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큰딸의 두 번째 남자

첫 번째 박 씨 – 박사장

by Marisol

생각만 해도 재수 없는 사이비 종교 교주가 주절대던 ‘박 씨 성(朴氏性)을 가진 자를 집안에 들이면 집안이 파탄이 난다’는 예언을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애를 썼다. 성경책을 펴고 성모상 앞에서 눈을 질끈 감고 소리를 내어 기도를 했다. 머릿속의 더러운 오물을 씻어내려 빨랫비누로 매일 아침 머리도 빡빡 감아댔다.


남편 대수가 장사를 떠나 집을 비운 날 춘자는 큰 아들을 불러들였다. 다른 성을 가진 사람을 집에 들인다면 아들들이 여자를 집안에 들이는 일이니 출가외인이 될 딸자식들은 상관없을 터. 아직 중학생인 막내아들 종민이에게는 말해 봐야 알아듣지도 못할 테니 큰아들 종태에게 넌지시 운을 떼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재수 없는 예언을 믿을 일은 아니지만 혹시 모르니 되도록이면 박 씨 여자는 사귀지 말라는 우스꽝스러운 춘자의 말에 종태는 코웃음을 쳤다.


“엄마, 요즘 세상에 그 사기꾼 같은 사이비 교주나 무당 따위 말을 누가 믿어요.

엄마는 성당에 다니면서 왜 그런 말에 신경 쓰고 그러세요.

성모님, 예수님이 다~ 듣고 있어요. 기도나 잘하세요”


춘자의 걱정을 심각하게 들어줄 거라는 기대는 하지도 않았지만 큰아들의 기도 안 찬다는 반응으로 춘자의 입은 말라비틀어진 대추마냥 쪼그라들고 말았다.


종태는 잘 다니던 자동차 부품공장을 갑자기 그만두고 호프집을 하겠다며 번화가 동네 귀퉁이에 있는 골목상가에서 음식 장사를 시작했다. 마침 생맥주와 치킨을 파는 호프집이 유행하면서 젊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골목길에는 호프집이며 족발집 등 술집들이 성행했다. 월급쟁이보다 자기 장사를 해서 돈을 모으겠다는 아들을 말릴 재간도 없었다.


춘자는 버릇처럼 중얼거렸다.

그려~.

니 인생이니 니가 알아서 해라.


그래도 춘자는 큰아들 주변에 박 씨 성을 가진 여자가 붙어 다니는지 막내아들을 통해 알아보곤 했다. 아직은 그렇다 할 상대는 없는 것 같았다.


경쟁점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면서 돈이 안 된다며 1년 남짓 운영하던 호프집을 접었다. 큰아들은 다시 취직을 하겠다고 매일 돌아다니다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이 제대로 된 사업이라도 했다면 아들 직장 걱정은 안 했을 텐데 하며 춘자는 남편의 무능함을 책망했다.


불행의 시작인가. 아니면 불행의 연속인가.


싸라기 눈이 내리는 우울한 1월의 어느 저녁, 고막이 찢어질듯한 전화벨 소리에 춘자는 불현듯 가슴이 덜컹하면서 머리카락만큼이나 쭈뼛해진 손가락을 뻗어 수화기를 들었다.


남편 대수가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에 치여 병원에 실려갔다고 한다.

청천벽력 같은 전화 너머의 소리가 아득해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후, 남편 대수는 아무 일도 못하고 집에서 누워 있기만 했다. 몸 상태가 더 나아지지도 않는데 늘어만 가는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행복해지는 건 바라지도 않았다.

단지 불행하지만 않길 그렇게도 간절하게 성모님과 예수님에게 기도했거늘.


첫째 딸은 살림밑천이라고 큰딸 미정이는 미용실을 개업하고 솜씨가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손님들이 계속 늘어갔다. 큰딸은 춘자를 닮지 않아 동그란 얼굴에 애교가 많아서 남자 손님들도 꽤 북적였다.


일을 마치고 늦게 들어온 큰딸은 미용실을 찾는 단골손님 중에 카센터를 운영한다는 남자이야기를 자주 했다. 작고 귀여운 얼굴로 사근사근 애교를 떨면 어느 남자가 싫어하랴.


결국 큰딸에게 유난히도 치근거리던 그 카센터 주사장이라는 놈하고 사이에서 손녀 수진이가 태어났다.


춘자는 나이 46세에 할머니가 되었다. 손녀 수진이를 데리고 다니면 늦둥이를 낳았냐는 주변사람들의 참견이 넌덜머리가 날 정도로 짜증 났다.


미정이가 미용실을 운영해서 번 돈으로 아파트 평수를 늘려 이사를 했다. 넓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어도 온갖 집안 살림은 춘자 몫이었다. 하지만 딸이 번 돈으로 남편이 해주지 못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으로 참아냈다. 아니 그동안의 불행한 인생의 대가를 받는 것이리라.


화려한 목걸이와 귀걸이, 팔찌, 반지를 온몸에 휘감고 멋진 원피스를 입고 성당에 다니면서 춘자는 자신의 불행을 감췄다. 우아하고 상냥한 미소는 사치스러움을 품위 있게 해 준다. 다행스럽게도 춘자의 느릿느릿한 걸음걸이는 자칫 품위 있는 귀부인의 행동으로 착각하게 된다는

난센스.


미정이의 첫 번째 남자 주사장은 카센터를 운영한다지만, 틈만 나면 직원들에게 일을 맡겨놓고 PC방에 틀어박혀 게임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당연히 손님이 줄고, 직원들은 무책임한 주사장에게 등을 돌리고 다른 직장을 찾아 떠났다고 했다. 수입이 줄었으니 미정이에게 갖다 주는 생활비도 점점 줄어드는 것은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그런 상황을 가만히 참고 있을 미정이가 아니다.

돈도 못 벌어 오는 남자는 사람새끼도 아니라며 주서방을 향해 세간살림을 내 던지며 한바탕 난리를 피웠다.

손녀 수진이가 4살이 되고 얼마 후의 일이었다.


춘자는 그날 이후 주서방을 한 번도 볼 수가 없었다.



어린 딸을 맡겨놓고 미정은 귀가시간이 점점 늦어졌다. 손님이 많아서 늦게까지 일 해야 한다고 미정은 눈을 째리며 앙탈을 부렸다. 돈을 많이 번다면야. 이번 생일에 선물 받을 명품 핸드백을 기대하며 춘자는 혼자 넙데데한 입술에 웃음을 흘렸다.


그날은 아버지가 봄에 태어나 봄날처럼 살라고 지어 준 이름에 걸맞게 아름다운 꽃이 만발하고 온 세상이 초록빛으로 가득하고 코 끝에 머무는 공기 또한 싱그러운 춘자의 생일이었다.

아들과 딸들이 손에 선물과 꽃을 들고 찾아왔다.


남편 복은 없어도 자식 복은 있으려나. 어떤 선물일까 한껏 부푼 마음으로 우후훗, 웃고 있는 춘자 앞에 큰딸 미정이가 남자를 데리고 와 인사를 시켰다.


말끔한 신사복에 비싸 보이는 넥타이, 반들거리는 소가죽 구두, 윤기 흐르는 뺨, 얇은 입술이 벌어진 틈으로 담배에 쩔은 누런 이빨이 보이는 뺀질한 미소.

한눈에 척, 보아도 착한 인간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 요즘 만나는 사람이야. 수진이도 알아. 아빠처럼 잘 따르더라구.”


춘자에게 가까이 오더니 귓속말로 속삭이며 한마디를 더한다.


“엄마, 돈도 많아. 부동산 건설회사 사장이야.”


돈도 많아. 건설회사 사장이야.


돈도 많아. 건설회사 사장이야.


돈도 많아. 건설회사 사장이야.


춘자의 귓바퀴로 큰딸의 이 속삭임이 메아리처럼 반복되어 돌다가 귓구멍으로 쏘~옥 들어왔다.


그래?

돈이 많다니 참말로 잘 됐네!


춘자의 앞날이 더욱 화려해질 것이리라.


남자의 뺀질한 미소가 갑자기 착해 보였다.

춘자는 더없이 인자한 미소를 짓느라 입술 끝을 눈꼬리까지 치켜 올렸더니 얼굴에 부르르, 경련이 일어났다.


“처음 뵙겠습니다. 어머님.


오늘 생신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박 성 환' 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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