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실라 데 라스 물라스 가는 길(Mansilla de las Mulas)
사하군에서 2인실 개인룸에서 자다가 공동공간에서 잠을 청하니, 당연히 깊게 잠을 자지 못했다.
항상 일등으로 새벽을 알리는 한국인 순례자들은 새벽 5시부터 부스럭 대며 나갈 준비를 한다.
여기 공동 숙소에서 전 세계 사람들을 보다 보니 씻으며 소리를 내는 것도 습관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한국 아저씨들은 항상 화장실을 나오며 가래 뱉는 소리와 큰 함성을 내며 씻었다.
아푸 아푸! 아~하! 어후 카악 퉤!
아마 본인들은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나는 새벽 6시 눈을 떠 1층 화장실을 가기 위해 내려왔다.
사빈은 아침 일찍부터 이미 준비를 마치고 배낭을 정갈하게 계단에 기대어 놓았다.
늘 조용히 깔끔하게 움직이는 독일인들이 신기하다.
어릴 적부터 조용하고 깔끔하게 계획대로 움직이라고 교육을 받았다는 느낌이다.
아직 아침 해도 뜨지 않은 새벽 시간 구름 때문인지 더 어둡게 느껴졌다.
일층 공용주방에는 커피 향이 진동을 한다.
아침 일찍 열린 카페를 찾고 싶었으나 문 열린 곳을 발견하지 못하고 엘 부르고 라네로 마을을 빠져나왔다.
오늘은 비 예보가 있어서 더 빨리 움직여야겠다.
당분간 전통가옥 스타일의 기부제 숙소는 사양하고 싶다.
배낭을 메고 걷기 때문에 속도 가 나진 않겟지?
나는 푸엔떼 빌라렌떼(Puente Villaente)까지 25km를 걸을 거라 장담했다.
일출
아침 해가 떠오르는 풍경은 매일 봐도 매일 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매일 다른 풍경처럼 우리네 모습도 절대 똑같은 하루는 없다. 길게 늘어선 수단그라스 밭을 지나 국도길을 지날 때가 가장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얼마나 지루하면 장벽처럼 세워진 수딘그라스들 사이에서 28일 후에 나올법한 좀비들이 나오거나 죽은 영혼들이 저세상을 넘어와서 야구팀을 만드는 상상을 하게 되니 말이다.(꿈의 구장:1989년작)
선택지가 있다면 나는 피레네 산맥과 같은 산길을 선택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바로 옆에서 큰 차들이 다니고 일렬로 늘어서서 순례자들이 걷는 게 마치 단체 관광객의 행렬같이 자유롭지 못하게 느껴진다.
유독 찌린내가 많이나고 어두운 장소를 지날 때면 인상이 찌푸려질 만큼 찌린내가 진동을 했다.
오죽하면 현수막에 현지인들이 써놓은 경고문구가 섬뜩하게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우리는 순례자와 관광객을 원하지 않는다!
집 앞에 개똥을 지리고 청소하고 가지 않아도 인상이 찌푸려지는데, 하물며 사람 똥이라니 세상에><
이런 이기적인 행동 하나하나가 쌓여 배척하는 결과로 돌아온 거라 생각했다.
매일 얼마나 길이 남았는지 내가 체크할 필요가 없이 알아서 순례길 표식이 새겨진 비석에 340km가 남았다고 알려준다. 원래 목표인 200km를 넘어 두 배를 더 걸어왔다는게 실감이 났다.
여기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이고 이것은 나의 이상을 현실로 실현하는 공간이라는걸 자꾸만 잊곤 한다.
수단그라스
가을 추수를 마치고 이 영양가도 없어 보이는 수단그라스가 시골 밭에 왜 빼곡히 심어저 있는지 아는가?
예전 시골 지인집이 있는 금산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금산은 인삼이 유명한 지역이다.
가을 추수 시기였는데 어떤 밭에는 수단그라스가 빼곡히 있었다.
나는 지인에게 왜 영양가도 없는 수단그라스를 심는지 물었다.
나: 수단그라스로 뭐 해 먹을 수 있는 게 있나요?
지인: 수단그라스는 사람이 먹기 위해 심는 게 아니야, 인삼은 영양가가 높은 만큼 땅의 영양분을 다 빼앗아서 인삼을 심고 나면 그 땅이 황폐화 되기 때문에 꼭 휴식기를 가져야 해; 수단그라스는 땅의 영양분을 보충하고 휴식을 취하게 해주는 식물이야.
나는 그때 수단그라스가 뭔지도 모르는 식물이었으나 그때 들은 자연도감 같은 이야기는 절대 잊혀히지 않았다.
길 위에 나있는 풀 한포기 스쳐 지나갔던 초록 잎들이 다 각자의 쓰임새가 있다는 것이다.
인삼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비싼 몸값을 자랑할 수도 있지만, 어떤 누군가는 뒤에서 묵묵히 땅에 영양분을 주고 동식물 심지어 인간에게도 그들과 쉼터를 만들어주니까 말이다.
수단그라스가 나에겐 순례자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앞만 보며 달리던 세상사에 지친 영혼들이 쉴 수 있는 곳이 순례길 같았기 때문이다.
길을 걸으며 빼곡하게 줄지어 심어져 있는 수단그라스가 스페인 햇볕에 노랗게 타버려서 자연 건조 중이었다.
유독 그때 시골에서 들었던 농부의 지식이 기억으로 남아 수단그라스를 뿌듯하게 보며 길을 걸어 나갔다.
화장실
언덕이 없는 평야지대에 앉아서 쉴 수 있는 자연 휴게소는 많이 있었다. 하지만 마을과 마을 사이의 간격이 멀리 있어서 화장실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수단그라스 밭으로 들어가서 볼일을 보는 것은 그나마 젊잖게 볼일을 보는 축에 속한다.
대부분의 전 세계 남성 순례자들은 길 멀리에서도 보이는 나무 옆에서 그냥 소변을 본다.
실제로 말로만 듣던 풍경을 눈으로 봐야 하다니? 고개를 돌려야 하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수분기 먹은 습한 아침은 오랜만이다. 비가 오다 말다를 반복하면서 바람이 쌀쌀하다.
해가 구름 뒤로 가려져서 해가 뜬 시간임에도 땀이 흐르지 않았다. 약간의 비는 걷기에 도움을 준다.
평상시 해가 뜨면 새벽길에 입고 걷던 얇은 윈드재킷을 벗고 걷는데 오늘은 추워서 고어텍스 잠바를 꺼내 입고 걷게 됐다. 오늘 아침을 못 먹고 길을 떠났기 때문에 아침 식사가 절실했다.
자꾸 화장실 이야기를 해서 민망하고 더럽긴 한데 걸으면서 정말 중요한 문제였다.
길 중반부까지만 해도 더위와 싸우는 것 외에 대부분 왼만하면 카페가 있어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었었다.
중반부길로 넘어오면서 날씨가 추워지니 더 자주 자연에서 볼일을 볼 수밖에 없었다.
아마 늦가을이나 초봄에 길을 걷기 시작한다면 이런 점을 유의해야 할 것 같다.
피레네에서 봤던 첫 소변도 한참을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을 만큼 대변은 언감생심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나, 중반 이후 도저히 나타나지 않는 화장실은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이날 큰 볼일을 자연 속에서 성공한 이후 나는 진정한 자연인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와 자연은 일부이자 하나이다. 왜 그렇게 수풀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는지 아마 팔 할은 순례자의 몫이 아닐까?
나도 깨끗한 변기에 앉아 경계태세 없이 볼일을 보고 싶지만 하루종일 20km 이상을 걷는 상황에서 별수 없는 상황이다. 마치 큰 숙제 하나를 해결한 양 몸이 가볍고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Crucero de El Burgo Ranero
길을 걷던 초반부터 만실라를 가는 길까지 카미노 기념 비석이 서있다.
어떤 비석은 볼품없이 서있기도 한데 엘 부르고 라네로 에서 2킬로 즈음 걸었을 때 나타났던 비석은 정성스럽게 돌들이 애워쌓고 탑처럼 돼있었다. 지나간 순례자들의 염원이 담긴 탑이다.
내가 이 비석을 기억한 이유는 이 구간은 정말 화장실 이야기와 수단그라스 말고는 이야기할 만한 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La Cantin de Teddy
이곳은 렐리에고스(Reliegos) 초입에 위치한 알베르게 겸 레스토랑인데 이곳 테라스에 앉아 있는 지넬을 봤다.
나는 엘 부르고 라네로에서 12km 정도를 오전에 걸은 것이다.
아침을 안 먹고 출발했으니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빨리 무언가 집어넣어야 한다.
배낭은 나를 점점 짓눌르고 배고픔은 점점 목을 치고 올라왔다. 게다가 춥기까지 하지 정말 “행그리” 한 상황이다.
많은 순례자들이 렐리에고스 전 마을인 빌라마르코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길을 걸었기 때문에 이곳을 그냥 지나쳐 가는 경우도 많았지만 나는 빌라마르코에서는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그냥 길을 지나쳐 갔었다.
이 레스토랑의 웨이터 아저씨는 아주 재밌는 분이셨다. 바쁜 와중에도 유머를 잃지 않았고, 마음 급한 순례자들을 달래며 웃음을 건넸다.
빵을 얻어먹으려고 들린 아기 길고양이가 재롱을 부린다.
지넬은 먹다 남은 토르티야를 때서 고양이에게 주고 있었다. 우리는 오늘 날씨라면 만실라까지만 갈 가능성이 많다고 얘길 했다.
나는 푸엔테까지는 걷고 싶다고 했으나 상황을 봐야 한다.
테이블에서 한참을 기다리니 웨이터 아저씨가 토스트와 잼 그리고 커피를 가져다주셨다.
간단한 동전 마술쇼를 보여주며 지루함을 덜어주는 유쾌한 분이었다.
잼 인심이 후해서 하나 더 갖다 달라 요청하고는 주린 배를 채웠다.
벽에 타일로 붙어 있는 “Don’t worry”라는 문구가 여유롭게 길을 즐기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계속 이렇게 하루종일 흐린 날씨라면 나도 만실라까지만 걸을 거 같은 느낌이다.
오후로 넘어가면서 흐리고 추워진 날씨는 비로 바뀌어 떨어지기 시작했다. 너무 추워졌기 때문에 중후반부로 갈수록 추위를 피하기 위해 낮술을 즐기는 순례자들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조금만 참고 이곳까지 와서 볼일을 봤다면 좋았겠지만 지도만 보고 거리를 체감하기는 조금 갭이 큰 것 같다.
웨이터 아저씨는 매일 똑같은 일상 속 순례자들을 맞이하면 지루할 법도 한데 웨이터 아저씨는 늘 웃음을 머금고 즐겁게 일을 하셨던 게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다. 나는 추워지니 엘 부르고 라네로에서 레온으로 기차를 타고 갈 거라고 했던 중국인 순례자 리야가 떠올랐다.
만약 내일도 비가 내린다면 나도 만실라에서 레온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고양이와 놀다가 땀도 식고 추워져서 다시 짐을 메고 걷기 시작했다.
만실라 입구에 도착하면서부터 빗줄기가 더 굵게 내리기 시작했다. 만실라에서 멈춘다면 짐을 풀어야겠다 생각했던 숙소 문 앞에서 기다리며 전화를 걸어봤는데, 이미 만실이라고 연락이 왔다. 비를 맞으니 체온도 떨어지고 체력도 바닥이 나는 것 같아 결국 근처에 가장 가깝게 있는 Albergue El Jardin del Camino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호카 프랑스 아저씨 순례자
원래 가려던 숙소 숙소 Albergue de Gaja에서 12시 전화를 하며 대기줄에 있었을 때 내 앞에 줄을 서있던 프랑스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아직 길 중반밖에 안 됐는데 내 신발 안쪽은 이미 솜이 다 터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아직 카드 할부도 끝이 나지 않은 고가의 이 신발을 20년은 신을 거라 장담하며 신발을 구매했었다.
호카는 유럽에서 그렇게 고급 브랜드가 아니었기 때문에 한국만큼 비싸지 않았다. 기다리던 대기줄에서 점점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고, 1시 체크인 전까지 숙소를 잡아야 한다.
나는 급하게 Jardin del Camino로 이동해서 대기 예약으로 리스트에 기입을 해놨다.
El Jardin del Camino
사립 알베르게가 좋은 점은 카드 결제가 가능한 곳이 많아 편리하다.
16유로에 부직포 시트 포함 가격이다.
대기줄에는 이테로에서 봤던 미국커플과 시카고 미국인 순례자가 내 앞에 줄을 서 있었다.
서늘한 오늘 날씨가 익숙한 건지 몇 번의 마주침에 시카고 순례자는 이제야 인사를 건네고 나에게 처음으로 웃는 얼굴을 건넸다.
나는 창가 쪽 이층침대를 골랐다. 알고 보니 내 침대 일층을 쓰고 있는 사람은 패드로 처럼 100킬로에 거구의 이탈리아 사람이었다. 연약한 쇠봉으로 만들어진 이층 침대는 그 이탈리아 남자가 움직일 때마다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거렸다.
맞은편 1층 침대엔 시카고 순례자와 2층에는 세네카가 있었다. 그리고 내 바로 옆자리 침대엔 미국커플이 자리 잡았다. 나는 대기줄을 서기 전에 레스토랑에서 파스타를 시켜놨었다가 짐을 내려놔야 해서 음식을 맡겨 두고 한참이 지나서야 식당으로 다시 내려올 수 있었다. 다 식고 불어 터진 파스타를 먹어야 했다.
이곳 레스토랑 규모가 꽤 크다. 아마도 저녁에도 비가 내린다면 나는 이곳에서 식사를 할 것 같다.
버스 정류장
파스타를 브런치로 먹고 다시 숙소로 올라가 씻고 나서 동네를 돌아볼 겸 마을 산책을 했다.
내일 버스를 타고 레온에 가려면 미리 버스 정류장을 알아놔야 한다. 한 번도 버스를 타고 이동한 적이 없기 때문에 도시인처럼 문명을 이용하는 게 쉽지 않았다.
길가에 몰려다니는 현지인들에게 버스 타는 곳을 물어보고 이동을 반복하다 보니 마을을 한 바퀴 다 돌았던 것 같다. 갑자기 훅 다가 온 가을 날씨에 내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만실라는 꽤 큰 읍내 같은 느낌이 든다. 만실라에서 레온까지 버스를 타면 15분에서 최대 30분 정도면 레온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라 주거공간으로 한적하고 좋은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Ermita Virgen de Grcia (라 비르헨 데 그라시아 교회 예배당)
만시야 사람들이 각별히 신봉하는 수호성인을 모시는 이 예배당은 성벽 밖에 있으며 산 로렌조 교구 교회에서 분리되어 14세기말에 지어졌다.
1787년 산 로렌조 교회가 사라지면서 산타 마리아 교회의 일부가 되었고 1890년에 재건되었다.
재건된 지 6년 후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1898년에 다시 지어졌다.
성모상은 1950년에 제작되었으며 르네상스 양식의 제대는 1995년에 복원되었다.
참고자료: 브엔 카미노 앱
버스 정류장을 찾는 명목상 걸어 다닌 거지만 그렇다고 버스를 꼭 타야겠다 생각할 만큼 간절하지도 않았다. 주변에 주유소와 순례자 동상을 구경하며 버스 정류장 주변을 배회하다가 비가 내려 성당으로 피신을 했다. 마침 성당 문이 열려 있어서 내부를 구경할 수 있었다.
나는 성당 구경을 하고 슈퍼에 가서 장을 볼 생각으로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그런데 샤워 후 창문 테라스에 걸어놨던 속옷을 운 좋게 숙소로 돌아온 문앞에서 발견하고 주워서 다시 빨아 침대걸이에 걸어두었다.
날이 습하고 기온이 떨어지니 속옷도 빨리 마르질 않는 것 같다. 숙소 안은 습한데 히터도 아직은 안 틀기 때문에 꿉꿉하고 추웠다. 차라리 움직이는 게 낮다고 판단했다.
작은 슈퍼마켓은 시에스타 시간이라 문이 다 닫혀 있어서 마을 메인에 있는 큰 마트를 가기로 노선을 변경했다. 마을 중심부 레스토랑 테라스에 아까 대기줄에서 호카 신발 이야기를 나눴던 프랑스 아저씨가 혼자 맥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숙소를 구했냐며 안부를 물으신다.
Dia 슈퍼마켓
나는 늘 유럽에 와서 초콜릿을 다양하게 먹어보려고 노력했다. 왜냐하면 한국보다 다양한 맛과 풍미를 가지고 있는 초콜릿이 꽤 저렴하고 양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걸을 때 비상식량으로 이만한 게 없지!!!
그래서 초콜릿 코너를 한참을 구경하고 있었다.
세네카가 들어와 빵코너 구경을 시작했다.
나, 세네카: 우리 또 만나네?
이런 쿨한 인사를 나누고 쿨하게 헤어져 각자 숙소로 돌아갔다.
나는 내일 아침 먹을 시리얼이 포함된 그릭요구르트와 초콜릿 그리고 맥주 1캔을 사서 밖으로 나왔다.
유럽의 가을 겨울은 정말 해가 빨리 진다. 4시에서 5시에 해가 저물기 시작해서 빠르게 돌아왔음에도 벌써 어두워지고 있었다.
숙소에 돌아오자 내 침대 1층에 자리 잡은 이탈리안 순례자가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옆침대에 미국커플은 1층에 서로 포개어져 함께 시에스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마을 어귀에 제일 처음 있는 숙소이기도 하고 일층 식당에서는 저녁 예약을 받고 있다. 오늘은 금요일 오후라 아래층 소음이 더 요란하게 들렸다. 몸이 피곤하고 날씨도 도와주질 않는다.
하지만 곧 부르고스 이후에 두 번째 대도시인 레온에 도착한다는 생각이 에너지를 북돋아 주는것 같다.
식당에 내려가 저녁식사 예약을 해놓고 침대로 돌아와 짐정리를 시작했다. 날이 좋았다면 다들 밖으로 나가 있을 텐데 쌀쌀해진 날씨 탓에 다들 방안에 모여든 양 떼 마냥 모여들었다. 내일까지 빨래가 다 마를지 모르겠다.
아까 마을을 돌아다니며 얻은 수확은 산티아고 가는 길 방향을 확보해 둔 것이다.
버스는 명목일 뿐 걸을 길은 알아본걸지도…
저녁식사
조금 이른 저녁시간 일찍 식당으로 내려와 앉을자리를 둘러봤다. 아직 사람들이 몰릴 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은 여유가 있었다. 늘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타월로 벽을 치고 잠을 청하던 시카고 순례자는 어느새 침대에서 나와서 저녁을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같이 앉을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그냥 빈테이블에 앉기로 했다. 뒤이어 세네카가 혹시 같이 앉아도 되냐며 합석 제안을 했고 세네카 옆에는 콧수염을 매 만지는 멕시코 아저씨가 굵은 저음으로 옆에 앉아도 되는지 물었다.
나는 메뉴에 그려진 그림을 보며 노란색 수프와 치킨과 감자칩 그리고 와인을 시켰다.
배가 불렀지만 또 배에 이게 들어가 진다. 세네카는 맞은편에 앉아서도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고 노란 수프에는 파스타면이 짧게 부서진 국수면 처럼 들어가 있어서 속이 더 든든했다. 샛노란 샤프란 색깔이 영롱하다.
옆에 앉아 있던 멕시코 순례자는 순례자 메뉴 말고 다른 메뉴를 시키고 와인을 한병 주문했는데 우리 잔이 비워질 때마다 와인은 늘 채워져 있어야 한다며 계속 술을 권했다. 그리고 세네카와 영어와 스페인어가 석인 대화를 해나갔다.
세네카와 나는 말을 많이 한 사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쁜 사이도 아니다.
진짜 그냥 순례자 메이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사이 말이다. 옆에 있어도 불편하지는 않은 정도랄까?
나는 배가 불러서 결국 닭고기를 남겼다.
노동주
음식 계산을 마치고 소란스러운 식당을 빠져나와 비가 내려 아무도 밖에 나와 있지 않았기 때문에 테라스는 정말로 빗소리만 들리고 고요했다. 나는 비 오는 소리를 들으며 아까 슈퍼에서 샀던 산미구엘 맥주를 땄다.
와인 두 잔에 맥주 한 캔 하루 마시는 술 양이 늘은 것 같다. 멕시코 아저씨도 식사를 마쳤는지 밖으로 나와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나에게 손 인사를 건넸다. 바깥공기가 제법 추워져서 앞으로 잘 걸을 수 있을지 살짝 걱정이 들었다.
잠들기 전
숙소로 올라와 잠들기 전 레온(Leon)에서 묵을 숙소를 알아봤다. Zentric Hostel이라는 호스텔이었는데 레온 중심부에 있는 사설 숙소로 호스트와 “구글맵챗”으로 밤늦은 시간인데도 친절하게 답변을 해줘서 예약을 할 수 있었다.
현재 다시 들어가 보니 구글챗맵은 정리를 하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그리고 왓츠앱으로 연동이 가능한 것 같다.
예약시간이 밤 11시라니 어이없긴 한데 예약이 됐다는 게 신기하다.
Facebook: Zentric Hostel/
Instagram:zentrichostel /
whatsapp:+34636946294
숙소 컨디션
길게 늘어선 침대들은 어느새 순례자들로 가득 찼다. 여러 사람들이 있으니 온기 때문인지 춥지는 않았다.
엘 부르고 라네로에서 묶은 알베르게가 워낙 낙후된 시설이라 나는 알레르기 반응만 안 올라오는 것 만도 대 만족이었다.
하지만 이곳 만실라 숙소에 대한 평이 썩 좋은 평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나는 대형 알베르게치곤 나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가벽 형태여서 화장실 소음이나 방문이 없어 자동으로 움직일 때마다 불이 켜진다. 문 입구 쪽에 자는 사람들은 눈을 가리고 자야 한다. 400km 이상을 걸은 지금 대부분의 순례자라면 그런 소음이나 빛도 이제는 그리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단지 내 침대 아래층에 자고 있는 이탈리아 순례자가 얌전하게 자기 바랄 뿐이다.
밤 생각
잠이 들만 하면 밤새 거구의 이탈리아 순례자가 몸을 뒤척였다. 나는 자다가 침대가 지진이 난 것처럼 놀라 잠에서 자꾸만 깰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참자 내일은 레온에 4인실 숙소에서 잠을 잘 것이다.)
적어도 소음도 이곳보단 덜 하겠지?
1박에 25유니까 오늘 16유로인 대형 벙커숙소와는 충분히 다를 것이다. 이렇게나 레온으로 향하는 길은 길고 지루했다.
내일 날씨와 몸상태에 따라 버스를 탈지 일어나서 결정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흔들거리는 2층 침대 위에서 잠 못 이루다 보니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냇는지 그리고 내일은 어떻게 보내야 할지 별별 생각들이 다 떠오른다.
오늘 만실라에서 지넬과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었는데 지넬이 묵을 거라고 했던 숙소에 가서 문의를 하니 그런 사람이 없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때 당시 나는 그녀의 이름을 제대로 외우지도 못하고 왓츠앱 연락처도 없던 상황이라 어찌 던 건지 갸우뚱하고만 지나간 상황이었다.
뭐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지만 지넬은 버스 정보 같은 걸 잘 알고 있었어서 도움을 조금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빨리 잠에 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다.
Buen Cam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