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고 새롭게 찾은 나의 잠재력
엄마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아이를 낳아 돌보고 키우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열 달을 품고 열아홉 시간 진통 끝에 첫 아이가 태어났다. 그동안 초음파로만 그 형태를 가늠해 보던 아이의 실물이 내 배 위에 올려졌던 순간, 나와 전혀 다른 하나의 인격체가 그 묵직한 무게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아이가 내 아이인가? 진짜 내가 아이를 낳은 건가? 엄마가 된 건가?.’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고 조금은 얼떨떨하게 엄마가 되었다.
아이는 두 시간에 한번 젖을 먹여야 했다. 시간이 흐르며 세 시간, 네 시간으로 간격이 늘긴 했지만 잠의 질이 떨어지니 삶의 질 또한 현저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여름이면 비키니를 입고 뽐내던 탄력 있던 내 배는 늘어져 축 쳐져있고 며칠 씻지 못한 머리는 떡져 산발이 된 지 오래. 이 어린 스토커는 자나께나 이십사 시간 내 옆에 붙어 떨어질 생각을 안 했고 그 덕에 변비가 뭔지 몰랐던 나는 드디어 변비의 고통을 알게 되었다. 나 자신도 잘 돌보지 못하는 내가 한 명의 인간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고된 일이었고 때로 나를 힘들게 하는 아이가 미워지기도 했다. 하루만 아니 반나절 만이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아이가 잠든 시간, 남편에게 아이를 부탁하고 새벽까지 운영하는 헬스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나갔을까? 어떻게 알았는지 통잠을 자던 아이는 내가 운동을 간 날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밤새 엄마를 찾으며 동네가 떠나가라 울기 시작했다. 혼자만의 시간은 어림없는 소리구나.
나의 아름답고 탄력 있던 피부가 푸석푸석 해지는 만큼 아이는 점점 토실토실 살이 올라 반짝거렸다. 참 이상한 일이다. 정신적, 육체적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육아전쟁을 견뎌내며 자신을 전혀 돌보지 못한 나는 만성피로의 못난이 아줌마가 되었지만 모순적이게도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을 맞보았다. ‘행복‘ 이 단어 속에 내 감정을 담아내기에도 모자랄 만큼의 감정이 내 속에서 흘러넘쳤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감정이었다.
“사랑의 힘이 이니였다면 이런 힘든 일은 진작 포기해 버렸을 거야. 이게 진짜 사랑이라는 거구나.”
아이는 곧 걸음마를 시작했고 점점 자기 고집이 생겼다. 유모차를 타지 않고 걷겠다 떼를 쎃고 그 때문에 집까지 십 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한 시간이 걸려 도착했다. 속이 터지는 일이다. 빨리 시원한 소파에 앉아 얼음을 넣은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시며 쉬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아이와의 사소한 언쟁에 내 마음은 하루에 수십 번의 파도가 밀려왔다 나가기를 반복했다.
느리게 걷는 아이 옆에 함께 걸어 보자 마음먹었다. 성격 급한 나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어느 순간 마음이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이가 보는 것이 내게도 보이기 시작했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작은 돌멩이들, 날아가는 나비, 입김에 흩날리는 민들레 홀씨들. 빠르게 흘러가던 내 시간이 느리게 흐르며 그동안 보이지 않던 사소하지만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쩌면 어릴 때 내가 보았을 광경이 이런 것이었을까? 여유롭고 느리게 흐르는 시간은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시간이 흘러 아이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 한 단어를 시작으로 두 단어 세 단어 문장으로 된 말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이제 몸으로도 말로도 감정을 표현한다.
뚱뚱하고 못생긴 나를 보며 아이가 말한다.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
씻지 못한 내 품에 안겨 냄새를 맡고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 냄새는 너무 좋아.”
나는 아이에게 이런 질문을 해 보았다. “엄마는 너에게 어떤 사람이야? ”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사람이야. 나는 엄마를 너무 사랑해.”
내 두 눈과 마주한 아이 눈 속에서 진심을 옅보았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 맹목적인 믿음과 사랑을 받아본 적이 있던가? 아무런 편견 없이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저 예쁘게 바라봐 주는 사람이 있던가?
내가 사랑하는 이가 나를 사랑해 준다. 드라마 속에서처럼 슬픈 짝사랑의 스토리는 다행스럽게도 우리 사이엔 없는 이야기이다. 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지. 그에게서 받는 넘치는 사랑이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돼라 한다. 나 자신을 더 소중히 사랑해 주라고 한다. 이제 나는 나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육아 전쟁 속, 힘든 순간을 아이와 함께 극복해 나아 가며 잠을 자지 않고 여러 가지 일을 해내는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가 되었다. 아직 때때로 버럭 화를 내기도 하지만 감정조절 능력과 인내심은 더욱 깊어졌으며 아이들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배웠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몰랐을 수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아이가 성장하는 만큼 나도 같이 성장한 것이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그래 미안해.”
아직도 나는 이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때로 육아의 쓴맛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만큼 나는 엄마로서도 한 인간으로 써도 미흡한 실수투성이 삶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기를 멈출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멈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잡을 수 없는 시간은 흐를 테고 아이들은 어른이 될 것이다. 나는 노인이 되고 곧 인생에 여정도 끝이 나겠지. 완벽하고 멋진 삶을 살지 못했다는 후회보다 엄마로서 더 많은 사랑을 주지 못했다는 후회가 뼈저릴 거 같아 서툴지만 내 인생에 제2막을 최대한 느리게 즐기면서 보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