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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경 May 06. 2024

내 마음 속 기차풍경

기차는 늘 설레게 한다. 나는 여행 중에서도 기차여행을 최고로 여긴다. 지금의 기차는 예전과 같은 재미는 좀 덜하지만 그래도 기차를 타는 순간 기차를 탄 이유가 일을 하러 가던 놀러 가던 간에 이미 설레고 있다. 기차표를 끊는 순간 기차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


  강릉에서 부산까지 가는 기차가 있다. 지금은 정동진까지 가야 탈 수 있는 기차지만 예전에 는 강릉에서 타면 부산까지 느리게 느리게 가서 내려놓는 기차가 있었다. 나는 기차를 타는 것을 특히나 좋아했고 그런 나를 위해 나의 오랜 친구는 나와 만나서 노는 날이면 가끔 “기차탈까?” 하고 묻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우린 기차역으로 뛰어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만큼 갔다 오거나, 지금 당장 떠나는 기차를 어느새 타고 있곤 했다. 기차 안에서 만나는 즐거움 중 하나는 맛난 것들을 잔뜩 싣고 “달걀~~ 과자~~” 하는 역무원의 외침을 듣는 것이었다. 그렇게 밀차가 지나가면 우선 맥주 한 캔과 새우깡 또는 오징어, 귤 등을 샀다. 사고 있으면서도 또 다른 간식을 찾고 있었다. 간식에 대한 고민이 끝난 다음에야 하던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두 손가락으로 꾹 눌러서 여는 창문도 살짝 열어보기도 하고 창밖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눈을 감고 몸을 맡기기도 했다. 때로는 기차칸이 연결되는 곳으로 나가 바람을 맞으며 큰소리로 떠들기도 했다. 떨어져 지낸 동안 있었던 서로에 대한 이야기. 나와 친구는 다른 학교를 다니고 있었기에 학기 중 자기 학교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이야기로 시작했다. 친구의 연애 이야기도 듣고 그로 인해 기쁘고 행복한 일도 있지만 슬픔도 아픔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나의 연애를 상상하고 너의 연애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렇게 부산에 내리면 자갈치시장 한구석에 앉아 작은 회 한 접시와 고추장으로 끼니를 떼우고 다시 부산역으로 달려가 기차를 탔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그녀도 나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시간이 후딱 지나가 버렸다. 아이들이 자기 앞가림을 하게 되던 시점의 어느 날 우린 또 강릉에서 만나 기차를 탔다. 우리가 끊은 기차표는 네 장이었다. 나와 친구, 나의 딸과 친구의 딸. 이렇게 네 명은 엄마들의 젊은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부산까지 갔다. 기차를 탈 때 4장의 표를 구매했다는 것은 또다른 즐거움이다. 기차에 타자마자 앞좌석 다리 밑에 있는 레버를 발로 꾸욱 누르고 의자의 등받이를 힘을 주어 밀면 빙그르르 의자가 돌면서 네 사람이 마주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준다. 아이들은 와~~하면서 창가로 뛰어가 마주 앉는다. 서로 다리를 부딪히며 장난을 친다. 마주 앉아 자리를 잡으면 그때서야 먹거리를 찾게 되는데, 아뿔사! 기차 안에 간식 밀차가 다니지 않았다. 다만 식당칸이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식당칸에 가서 여러 가지 간식을 사서 자리로 돌아와 아이들은 과자와 음료수를 먹고, 우리는 맥주 한 모금하며 재미있고 즐거운 이야기로 가득 채웠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저들의 이야기를 하고 우린 우리끼리 우리들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아이가 어렸을 때 같이 스키장에 갔을 때의 이야기로 신나 하면 그날 우리의 또 다른 친구들과 함께 했던 그 스키장에서의 에피소드로 한껏 깔깔대며 웃어댔다. 우리 네명의 공유하는 일이라 더 재미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아이들이 간간이 지루해할 때면 이 칸에서 저 칸으로 다니며 바람을 쐬기도 하고 쥐방구리처럼 식당칸을 드나들기도 했다. 그 사이 기차는 부산역에 정차를 하고 우린 내렸다. 둘만의 여행과는 다르게 부산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 아침 부산역에 앞에 섰다.


  그로부터 또다시 수년이 흐른 후에 탄 기차는 강릉 출발은 없었고 정동진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모래시계에 나오는 고현정 나무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렸던 정동진 바닷가에서 기차에 올랐다. 예전과 다르게 기차에 오르기 전에 해야 할 것이 있었다. 이제는 밀차도 식당칸도 없다고 한다. 편의점에 들러 맥주 한 캔과 새우깡 또는 오징어를 까만 비닐봉지에 넣고 투덜대며 탔다. 물론 기차 안에서의 우리들의 수다는 계속되었다. 너무 깨끗하고 너무 반짝이며 은하철도999같이 공상 과학 동화에서나 나올법한 창이 있어 예전의 정취는 사라졌어도 어김없이 기차를 타는 선택을 하게 된다.


  나의 오랜 친구와 나는 아직도 때때로 기차를 타고 끝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곤 한다. 우리가 만나지 못한 동안 일어난 일들이나 예전에 있었던 지워지지 않는 일들을 끄집어내며 수다를 떨기에 이만한 장소는 어디에도 없다. 요사이 사람들은 만나서 밥 먹고 카페에 가서 수다를 떨지만 그런 행동이 보편화되어 있어 때로는 다른 방식을 선택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기차여행은 좋은 대안이 되곤 한다. 물론 이제는 편의점에서 먹을 것을 산 봉지를 들고 기차를 타야 하고, 코끝으로 스치는 바람의 향기를 맡을 수 없게 되었지만 말이다. 여행작가학교를 등록하고 다니기 시작한 지난 1년 동안 나는 정말 기차를 많이 탔다. 매주 서울 가는 열차를 타면 이미 여행자가 되어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지금의 기차는 밀차도 식당칸도 없는 깨끗하기만 한 운송 도구에 불과하지만, 나의 기억 속에 있는 기차의 풍경을 밀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내 마음의 기차는 늘 그렇게 추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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