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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아무튼 달리기(4)

한물가고 있는 중입니다만

by 판도


지난 일요일 아침...


바람이 차다.


해 뜨는 시각에 맞추어 일어났건만 세상은 여전히 밤의 빛에 침잠해 있다.


아파트 현관 앞에서 다리를 풀고 러닝앱을 켠다.


오늘은 8킬로를 달릴 것이다.


가볍게 뛰기 시작하며 유튜브에서 OneRepublic의 Counting Stars를 찾는다.


어느새 경쾌한 음악의 박자에 맞추어진 발걸음이 가볍다.


당장 풀코스 마라톤도 완주할 기세다.


물론 한물간 몸이 따라갈 수 없는, 음악에 취한 뇌의 망상이요 조작이다.


아파트 주차장을 가로지르면 곧 황톳길이 나타난다.


황톳길을 따라 이어진 산책로를 달리다가 경사로를 내려가면 오늘 러닝의 시작점인 둘레길이다.


둘레길은 남한산성에서 발원한 산곡천을 따라 이어지고 산곡천 너머로는 검단산이다.


산곡천을 오른쪽에 두고 1킬로 정도 달리면 곧 한강이다.


산곡천과 한강이 만나는 이곳을 기점으로 오른쪽으로는 팔당대교를 지나 팔당댐에 이르는 4.9킬로 코스의 위례사랑길이다.


위례사랑길은 러닝에 적합하지 않기에 왼쪽으로 틀어 위례강변길에 들어선다.


미사 방면으로 이어진 위례강변길은 20킬로에 이르는 제법 긴 코스이다.


메타세쿼이아길에 접어든다.


숲 왼쪽으로는 스타필드 하남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오른쪽으로는 한강이 이어진다.


메타세쿼이아숲을 벗어나면 2킬로 정도의 잘 갖추어진 러닝 트랙.


이 길을 따라 반환점을 찍고 돌아오면 8킬로 러닝이 완성된다.


물론 나는 잘 달리지 못한다.


걷듯이 달리는 러닝이지만 두 시간 가까이를 쉬지 않고 8킬로를 달려 냈기에 힘들지만 행복하다.


이럴 때 느끼는 쾌감이 진짜 쾌감이 아닐까.


*


언제부턴가 계절의 경계가 무너진 지 오래.


봄 속에 여름이 있고 가을이 왔건만 겨울이 숨어 있다.


아침에 영하의 기온에 몸을 떨었지만, 한낮에는 완연한 가을도 심심찮게 만나는 요즘이다.


입동 지난 지가 한참이고 소설이 어제였으니 절기상으로는 겨울이랄 수밖에 없는 계절에 서 있는데 말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고 나면 아침 8시가 넘고 나는 다시 오늘의 러닝을 완성할 것이다.


토요일인 어제는 7킬로를 달리고 죽는 줄 알았다.


러닝을 시작하고 두 달이 넘었건만 여전히 매일매일이 처음 달리는 것만 같다.


오늘은 얼마나 달릴까?


*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요즘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제주도에서 질리도록 살아보고 싶다.


바다를 바라보며 한라산을 바라보며 질리도록 달리고 싶다.


만약,


질리는 일이 없다면,


나는 이 대도시를 떠나


그곳에서 오래도록 살며


아무튼 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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