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끝, 귓볼, 손끝까지 차디차게 얼어붙던 겨울 새벽 6시에 첫 출근길을 나섰다. 나에게는 나름 의미있는 날이었지만 우리 엄마에게는 그러지 못했다. 한겨울의 아침은 한밤중보다도 더 암담했으니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엄마는 내게 말했다.
"그날 엄마 울었어, 너 첫 출근하던 날. 그렇게 추운데 롱패딩 꽁꽁 싸매고 깜깜한 새벽에 나가는게 마음 아파서."
임용에 떨어진 딸이 안타까웠을테고, 앞으로 펼쳐질 날들이 험난한지 평탄한지 엄마로서는 알 길이 없어 안쓰러웠을 것이다.
첫 날, 첫 시간부터 수업에 들어갔다. 내가 아이들 앞에 꿈에 그리던 선생님으로 서 있다는 벅찬 기쁨을 느낄 새는 없었다. 내가 맡아 가르쳐야 하는 학년은 초중고 합쳐서 7개의 학년, 각 학년 당 1반씩, 일주일에 2번 또는 3번의 수업. 학기 중간에 갑작스럽게 합류했으니, 하루 빨리 학년별로 다른 수업을 준비해야 했다. -역시 쉬운 일은 없구나.
동교과 수업을 풀타임으로 하는 선생님은 나 포함 3명이었다. 나보다 10살, 15살정도가 많았고 그 학교에서의 경력 또한 꽤 오래되었다. 첫 날 아니 어쩌면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에도 그 선생님들은 나를 본체만체했다. 아침에 인사했을 때도, 점심시간에도,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도. 의지할 곳은 동교과 선생님들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전부 나의 착각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한 선생님이 점심을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면접과 수업시연에서 나를 평가했던 선생님이었다.
상냥한 말투와는어울리지 않는 묘한 눈길이 느껴졌다. 나는 그렇게 비공식 두번째 면접장으로 들어섰다.
부모님과 오빠의 직업, 내 어린시절, 졸업한 대학교, 집의 위치등 일종의 호구조사가 끝나고서야 본색을 알 수 있었다.
"근데 우리 학교는 어떻게 알고 온 거예요? 우리학교 이사장님하고 아는 사이예요?"
"예? 아니요? 전혀 모르는 분이에요. 이 학교도 지원하면서 처음 알게 된 거예요," 내 말이 해명처럼 울려퍼졌다.
뒷이야기는 이랬다. 내가 지원한 자리에 사람을 뽑으려고 공고를 올리고 2달,3달이 되어가도 적합한 지원자가 없었다고. 그런데 느닷없이 내가 나타났다고. (그러니 당연히 뭔가 수상한거 아니겠냐고-의 뜻으로 나는 받아들였다.)
내가 윗사람이 꽂은 사람이 아니라는걸 알게 되어 안심한 것인지, 빽도 뭣도 없는 그저 그런 애라는걸 알아서인지 아무튼 그 선생님들에게 나는 여전히 투명인간이었다.
매일매일이 눈물이었다.
내가 동경해왔던 교사의 삶이 아니었고, 상상해왔던 동료선생님들은 없었다.
내 딴에는 먼저 다가가기 위해 노력도 해봤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겠지 하고 실실 웃으며 말도 걸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귀걸이가 예쁘니, 옷이 화사하니 잘 어울려요 어쩌구하면서 주절댔다. 굳이 교실에 찾아가 인사도 해보았고, 제가 부족하니 많이 가르쳐주세요 많이 배울게요 하며 '나 좀 봐주세요' 애걸했었다. 돌아오는 것은 없었지만.
엄마가 우는 날 안아주며 말했다.
- 딸이 처음이라 그래. 원래 사회생활이라는게 그런거야. 다들 남한테는 관심없어,내가 제일 중요하지. 우리딸은온실 속 화초였던거야. 상처받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