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 이상 그 집 며느리가 아니다

이사를 마친 새벽, 전해진 부고

by 톡소다

드디어 내 집 마련으로 이사를 하던 날,


이 세상에 내 집이 생겼다는 사실이
그만큼 버텨온 나의 시간이
문득 대견해져
스스로를 한 번 꼭 안아주고 싶었다.


부모님 집에서
최소한의 짐으로 시작했던 나는
가진 것이 많지 않아 1톤 트럭을 불렀다.


침대, 책상, 책꽂이.
그게 전부였다.
다른 가전과 가구는 새로 들이기로 했다.


온 가족이 명절처럼 모여
짐을 함께 날랐다.
신기하게도
1톤 트럭에 딱 맞게 짐이 들어갔다.


미리 청소해 둔 집에
물건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을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설렘 때문인지
그날 밤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리고 새벽녘,
뒤척이다 눈을 뜬 다음 날
문자 한 통이 와 있었다.


전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전남편과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아이를 장례식장으로 데려다 달라는 말과 함께,
조심스럽게 이런 부탁이 덧붙여 있었다.


전 시아버님의 지인들이
우리의 이혼을 모르니
혹시 며느리 이름을 올려도 될지,
이름만 올리고 보이지 않으면
사람들이 의아해할 것 같다고.


장례를 준비하는 와중에도
체면부터 걱정하는 모습이
참 그 집안답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제 가족이 아니고,
그 자리에 ‘며느리’로 서는 건
내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내 입장을 이해해 달라고 했다.


아이만 장례식장에 보냈다.


몸이 유난히 무거웠다.
이사 때문인지,
낯선 집에서 잠을 설쳐서인지,
아니면
전 시아버님의 죽음이 마음에 남아서인지
알 수 없었다.


눈물이 났다.
하지만
그곳은 이미
내가 설 자리가 아닌 곳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며느리로 살며 겪었던 부당함을
글로 풀어내고 있었는데,
그 이야기 속 인물은
이미 세상에 없다고 하니
마음이 붕 뜬 것 같았다.


알고 보니
폐암 말기였다고 했다.
가족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죽음에 다다라서야,
손쓸 수 없는 순간이 되어서야
병원에 실려 가
알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참, 그분다운 선택이었다.


내가 전남편에게서
유일하게 부러워했던 단 하나,
존중할 수 있는 아버지를 가졌다는 사실.


이혼할 때
끝내 내 편에 서 주지는 않았지만,
삶 속에서 나를 대하던 태도만큼은
늘 정중했던 분이었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 긴 10년을
버텨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당신의 아들 편에 서서
나를 외면했지만,
그래도
그 시간만큼은
분명 나를 사람으로 대해 주었다.


부디 그곳에서는
아픔을 훌훌 털고
아무것도 참고 견디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편히 쉬시길.


나는 이제
내 집에서,
내 이름으로
다시 살아가려 한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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