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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작가 Sep 05. 2024

그늘 없는 태양아래

벨로라도 가는 길


카스티야 이 레온으로 들어옴(새로운 지역으로 들어옴)
Grañon과 Redecilla에서 라 La Rioja를 떠나, 스페인 프랑스 길 절반이 있는 Castilla y Leon으로 들어왔다.


전날 우리는 새벽 6시 30분에 로비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이틀 동안 잠을 못 잤던 나는 1인실 숙소의 고요함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스티브는 부지런하게 일어나 이미 로비에 나와있었고, 성당 근처 카페에서 아침 식사까지 마친 상태였다.


10월 1일 아침 7시 넘어 문자 내용


출발 도시 Santo Domingo de la Calzada

도착 예정 도시: Belorado

거리: 22.2KM



2023년 10월 1일 아침 7시


아득히 울리는 아침 알람소리를 듣고 나는 겨우 7시에 눈을 떴다.


어제도 이야기 한 부분이지만 걷는 템포를 굳이 어느 누군가에게 맞출 필요는 없다.

그저 우리는 같은 템포에 우연히 마주친 다면 함께 걸을 뿐이다.


나는 7시 30분이 넘어 1층 프런트로 내려왔다.


나와 스티브는 전화 통화로 어디 도시까지 갈 것인지만 공유하고, 중간에 걷다가 또 볼 수 있으면 보기로 인사를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아침을 먹고 걷는 것과, 빈속에 걷기 시작했을 때 큰 차이를 느꼈기 때문에 꼭 카페를 찾아 아침끼니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스티브와 나는 함께 걸을 때 역시 먼저 걷다 멈추기를 반복했었어서 서로에게 익숙해진 것뿐이었다.  빨리 걷는 사람은 빨리 걷는 사람 대로 느리게 걷는 사람과 템포를 맞추다 보면 더 에너지 소모를 해야 하고, 느리게 걷는 사람 역시 기다리는 사람과 맞춰 걷다간 쉴 여력이 없어 몸에 무리가 올 수 있다.


나는 체크아웃을 하기 위해 프런트로 내려오니 마리앤이 아침 식사를 기다리며 식당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프랑스식 아침 인사를 나눴다.


Bon soir. Ça va?(Bissou)


마리앤과 비쥬를 자연스럽게 한 후 젊은 흑인 수녀님에게 키를 반납했다.

수녀님은 그나마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셨고,

나는 나의 자랑스러운 나무지팡이를 챙겨서 대성당 쪽으로 향했다.



누군가 아침길을 함께 걷는 안정감이 있지만, 푹 자고 숙소 밖으로 나오니 한결 몸이 가볍게 충전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덧 익숙해진 순례길 생활에 내가 언제 두려움과 길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며 밤잠을 설쳤던 사람인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이미 나는 멀리 걸어 나갔다.



산토 도밍고 대성당 옆 공립 알베르게에서 일개미들이 아침 일을 나가듯이 작은 문 사이로 순례자들이 빠져나온다.


아침 카페

아침을 깨우는 바리스타의 커피냄새와 후덕한 뱃살만큼이나 익숙한 동네 아저씨들이 신문을 보며 카페 바의 높은 의자에 앉아 신문을 읽으며 카페 콘레체를 마신다. 이곳 스페인 시골마을에서 한국의 국밥집만큼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아침풍경- 스페인 청소차


아침 풍경

늦게 일어난 만큼 빠르게 아침을 먹고 카페를 빠져나오는 골목에 도시를 청소하는 귀여운 청소차가 지나간다. 구시가지의 좁은 골목을 다마스처럼 경량의 귀여운 봉고차모양 트럭에 덩치가 큰 스페인 사람들에 비해 아주 작고 경량으로 디자인된 청소차는 실용적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청소차를 구경하며 산토도밍고를 빠져나왔다. 저런 청소차는 팜플로나 이후 보지 못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팜플로나가 아련하게 떠올랐다.


팜플로나의 아침길은 축제 이후 술병이 나뒹굴고 있었고, 술에 취한 현지인이 말을 거는 바람에 우리는 한껏 움츠린 채 빠르게 도시를 빠져나왔었으니까.


이제는 아주 익숙하고 여유롭게 주변을 살펴보고 마음으로 담을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안녕! 산토도밍고

매일이 새로움이고 매일이 헤어짐의 반복이다.

산토도밍고에서 그라뇽까지는 6.7km를 걸어야 한다.

걷기를 시작하자마자 해가 뜨기 시작했기 때문에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하지만 충전된 몸과 마음이 더 멀리 걸을 수 있을 것 만 같다.


도시를 빠져나가 광활하게 펼쳐진 시골풍경을 보며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다양한 풍경들이 눈을 지치지 않게 해 주었다.


1시간 남짓을 그라뇽을 걸어 성당들이 나타나고 곧장 마을 입구로 들어서니 오밀조밀 카페와 건물들이 밀집된 마을 풍경의 그라뇽은 분위기가 크지 않고 정겨웠다.



Barbackana Grañón

청록색 커피차가 있는 이 카페에는 안나도 있고, 이안아저씨 페트리샤도 있었다. 스티브는 마침 브런치를 마치고 일어나려는 찰나였다. 우리는 인사를 마치고 스티브는 쿨하게 길을 떠났다.


나는 마을을 지날 때마다 카페가 보이면 화장실과 휴식을 챙기기 자주 길을 멈춰서 카페에 들렀다.

안나가 있는 테이블에 가방을 두고는 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시원한 오렌지 주스를 시키고 자리로 돌아오니 오랜만에 조셉 아저씨가 계셨다.


조셉아저씨와 자주 얼굴을 익히며 우리는 점점 친하게 지내게 된 것 같다. 유일하게 친한 한국인이기도 했고, 서로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매너가 좋은 분이었다.


우리는 잠깐의 티타임을 가진 후 다시 각자의 길을 떠났다.


길을 걷는 내내 펼쳐진 광활하게 펼쳐진 해바라기 밭이 내 등뒤와 앞으로 펼쳐졌다.

썬카드의 그림처럼 나는 옷과 가방 모자로 그늘을 만들어 걸었지만 그곳에 그늘은 존재하지 않았다.


등지어 있던 해바라기들 조차 노란 꽃잎이 떨어지고 씨앗만 남아 우뚝 서 있다.


길을 걷는 내내 내가 피하고 싶었던 두려움 불안 우울과 같은 질문들조차 내 마음속까지 비친 뜨거운 태양이 모두 태워버리고 직면하라고 나를 태양 앞에 내세웠다.


나는 이제 도망갈 곳이 없다.

산티아고 길 앞에서 질문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리고 나는 준비가 돼있다고 느낄 수 있었다.



질문들

길을 걸으며 나타나는 산티아고 화살표 표식과

질문들이 나를 답할 수밖에 없게 뜨거운 태양을 쏘아붙이며 몰아세웠다.


질문 1:

대부분의 시간 답을 얻지 못한 이유는 제대로 된 질문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생각: 내가 헤매고 힘들었던 답이 무엇일까?

원망하고 불안에 휩싸이고 두려움에 어쩔 줄 몰라한 과거를 회상해 보았다.





질문 2

스스로 뛰어넘을 시간


생각

무엇을 뛰어넘어야 하는가?

내 안에 스스로 가두고 있는 벽은 무엇일까?

인간관계, 죽음, 성장, 앞으로의 미래


뜨거운 햇볕 아래 나는 온몸으로 질문에 직면하며 한발 한 발을 내딛을 만큼 익어가고 있었다.

마치 나를 뜨겁게 달군 땅과 해가 영혼의 한계까지 몰아세우는 듯 느껴졌다.



그늘


나는 나의 지팡이에다가 윈드점퍼를 끼워 넣고 머리에 얹어서 그늘을 만들었다.

신기하게도 조금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허수아비가 길을 떠나듯이 아마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순례자들에게 희한한 앞사람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달궈진 머리가 빨리 숙소에 들어가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길을 가는 도중 벨로라도에 있는 숙소 광고판을 보게 되었다. 수영장이 딸린 숙소였다.

나는 이 광고판을 보고 사진 속 수영장에 뛰어드는 상상을 했다.



일단 벨로라도에 도착해서 이 숙소가 마을과 얼마나 떨어져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조건이 맞는 다면 이곳에 머무르게 될 것 같다. (수영장이 있는 게 포인트!)


더위에 지쳐 잠시 길가에 앉아 쉬고 있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얼굴의 순례자가 나타났다.


나의 폴란드 친구 시몬

그에 대한 이미지는 과묵하고 깔끔한 긴 단발에 큰 키의 이미지였으나 이제는 제법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이

제법 순례자 같아 보였다. 우리 모두 새 신발이던 신발과 옷 가방은 모래 바람과 먼지를 하루종일 뒤집어쓰고 걸어서 하얗게 바래 있었다.


우리는 발을 맞춰서 잠시 함께 걷다가 벨로라도가 가까워 오자 시몬은 인사를 하고 너무 더워서 먼저 가겠다고 했다. 나는 말할 기운이 없어 그냥 손짓으로 그를 보냈다.


굽이 굽이 오르막과 내리막길을 지나 땡볕아래 걷다 보니 벨로라도가 드디어 나타났다.



벨로라도는 산속에 폭 쌓인 듯 아주 아기자기한 마을이었다. 마을 입구 초입에 그 수영장이 있는 알베르게가 보였지만 너무 외곽이라 일단 마을 성당 쪽으로 내려가 숙소를 더 찾아보기로 했다.


입구에 있던 무니시팔(공립 알베르게)은 이미 만석이다. 더 마을로 내려가 숙소를 찾아보기로 했다.



성당 쪽 종소리가 나는 곳으로 걸어 나가보니 성당 앞에서 결혼식을 하고 있어서 한참을 서서 구경을 했다.


아름다운 기타 선율과 성당의 축하를 알리는 마을의 종소리, 때마침 날아가는 새들까지 뜨거운 햇볕아래 그들에게 축복을 선사하는 듯 느껴졌다.


이 풍경을 보고 있자니 피로가 누구러지는 듯했으나 숙소를 찾아다니는 순례자 무리들을 발견하고는 나도 그 틈을 따라 숙소를 알아봐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산토도밍고 때처럼 관광안내소에 가서 숙소를 추천받아야겠다 생각했다.

내리막길에서 만난 지인도 역시나 숙소가 없다며 어느새 그 무리는 7~8명이 뭉쳐서 숙소를 찾아 움직이고 있었고 나는 갑자기 스티브가 떠올랐다.


스티브에게 어디에 묵고 있는지 물으니 아까 그 광고판이 보이는 숙소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나는 예약을 부탁하고는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산토도밍고에서 인사를 나눴고 길마다 마주쳤던 브라질 순례자가 헉헉 거리며 힘겹게 마을로 들어오고 있었다.


나: 숙소 구하셨어요?

브라질 순례자:

아직 못 구했어요. 찾아봐야죠.


너무 지쳐 보였기 때문에 나는 잠시 기다리시라고 말한 후 스티브에게 한분 그분 자리를 예약을 한 후 숙소로 함께 향했다.


A Santiago 알베르게

결국 아쉬운 대로 마을 어귀에 있는 이 숙소로 향하게 되었다.


마을에서 1KM 이상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마을 분위기를 못 즐기는 게 못내 아쉬웠다. 그런 걸 따질 만큼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주말이라 작은 마을은 사람들로 붐볐고 미리 예약한 순례자와 동키서비스로 자동 체크인이 된 경우까지 이런 이유로 방은 이미 예약이 꽉 찬 상태였다.



체크인

숙소 입구에는 전 세계 만국기가 걸려있다.

체크인을 하러 프런트로 들어서자 지배인은 땀 좀 식히라며 웰컴 주스를 건네어준다.


전화로 예약한 나와 브라질 순례자를 확인하고 지배인이 알베르게로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길게 늘어선 맨 오른쪽에는 수영장이 있었고 가운데는 프런트와 식당 그리고 맨 마지막 건물에 우리 숙소가 있었다.


스티브는 왓츠앱으로 이 숙소에 한국인들이 엄청 많다며 연락을 해왔었다.


나는 빨리 머리를 식히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기 때문에 빠르게 방에 들어가 짐을 풀고, 수영복을 환복을 한 후 빨래 건조대에 옷가지를 널어놨다.


수영장 풍경


스티브는 수영장 선배드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수질이 깨끗해 보이진 않았다. 일렁이는 하늘빛 페인트색이 칠해진 수영장을 보자 나는 언제 지쳤냐는 듯 기운이 올라갔다.

순례길에서 만난 제대로 된 수영장만으로도 나는 물 만난 고기처럼 신이 나 버렸다.


이미 몇몇은 수영장에 난간에 걸터앉아 발을 담그고 널브러져 있었고, 수영을 마치고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수영장은 비탈진 산 지형에 만들어져서 얼굴만큼 큰 낙엽들이 수영장 주변과 물 위에도 떠다녔다.


담장에는 전 세계 국기들을 진열해 놨는데 수영장 안쪽에서도 이목이 집중되게 눈길이 가는 곳이었다.



처음엔 하루종일 지친 내 발만 담그고 근육을 식혀주고자 수영장에 앉아 있었는데, 어릴 적 놀던 계곡물을 받아서 만든 야외풀장처럼 물 온도가 차가웠기 때문이다.


다들 어서 뛰어들어!


라는 눈빛으로 모두 수영장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 3명의 젊은 친구들이 수영장으로 들어와 요란하게 물에 입수를 하면서 수영장의 분위기가 왁자지껄하게 바뀌었다.


아일랜드, 폴란드, 독일인 이렇게 세명의 젊은 순례자들은 30대 초반의 나이라고 들었고, 아일랜드 여자는 자신을 서퍼라고 소개를 했다. 나는 수영장 풀 입구에 앉아서 발을 담그고 있었기 때문에 이 세명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이다.


어제 폴란드 친구가 생일이어서 밤새 술을 마시고 10시가 일어나 겨우 걷다가 여기로 왔다고 했다.

폴란드 순례자는 발바닥에 생긴 큰 물집 때문에 잘 걷지 못하는 상태인데, 수영장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고민 없이 이곳 숙소를 택했다고 했다.



물을 엄청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 것은 아일랜드 서퍼 순례자는 물에 뛰어들며 돌고래 소리를 내면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는 범고래처럼 프리윌리의 주인공처럼 물속에서 점프를 했기 때문이다.


수영장에 있던 모든 순례자가 그 친구의 행동을 보고는 한바탕 크게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젊은 독일인 남자 순례자가 수영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술을 돌렸다.

나는 그들을 따라 맥주를 시키려다가 갑자기 안나가 알려주었던 “Tinto de Verano”가 떠올라서 아일랜드 써퍼친구와 함께 틴토 데 베라노를 주문했다.



틴토 데 베라노

여름 와인이라는 말처럼 수영장에서 마시는 틴토 데 베라노는 시원하게 속이 뚫리는 듯했다.

그리고 약간의 취기와 용기로 나는 드디어 물속에 뛰어들었다.


잠수를 했다가 수영으로 제자리로 돌아왔다.

다들 발이 부어 있기 때문에 발만 담그고 수영장에 앉아 일광욕을 즐기며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이런 것이 순례자의 특권이다.


스티브는 양껏 일광욕을 즐기고 시끄러워지자 쉬러 가겠다며 숙소로 이동했다.

나지막이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고는 자리를 떴다.


스티브: 그래 그렇게 니 또래들과 어울리렴.


한 사람씩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 때마다 이 세명의 젊은 순례자들은 박수를 치며 환영을 해주었고, 벌겋게 얼굴이 익어버려 지친 발걸음으로 걸어 들어오는 순례자들이 용기를 내고 물에 들어갈 수 있게 용기를 주는 느낌이 들었다.


생기 넘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의 30대 초반이 어땠는지 과거로 잠시 다녀왔다.


빠르게 어딘가 기차를 타고 나아가는 것 같은 추진력이었다. 내가 하고 푼 걸 진행하면 앞으로 쭉쭉 뻗어나갔기 때문에 나는 일에 푹 빠져 살았었다. 정신없이 일만 하다 보니 다른 많은 것들을 놓쳤다는 걸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지만, 지금 이 길을 걷는 나를 만들어준 토대란 생각에 후회는 없다.


자전거 복장을 한 순례자가 거의 마지막으로 들어왔다.

이제는 수영장에서 일광욕을 하던 모두가 함께 박수를 치며 순례자의 입장을 반겨주었다. 그는 어리둥절했지만 쑥수러워 하며 인사를 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이었고, 스위스에서 은행원으로 일하며 휴가차 자전거로 종주 중이라고 했다.


자전거로 종주를 하는 순례자들이 건조한 땡볕에 무심코 달리다 쓰러져 사망하는 사고가 종종 있다.

달릴 때는 얼마나 더운지 인식을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50KM를 달려서 지금 너무 덥고 머리가 익었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자기소개를 하고는 발만 담그고 있었지만, 우리는 시원하게 뛰어들라며 박수를 쳐주었더니 수영복이 없다며 답이 돌아왔다.


우리 모두: 뭐 어때 그냥 뛰어들어!

아니면 팬티만 입고 뛰어들던가.


자전거순례자: 에라 모르겠다!

분위기에 휩쓸려 자전거슈트를 벗고는 팬티바람으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약간의 취기와 더위 먹음 그리고 순례자들의 용기가 들어간 주문에 우리 모두 살짝은 상기된 채로 수영장 안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참을 물에 들어갔다 나왔다가를 반복하다가 배도 출출하고 피로가 올라오는 것 같아 나는 인사를 하고는 다시 씻으러 숙소로 이동을 했다.


수영장 중간 길목 레스토랑 테라스에 식사를 하는 모든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나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지만 혼자 어색하고 수영복 차림으로 약간은 수줍고 민망함에 뒤섞여 인사를 빠르게 하며 지나가려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한국인 모녀

에스텔라에서 함께 숙소를 묶었던 모녀가 이곳까지 와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젖은 수영복을 입은 채로 잠깐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숙소는 잡았는데 벨로라도에 먹을만한 곳이 모두 만석이라 여기로 왔다고 한다.


이미 거의 식사를 마친 상태라 우리는 오늘 길을 걷는 내내 너무 더웠다는 얘기를 나누었다.


어머니는 에스텔라부터 동키서비스로 매번 짐을 부쳤기 때문에 부담 없이 잘 걸었지만 딸의 경우 나머지 비상식량등의 짐을 늘 들고 다녀야 해서 걸음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부모님과 함께 걷는다는 게 부러우면서도 남 모를 고충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와인을 마시고 혼자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있었다.


나는 음식을 보자 나도 모르게 배가 출출해졌다.

모녀에게 인사를 건네고 숙소로 이동을 했다.


스티브가 레스토랑에 들어가는 길에 나와 마주쳤다.


나: 스티브 저녁 어떻게 하세요?

스티브: 그냥 여기서 예약하고 먹으려고 해.

나: 그럼 저도 여기 예약해야겠어요.

물어보니 시내에 레스토랑에 자리가 없대요.

일단 씻고 올게요.


타이거 밤 마사지

브라질 할머니는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시에스타를 가졌었는데 어느새 일어나 계셨다.


브라질 할머니: 나에게 숙소를 소개해 줘서 고마워(브라질 말> Say Hi 통역앱)


나를 꼭 앉아주셨다. 그러고는 본인이 마사지를 잘한다며 호랑이연고를 가져와서는 어깨 마사지를 해주셨다.

오늘은 모두에게 육체적으로 힘든 하루였다.


나는 그때 그 마사지를 잊을 수가 없다. 그 이유는 돈 내고 받아본 마사지 말고 개인적으로 받아본 마시지 중에 정말 진짜 손에 꼽는 분 중에 하나였다.

(아빠가 정말 마사지를 잘하셔서 어릴 때 늘 쭉쭉이 마사지를 해주셨었다. 내 최고의 마사지사는 단연 아빠라 할 수 있었다.)


몸이 녹아들 것 같이 시원한 마사지를 받을 때 왠지 모르겠지만 눈물이 날뻔했다.

하지만 울지는 않았다.

정말 치유받는 느낌이었달까?

어색한 침묵과 마사지만 해주시는 호랑이연고 냄새가 방에 진동을 했다.


숙소가 반지하 같은 0층이라 시원한 대신에 환기가 잘 안 되고 긴 복도에서 걸으면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져서 누가 화장실에 들어가는지 다 알 수 있었다.


샤워실

종종 있는 일이지만 샤워실 여닫이문 잠금 기능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문을 한국처럼 열려는 시도를 하는 사람은 없지만 불안하다면 옷을 바깥으로 걸쳐 두던가 아니면 고무줄 같은 걸로 동여매는 방법을 추천한다.


에티켓!

화장실 문을 두드리거나 하는 행위는 괭장히 실례라 문을 열려는 시도나 두드리는 건 가급적 삼가길 바란다. 그 나라에 갈 때는 그 나라 매너 정도는 익혀 가는 게 피해를 입는다던가 무례한 행동으로 선을 넘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


샤워를 마치고 레스토랑으로 이동해서 식사를 시작했다.

스티브는 이미 수프를 다 먹고 본식을 먹고 있었고, 나는 메뉴판을 보기 시작했다.

초반 산티아고 길을 걸을 때만 해도 나는 대구나 연어 같은 생선만 먹었는데 길을 걷고 나서부터 힘에 부치는지 더위에 체력이 많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종종 돼지고기를 시켜 먹었다. 산티아고 순례자메뉴가 가장 배를 채워주기 때문에 든든하게 속을 채울 수 있다.


노을

와인 한잔에 살짝 취기가 오른다.

해가 뉘였 뉘었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으니 하루의 고생을 무마할 정도의 아름다운 노을이 하늘에 번졌다. 숙소위치가 조금 높은 곳이라 해지는 풍경이 장관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한참을 하늘을 바라봤다.


브라질 할머니 역시 어느새 밖으로 나와 커피를 한잔 마시며 풍경을 즐기고 계셨다.



노을이 정말 지는 해를 등지고 8시가 넘어서야 어둠이 점점 퍼져 나간다.  


전화통화

나는 한국 생각이 나서 수영장 입구 벤치에 누워서 보이스톡으로 당시 미국 여행 중인 한국친구와 통화를 했다. 그 친구 역시 여행 중이었고 어떻게 지내는지 겸사겸사 소식을 전하고 있던 차였다.

여행으로 변화하고 있는 우리 모습을 서로 교류하고 있었다.


나 처음 목표인 200km를 걸었어!
그리고 온몸 구석구석이 다 아프지만 아직은 앞으로 더 나아가고 싶어!

나 스스로 어쩌면 나 자신의 두려움을 뛰어넘는 시간을 친구에게 다시 한번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니 이것이 아까 오는 길에 봤던 비석에 나오는 질문에 대답이기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느새 어둠으로 바뀐 하늘엔 별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레스토랑에선 여전히 그 젊은 3명의 순례자들을 주축으로 그때 함께 했던 다른 무리가 한대 뭉쳐 파티 중이었다.


시끌시끌한 밤풍경이 한여름밤의 꿈 같이 지나갔다.


나는 다음날 걸을 생각을 하며 그들과 함께 술을 마시지 않고, 곧장 숙소로 돌아와 잘 준비를 마쳤다.


내 침대는 방문 바로 오른쪽에 위치한 구석자리였기 때문에 침대에 커튼을 쳤던 아나와 하갈언니에게 배운 방법으로 침대 양쪽을 벽처럼 옷으로 가려서 1인실처럼 잘 수 있었다.


거의 10시가 다 돼서야 그 삼인방 청년이 시끌시끌하게 들어오긴 했지만 이내 조용히 잠들 수 있었다.


벨로라도의 추억


그날 수영장에서 혼자 주문한 첫 틴토 데 베라노와

몸이 녹아드는 시원한 타이거밤 마사지 그리고

시원하게 몸을 담갔던 수영과 물 위를 수영하던 무당벌레가 뜨거운 더위를 식혔던 벨로라도를 추억하게 한다.


오늘처럼 더위 먹지 않으려면 내일은 아침 일찍 움직여야겠다.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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