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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친정 부모님의 발자취가 보인다

by 달콤햇살

비로소 친정 부모님의 발자취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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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쌓인 길을 걸어가다가 뒤를 돌아보면 늘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쌓인 눈을 밟을 땐 모르지만, 발을 떼고 나서야 비로소 그 발자취가 선명히 드러난다. 발자국이 어떻게 생겼는지 신발을 뒤집어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신발 하면 떠오르는 전체적인 부분은 살 때부터 알 수 있지만, 산악용이나 특수 신발처럼 바닥의 미끄럼방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면 바닥까지 신경 쓰지 않는다. 소복이 쌓인 반짝이는 눈 위에 먼저 발자국을 내는 건 참으로 설레는 일이다. 어린 시절, 그 눈 위에 남긴 내 발자국을 아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동안은 몰랐던 내 신발 바닥의 무늬가 예뻐 보여 한참을 바라보았다.



부모님이 내게 해주셨던 일들이 육아하며 새삼 다시 떠오른다. 그때도 몰랐던 건 아니다. 다만, 너무 당연하게 여겼다. 때마다 차려주는 따뜻한 밥과 반찬, 아침마다 깨워주시던 엄마의 목소리, 정성껏 준비해 주신 도시락과 간식들, 설거지와 빨래. 반복되던 일상이 얼마나 큰 정성과 사랑에서 비롯된 것인지 깨닫게 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느 것 하나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신발 바닥처럼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던 것 같다. 이제야 부모님이 남긴 그 흔적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웠는지 알게 되었다.



슈퍼우먼 같았던 친정엄마. 엄마는 일을 하면서도 육아를 완벽하게 해냈다. 요리까지 훌륭했으니 말이다. 엄마는 나처럼 힘든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던 것 같다.

매일 저녁 식사를 준비하면서 엄마는 “수저 좀 놔줄래?”라고 작은 부탁을 하셨다. 그땐 생각했다. ‘작은 일이면 그냥 엄마가 하면 되지, 왜 나한테 시키냐고.’ 그걸 불평했던 내가 너무 부끄럽다.

그 작은 부탁이 별것 아닌 줄 알았지만, 사실은 별거였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가정을 돌보고 요리를 하던 엄마의 모습이 너무 당연하게 느껴졌던 어린 시절. 주는 사랑을 받는 게 자연스러웠던 나는, 이제 엄마가 되어 비슷한 역할을 해보며 그 일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실감한다. 나는 참 이기적이었다.

얼마 전 친정엄마가 퇴근 시간에 맞춰 집에 들러 저녁을 차려놓고 가셨다. 오랜만에 엄마가 차려준 밥상을 마주하며 마음이 얼마나 따뜻해졌는지 모른다. 퇴근 후 엄마가 차려준 밥상 앞에 앉았을 때, 따뜻한 국물에서 어린 시절 엄마의 정성이 떠올랐다. 그 온기가 지친 하루를 녹여주었다. 지친 하루 끝에 맞이한 엄마의 밥상은 어린 시절 느꼈던 안락함 그대로였다. 엄마의 손길이 여전히 내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매 순간 깨닫는다. 저녁 시간에 대한 무거운 부담감이 덜어지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엄마의 식탁의 온기는 참 포근했다.



육아하며 느끼는 모든 순간은, 부모님이 남긴 발자국이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졌다가 다시 선명해지는 과정 같다. 아이를 위해 소풍 도시락을 싸며 문득 깨닫는다. “아, 부모님도 이렇게 바쁜 아침을 보냈겠구나.” 부모님의 흔적이 이제는 내 손끝에서 재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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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쌓이는 빨래 더미를 정리하며, 어린 시절 늘 깨끗하게 정돈되었던 내 옷들이 떠오른다. 얼마나 많은 손길에서 비롯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이제는 아이들의 옷을 널며 개며 부모님이 해주신 그 흔적이 나에게 남아있다.

잠든 아이들의 이불을 덮어주며 감기에 걸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린 시절 밤마다 내 이불을 덮어주던 부모님의 마음과 닮았다. 부모님도 이런 마음으로 나를 보살폈겠지. 사소한 것 하나하나 마음을 써주신 그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 엄마가 되어 조금 더 많이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학교 다닐 때 매일아침 깨워주던 부모님의 목소리가 이젠 그저 아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매일 아침 졸린 눈으로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깨우며 문득 부모님 생각이 난다. ‘이제는 내 목소리에서 그분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구나’ 매일 아침 전쟁 속에서도 따스한 추억이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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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첫걸음마를 잡아준 사람이 부모님이라는 사실은 기억조차 남아있지 않다. 그저 나 혼자 잘 컸다고 어린 시절 생각했다. 얼마나 무지한 생각이었나.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 부모님은 나를 기억한다. 내 아이의 첫걸음마를 잡아주며 손을 내밀 때, 부모님도 같은 마음으로 나를 바라봤을 거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내가 넘어질지 걱정하고, 한 걸음 한 걸음을 응원하던 그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잠든 밤, 지친 몸을 의자에 기대며 문득 친정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도 이런 수많은 밤을 얼마나 많이 견뎠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왔다.



살다보니 슬픈 일에는 누구나 공감하고 아파해줄 수 있지만 기쁜 일에 사실 더 같이 내 맘처럼 기뻐해 주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을 삶을 살아갈수록 느끼게 된다. 누구보다 나의 행복을 바라시고 기뻐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부모님이다. 내가 잘되는 것을 기뻐해 주는 사람, 부모님 밖에는 없었다.



이제는 내가 그 역할을 해나가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아직도 여전히 어린 애 같고 연약한 것 같아 두렵지만 그 흔적을 따라 한번 해보기로. 용기를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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