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용 끌고, 비행기 타고, 기차 타고 가는 길
모든 여행 계획을 마무리하고도 두 달이 꼬박 지나서야 출발할 날이 다가왔다.
한창 학업에 몰두해야 할 시기인 3학년 (흔히들 '사망년'이라고 한다) 1학기가 종강하자마자 떠나는 셈이라, 출국하는 날 새벽까지 밤을 새워 짐을 싸야 했다. 출발 직전까지 팀 프로젝트와 기말고사를 준비해야 해서 피로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여행을 더 즐겁게 만들어 줄 약간의 난관으로 치부해 버리기로 했다.
그동안 수도 없이 왕래했지만 갈 때마다 설레는 인천공항...
생각해 보니 나 혼자 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게다가 이른 아침에 출발하는 비행기여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없었다.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직접 운전해서 가보기로 했다. 콜밴 안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 가족과, 공항 리무진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 가던 친구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이번에는 그런 분위기가 나지 않아서 외롭기도 하더라. 하지만 혼자일 때만 느낄 수 있는 감성이 있지.
창문을 내리고 새벽 공기를 마시며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니 금세 기분이 상쾌해졌다. 한참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니 먼발치에서 동이 트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기분 좋게 내리쬐는 아침 햇살을 맞으며 인천대교를 달리는 기분이란!
우연찮게 어렸을 적부터 꿈꿔오던 로망을 실현하게 되었다.
처음 타 본 폴란드 항공은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다. 당시 우리나라는 마스크 착용이 의무였는데, 외항사라서 그런지 승무원들과 승객들이 마스크를 벗고 있었다. 이윽고 나도 어색하게 마스크를 벗었고, 곧바로 알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더랬지.
경유지였던 바르샤바와 뮌헨에서 각각 알찬 세 시간과 스물네 시간을 보낸 후, 늦은 저녁 바이로이트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한국이었으면 깜깜한 밤이어야 할 시간이지만, 창 밖은 아직도 훤했고 뻥 틔인 들판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이국적인 풍경에 취한 듯 한참을 바라보다 자정이 넘어서야 바이로이트 중앙역(Bayreuth Hbf)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걸어 다니는 사람은 찾아볼 수도 없고 가로등도 많지 않아 으슥했던 호텔 가는 길, 문득 올려다본 하늘엔 쏟아질 것만 같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컴컴한 복도 한가운데 카운터 대신 놓인 기계에서 열쇠를 받아 허름한 호텔에 체크인하고, 몸을 겨우 뉘일 정도 크기 침대만이 덩그러니 놓인 방에서 조용히 잠을 청한다.
바로 다음 날 아침부터 이곳에서 펼쳐질 일들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