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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붕어 Oct 24. 2024

고를 수 있다는 것

나의 모든 선택들


"다른 친구들은 영어 학원 다닌다는데, 너도 다녀보고 싶니?"

"나는 다니기 싫어. 집에 있는 게 좋아."

"그래 그럼."


"엄마, 나 그림 배워보고 싶어."

"그래 배워봐. 어느 학원이 좋을 것 같아?"


"나 그림 그만둘까 봐. 이건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그래. 그러면 얼른 학원에서 짐 싸서 나와. 데리러 갈게."


나는 내가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것이 익숙하다.

어릴 땐 그게 당연한 것이 아님을 몰랐다. 

엄마, 아빠는 내가 원치 않는 어떤 것을 강제로 하게 한 적이 없다.

내가 무엇인가를 선택하면 내가 스스로 그걸 그만할 때까지 그저 곁에서 바라봤다.


나의 수많은 선택들 중에서 가장 무거웠던 선택은 대학교에 대한 선택일 것이다.


나는 중학생 때 교대에 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교대에 가고 싶다는 말 한마디에 가족 모두 서울교대 캠퍼스를 구경하러 갔다. 

"여기 다니게 되면 좋겠네. 왠지 너랑 잘 어울린다." 

엄마 아빠는 늘 그랬듯이 그렇게 말했다. 


고등학교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그렇게 바라던 서울교대에 합격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서울대학교에도 합격하게 되어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었다.


"네가 다닐 거니까 잘 비교해 보고 선택해. 후회하지 않게."

돌이켜보니 고민하는 동안 '내 선택 때문에 누군가가 실망하면 어쩌나'와 같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어려웠지만 선택은 생각보다 빨리 했다.


"나 결정했어. 교대 갈래. 안 그러면 초등학교 교실에 있는 내 모습을 자꾸 상상하게 될 것 같아."

"그래 그럼. 잘 선택했어."


그렇게 난 초등교사가 되었다. 

선택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은 어쩔 수 없지만 나에게 어울리는 선택이었다.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평행세계를 가끔 떠올리긴 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은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의 선택(Coice)이라고 했다.  

정답이 없기에 선택은 늘 어렵고 불안하다.

그러나 인간은 선택을 통해 삶을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그는 이것을 '앙가주망(engagement)'이라고 불렀다.


어릴 적부터 선택에 익숙했던 나는 그만큼 선택이 주는 무게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의 기쁨.

좋은 선택이란 나에게 어울리는 선택이라는 것.

신중해야 한다는 것과 신중하기 위해서는 나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것.

가끔은 선택을 후회할 수도 있지만 괜찮다는 것. (왜냐하면 그때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선택에 대한 결과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

선택에 익숙하다는 건 이런 것들을 잘 안다는 거다.


엄마, 아빠는 지금도 다름이 없다.

남자친구를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빠가 말했다.

"네가 선택한 사람인데, 당연히 좋은 애겠지."

예전처럼 여전히 엄마 아빠는 나를 지켜볼 뿐이다.


내 선택은 늘 존중받았고 지금도 그렇다.

난 지금까지의 수많은 선택들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난 일상에서 크고 작은 선택의 상황을 마주한다.

난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게 좋다.

그리고 선택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배스킨라빈스에서 아이스크림을 고르며

어쩌면 나를 이루고 있을 모든 선택들에 대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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