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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청산

by 루아 조인순 작가 Dec 15. 2024


  청풍과 해풍이 교접하는 아름다운 섬 청산도는 <서편제> 촬영지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산과 물이 모두 푸르다고 해서 청산이라 한다. 제주도와 비슷한 환경을 갖추고 있지만 제주도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 섬이다. 죽기 전에 꼭 한번 가봐야 할 곳이라고 전하는 이곳을 무박 기행으로 찾았다. 멀고 먼 밤길을 달려간 청산도는 아직 잠의 끝자락에 심취해 있다.


  바닷가에는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파도가 빚은 반질반질한 예쁜 돌이 많고, 주민들은 어업과 농업을 겸하고 있지만, 물도 좋고 넓은 평야가 있어 농업에 더 많이 종사한다.


  언덕에는 올망졸망한 구들장 다랑이 논들이 모여 있다. 모내기를 막 끝낸 농부들은 뜬 모 심기에 바빴다. 저 벼가 자라서 우리들의 밥상에 올라오기까지 농부의 손이 여든여덟 번이 간다는데 섬을 둘러보는 내내 농부의 허리는 펴지지가 않았다.


  발길 닿는 곳곳마다 여행자의 코끝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야생화와 붉은 산딸기가 지천으로 익어 있어 따먹으며 다녔다. 보리는 익어 몸보다 무거워진 자신의 머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밭에 드러누워 농부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밀도 이제 막 수확기에 접어들어 황금빛으로 출렁인다.


  밀을 보니 어린 시절이 생각나 염치 불구하고 주인의 허락도 없이 덜 익은 밀을 몇 송이를 꺾었다. 불에 구워 손으로 비벼 탱글탱글한 알갱이를 먹어 보니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것이 그 옛날 고향의 맛이 났다.


  연어는 부화된 지 몇 주일 후에 바다로 가서 삼사 년 살다가 산란기가 되면 다시 모천(母川)으로 돌아온다. 연어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그 힘든 물살을 헤치고 자신이 태어난 모천으로 회귀(回歸)하는 이유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 때문일 것이다. 농부의 노고 덕분에 잠시나마 고향의 향수를 맛볼 수 있었다.


  대봉산에서 내려다보이는 청산도 바다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해 있어 그런지 자연경관이 수려하다. 날씨가 맑아 주변의 작은 섬들과 에메랄드보다 더 투명한 바다는 하얀 포말을 뿌리며 수평선 너머 아직도 못다 한 이야기를 품은 채 넘실댄다.


  범바위를 돌아보는 동안 숲이 우거져 발밑에 뱀이 있는지도 모르고 앞서간 일행이 뱀을 밟았다. 사람도 놀랐겠지만 뱀은 더욱 놀랐을 것이다.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불청객에 의해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들었으니 뱀의 입장에서 보면 십년감수한 셈이다. 그래서 스님들은 산길을 다닐 때 바랑에 작은 종을 달고 다닌다. 딸랑거리는 종소리를 듣고 발밑의 작은 동물들에게 위험을 알리며 조심하라는 의미다.


  전망대에 오르니 순식간에 물안개가 몰려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세계다. 내려가는 것을 포기하고 한참을 서 있었다. 설마 이러다 여기서 죽는 것은 아니겠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하는 순간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다시 바다에서 해풍이 불어와 물안개를 몰아 고향인 바다로 데리고 가니 주위가 환하게 드러났다.


  청산도는 지명 그대로 마을은 깨끗하고 평화로웠고, 주민들은 부족함 없이 어업과 농업을 병행하며 넉넉한 삶을 사는 것 같다. 특산물 가격도 저렴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조금 더 그곳에 머물고 싶었지만, 차시간에 쫓겨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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