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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작가 Dec 26. 2024

지루함에 대한 고찰

레온으로 가는 길

지루함에 대한 고찰

드디어 팜플로나, 부르고스를 지나 후반부로 접어드는 세 번째 도시 레온으로 접어드는 마지막 여정이다.

부르고스 이후부터 레온까지의 길은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게 되는 사막의 길임을 모두에게 경고했었다.


아나, 베로니카와 아담부부, 에스페란자, 리야가 이 지역을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레온까지 점프를 했다.

초반의 걷기에선 교통수단을 매번 이용할지도 모르겠다는 초보자의 생각은 어느새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더위와 불편하고 선택사항이 부족했던 낡은 알베르게를 사용하면서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싶은 유혹의 불씨가 머릿속에 커지고 있었다.


레온으로 가는 길에 대한 산티아고 가이드북과 내가 느낀 사설

만실라 데 라스 물라스에서 레온까지는 18.8km 떨어져 있지만 N-601을 따라 도심으로 진입하는 여정을 준비해야 한다. 만실라에서 시내로 직행하는 버스를 이용하면(1.65유로/2023년 기준) 레온으로 가는 주요 도로를 피할 수 있다.

N-601을 따라 레온으로 가는 길과 N-120을 따라 나가는 길 모두 지루할 수 있다.
버스는 아침 7시부터 30분마다 출발한다.
만약 교통편을 이용하는 것이 순례길의 정통성을 해친다고 느낀다면 각자 순례자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우리의 여정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전체 경로를 걷기로 한 결정은 어떻게 그러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버스를 타는 다른 순례자들은 부정직하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동기를 판단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알 수 있을까?
내가 하고 있는 이 목적이 “나의 일” 인가, “그들의 일” 인가, 아니면 신의 일 인가?
스스로에게 자문해 봐야 한다.

도로 옆을 쌩하게 지나가 버리는 버스와 자동차들을 보며 매일 드는 생각이다.
우리는 그 어떤 행동도 그 길 위에서 판단 없이 사랑의 마음을 품고 열린 마음으로 걸어가야 한다.
모든 발걸음을 평화와 수용을 위한 기도로 만들어야 한다.

참고 자료:A Guildebook to the Camino de Santiago-John Brierley




2023년 10월 14일 숙소

날씨: 흐리고 추워짐 비+해+구름+바람

거리:18.8km

출발지: 만실라 데 라스 물라스

도착지: 레온


오늘 걸을 것인가? 버스를 탈 것인가?

다들 일찍 일어나는 새벽 시간 나는 눈을 뜬 채 몸을 일으키지 않고 침대 침낭 속에서 눈을 말똥 거렸다.

나와 같은 침대를 쓴 이탈리아 순례자 무리가 새벽 일찍 빠져나가고 사람들이 일어나 아침 일찍 걸어갈 채비를 하는 동안 나는 춥고 습해진 날씨 변화에 적응을 못하고 여전히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어제 빨았던 빨래는 여전히 마르지 않은 상태다.

대부분의 순례자를 보내고 8시가 다 돼서 나는 윈드재킷과 고어텍스 점퍼를 주섬 주섬 입고는 챙겨 온 여분의 지퍼백에 젖은 속옷을 담았다. 텅 빈 숙소에서 괄사로 종아리와 어깨 근육을 주무르며 계속 생각하는 주제는 한 가지였다.


걸을 것인가?
버스를 탈 것인가?


조금 늦게 일어나 몸을 풀고 나자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오늘은 걸어도 괜찮을 것 같다.

대신 0층 로비로 내려와 짐을 레온 숙소로 부치기로 했다.

숙소를 가득 매웠던 순례자들은 부지런히 길을 떠나서 텅 비워져 있다.

아주 느린 나무늘보처럼 배낭을 두고 식당에서 커피를 마시고 길을 출발했다.



느린 출발 am 8:45

짐을 내려놓고 가볍게 걷기 시작했다.

새벽길 분주하게 어둠을 뚫고 나아가는 길 보다 아침 해를 맞이하고 걷는 길은 오히려 한산하고 고요하다.

만실라를 빠져 나가는 다리를 건널때 풍경이 아름다웠다.


새벽의 추위가 구름이 걷히고 이슬이 올라오며 땅에서는 싱그러운 흙냄새가 올라왔다.

한국의 가을처럼 익숙한 느낌이다.

그렇다 이제 갈리시아 지방으로 지역을 넘어 선 것이다.


레온에 가서 뭘 해야 할지 고민해 본다.

출발 전에 11월까지 쓸 유심칩을 새로 구입해야 하고, 부르고스 이후 맞이 하는 두 번째 휴가를 어떻게 보낼지 고민해 봐야겠다. 저번 부르고스 때처럼 여행을 갈 수도 있고 레온에 도착하면 도시가 나에게 영감을 줄 것이라 믿는다.


지루한 구간의 길이 몸도 마음도 지쳤지만 지나온 길만큼 내가 얼마나 많이 걸었고, 한국에서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두려움과 한계라 생각한 불가능이 얼마나 나 자신을 가둬 두었는지 순례길은 알려 주었다.



중후반부 329.5km 향해 산티아고로 걷고 있으니 그 영광은 새 거였던 내 신발 뒷굽과 다 닳아버려 터져 버린 안쪽만 봐도 증명해 줄 수 있었다. 레온에 있다고 연락이 온 안나와 조셉아저씨와도 만날 수 있다는 반가움과 설렘이 천천히 가볍게 걸으면 될 것 같이 즐겁게 느껴졌다.


일단 도시에 도착하면 대부분의 순례자들처럼 이틀 휴가를 가질 것이다.

몸에게도 충전할 시간이 필요하다. 나의 경우 부르고스에서 떠난 마드리드 문화 여행을 다녀온 후,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더 컨디션이 안 좋아졌었다. 그래서 이테로 데 라 베가에서 이틀을 더 쉬게 되었으니 말이다.



일렬로 N-601 도로를 오른쪽에 끼고 비어 있는 농지를 바라보면서 이 지겨운 길이 한국에 돌아와서는 광활하게 펼쳐진 대 자연이 눈을 감으면 계속해서 떠오르곤 했다.


아침해가 뜨고 나서 나무 길을 걸을 때면 유독 새들이 조찬 모임을 가지는 소리가 아주 시끄럽게 들린다. 듣기 싫은 소리가 아니라 오히려 정겹다. 내가 새가 하는 말을 못 알아 들어서 그럴지도 모르지?


아침서부터 내 앞에 함께 걷고 있는 스페인 아저씨 세분은 정말 쉼 없이 새들처럼 떠들어 댔는데, 새소리처럼 아름답기보다는 조용히 걷고 싶었던 나에겐 소음처럼 느껴졌다. 누가 이기나 기싸움이라도 하듯 나는 그 사람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때마다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흥얼거리며 빨리 그들과 동선이 부딪히지 않기를 바랐다.

배낭이 없기 때문에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Free Rest Area 5.6km

젖은 땅과 습한 날씨 속에 멀리서 느껴지는 따뜻한 장작 타는 냄새가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멀리서 보이는 모양이 마치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호빗의 집 같이 토끼 굴을 닮은 휴게소였다.


5.6km를 걷는 동안 빌라모로스 데 만실라를 지나 만난 화장실이 있는 무료 휴게실이다.

순례자 기념품과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실수 있는 곳이다. 자원봉사자가 안내를 하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한참 동안 얼굴을 못 봤던 이탈리아 순례자 Gian지안 아저씨와 다시 마주쳤다.

빌라바에서 알게 된 분이라 초반 동지에 대한 반가움과 그간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기 때문에 화장실 볼일을 보고 인사를 건내고 나는 도장을 찍고 나서 서둘러 가는 길을 걸어 나갔다. 왜냐하면 곧 도착할 마을 푸엔테 빌라렌테에서 아마도 식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Puente sobre el Río Porma

포르마 강을 가로지르는 인도교로 유명한 마을인 푸엔테 데 비야렌테에 도착한다.
12세기에 지어진 이 다리는 거대한 17개의 아치로 되어 있으며 현재 다리 길이는 거의 200m에 달한다.
다양한 각도로 건설되어 완전한 직선 형태가 아니다.
안전하게 강을 건널 수 있는 보행로가 건설되기 전에는 가장 위험한 지점 중 한 곳이었다.

참고 자료: 브엔 까미노 앱 중


무료 휴게소를 벗어나 조만간 나타날 마을을 기대하면서 걷다가 갑자기 포르마 강이 나타나고 숲길로 바뀌었다. 이곳에서 강을 지나가기 위해 무조건 다리를 건너야 한다. 순례자들이 걸을 수 있는 샛길과 큰 다리가 교차되면서 길의 풍경이 다채로워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에서 강과 다리를 풍경 삼아 기념사진을 찍고 간다.


유명한 관광지인 이곳을 관광하러 온 관광객들의 모습도 보인다. 어떤 순례자 커플 두 분이 서로를 찍어주고 있었는데 함께 못 찍는 것 같아서 흔쾌히 사진을 찍어 줬다.

아기자기한 길들이 예쁘게 펼쳐져 내 마음도 너그러워졌던 것 같다.

레온이 가까워질수록 마을과 카페가 나타나고 있었다.



Puente Villarente /Cafeteria viel Glück /6.3km/ 10시 17분

예쁜 다리 관광지를 지나 숲길이 끝이 나자 하나둘씩 카페와 알베르게가 보이기 시작했다.

푸엔테 빌라렌테에 도착했다. 10시 즈음이었다.


1km 전에 휴게소에서 화장실 볼일을 봤기 때문에 마을 초입 카페들은 그냥 지나쳤다. 기록이 사진으로만 남아 있는 걸 보면 현금 결제를 해서 안타깝게도 카드 기록이 안 남아 있다.

아메리카노 한잔과 “토리하”를 시켰다. 내가 느끼기에 튀긴 타르트 하고 비슷한 느낌이었다.


토리하 torrija :
길고 달콤한 토리하는 스페인의 전통, 빵 한 조각(신선하지 않지만 전날 먹은 빵이거나 이미 다소 딱딱한 빵)을 우유나 포도주에 담근 후 계란을 입힌 후 팬에 기름을 두르고 튀긴 것이다.
마지막으로 꿀, 당밀, 설탕으로 달게 하고 계피를 첨가한다. 프렌치 토스트와 매우 유사하다.


 카페를 자주 드나드는 고양이가 나에게 부드러운 털로 몸을 비벼 대며 인사를 건넸다. 나는 서비스에 감동하며 토리하를 조금 건네어줬다. 갑자기 배를 까면서 애교를 부린다. 비 온 다음날이라 그런지 등뒤로 비추는 햇살이 따듯했다. 비가 안 오니 너무 다행이다.

간단하게 브런치를 해결하고 부지런히 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살모레호

이 카페는 푸엔테를 빠져나와 점심시간이 다가오는 시간 다시 걷다가 들린 두 번째 카페에서 시킨 메뉴이다.

사하군 가는 길에 캐티와 함께 먹었던 가스파쵸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름에 먹는 냉수프인 가스파쵸는 더 이상 판매를 안 한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는 “살모레호”를 추천해 주었다.


가스파쵸는 여름 콩물 같은 느낌이라면 살모레호는 조금 더 크리미 하고 꾸덕한 같은 느낌이다. 여전히 차갑지만 한 그릇 먹으면 조금 먹어도 속이 든든하다.


살모레호 Salmorejo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 위치한 도시 코르도바에서 유래한 차가운 수프이다.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한 무어인들이 스페인으로 가져온 아몬드와 빵으로 만든 "ajoblanco"라는 유사한 요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진다.
주요 재료는 신선한 토마토, 빵, 올리브유, 마늘, 그리고 식초이다.

 이 재료들을 함께 갈아 부드러운 수프를 만든 후, 보통 상온 또는 차갑게 해서 제공합니다. Salmorejo의 특징은 그 부드러운 질감과 신선한 토마토의 맛, 그리고 올리브유의 풍미가 조화롭게 어우러 진다. 종종 삶은 달걀과 하몽을 잘게 썰어 토핑으로 올려 풍부한 맛을 낸다. 여름철에 시원하게 즐기기 좋은 요리로, 안달루시아 지방의 무더위를 식혀주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가스파초 Gazpacho
스페인 남부의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유래된 음식으로서 가스파초라는 명칭은 아라비아어로 '젖은 빵'이라는 뜻이다. 12세기경 스페인이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을 때 요리법과 명칭이 함께 전해졌다고 한다. 덥고 건조한 스페인의 여름철에 일반 가정에서 흔히 만들어 먹는다.

여러 가지 채소를 잘게 썰거나 갈아서 마늘을 조금 넣고 식초를 섞어서 만드는데, 익히지 않고 그대로 냉장고에 넣어 두어 차갑게 하여 마신다. 또는 여기에 빵을 잘게 잘라 넣어서 걸쭉하게 만들어 먹기도 한다. 재료는 토마토 4∼5개, 양파 2분의 1개, 오이 1개, 빨간 피망 1개, 마늘 1쪽, 식빵 2장과 약간의 완두콩 등이다.(1인분 기준)


Bar Mangas

정확히 이 카페 장소가 어디였는지 직접 걸으면 알 수 있는 기억으로만 내 머릿속에 남겨져 있다. 이렇게 글을 쓰다가 문득 기억의 일부가 증발해 버린 느낌을 받을 때면 다시 그곳으로 찾아가 확인받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다. 그래서 다들 다시 그곳을 걷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대략 Valdelafuente 발델라푸엔테 인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푸엔테 빌라렌테에서 6킬로 정도를 더 걸으면 나타나는 마을이다. 그전까지는 고가 도로와 차뿐이었다.

 내가 기억으로 남은 이미지는 푸엔테 빌라렌테에서 커피를 마신 지 얼마 되지 않아 만난 작은 마을에서 멈춰 서서 고속도로를 들리기 전 들렀던 마지막 카페였던 것은 기억이 난다. 그리고 테라스가 꽤 커서 많은 순례자들이 마지막으로 이곳에 들러 점심을 먹고 레온까지 남은 길을 떠났다.


아까 무료 휴게소에서 만난 지안 아저씨와 다시 만나 같이 점심을 먹고 나서 함께 길을 걷게 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저 아는 사이였으나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걷게 되면 모두 친구가 될 수밖에 없다.

상업기구가 있는 곳이라 차들이 많아서 항상 조심히 걸어야 한다.


이탈리아 지안 아저씨

아저씨는 일본, 태국 등 많은 나라를 여행 다녔다고 한다. 유럽의 장년층 들이 그렇듯 전 세계를 여행 다닌다.

Arcahueja 아르카후에하 부근 같이 언덕이 있는 마을에 작은 별장이 있다고 했다.


뭐 그 말이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진지하게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나는 잠시 걸으며 지루함을 달래고자 혹시 노래 들어도 되는지 물었더니 한국노래를 추천해 달라고 해서 함께 노래를 들으며 걸어 나아갔다. 한국노래를 흥얼거리며 함께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레온에 도착했다.



드디어 레온

부르고스 이후에 처음 맞이 하는 대도시에 나는 시골에 처음 상경한 사람 마냥 신이 났다.

부르고스 보다 훨씬 규모도 크고 성당도 웅장해 보인다. 팜플로나처럼 건물이 촘촘히 붙어 있지도 않다. 레온은 전국 스페인 사람들과 관광객들이 그리고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대도시였다.


아저씨는 예약을 하고 걷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공립 알베르게로 향했다. 나는 예약한 숙소로 향해 나아갔다.

도시는 메인 대성당으로 걸어 들어가는 게 시간이 더 걸려서 외곽에서부터 도심을 가로질러 한참을 걸어 들어가면서 레온시내를 구경할 수 있었다.



Zentric Hostel 14:03

아저씨와 인사를 나누고 나는 더 도심으로 들어갔다. 사설 숙소에 예약을 한 이유는 간단하다. 깔끔하고 조용한 곳이 절실했다. 2배나 가격 차이가 나는 곳이라 아무래도 여러 면에서 서비스 질의 차이가 날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이틀을 묵을 건지 정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급하게 잡은 숙소였고 그렇다고 가격이 저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하루 묵어보고 다른 숙소로 이동할지도 모르겠다.


숙소를 가는 길은 점점 번화한 광장이 나타났다. 숙소 앞에는 현대미술관이 있고, 에버랜드에서나 볼법한 오픈형 관광차가 도시 명소를 돌고 있었다. 아직 체크인 시각 전이라 미리 도착해 있던 순례자들과 문 앞에서 대기를 했다. 고풍스러운 숙소의 대문이 마음에 들었다.


젠트릭 호스텔은 유럽 전통 방식의 아파트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원형계단 중간에 사람이 두세 명이 겨우 들어갈만한 엘리베이터가 있다.

숙소의 컨디션은 공용화장실과 샤워실, 세면실, 공용거실이 있는 아기자기한 가정집 구조였다.


호스트도 같이 지내고 있다. 체크인을 위해 3층 프런트로 들어서자 아는 얼굴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피터, 벤, 브라이언 삼총사 아저씨들과 만실라에서 사라졌던 지넬도 그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 숙소에 오늘 동양인은 나와 한국인 아저씨 딱 두 명이다. 그리고 거실에 앉아 있는 익숙한 뒤통수를 보자마자 나는 그분들에게 Gooday Mate! 하고 인사를 했다. 호주 여성 커플 분들이었다. 세상에! 만날 사람은 다 만난다고 하더니 이곳에서 다 만난다.


체크인을 하는 동안 젠트릭의 귀여운 마스코트 고양이가 순례자들에게 재롱을 떨며 영업을 했다.

호스텔에서는 어메니티도 제공 됐다. 스페인 감기약과 머리빗과 거울 세트 그리고 근육크림까지! 대박이다.

25유로에 이 정도면 정말 남는 게 있으려나?



안전하게 도착한 빨간 내 배낭을 보자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제야 나는 거실에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분수광장이 창가에서 바로 보이는 곳이었다.

대도시에 도착하면 다들 공립알베르게에 가지 않고 사설 숙소를 잡거나 개인 아파트를 비엔비로 렌트하고 휴식 시간을 갖는다. 그래서 지안 아저씨는 오히려 레온의 공립알베르게는 텅 빈 공간을 혼자 쓰는 것처럼 사용하고 있다고 소식을 전해주셨다.  



호스트가 방과 규칙들을 알려주고 면으로 된 시트를 전달받았다. 어메니티로 나눠준 근육크림은 너무 커서 지넬과 함께. 소분해서 가지고 다녔던 바세린 소분통에 나눠 담았다.


4인용 방에 이미 지넬은 버스를 타고 일찍 도착해 짐을 푼 상태였고 맞은편 침대는 이미 예약자리라고 해서 나는 2층 침대를 써야 했다.

그래도 아는 사람과 함께 쓰니까 크게 나쁘진 않다. 지넬과 같이 다시 쓰게 되다니!

나는 만실라에서 너를 찾았다고 말했더니 그날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고 얘길 해주었다.


빨리 씻고, 젖은 빨래도 다시 널어놔야겠다.


저녁에 안나를 만나기로 했으니까 그전에 볼일을 다 봐야 할 것 같다.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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