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놀이

by 박사월

우리 이야기는 그날 밤에서 시작된다. 밤하늘을 수놓았던 불꽃놀이, 바로 그날의 이야기다.


대학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성적이 나오던 날.

너와 학점으로 내기를 했다.

성적 낮은 사람이 술을 사기로.

그런데 내가 져버렸고, 우리는 치맥을 하러 갔다.

너보다 성적을 못 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행히 둘 다 원하던 점수가 나왔다. 그래서 난 즐거운 마음으로 너와 함께 치맥을 즐겼다.


난 주량이 센 편이었다. 소주 세 병 정도는 거뜬했으니까. 그런데 유독 그날은 피곤했는지 금세 취기가 올랐고, 어지럽기까지 했다.


내가 취해서 기숙사로 데려다주겠다고 했는지, 네가 학교에 볼일이 있어서였는지 우리는 함께 학교로 갔다. 다행히 학교로 가면서 찬 바람을 맞으니 술기운은 금방 가셨다. 그날의 그 밤바람은 바다향의 냄새가 날 정도로 시원했다. 하늘에서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저마다의 빛을 뽐내며 타오르고 있었다.


불꽃놀이를 보며 학교 쪽으로 걷다 보니 어느새 거의 다 도착했을 때, 네가 갑자기 진지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얼떨결에 ‘응?’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너는 다시 또 내 이름을 불렀다. 그래서 나는 또 "응"이라고 했다.


그런데 너는 그 뒤로 몇 번을 더 내 이름을 불렀다. 그래서 계속 대답을 했지만, 넌 계속 뒷말은 안 하고 내 이름만 불렀다.


'쟤 왜 저래? 술 취해서 저러나?'라고 생각하면서 난 너의 부름에 아무 대답하지 않았다. 슬슬 답답해서 짜증이 나던 차에 네가 말했다.


"좋아해."


내 이름만 연거푸 부르던 네가, 갑자기 날 좋아한단다. 난 뇌정지가 왔다.


"아, 좋아하는구나."


좋아하는 거, 나도 참 많지. 난 술도 좋아하고, 밤하늘도 좋아하고, 친구도 좋아하지. 근데 네가 좋아한다는 그 말의 의미가, 왠지 내가 아는 그 의미는 아닌 것 같았다.


그 뒤로 우리는 운동장을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네가 날 어떤 의미로 좋아한다는 건지, 그래서 넌 뭐 어떻게 하고 싶은지, 우리는 같은 과 같은 학번의 동기인데 내가 고백을 거절하면 어떻게 할 건지.


너의 대답은 정말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내가 무슨 정신으로 너랑 그런 말들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취해서가 아니었다. 난 정말 그냥 뇌정지와 멘붕 상태였다. 우리가 친하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게 연애 감정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나한테 넌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이렇게 상식이 통하는 남자 사람은 내 인생에 처음이었다. 그리고 나도 네가 좋았다. 그런데 네게 고백을 들으니 헷갈리기 시작했다. 내가 널 좋아하는 게 친구로서 좋은 건지, 이성으로서 좋은 건지.


분명, 내가 느끼기에도 다른 남자동기들보다 네가 조금 더 편하고 좋기는 했다. 하지만 이 정도 호감으로 연애를 시작해도 되는 건가? 그리고 만약 연애를 시작했는데, 우리가 헤어진다면 친구로도 못 지내게 되는데? 그렇다고 고백을 거절한다면 당장 내일부터 얘 얼굴을 어떻게 보지?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시간을 더 준다고, 이 뫼비우스 같은 고민이 끝날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 동기인데, 만약에 헤어지면 어떻게 해?"

난 고민을 혼자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내가 군대 갈게!"

그 말을 녹음까지 해놓으니 좀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용기가 생겼다. '인생 뭐 있어? 동기라도 그냥 뭐 사귀면 되지! 얘가 잘해준다잖아! 음 그렇게 이상한 애도 아닌데, 뭐.'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이 애는 내가 바라던 남성상에 가깝기도 했다. 예를 들면 니체를 좋아한다거나, 키가 나보다 10cm는 클 것. 웃는 게 예쁠 것. 이 조건들에 모두 충족하는 남자 사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좋아한다고 말할 때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럼 사귀자, 우리." 난 슬쩍 팔짱을 꼈고, 그렇게 그날부터 우리는 연애를 시작했다.


그 여름, 시원한 밤하늘에는 불꽃이 어느 때보다 환하게 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꽃 아래,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반짝이고 시원한, 아름다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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