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시와 함께 사하군 가는 길(Sahagun)
길게 줄지은 침대들을 지나 미닫이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와야지만 화장실이 있기 때문에 새벽 5시부터 일찍 일어나 준비하는 순례자들의 움직임에 미닫이문이 닫힐 틈이 없었다. 어제 캐시와는 아침 7시 숙소 앞 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나는 새벽 6시 몸을 일으켜 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아침 7시 10분
숙소는 7시가 되자 숙소 인원에 비해 몇 개 없는 화장실로 인해 역시나 사람이 몰리고 있었고 이런 큰 숙소에서는 일찍 움직이는 게 정답인 듯싶었다.
새벽시간 칼자딜라 데 라 쿠에자의 작은 마을에 유일하게 문을 연 리얼 카미노 알베르게 겸 카페가 불을 밝혔다. 나는 4유로짜리 토스타다 마믈라다와 카페 콘 레체를 시키고는 개눈 감치듯 먹었다. 맛도 맛이지만 아침 일찍 당과 커피를 밀어 넣어 나아갈 연료 충전이 먼저이다.
7시 32분 안녕 칼자딜라!
우리는 해가 정수리 위에 떠서 뜨거워지기 전 아침 7시 32분 걷기 시작했다.
칼자딜라 데 라 쿠에바의 골목길을 빠져나오자 동이 떠오르고 특별할 것 없는 작은 마을이었지만 수영도 하고 캐시도 다시 만날 수 있었던 이곳이 중빈부 길에서 경험한 기분 좋은 시작점으로 나의 기억 속에 자리 잡았다.
길
길을 걸을 때 마음만 먹는다면 어느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고 걷는 순례자들도 더러 있을뿐더러 그것을 원해서 걷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내가 순례길을 걸으며 조금씩 마음을 열고 배울 수 있었던 부분은 우리의 삶은 조금이라도 돕지 않는다면 살아 나가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도움을 안 받고 있는 이 순간에도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산티아고처럼 특수하게 하루종일 걷기 위해 존재하는 이 길에선 모두가 암묵적 동지로서 서로를 도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캐시와 다시 걷게 된 두 번째 길에서 우리는 서로의 경계를 풀고 의지하며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우리가 잘 맞았던 부분은 음식 궁합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는 나이차이가 많이 났음에도 진정한 친구가 됐었던 것 같다.
나는 “칼자딜라 가는 길“ 혼자 걸으며 노래를 부르기로 느꼈던 가벼움과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선 어들들이 트래킹 길에서 시끄럽게 라디오를 켜놓고 산에 소음을 잃으키는 사람들을 욕을 했었는데, 이제 산티아고길에서 노래를 부르며 걷는 사람이 내가 되었다면서 말이다. 길 위에서 시선에 자유로워지면서 내지르는 노래가 주는 즐거움이 있었다. 물론 사람이 많은 구간에서는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영화 위대한 쇼맨의 “This is me”를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노래를 부르는 플레이리스트 중 하나였다.
이 영화 속 노래가 산티아고 길과 교차하며 큰 의미로 다가왔던 이유는 영화 속 나오는 주인공들의 차별과 장애 고난 속에서도 자신을 사랑하고 “이게 나 야“라고 말하며 나아간다.
산티아고 순례길 속 걷는 사람들 모두 주인공인 이곳에서 무거운 짐을 걷어 버리고 무대 속 길을 당당하게 걸어 나가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캐시와 나는 영화 속 주인공들이 춤을 추며 걸어 나가듯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그늘 만들기
노래를 부르며 걷기에도 지칠 정도로 금세 태양이 우리의 걸음을 따라잡았다. 우리는 걸으면서 스스로 그늘을 만들어야 했다. 내가 터득한 방법은 보이기는 우스꽝스러웠지만 효과는 만점인 모자 위에 윈드점퍼를 얹어서 어깨까지 가리는 방식이었고, 캐시의 경우 부르고스에서 구입한 양산을 배낭 가슴줄과 가슴에 고정시켜서 그늘을 만들어 걷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Terradillo de los Templarios
길을 가다 보니 배가 출출해졌는데 좀처럼 식당이 보이지 않았다.
길바닥엔 자갈돌로 만든 화살표가 우리의 여정을 안내했다. 처음으로 나타난 작은 성당을 구경하고 수돗가에서 목을 축였다.
아직 오전 시간이었기 때문에 어떤 순례자가 트레딜로 데 로스 템플라리오스 에 있는 알베르게 문 앞에서 진을 치고 퍼져 있는 게 보였다. 우리는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발이 아파서 여기서 쉬려고 하는데 숙소가 전화를 안 받는다고 한다.
나는 바로 숙소에 전화를 걸어 보았다.
하지만 청소시간에는 전화를 대부분 받지 않는다.
우리는 지친 순례자와 이야기를 나누다 다시 사하군 가는 길로 발 길을 옮겼다.
테라딜로는 칼자딜라 보다 크고 성당도 있는 작고 아기자기한 마을이었다. 어제 만약 9km를 더 걸어서 이곳까지 왔다면 분명 나는 오늘 퍼져서 하루 휴가를 내지 않았을까?
아직 슈퍼나 카페 역시 연 곳이 없었다. 캐시와 나는 성당을 둘러보고 성당 옆 수돗가에서 물을 한가득 담았다.
캐시는 오스프리 배낭에 물 호스가 있는 2리터짜리 물팩을 매고 다녔는데 가방 속에 물 외에도 비상식량에 양산까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짐을 들고 다니는 걸까?
가스파쵸 와 신선한 오렌지 주스/ 12시 54분
유럽에서 얼음이 들어간 음식을 찾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중 스페인의 더운 여름 보양식으로 챙길 수 있는 음식 “가스파쵸”가 생각난다.
캐시와 길을 걷던 중 만난 Restaurante Casa Barrunta에 우리는 앞 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들어갔다. 이곳은 산 니콜라스 델 카미노 도시의 입구에 위치해 있다.
우리의 발걸음이 더위와 배고픔에 거침없이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아이리스 덤블로 벽을 꾸며 놓은 이곳은 테라스에 적당한 그늘이 드리워진 유리하우스를 만들어 놔서 일광욕을 즐기며 음식을 먹기 좋은 곳이었다. 하지만 외부에 흡연자들이 너무 많아서 결국 우리는 아무도 없는 실내로 이동해 음식을 시켰다.
캐시: 이 음식 꼭 네가 먹어봤으면 좋겠어!!!
캐시는 정말 맛있는 음식이라며 나에게 “가스파쵸”를 추천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짠 신선한 오렌지 주스와 전통 옹기그릇에 나온 수프 가스파쵸를 한술 떠서 먹자 더위와 피로를 씻어주는 듯 느껴졌다. 게다가 건강해지는 맛이었달까? 여름 더위를 식히기 위해 스페인 사람들은 매일 이런 걸 먹는구나!
나는 신선하고 차가운 이 수프를 개눈 감추듯 먹었다.
게다가 이번에 마신 오렌지 주스도 유독 신선하고 선명한 오렌지 껍질 색깔을 내뿜고 있어서 보기에도 탐스러워 보였는데 오렌지 주스를 짜는 기계까지 뭔 가 신식 기계를 들여놓은 분위기였다. 음식을 서빙해 주는 주인장의 얼굴에 자부심이 느껴졌다.
주인장은 우리의 상태 하나하나를 살피면서 맛이 괜찮은지 궁금해했다.
음식을 다 먹고 테라스에 잠시 앉아 다시 길을 갈 채비를 차렸다. 테라스에서 놀던 아기 고양이들이 다가와 그르렁 거리며 애교를 부린다. 부서지는 햇볕과 그늘 사이로 비추는 아이리스 잎들과 고양이라니!!!
헨델과 그레텔이 나왔던 과자집처럼 나에게 달콤한 휴식과 가스파쵸와 오렌지 주스는 최고의 휴식이었다.
같이 걷기
내 발걸음이 빠른 것은 아니었지만 캐시도 나만큼이나 발걸음이 느렸고, 캐시는 배가 고프면 안 된다며 커다란 배낭에서 정어리 통조림과 초콜릿 그리고 치즈를 꺼내 길바닥 어디건 그늘이 보이는 곳이면 앉아서 둘이 같이 나눠 먹기 시작했다.
적당한 그늘이 나올 때마다 누가 쉬자고 얘기할 것도 없이 우리는 앉을 자리를 만들어 자주 휴식을 취했다.
캐시는 나에게 친구이자 의지할 동료이자 엄마였다.
나비처럼 걷는 프랑스 순례자
혼자 걷는 순례자를 얘기하자니 사하군까지 걷는 내내 머플러를 그늘 삼아 머리에 쓰고 아주 가볍고 천천히 걷던 프랑스 여인이 생각난다.
그녀는 우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서로의 얼굴을 익혔다. 걷는 내내 대부분 배낭의 중력과 더위를 느끼며 땅에 녹아들듯 걸어 나가고 있지만 그 프랑스 순례자만은 예외인 것 같이 느껴졌다.
혼자 인도명상 음악을 틀어놓은 느낌이 들었다. 가끔 그분은 나무 그늘에 기대 한들한들 흔들리는 꽃처럼 손을 흔들어 줬는데 따뜻한 느낌이었다. 나는 그분이 나비 같다 생각하며, 나도 나비처럼 저렇게 가볍게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Limite Provincial Entre Palencia Y León을 지나 Ermita da la Virgen del Puente로 접어들었다.
이제 “Palencia” 지방이 끝나고 “León” 지방을 통과하는 여행이 시작된다.
“León”을 나가면 ”Galicia”로 들어가게 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400km 의여정을 더 걸어야 한다.
-구글 가이드 리뷰 발췌
Ermita da la Virgen del Puent (산티아고 길 중간 지점을 상징하는 기념비)
종교적 성지 근처에는 늘 쉼터가 존재한다. 우리는 거기에 짐을 풀고 땀을 식히며 스트레칭을 했다.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둥그런 오브제 위에 거꾸로 누워 아치 자세를 하고는 신발을 벗고 다리를 하늘 위로 올려 발의 열기를 식혔다.
우리 모습이 웃겼는지 칼자딜라에서 나와 숙소를 썼던 시카고 여성분이 캐시에게 다가왔다. 늘 인상을 쓰고 인사도 안 하던 분이었는데, 알고 보니 발바닥에 왕만 한 물집이 생겨 아주 천천히 전진 중이었다.
캐시와 나는 서로의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서로의 카메라로 담으며 땀을 식혔다.
그늘에 누워 쉬고 있으니 땀이 금방 식는다. 우리는 서로의 가족 이야기, 코로나를 건넌 이야기 등 등의 이야기들을 나눴다. 캐시와 대화를 나누며 나 자신이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는 사실이 웃음이 나기도 하고, 이 더위에 슬픔의 눈물도 말라버렸나라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던 것 같다.
우리는 점점 뜨거워지는 열기를 등지고 길을 바쁘게 재촉해 걸어 나갔다.
간식거리를 계속 먹으며 그늘에서 쉴 때 숙소를 어디로 잡을지 이야기하게 되었다.
캐시만 괜찮다면 2인실로 함께 방을 쓰면 저렴하게 숙소를 잡을 수 있는데 어떠시냐고 물으니 캐시도 좋다고 한다.
카미노 앱과 구글 맵의 검색 결과 개인 2인실이 있는 사하군의 숙소 여러 곳에 전화를 해서 방이 있는지 문의를 했다.
Hostel Alfonso VI에 2인실 예약을 마쳤다.
부킹닷컴이나 숙박 앱예약이 간혹 안될 때가 있다.
그럴 땐 당황하지 말고 전화로도 대부분 예약이 가능하다. 다 길 위에서는 방법이 나타난다. 서두르지만 않으면 된다. 어쩔 땐 직접 이렇게 전화 연결을 하는 게 더 저렴해서 나는 자주 전화 예약을 이용했다.
과거의 기억
서울의 대부분의 땅들이 투자의 대상으로 옛 과거의 기억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것에 비해 산티아고가 소중했던 이유는 오래되고 낡은 이야기들을 부시고 버리지 않고, 기억할 수 있게 그 자리에 두는 것이다.
과거를 기억하며 배우고 현재를 깨닫고 비로소 미래로 나아간다. 스페인에서도 걷는 동안 마을의 쇄락과 폐가들을 많이 보며 지나갔다. 하지만 대초원 죽은 동물의 시체처럼 날 것 그대로 드러난 그 모습이 나 자신 역시 이 지구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사하군으로 도작하기 전 산 니콜라스 델 까미노 즈음부터 도시의 흔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벽에는 까미노 순례자들의 얼굴이 그라피티로 그려져 있었다. 막무가내로 풍차를 향해 돌격하던 돈키호테처럼 현대의 순례자들이 돈키호테처럼 느껴졌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볼 때 카미노 길을 걷는 행위는 전혀 이상적인 행동이 아니다.
사하군은 아주 큰 도시는 아니었지만 길의 중간을 걸었다는 것을 알리는 지표이다. 마드리드에서 시작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마침표이자 프랑스길의 중간지점이자 순례 증명서를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순례 증명서 받기
사하군에서 프랑스 길 중간 지점에 도달했음을 나타내는 순례 증명서를 받을 수 있다.
라 비르헨 페레그리나 성당에서 증명서를 발급한다. 매일 아침 9시 30분~오후 2시 및 오후 4시 30분~오후 7시 30분에 발급하며, 겨울엔 시간이 변동될 수 있다.
성당 입장표(일반:3유로, 할인: 2 유료)가 있으면 증명서 발급은 무료임.
자료: 브에나 까미노 앱
캐시는 새와 산에서 나는 자생열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길을 걸으며 그런 지식은 길을 더 풍성하고 재미있게 걸을 수 있게 도와준다. 길가에 노랑, 주황, 빨강 열매가 항상 궁금했는데 “비타민 열매”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차로 우려 마시면 비타민을 보충할 수 있다고 한다.
3시에서 4시경 숙소에 도착하기 전 짐을 메고 마지막 힘을 짜내며 다리를 건너 택시와 버스정류장을 지나쳤다. 마을 중심부 성당에 도착하자 미리 도착해 쉬고 있던 순례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들 짐을 풀고 앉아서 맥주를 마시며 시에스타를 즐기고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스웨덴처럼 늘 추웠다면 프랑스길이 이렇게 까지 유명해질 수 있었을까?
우리는 그늘이 보이는 족족 앉아서 쉬었기 때문에 땀을 많이 흘리진 않았다.
사하군에서는 발마사지 샵도 있다는 정보를 함께 쉬던 순례자가 알려주었다. 소소한 정보가 꽤 유용할 때가 많아서 주의 깊게 순례자의 이야기를 듣곤 한다.
숙소 가는 길 사하군의 아기자기한 풍경이 마음에 들었다.
아침 출발할 때의 다짐과는 다르게 20km 이상을 걷고 숙소에 도착할 때 즈음엔 배낭을 길바닥에 버리고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 납덩이 같이 무겁게 느껴졌다.
드디어 숙소 도착 3시 48분
시에스타 시간에 도착한 우리는 주인에게 전화를 해서 체크인을 마쳤다. 숙소는 산티아고에서 내가 묵었던 숙소들 중 손에 꼽히게 상태가 좋았다. 화장실에는 작은 욕조가 있는 2인실 더블 배드 룸이었다.
아침식사도 제공한다고 하는데 결정을 내리진 않았다. 그저 빨리 짐을 풀고 싶은 마음뿐이다.
캐시가 먼저 샤워를 하고 나는 방에 있는 TV를 켜고 짐을 풀기 시작했다. TV에는 중세시대 살인사건을 추리하는 탐정추리물 드라마가 방영 중이었다. 캐시는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는 저 드라마 캐나다 꺼라며 스페인어 더빙으로 드라마가 방영되지만 우리 모두 드라마 내용이 어떤 건지 다 알 수 있을 만큼 쉬운 내용이라며 드라마 설명을 해주었다. 캐시는 신기하다며 영상통화를 켜서 남편분과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반신욕
나는 샤워를 위해 갈아입을 옷과 세면도구를 들고 들어갔는데 화장실에는 어메니티가 있었고 아주 작은 반사이즈 욕조를 확인하고는 비누를 뜯어서 욕조를 씻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욕조에 몸을 담그고 싶었기 때문이다.
욕조에 물이 거의 차오르자 몸을 웅크리고 앉아서 욱신 거리는 근육을 달래주었다. 얼마만의 뜨거운 물에 몸을 녹이는 건지 “좋~~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기다리는 뒷사람 없이 천천히 씻어도 되니 여유롭고 세상 좋은 것 같다.
가끔은 이렇게 좋은 방에서 휴식을 취하는 게 걷기에 더 도움이 된다.
노곤노곤하게 손주름이 올라올 즈음 샤워물로 씻어내고 개운하게 밖으로 나왔다. 머리를 말리며 캐시와 저녁을 어떻게 할 건지 이야기를 나눴다. 캐시는 빨래방에 가야 할 것 같다고 했고, 나는 슈퍼에 가서 비상식량을 사야 한다.
거한 저녁/ 18시 46분
옷을 갈아입고 장바구니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딱히 고민할 것도 없이 우리는 아까 들렀던 성당 앞 municipal 알베르게 근처에 있는 Bar Europa에 들어가 햄버거와 감자튀김 그리고 나는 그란데 사이즈 생맥주를 시켰다. 주문을 하러 들어갔을 때. 이테로 데 라 베가 숙소에서 만났던 미국 캘리포니아 커플을 다시 만났다.
미국 커플을 보자 베로니카와 아담커플이 떠올랐다. 커플임에도 두 사람 모두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 줬었고 초창기에 사귀게 된 순례자 친구였어서 더 소중하게 기억으로 남았던 것 같다.
그들은 이미 순례길을 완주하고 휴가를 보내고 있다고 연락이 왔었다.
캐시와 팜플로나에서 먹었던 아주 질 좋은 소고기패티가 들어간 햄버거는 아니더라도 베이컨이 들어간 꽤 두툼한 햄버거였다. 바깥 테라스에서는 동네 할아버지들이 앉아 싸구려 담배를 태우고 계셨다. 어떤 담배는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냄새를 맡으면 머리가 너무 아프다.
햄버거와 추가로 캐시가 주문한 감자튀김을 먹고는 빠르게 자리를 옮겼다.
캐시는 빨래방에 가야 한다고 해서 나는 슈퍼마켓에 가서 장을 보기로 하면서 잠시 각자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사하군 도시 산책
도시에 도착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슈퍼마켓에서 장 보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10월 11일 수요일이니까 수요 미사도 있을 것이다. 장을 보고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듣고 숙소에 돌아올 예정으로 사하군 일대를 걷기 시작했다.
쉴 때도 또 걷는 것은 반복이다. 먼저 적당한 규모의 슈퍼마켓을 찾아 돌아다니다 보니 마을 구석구석을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LUPA 슈퍼마켓/19:20/ 6.52유로
슈퍼에서 사는 메뉴는 늘 비슷하다.
바나나, 과일 초콜릿, 물, 요구르트 가끔 과자를 사서 나온다.
내일 아침 먹을 요구르트와 과일들
슈퍼에서 물건을 사고 조금 더 마을 위로 올라가다 보니 교회가 보였다.
사하군에는 성당이 한 군데만 있는 게 아니어서 미사를 어디에서 해야 할지 모르고 있던 차에 성당 입구에 고깔을 쓰고 나팔을 불고 있는 동상이 눈에 들어와 그곳으로 걸어갔다.
이곳은 Iglesia de San Lorenzo 산 로렌조 교회였다.
성당 입구로 들어서자 이미 미사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지만 조용히 들어가 미사를 감상했다.
무슨 말인지는 당연히 모른다. 하지만 마음이 경건해지고 평온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순례길 내내 은혜받는 기분으로 성당에 들어 미사를 참석한다.
마을에 미사를 참석하는 신도가 얼마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 사는 현지분들과 함께 참석할 수 있어 더 좋았던 것 같다.
미사를 마치고 마을 분들과 함께 인사를 나누고는 밖으로 빠져나왔다.
자연스럽게 골목으로 빠져나와 아까 갔던 루파 슈퍼마켓보다 아래쪽으로 내려가다 보니 마을 사하군 마을 광장이 나왔다.
그곳에 이 동네 사는 모든 사람들과 순례자들이 어우러져서 식사를 하고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마침 광장의 입구에서 다시 캐시와 마주쳤다.
캐시도 빨래 돌리는 시간이 남아서 마을을 돌고 있었다고 한다.
해가 뉘엿뉘엿 붉게 물들며 지고 있었다.
사하군 역시 조금만 밖으로 벗어나도 폐가들이 보인다.
칼자딜라처럼 아예 순례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도시가 아닌 것은 맞지만 이곳 역시 작은 마을이라 젊은 사람들이 일하기에는 작은 마을이라 모두 도시로 나갔나 보다.
나는 한참을 구시가지를 지나 유적지까지 구경을 하고 밤이 어둑해지지고 나서야 숙소에 돌아왔다.
귀마개
숙소로 돌아와 캐시에게 지독한 코골이를 만나 잠을 못 잤던 이야기를 해드렸더니 캐시 본인도 코글 곤다며 미안하다고 말하고는 여분의 귀마개가 있다며 선물로 수영장에서 쓸법한 강력한 귀마개를 주셨다.
나: 어떤 멋진 순례자가 나에게 아주 스페셜한 “귀마개”를 줘서 나는 오늘 꿀잠 잘 것 같아요!(윙크)
라고 말하고는 캐시와 나는 박장대소를 하며 웃어댔다.(서양식 유머)
일찍 잠들긴 아쉬운 밤이었으나 몸이 천근만근이다. 내일 나는 짐을 보내고 길을 걸을 것이다.
캐시는 내일 몸상태를 봐야 할 것 같다고 한다. 왜냐하면 평상시 10km씩 걷는데 오늘 나와 함께 걸으며 23km를 걸었으니 몸이 무리를 한 모양이다.
나는 내일 더 일찍 일어나 걸어야겠다 마음을 먹고는 누웠으나 잠이 쉽게 들지 못했다.
캐시가 준 수영장 귀마개를 끼고 침대에 몸을 파묻었다.
정말 강력한 성능의 귀마개였다.
내 발 상태
배낭을 메고 걸을 때마다 물집이 다시 생겼다 나았다를 반복했다. 400km를 걸었지만 여전히 내 발은 지금의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신과 마음은 이곳에 이미 녹아들어 잘 적응해 나아갔다. 몸이 고되니 정신은 맑아져 간다.
이 숙소에서의 꿀잠과 평온함은 벙커침대 다인실에서 함께 자는 것과는 당연히 비교를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수면의 질이나 휴식면에서 높다.
하지만 편하고 좋은 것을 누리기 위해 순례길을 걷는 것이 아닌 만큼 가끔만 누리려고 한다.
뭐 스스로의 약속이라고 할까?
내일을 위해 자야 할 것 같다.
오늘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메모를 많이 남겼다.
Buen Cam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