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큰아들의 여자

청담동 그녀

by Marisol

큰딸의 두 번째 남자, 박사장은 아는 게 많았다.


교통사고로 몸을 움직이지 못해 늘 입을 다물고 앉음 뱅이 책상 앞에 앉아서 공책에 뭔가를 계속 적어대는 남편과는 소가 닭 보듯, 닭이 소 보듯 하루에 몇 마디 대화를 나눌 뿐, 서로의 존재에 감정표현조차 없는 나날을 보내는 게 일상이었다.


꾸며낸 이야기인지 진짜인지, 우리나라 사회가 돌아가는 상황이 어쩌고 저쩌고, 정치가 이렇게 돌아가서는 나라가 어찌 되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둥, 외국의 경제동향을 보면 우리나라는 곧 파멸할 것이라는 둥, 최근에 이혼한 연예인 부부의 이혼사유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둥.

얇은 입술을 쉬지 않고 벌름거리며 떠들어 대는 박사장의 출현에 춘자는 심심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박사장한테서 들은 잡다한 이야기들이 전혀 쓸모없었던 것은 아니다.

성당의 자매님들과의 모임에서 박사장이 떠벌였던 이야기를 춘자 자신이 알고 있는 상식인 양 은근슬쩍 흘려냈더니, 자매님들은 이구동성으로 어쩌면 시사에 그렇게 밝으시냐며 춘자의 교양과 박식함에 감탄을 담은 칭찬으로 추켜 세워줬다.

박사장의 헛뻥질을 귀담아 들었다가 이렇게 쓰면 된다.

똥도 흙에 뿌리면 비료가 되듯이.


무엇보다 박사장은 춘자를 위해 돈을 잘 쓴다.


춘자가 뭔가 맛난 것이 먹고 싶다고 말하면 최고로 맛있다는 식당으로 데려가 실컷 먹게 해 줬다. 그럴 때마다 멋진 외제차에 태워 어머님 어머님 하면서 부잣집 마나님처럼 대우해 줘서 무엇보다 만족스럽다.


새 봄이 오면 봄이 왔다고 꽃 같이 예쁜 옷과 세련된 가방을 선물하며, 여름이면 여름이라고, 가을이면 가을이라고 바닷가며 산으로 좋은 구경을 시켜줬다.


춘자는 큰딸 덕분에 이제야 정말로 봄날 같은 인생을 살게 되었구나 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 안심을 했다.




을씨년스럽게 진눈깨비가 얼굴을 따갑게 때리는 12월의 어느 토요일.


한 해가 가기 전에 식구들 모두 모여 식사나 하자는 큰아들 종태의 말에 몸이 불편한 남편 대수를 제외하고 큰딸 미정이와 박사장, 작은딸 미영이, 막내 종민이까지 약속 장소인 유명한 갈비식당에 모였다.


종태는 요즘 새로 옮긴 회사가 바쁘다며 집에 오는 일이 드물어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그런 큰아들이 먼저 밥을 먹자고 하니 내심 기쁘기도 했지만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불안하기도 했다. 사교성이 많아 재잘거리는 막내아들과는 달리 큰아들은 말수도 없고 항상 딱딱한 돌벼루 마냥 굳은 얼굴을 하고 있기에 춘자 역시 먼저 말을 걸기가 어려웠다. 그런 큰아들이 먼저 식구들 모두 모여 밥을 먹자고 한 것이다.


도로가 막혀 조금 늦겠다는 큰아들의 연락을 받고 식구들은 예약된 식당 룸으로 안내를 받아 테이블을 둘러쌓고 자리에 앉았다. 큰 딸의 남자 박사장은 변함없이 쉬지 않고 떠들어 댔다. IMF 때문에 나라가 망할 지경이라니, 정치가의 험담을 하다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시작하는 사업은 앞으로 대박이 날 거라는 등 이빨이 새 뜬 틈으로 침을 튀겨가면서 떠들고 있을 때 큰아들이 웬 여자랑 들어왔다.


“엄마, 요즘 사귀는 여자야.

오늘 가족들에게 소개하려고 모이자고 했어.”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큰아들의 여자가 끝이 뱁새처럼 치켜 올라간 눈으로 눈웃음을 치며 뾰족한 턱을 우물쭈물 움직이면서 웃고 서 있었다.


“박 혜 진입니다”


갑작스러운 큰아들의 여자의 출현에 모두들 어리벙벙했다.


큰아들은 그녀를 빈자리에 앉히며 한마디 소개를 덧붙였다.


“엄마, 얘네 부모님이 신사동에서 유명한 게장 식당을 하셔. 집도 청담동이래.”


집도 청담동이래.

집도 청담동이래.

집도 청담동이래.


춘자의 눈에 멈춘 큰아들의 여자는 오른쪽 위에 박힌 뾰족한 덧니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춘자의 눈도 동전을 넣는 저금통에 뚫린 구멍처럼 얇고 어색하게 늘어지고 있었다.




며칠 전, 일 때문에 근처에 온 김에 들렀다며 큰아들이 춘자를 찾아와 쭈뼛쭈뼛 물어본 적이 있었다.


“엄마, 우리 집에 박 씨가 들어오면 정말 안돼?”


“사귀는 여자가 박 씨 성을 갖고 있냐?”


“...네…”


“그냥 사귀기만 하고 결혼은 말아라.”


“엄마, 그게 한발 늦은 것 같아…”


“ …? ”


“내 아이를 임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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