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치는 가족과 방에 남겨진 며느리
1년에 두세 번, 주로 명절 무렵이면
나는 친정에 내려가 언니네, 동생과 함께
근처 바다를 보거나 지역 축제를 구경하곤 했다.
아주 평범한 나들이였다.
특별할 것도, 자랑할 것도 없는 이야기였다.
그 후일담을 남편이 시댁에 전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시어머님의 얼굴에는
잠시 부러움이 스쳤다.
그때는 몰랐다.
그 부러움이 곧
나를 향한 불편한 기대가 될 줄은.
시어머님과 나는 평일에도 일주일에 두세 번씩 만났고
주말이면 어김없이 시댁에 들러 아기 얼굴을 보여드렸다.
반면 친정은
1년에 손에 꼽을 만큼밖에 가지 못했다.
그런데도 친정에 가는 주말이 되면
어김없이 전화가 왔다.
“왜 이번 주말엔 안 와?”
“어디 가길래 못 와?”
친정에 간다고 하면
어머님은 늘 같은 말을 하셨다.
“내가 너네 온다고 해서 기다리는데
나도 바쁜 사람이야.
너희 때문에 약속도 못 잡고
주말마다 집에 있는데…”
그리고는 꼭 덧붙이셨다.
“주말에 못 올 거면
어디 가는지 미리 나한테 말해줘야지.”
나는 남편이 말하기로 했다고 했고,
어머님은 잘라 말했다.
“남편 시키지 말고,
네가 직접 나한테 말해.”
그 순간 깨달았다.
이 집에서 ‘보고’의 책임은
며느리에게 있다는 것을.
어느 주말,
그날도 시댁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남편은 시댁 식구들에게
친정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꺼냈다.
가족들과 나들이를 갔던 이야기,
시아버지에게 회사 일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이야기.
그러다 자연스럽게
골프 이야기가 나왔다.
그 순간,
어머님의 얼굴이 환해졌다.
“나, 가족이랑 골프 치러 가는 게 소원이야.
우리 골프여행 가자!”
나는 무심코 물었다.
“골프 치러 가면…
아기는 어떡하죠?”
어머님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았다.
“너도 치게?
넌 애 봐야지.
금방 치고 올게.
넌 아가랑 룸에 있어.”
그 말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래서 더 잔인했다.
가족여행이라면서
나는 여행자가 아니었다.
함께 가되,
함께하지 않는 사람.
그저 손녀를 맡아줄 사람.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럼 저는 왜 같이 가나요?
룸에만 있을 거면
그냥 집에 있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어머님은 찔린 듯 웃으며 말했다.
“아유, 금방 끝나.
금방 치고 올게.
넌 아가랑 방에서 쉬고 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상상하지 않아도 됐다.
그 여행이 어떤 모습일지 너무 선명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골프를 치고,
누군가는 바람을 쐬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고 웃을 동안
나는 방 안에서 아기를 안은 채
‘아직인가’를 세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건 아직 가지 않은 여행이었지만
이미 다녀온 것처럼 지쳐버린 이유였다.
그들이 말한 가족여행에는
나의 휴식도, 나의 즐거움도, 나라는 사람 자체도 없었다.
오직
‘아기를 봐줄 며느리’만 필요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 여행은 시작도 하지 못했다.
가족여행이라는 이름 아래
며느리를 방 안에 남겨두는 순간,
그건 여행이 아니라
처음부터 골로 가는 일정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