까지 왔다.


매일이 여름인 이 나라에서

쉼 없이 돌아가는 공장의 기계는 그의 땀이 녹아 있었고

스쳐 지나간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펼쳐지는 곳이 이곳이었다.


해마다 설이 되면 한국을 다녀가는데

이제는 한국보다 이곳 베트남이 더 살갑게 느껴지기도 하는

제2의 고향이 돼버린 곳이다.


``내가 너무 멍청한 짓을 했나 봐.

웃음밖에 안 나와. 지난 시간 동안 내가 뭘 했나 모르겠어.

한국 가면 어디 살아야 하나? 한국 아파트는 전세를 줬나? 당장 들어갈 집은 없네.. 차차 생각해 봐야겠어.``


전업주부로만 살아온 내게 약한 모습을 보인 건 이번이 처음 인 듯하다.

사업으로 흥한다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든든한 버팀목으로 있어주던 남편의 모습이 아니었다.


매일 아침 처진 어깨로 집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을 보는 것도

매일 저녁 어두운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그의 모습도 내겐 낯설다.


알아도 모른 척

몰라도 아는 척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차려주고

챙겨 먹어야 하는 약을 잊지 않고

조금이라도 영양식으로  체력을 보충해 주는 일


그리고 기도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안보였다.


당장에 어떤 변화가 일어난 건 아니었다.

무거운 집 안 분위기에 별다른 말을 할 수 없다는 게 달라진 모습 일 뿐


좋아하는 최강야구를 보며 농담도 하고

군대 체험 중인 영국 대딩들의 군대 체험기 영상도 찾아보고

주말이면 치킨도 시켜 맥주 한 캔을 나눠마시며

모른 척 , 무심한 척


늘어난 흰머리만큼 우리는 나이 들었다.

언니의 말처럼 우리 부모님들이 오래 사시게 되니 좋은 면도 안 좋은 면도 다 보게 되시는 거다.

좋았던 모습만 보셨으면 노년이 더 행복하셨을텐데......


우리 부부가  지금의 부모님 연세가 되면

어떤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위만 보고 살게 되면,

그곳에 다다를 수 없다는 절망을 느꼈을 때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


내가 가질 수 있는 것

내게 주어진 것들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작은 시련이 오더라도

시선 너머 어떤 것에 닿을 수 없다 해도

우리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어떤 상황이라도 우리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법륜스님의 말씀을 매일 되내어 본다.


나도

남편도

우리 가족들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주시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이 둘의 차이점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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