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물가고 있는 중입니다만
결심했다.
"10년 안에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리라."
누가 보기에는 그닥 대단치 않은 일이겠으나 중년의 사내로서는 엄청 엄청 어려운 마음먹음이다.
지난 9월 15일부터 달렸으니, 러닝을 시작하고 어느새 두 달이 지났다.
일주일에 6일을 달렸고 한번 달리면 최소 5킬로미터 이상을 달렸다.
주말에는 거리를 늘려 6킬로, 7킬로를 달렸고, 컨디션이 좋은 날이면 10킬로까지 달렸다.
두 달 동안 얼추 300킬로미터 가까이 달린 것 같다.
이젠 감히 달리기 중독이라 말할 수 있겠다.
자주 찾아오는 뛰기 전의 귀차니즘도 사라졌다.
끼니때가 되면 배가 고프듯이 달리고 하루가 지나면 다시 두 다리를 힘차게 놀리고 싶어진 내가 신기하다.
언젠가부터 모든 걸 내려놓은 사람처럼 느릿느릿 허청허청 걷던 나였는데...
더디지만 러닝 덕분에 살도 빠지고 있다.
달리면 뇌에 피와 산소가 원활히 공급되어 뇌의 노폐물도 배출되고 머리가 맑아진다고 한다.
하루하루 건강해지는 것이다.
저속 노화의 세상에 새로이 편입된 거다.
비록 속도는 달팽이처럼 느리지만 지금의 내가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
그 힘든 달리기를 하고부터 내 삶은 타인에 대해 관대해졌고 내면은 평온해졌다.
아주 이상한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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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안에 마라톤을 완주하겠다고 글머리에서 말했다.
함께 일하는 알바생은 5년 안에는 가능하겠다고 응원한다.
아들은 지금 페이스라면 2년 안에 완주할 수 있겠다고 알바생보다는 후한 격려를 해준다.
10년이라는 세월이 얼마나 짧고 빠른지 아는 나이가 되고 보니 2년도 5년도 너무 급한 목표임에 덜컥 겁이 난다.
10년도 다르지 않다.
언젠가 마라톤 완주에 성공을 한다는 것은 그동안 꾸준히 달렸다는 이야기가 되리라.
꾸준함이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아주 멋진 미덕 중의 하나이기에 생각만 해도 설레고 기분이 좋다.
꾸준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 몸을 아끼고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관리를 잘하고 식탐을 없애어 과식하지 말고 술도 줄이면 좋을 것이다.
먼저 5킬로 대회를 나가고, 다음에는 10킬로, 그다음에는 하프 마라톤에 도전하겠다.
러닝 동호회에 들면 더욱 좋겠지.
사람들과 어울리는 건 귀찮은 일이지만 러닝의 효율은 높아질 테니까.
또 무엇이 있을까?
아, 근력운동도 병행해야 한다.
근력이 있어 혼자 해낼 수 있는 일이 많을수록 축복받은 여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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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 관련 책과 기사를 보면 달릴 때 무념무상으로 달리는 것을 은연중에 과시하려는 사람들이 제법 많은 것 같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 따위 듣지 않는다'는 표현을 쓰더라.
그러나 사람은 만인만색의 개성이 있다.
러닝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면 뭘 하며 달리든 무슨 상관이랴.
다만 스피커를 틀어 놓고 달리지만 않으면 될 일이다.
주변에 민폐를 끼치지 않으면 될 일이다.
나는 그날 컨디션에 따라 방법을 달리 한다.
머릿속이 어지러운 날이면 아무것도 듣지 않고 떠오르는 모든 생각들을 버무리며 달린다.
신나는 음악을 듣고 싶은 날이면 케이던스(1분당 발걸음 수)가 조금 높은 흥겨운 노래를 들으며 달린다.
조용히 책 한 권을 듣고 싶은 날이면 소설이나 에세이를 이북으로 들으며 달린다.
어떤 방식이든 나의 달리기를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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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티브이 방송을 보니 연예인들이 시드니 마라톤에 나선 광경이 보이더라.
이제는 달리기가 유행을 타는 세상인가 보다.
10년 후에 저 방송이 어찌 되어 있을지 궁금하다.
그저 아무튼 달리기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