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응징의 시작
친정인 해남을 떠나 남편이 될 사람을 따라 낯 설은 완도로 온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남편 대수는 차남으로 장남인 그의 형은 벌써 결혼하여 시부모와 함께 살고 있었고 춘자 부부도 외양간 옆에 붙어 있는 조그만 문간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춘자는 시집간 친구들처럼 볼에 연지곤지 찍고 연두색 저고리에 꽃분홍치마를 입고 머리에 얄궂은 족두리를 쓴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부끄러워 얼굴이 발개졌다. 그런데 이상하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수줍게 기대했던 혼례식도 없이 어영부영 시집식구들에 섞여서 살게 되었다.
혼례식은 언제 하나요, 하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직도 남 같은 시집식구들이 어려워 어느 누구한테도 이유도 물어보지도 못한 채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다행히 친정에서 혼수로 보내준 값 비싼 비단 몇 필 덕분인지 시집 식구들은 춘자에게 친절하게 대해줬다.
장남의 아내, 즉 윗 동서는 동그랗고 야무진 얼굴에 자그마한 몸집으로 집안 이곳저곳을 나비처럼 사뿐사뿐 분주하게 움직이며 익숙하게 집안 살림을 꾸려나갔다. 덕분에 춘자는 동서가 시키는 간단한 일을 거들면서 차츰 시집살이에 적응해 갈 수 있었다. 친정에서 제대로 살림을 배우지 않아 걱정했던 춘자에겐 그나마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혼례식 없이 살게 된 섭섭한 마음을 달래기로 했다.
남편 대수는 시아버지와 형이 농사를 지어 수확한 곡식과 농산물을 큰 도시로 내다 파는 일을 하기 때문에 전국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다가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집으로 돌아왔다. 신혼이라고는 하나 남편은 춘자에게 살갑게 대해주지 않았지만 서로 큰 소리 내는 일 없이 지냈다. 춘자 자신도 사근사근하게 남편에게 애교를 부리거나 사랑받기 위해 특별하게 노력하지 않았다. 아니 신경을 쓰지 않았다. 노처녀 신세로 친정에서 지냈던 시절보다 재미없는 생활이었지만 남들도 다들 이렇게 살겠지 하고 별 다른 불만 없이 지냈다.
어느 날, 남편 대수가 외지에 나가 있어서 혼자 평상에서 빨래를 개고 있는데 아주버님과 동서가 춘자에게 할 말이 있다고 시부모가 지내는 안방으로 불렀다. 시아버지도 시어머니도 얼굴이 굳은 채 아랫목 방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동서 부부 역시 그다지 밝은 얼굴이 아니어서 춘자는 자신이 무슨 잘못을 해서 야단을 맞는 건가 하고 심장이 뻣뻣하게 긴장되어 긴 다리를 엉거주춤 접으며 자리에 앉았다.
뒷골을 누가 망치로 꽝하고 때린 것처럼 머리가 우지끈 아팠다.
남편 대수가 군인 시절에 사귀었던 여자는 아들 종석이를 낳고 어디론가 떠났다고 한다. 서 씨집안의 피붙이니 형 부부가 그동안 자신들의 호적에 입적시켜 키우고 있었지만 이제 대수와 춘자도 혼인신고를 하고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으니 춘자의 아들로 데려가란다. 마른하늘에 벼락이 꽝, 꽝 치고 있었다. 왜 이런 말을 남편이 없을 때 하는지. 남편은 이런 곤란한 상태에 도망 가 버린건가. 남편의 비겁한 면상을 떠 올리니 머리 뒷 골이 멧돌에 갈리는 것 같이 빠개지는 통증이 오면서 눈 앞이 노래졌다.
키가 커서 멀때 같은 춘자는 행동하는 것도 느렸다. 긴 팔과 긴 다리를 움직이려면 남들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어기적, 어기적. 그래서 머릿속에 있는 증오심과 허탈함도 느리게 돌아간다. 천천히 멧돌에 갈리듯이. 이게 뭔 일이래.
춘자는 시집온 지 여섯 달도 안되어서 네 살배기 아들이 생겨버렸다.
나중에 춘자는 자신이 다른 여자의 아들을 내 호적에 안 올리겠다고, 절대 안 된다고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한걸 두고두고 후회했다.
이듬해, 춘자는 아들을 낳았다. 사랑하지 않는 남편과의 아들이지만 그녀의 아들이다. 그리고 2년 후에는 딸을 낳았다. 그리고 2년 후, 남편의 사업으로 옮기게 된 낯선 강원도 산골에서 세 째, 딸을 낳았다. 자신이 낳은 자식들임에도 애틋한 모성애를 느끼지 못했다. 남들도 다 이렇게 살겠지 하고 자신의 인생, 자신의 존재가치 따위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3년 후 별로 낳고 싶지 않은 자식을 또 낳았다. 종태, 미정이, 미영이, 종민.
아들 둘, 딸 둘, 그리고 하나 더 남편과 다른 여자의 아들 종석.
춘자의 큰 아들 종태는 똑똑했다.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항상 대장 노릇을 했다. 학교에서도 동네에서도 종태에 대한 칭찬이 자자했다. 그런데도 남편은 종태를 많이 때렸다. 다른 여자의 아들 종석이를 티가 나게 예뻐했다. 장난감도 사주고 알사탕도 종석이에게만 사줬다. 이유도 모른 채 매를 많이 맞는 날은 종태는 집을 나갔다. 그래도 춘자는 종태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 알아서 들어 오겠지.
종태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유 없는 남편의 폭력적인 행동은 계속되었다. 왜 유독 종태에게만 그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알 것도 같다. 젊은 시절 사랑했던 여자의 아들 종석이가 애틋했겠지. 똑똑한 종태보다 모자란 종석이가 안쓰러웠겠지. 그런데 종태도 미정이도 미영이도 종민이도 니 자식인데 어찌 그리 무정하시오.
에라 모르겠다.
춘자는 남편의 무정함을 탓하지 않았다. 비관하지도 않았다. 자식들에게 모성애를 느낄 수가 없었다.
남편의 자식들이니까.
자식들이 똑똑하지만 춘자는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발 벗고 나서지 않았다. 다른 엄마들처럼 대학교에 보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방관했다.
종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동차 부품회사에 취직했다. 전문적으로 배운 것은 없지만 머리가 좋고 열심히 노력하는 덕에 동료들과 윗사람에게도 인정받으면서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찾아갔다.
큰 딸 미정이는 공부를 못했다. 학교생활도 성실하지 않았고 불량학생들과 어울려 다니며 동네를 시끄럽게 했다. 껌을 짝짝 씹어대며 건들대는 딸의 한심한 모습을 보면서도 춘자는 내버려 두었다.
춘자는 딸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듣거나 말거나 그렇게 중얼거렸다.
미정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늘 같이 놀던 친구 따라 미용학원에 다니며 미용 자격증을 땄다. 춘자와는 다르게 눈치도 빠르고 손이 빠른 미정이는 미용기술을 인정받아 여기저기 미용실에 불려 다닐 정도로 실력이 좋았다. 그러게 니 인생 니가 알아서 살게 돼서 다행이구나, 하고 춘자는 영혼 없는 말을 내뱉었다.
둘째 딸 미영이는 학교에서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지 언니 미정이와는 다르게 모범학생이었으나 융통성이 없어 답답한 아이다. 외골수라 친구도 별로 없다. 학교에서 집, 집에서 학교. 공부는 잘하나 똑똑하지 않고 매사가 춘자처럼 느려 터졌다. 옷을 갈아 입으면 쓰윽 몸만 빠져 나와 바지며 치마며 옷가지들이 여기저기 둥그런 구멍을 만들어 늘어놓고 다닌다. 주변 정리도 제대로 안 하고 게으르다. 춘자는 그런 딸을 보고도 이래라저래라 야단치지도 않았다. 대신 또 허공에 대고 중얼거린다.
그래도 공부를 잘했으니 미영이는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간호조무사 시험에 합격하여 동네 조그마한 진료원에 취직했다. 특별함이 없는 인생을 시작했다.
막내아들 종민이는 존재감이 없었다. 집에 있어도 밖에 나가 있어도 가족들이 그에게 관심이 없었다. 공부에는 담을 쌓아놓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며칠씩 집에 안 들어와도 걱정을 안 했다. 어디에 있는지.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춘자는 막내아들에게도 말했다.
자식들은 집에서나 학교에서도 배운 것이 없고 인생의 뚜렷한 목표도 없었다. 아니 있는 것이 이상하지.
춘자는 그렇게 남편을 응징했다. 혼례식 없이 시작한 혼인생활과 다른 여자가 낳은 남편의 아들을 키워온 가슴속의 분노를 참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