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를 넘어 행복을 찾아.

글쓰기를 방해하는 것들

by 소피





방년(스물)

꽃다운 나이


어린 시절 바람의 소리를 감상하거나 흙길을 바쁘게 다니는 개미 때를 가만히 관찰하며 무수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로 뛰어들면서 사람들은 인생에 하등 쓸모없는 공상들은 그만두고 수학 공식 하나를 더 외우라고 했다. 그게 정답이라고 그래야 번듯한 한 어른으로 성장한다고 했다. 그들의 말대로 살기 시작하자 바람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작은 개미는 귀찮은 해충이 되었다. 좋아하는 일보다는 잘하는 일을 선택하라고 했다. 친구들과 경쟁하라고 했다. 나와 친구들에게는 1등급부터 9등급까지의 등급 도장이 찍히기 시작했다. 마치 곧 도살될 가축처럼. 감정을 배우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앞서 우리는 그렇게 사회가 만든 굴레대로 살아야만 했다. 그 굴레 속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실패자 소리를 들었고 실패자로 낙인찍히는 순간 집단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실패자, 실패한 인생을 살지 않기 위해 집단에 속하기 위해 짜 맞추어진 인생을 살며 어른이 되었고 그렇게 원하던 공부를 하고 돈도 벌었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그냥 이렇게 살아도 될까? 나는 늘 방황했다. 그렇게 나는 어린 시절을 어린이답게 보낼 기회와 좋아하는 것을 하며 행복하게 살 권리를 빼앗겨 버렸다.

결국 스물여덟 살이 되던 해에 하던 일을 그만뒀다. 드디어 굴레에서 벗어날 용기를 얻은 것이다. 서른이 되기 전에 내가 잘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을 찾고 싶었다. 시집이나 가야 할 나이에 백수로 살며 온갖 잡일을 하는 나를 사람들은 의아하기 바라봤다. 이 시기, 나는 진짜 나를 아껴주는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별할 수 있었다.





이립 (서른)

마음이 확고해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나이


폭력적인 사회와 마주했다. 돈과 스펙으로 인간의 계층을 나누는 것에서 더해져 이제는 동양인, 흑인, 백인, 라틴, 아랍. 인간을 종으로 분류한 세상 속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축구는 아프리카 돈 없는 사람들의 스포츠, 테니스는 부유한 백인들의 스포츠, 탁구는 동양인의 스포츠라고 이곳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아들이 축구를 시작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나를 이상하게 바라봤고 관두라며 한 마디씩 하는 사람도 종종 있었다. 처음으로 간 모임에서 다른 사람을 험담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험담하는 이유는 그들이 타지 생활로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것이 듣기 싫어서였다. 나는 그들로부터 마음을 숨겨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이 작은 사회에서는 입에서 입으로 소문을 만들고 부풀려 선량한 사람들에게 패자라는 편견의 도장을 찍고 있었다. 같은 인종, 같은 나라의 사람들 안에서도 계층은 존재했고 그것은 아무런 신빙성 없는 이유로 나눠지고 있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쏟아내는 폭력은 언제 어디서 올지 모르는 예측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늘 마음을 숨기고 웃는 얼굴의 가면을 쓰고 살았다. 그러자 점점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 봤지만,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마음의 병이 깊어지면 몸도 아프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좋아하는 것이 뭔지 찾아보고자 했던 열정도 잃어버릴 만큼 현실의 삶은 치열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살았다.





불혹 (마흔)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



세상 탓하는 걸 그만뒀다. 순응하며 살되 뿌리 깊은 나무처럼 나 자신을 잃지 말고, 단단히 바로 서 살아가자, 마음먹었다. 오랜만에 간 친정집에서 꿈을 꾸었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곱게 나를 안으며 ‘그동안 고생 많았지 이제 괜찮아’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영혼의 세계가 있다고 믿지는 않지만 그날 꿈에 나온 할머니 덕분에 그동안 미워했던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었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스물여덟, 하던 일을 그만두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다닐 때처럼 막연하게 시작한 일이었다.


어느 날 인가 즐거움으로 시작한 글 쓰기가 내게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저 나를 위한 기쁨, 세상과 소통의 창구 정도로만 생각해 왔는데 글을 쓰면 쓸수록 글이 내 인생에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며 하고 싶은 말도 나누고 싶은 것도 많이 져 갔다.

점점 내면의 나와 만나는 일이 잦아졌다.

나에게는 무덤이 있다. 그 구멍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나 자신도 되도록 잊어버리기를 바라며 수십 년의 세월 동안 그곳을 메우고 그 위에 흙을 덮고 꽃도 심어 두었다. 언젠간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잊기를 바라며. 글을 쓰는 것은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모험이라고 했다. 나는 그 무덤을 파헤쳐야 했고 그 속에 묻어 둔 시체들과 마주해야 했다. 그것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렇게 쓴 글을 공개하는 것은 발가벗은 내 몸을 타인의 앞에 전시하는 것과 같다. 글이 공개되고 타인의 차가운 도마 위에 올라가는 순간. 내 생각과 감정이 타인의 평가와 비판에 노출되어야만 한다. 내 글이 타인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 어떤 평가를 받을까?, 내가 글을 써도 괜찮은 사람일까? 인간이기에 하게 되는 고민으로 글 쓰기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때로 그런 두려움으로 글을 쓸 수가 없었고 심지어 책도 읽을 수 없었다. 좋은 글은 진실한 내면의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용기에서 나온다고 한다. 나는 그런 용기가 부족한가 보다. 나의 발가벗은 몸이 도마 위에 올라가는 순간 그 도마 위에서 도망가고 싶은 걸 보면.


이런 두려움을 이길 용기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건지 솔직히 아직은 모른다. 하지만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했을 때도 사회의 편견이 견디기 힘들었을 때도 아주 작은 용기라도 동력 삼아 묵묵히 앞을 보고 나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달음에 도달하는 날이 반듯이 있었다. 그렇기에 무수한 나의 질문에 대한답을 언젠간 찾을 거라는 걸 안다. 그 누가 정답이 아니라고 한데도 괜찮다.

내 인생의 정답은 내가 결정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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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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