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아이의 사랑
퇴근 후 집에 들어서면 둘째 아이가 달려와 내게 안긴다. 대략 손바닥 정도 밖에 안 되는 작은 품.
아이가 나에게 안기는 것인데 오히려 반대로 내가 그 품에 안기는 듯한 기분이 든다. 작은 품이 너무 따뜻해서 하루의 무게가 스르르 녹아내리고 아이의 온기에서 하루의 피로가 씻겨 나가는 것을 느낀다.
작은 아이의 어깨가 하루를 견뎌낸 나에게 충분한 위로를 준다. 많은 말이나 특별한 행동이 필요하지 않다. 그저 그 작은 어깨를 끌어안기만 하면 된다. 마치 내가 하루에 필요했던 위로의 양이 딱 그만큼이었다고 느낄 만큼. 어떤 외적인 보상보다 강한 힘이 있다. 아이의 존재는 때로 말로 다할 수 없는 위로와 안식을 준다. 작지만 강한, 그 작은 품이 주는 힘을 매일 느끼며 감사한다.
첫째를 키울 때도 그랬지만 둘째를 키우는 지금도 육아는 너무 힘들다. 매일 전쟁 같고, 하루가 끝나면 온몸이 녹초가 된다. 시간이 지나 가끔은 아이의 더 어린 시절의 모습이 생각나고 그립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좀 더 좋은 엄마로 더 많이 안아주고 사랑해 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이 너무나 고되었지만, 시간이 흘러 정확히 구체적으로 잘 기억나지 않는다. 힘들었지만 정말 보물 같은 시간이었다고 기억한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이다. 시간이 지나 좋은 기억만 남기고 잊힌 것일까. 아니면 너무 힘들어서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것일까. 기억력의 한계에 감사해야 할까.
당시에는 절대로 그리워하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르니 그때가 그리워진다. 몽글몽글 부드러운 아이의 미소와 엄마 껌딱지였던 그때가. 그래서 또 둘째를 낳고 또 셋째를 낳는 건가보다.
기억에 대한 고찰.
기억은 휴지의 어떤 특성과 성질이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로 뇌 조직을 브레인 티슈(brain tissue)라고 부르는 것처럼 우리의 기억도 섬세하고 복잡한 구조를 가진 조직과 많이 닮았다. 휴지는 물에 닿으면 쉽게 녹아버린다. 기억도 시간이라는 물에 녹으면 희미해지듯 때로는 강렬했던 기억도 세월이 흐르면 그 윤곽을 잃어간다. 시간이 지나면 그 고된 기억이 물에 젖은 휴지처럼 희미해진다. 육아의 시간은 매일매일 쌓이지만, 마치 바람에 날리는 휴지 조각처럼 그 기억들은 쉽게 흩어진다. 잠들지 않으려 버티던 아이의 울음소리, 엎질러진 이유식에 한숨 쉬던 순간들, 그리고 가끔 찾아왔던 좌절감. 그 모든 순간이 분명 힘겨웠는데, 지금은 선명하지 않다.
아이의 몽글몽글한 냄새와 사랑스러운 미소, 그리고 엄마 곁에서만 안정을 찾던 그 껌딱지 같은 모습은 또 다른 기억의 조각으로 남아 있다. 이 조각들은 시간이 지나도 희미해지지 않고 가끔 다시 떠오른다. 그때는 너무 힘들어서 '나중에 시간을 되돌릴 수 있어도 절대로 육아하던 시절로 돌아가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지만, 지금은 그 시절이 그립다.
육아는 휴지 그 자체 같기도 하다. 마치 한 장씩 뽑아 써야 하는 소모품처럼 매일의 에너지가 조금씩 사라져 가지만, 그 과정에서 소중한 흔적들이 남는다. 아이가 처음 내 이름을 불렀던 순간, 처음 걸음을 뗀 날, 나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던 그 표정은 그 흔적 중에서도 가장 귀한 것이다.
휴지가 물에 젖어 흐릿해지는 것처럼 육아의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지만, 한편으로는 바람에 날리듯 흩어진 조각들이 또 다른 계기로 하나로 뭉쳐져 모일 때가 있다. 아이의 웃음소리, 함께 놀던 공원의 풍경, 혹은 아이가 썼던 작은 신발 같은 사소한 것들이 갑자기 그 시절의 기억을 소환한다.
육아는 소모적이고 힘들지만, 동시에 깊이 각인되고 영원히 그리워질 기억의 집합체다. 휴지처럼 연약하지만, 육아의 시간은 서로 연결되어 우리의 삶에 따뜻한 흔적을 남긴다. 시간이 흘러 흐릿해진 기억 속에서 그 시절 아이를 향한 사랑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