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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젤리 Nov 13. 2023

2. 끝과 시작

외국인학교 교사로 살아남기


2년여간의 임용고시 준비생 신분이 끝맺음을 지었다.

임용의 벽은 넘지 못했지만 쓰라린 끝맺음과 동시에 나는 교사가 되었다.


대학교 졸업 전 경험삼아(?) 본 시험까지 합치면 총 3번의 임용고시를 치렀다. 부모님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치렀다'보다는 '시험장에 무사히 갔다가 돌아왔다'라는 표현이 더 맞다. 어쨌든 난 붙지 못했으니까. 내 교과목은 장수생이 많은 과목 중 하다. 물론 모두가 장수생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두려웠다, 내가 그 장수생이 될까봐.


장수생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늘 나를 힘들게 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멀쩡한 나의 수험생활을 끊임없이 한탄하게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무의미한 자기 연민에 가까웠던 것 같다.

고시원에 사는 것도 아니고, 알바를 해서 인강비를 내야하는 것도 아니고, 돈을 아끼기 위해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도 아니었다. 그 어떤 것도 해당되지 않으면서 나는 스스로가 이미 구렁텅이에 빠져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곳에서 코 나올 수 없을 거라고.


눈물이 마를 새가 없었다. 나는 선생님이 되고 싶은 것 뿐인데 선생님이 되는 길이 너무 외롭고 깜깜했다. 친구들, 동기들은 헤치고 나아가는데 나만 뒤쳐질 것 같았 름이 피부에 느껴질수록 가슴 속 구멍이 점점 더 커다랗 그을려지는듯했다. 시험이 끝나고 나면 겨울바람을 맞아서인지 메말라 튼 입술이 딱 붙어 도무지 떨어지지 않았다.


어쨌거나 나는 쓸데없이 현실이 버거웠던 것 같다.


극심한 자기연민은 말 그대로 고문이었다. 나와 우리 가족 모두를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다.

임용고시생으로 2년여간을 보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을 내려놓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했다. '불합격' 이라는 글자를 3번째로 마주한 다음날, 엄마는 나를 백화점에 데리고 갔다. 카페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엄마와 나는 서로를 위해 애써 거짓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참에 하고 싶었던 거 해봐. 배워보고 싶었던 것도 좋고. 엄마가 하게 해줄게."

"아니, 나도 뭔가 다른걸 해보는것도 좋을 것 같어. 그냥 뭐라도 해볼게. 6개월간은 뭐가 됐든 일을 해보고 싶어."

시험이 끝난 연말 어느 날, 엄마가 사준 사랑의 초코케이크

난생 처음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썼다. 당연하게도 쓸 내용이 없었다.

텅 비어버린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보니, 더 커질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마음 속 구멍이 온몸을 집어키는 듯했다. 그래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게 내가 가진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가진 게 없는 자는 아쉬운 게 없는 법이랬다. 나는 그 초라한 이력서를 조건만 맞으면 고민도 없이 무조건 제출했다.


바로 다음 날, 전화가 왔다. 급하게 선생님을 구하고 있으니 수업실연과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기에, 나는 그제서야 그 이름 모를 학교가 집에서 얼마나 걸리는지 찾아보았다. 한 시간 반이라는 이동시간이 나왔다. 낭패감을 뒤로 하고 우선 급한 불부터 끄기 위해 면접을 준비했다.

'거리가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안 될건데.'

이때까지도 나는 이 면접이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진 임용 불합격생에게 유익한 경험'이 될 거라 생각했었다.


그리고 면접 당일에 합격 소식을 받았다. 그 다음 주부터 출근하라는 말과 함께.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그럼 다음주에 뵐게요."


그렇게 나의 첫 학교가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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