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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단 Dec 12. 2023

올해 수고한 나에게 해주고 싶은 연말 선물은

고민하다 보니 꽤 쌓인 나의 연말 선물 리스트

 


 올해 여러 번의 힘든 상황을 마주하면서 적지 않은 마음고생을 했다. 절대로 무너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 나는 그 힘든 시기마다 끊임없이 내 안에 있는 '내면의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초반에는 완강히 나를 거부하긴 했지만 별다른 말 없이 그 아이가 마음껏 울도록, 그 옆을 묵묵히 지키고 서 있었다. 울음이 수그러들 때까지, 어르고 달래는 동안 점차 진정이 되는 듯했다. 그렇게 천천히 마음을 열어 언제부터인가 답을 둘이서 찾아가는 날들이 반복됐다. 오랜 시간 동안 함께 궁리한 해결책들을 실전에 적용해 보며 수많은 실패를 경험했고 그로 인해 좌절한 나머지, 처음의 상태로 돌아가버린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이 며칠, 길게는 몇 달 동안 반복되었다. 포기하지 않고 고된 하루 속에서 버티고 버텨 어려움에 도전한 끝에 마지막에는 달콤한 승리를 함께 손에 쥐었다. 그런 시절이 있던 나에게 '질문'이라는 키워드는 존재 자체로도 감사하다.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것이기에.


 최근에 베스트셀러 <거인의 노트> 저자이신 김익한 교수님이 진행하시는 올해 마지막 ‘코끼리 강연 토크쇼’에 다녀왔다. 주제는 “잘 살아온 나에게 신년 계획 선물하는 방법”. 신청하게 된 계기라고 하자면 내년에 어떻게 계획을 잘 세울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기 위함이 컸다. 참석해 강연을 듣는 와중에 교수님께서는 관중석을 향해 뜬금없는 질문을 하나 던지셨다.


 "여러분은 연말에 자기 자신한테 선물 하세요?"


 그동안 정말 많고 많은 질문을 들었지만 지금까지 들었던 질문들 중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 질문을 듣는 순간 허를 찔린 느낌에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연말을 맞아 나에게 선물을 할 생각을 어째서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을까.


 바로 뒤이어 교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한 해 고생한 나에게 연말 선물 하나는 해줘야지 않겠어요?” 자신을 소중하게 마치 연인처럼 대하라는 교수님의 말씀에, 그리고 그 질문에, 나 자신을 많이 돌본 한 해였다고 자부했던 내가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렇게 강연이 끝나고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시작했다. 그 누구보다 소중한 나에게 주고 싶은 선물을 무려 일주일 동안이나 고심한 끝에 완성했다. 나만의 '나에게 주고 싶은 연말 선물 리스트'를 밑에 적어보았다.



<나에게 주고 싶은 연말 선물 리스트>

- 카페에 앉아 따뜻한 카페라테를 마시기 위한 ‘머그컵 텀블러’

- 촉감이 좋은 부들부들한 ‘파자마’

- 운동용 ‘캡 모자’와 스트레칭을 위한 ‘폼롤러’


 그리고 그 옆에는 그 물건을 나에게 선물하고 싶은 이유를 적어두었다.



 머그컵 텀블러

  평소에 카페에 갈 때 텀블러를 가지고 다닌다. 보통 1년에 한 개 정도는 새로 장만하고는 하는데 그래서인지 요즘 카페에만 가면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출시된 예쁜 텀블러들이 눈에 밟힌다. 최근 들어 카페에서 작업을 하는 일이 잦아졌는데, 그때마다 따뜻한 카페라테를 마시는 것이 하나의 낙이 되었다. 나의 행복의 원천을 그리고 내가 행복해하는 그 순간을 예쁜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조금은 아쉬운 것이, 지금 가지고 있는 텀블러들은 전부 입구가 좁아 사진을 찍어도 영 맘에 들지가 않는다. 내가 행복하는 그 순간을 예쁘게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에 예비 연말 선물로 선택했다.


 부들부들한 파자마

 지난 생일에 두 명의 지인으로부터 파자마 선물을 받은 적이 있다. 선물을 받아 잠옷을 입어보는 경험을 하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왜 굳이 비싼 파자마를 사 입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냥 목 늘어난 반팔 티셔츠에 집에 굴러다니는 편한 바지를 입으면 되잖아?’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생일 선물로 파자마를 보내준 친구의 편지에는 자신도 우연히 파자마 선물 받아서 입어보게 되었는데 너무 좋은 나머지, 나도 그 기분을 느껴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선물을 했다고 적혀 있었다. 반신반의했지만 예쁜 잠옷을 차려입고 집 안을 돌아다니니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은 말로는 형용하기가 힘들다. 좀 어깨가 으쓱해진다고나 할까. 하루 종일 고생한 나를 챙기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친구의 예쁜 마음이 오랫동안 남아, 나도 나에게 한 번쯤은 포근한 잠옷을 선물해 주고 싶다.


  캡 모자와 폼롤러

 올해 9월부터 피티샵에 등록해 개인 수업을 열심히 듣고 있다. 수업을 갈 때마다 항상 캡이 달린 모자를 쓰고 가는데, 그 이유인즉슨 땀이 워낙 많은 탓에 수업 중 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가급적 막기 위해 쓰고 있다. 넓은 이마를 가리기 위한 것도 없지 않아 있다. 한강 러닝을 위해 꼭 챙겨가는 물건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렇게 주에 6일은 모자를 쓰고 운동을 하는데 땀 냄새가 베어 자주 세탁을 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고, 가진 모자가 겨우 3개라 곤란한 상황에 쳐해 있다. 겨울이라 자주 세탁하는 게 조금은 무리라고 생각해서 요즘 들어 열심히 운동하는 나를 위한 선물로 하나 더 장만하고 싶다는 그런 마음이다

 아침에 기상한 후 또는 잠이 들기 전 루틴으로 만들어 놓은 한 가지가 있다. 바로 ‘폼롤러 스트레칭’. 개인 수업을 받기 전에 선생님께서 항상 부상 방지를 위해 간단한 스트레칭 몇 가지로 수업을 시작하시는데, 이왕 미리 집에서 몸을 풀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에 시작했다. 한 일주일 하다 보니 재미를 붙여 조금 더 강도 있는 스트레칭을 위한 폼롤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리스트에 넣게 되었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까 소소한 것들이 나를 기분 좋게 해 준다는 사실에 절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화려한 명품이나 비싼 식사 하나 없이 주변에서 흔히 쓰는 작은 물건 하나에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또 이렇게 선물을 고민하고 적어본 일주일이 나에게 나의 취향과 관심사를 알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던 듯하다. 내가 커피와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며, 살에 닿는 부드러운 촉감을 중시 생각하고, 삶의 원동력인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애정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이 리스트를 완성함으로써 깨달았다.


 지금부터 올해가 가기 전에 자신에게 선물하고 싶은 '연말 선물'을 목록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최대한 오랜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것들을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교수님이 "사뒀다가 연말 전에 풀면 안 돼요!"라고 강하게 이야기하셨기 때문에 안심하고 여유 있게 생각해도 좋다. 자신이 진심으로 “이거 하나 사면 정말 행복하고 잘 쓸 것 같다”하는 물건을 찬찬히 진지하게 고민해 봤으면 한다. 나는 일주일 동안 여러 가지를 생각해 놓은 탓에 막상 저 중에 하나를 고르려다 보니 조금은 막막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요즘 나는 내가 고심해서 정성껏 고른 선물에 기뻐할 나를 상상하며 행복한 고민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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