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부르고 라네로 가는 길(El Burgo Ranero)
출발 계획 캐티와 함께 걷거나 혹은 캐티 몸상태에 따라 혼자 걸을 수도 있다.
무거운 짐을 들을 때마다 아물었던 물집이 다시 생기길 반복하면서 오늘은 17킬로 엘 부르고 라네로 까지만 걷기로 생각하고 짐을 딜리버리로 보내려고 한다.
함께 걷는 게 즐겁고 좋지만 누군가 함께 하는 것에 의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새벽 6시 30분
알람을 켜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럽게 눈이 떠졌다.
아무래도 캐티는 어제 20킬로를 걸은 것이 무리였던 것 같다. 짐을 챙기느라 부스럭 대는 소리에도 깨어나지 않았다.
숙소 1층에는 짐을 보낼 수 있는 택배용지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조용히 숙소를 빠져나와 무니시팔 알베르게 쪽 근처 알베르게 겸 카페에 가서 짐을 맡길 생각으로 카페로 갔다.
캐시는 오늘 출발할지 쉴지 아직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쉽지만 나는 내 속도에 맞춰 계획대로 몸을 움직였다.
Albergue Hostel Sahagún
무니시팔 알베르게 맞은편에 자리 잡은 이 사설 호스텔은 새벽부터 순례자들의 아침을 깨우기 위해 유일하게 문이 열려 있는 곳이었다. 나는 불이 켜져 있는 카페로 들어가 짐을 보낼 수 있는지 물었다.
호스트는 로비 앞에 내려 두고, 택배 봉투를 매달아 두라고 안내를 해주었다.
어제 만났었던 미국인 순례자 역시 아침 커피를 마시기 위해 카페로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카페 아메리카노를 시켜 마시고는 배낭을 호스텔 로비에 두고 길을 떠난 채비를 마쳤다.
7시 19분 사하군에서 출발
동이 트는 아침해를 바라보며 사하군 골목을 빠져나왔다.
혼자서 걷는 길은 동이 트는 추위처럼 잠시 외로움이 느껴지지만 해가 떠오르면서 금세 그런 마음은 빠른 발걸음으로 옮겨진다. 혼자 걷는 길의 장점은 빨리도 느리게도 내 마음대로 갈 수 있다.
오늘 걸음은 아주 짧고 가볍다. 엘 부르고 라네고를 지나 렐리에고스까지는 30.6킬로미터를 걸어야 한다.
중간에 텀이 없이 10킬로를 더 걸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른 고민 없이 17.7킬로미터 도착지인 엘 부르고 라네로를 잡았다.
사하군을 빠져나오며 마주한 유적지들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칸토다리를 지나 도시를 빠져나오는 구간 그늘 하나 없던 좀 전의 길들 과 다르게 조금씩 길의 모습도 바뀌고 있었던 것 같다.
10시경 베르시아노(Bercianos)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테라스에서 쉬고 있는 호주순례자들의 인사를 받으며 그들이 코알라처럼 앉아서 쉬고 있는 음식점으로 고민 없이 들어갔다. 일단 화장실이 가고 싶었기 때문에 가릴 때가 아니었다. 두 분은 언제나 느긋하게 어딘가 앉아 계시는데 늘 나보다 한 템포 빨리 걸었다. 늘 짐을 보내고 걸으니 당연한 거긴 한데 늘 신기했다.
Bercianos 1900 / 오전 10시 14분
빌라카자르 데 시르가에서부터 알게 된 아나의 지인은 길을 지나칠 때마다 자주 마주쳤다. 아나보다도 더 많이 본 사이가 되었다.
우리는 며칠간 수차례 마주쳤음에도 서로 대면대면하게 인사만 나누는 사이였었다.
테라스를 지나 메뉴판이 있는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그곳에는 지넬이 주문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왜인지 늘 붙어 다니던 단짝이 없이 혼자 걷는 듯 보였다.
지넬은 나를 보고는 빌라카자르 데 시르가에서부터 오늘 여기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카미노까지 대략 53km를 걷는 동안 하루에 두세 번을 마주쳤으나 우리는 이제야 통성명을 하고 인사를 나누게 된 것이다.
지넬: 맙소사! 우리 계속 마주치고 있는 거 알지? 제대로 인사해야 할거 같아! 나는 지넬이야.
나: 그러게 말이야. 나 역시 우리의 걷기 속도가 비슷하다고 느끼고 있었어. 나는 한국에서 왔어. 나는 “Yang”이라고 불러줘.
나는 메뉴판에 그림이 그려져 있던 베이컨 에그 토스트와 커피를 주문하고는 마당 쪽 테이블에 가방을 두고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지넬 이야기를 다시 더 이어 가자면 우리는 이날 이렇게 통성명을 나누고 안면을 튼 이후에도 마지막 산티아고까지 비슷한 템포로 길을 걸어 나갔다. 그때 서로 통성명을 하며 운을 띄운 것은 현명한 판단이었던 것 같다.
볼일을 보고 나오니 마당 쪽 테이블에는 지넬 말고도 몇몇 눈에 띄는 인물들이 보였다.
사하군 가는 길에 마주쳤던 나비처럼 가볍게 걷던 프랑스 순례자와 그 옆에 함께 있던 러시아 순례자 그리고 하얀 옷을 곱게 입고 걷는 프랑스 언니와 동생 순례자였다.
여기도 웨이터 혼자 주문과 서빙 그리고 요리까지 모든 것을 다하기에 화장실을 다녀왔음에도 여전히 내가 주문한 음식은 나오질 않고 있었다. 나는 내 지팡이를 만지작 거리며 음식이 나오길 기다렸다.
스몰토크
나비처럼 가볍게 걷던 프랑스 순례자는 나를 보자 아는 척을 하며 운을 띄웠다.
나비 프랑스 순례자: 걸으면서 너를 몇 번 봤었어.
나: 저도 당신을 봤어요.
나비 순례자: 그 지팡이는 어디서 구한 거니?
나: 이건 피레네산에서 찾았어요. “메이드인 프랑스“에요. 이건 특별해요. 스페인산이 아니랍니다.
아주 튼튼하고, 가볍고 모양도 아주 아티스틱 하죠. 이 지팡이는 나에게 걸을 힘을 줘요.
그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 모두 엄마미소를 지었다.
나: 오늘 짐을 보내놔서 아주 가볍게 걷고 있어요.
이 나비 순례자를 소개하자면 프랑스분이었고 이름은 실비였다, 옆에 있던 여자 순례자는 러시아 사람이고, 독일에 산다고 하다. 그러면서 불어, 영어, 독어, 그리고 스페인어까지 가능한 순례자였다.
이곳도 두 갈래 길이 있다고 들었다.
순례길 변형 루트
하나는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까지 이어지고, 좌측 변형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카미노, 엘 부르고 라네로와 렐리에고스를 지나간다. 우측 변형 루트는 “트라하나 길” 혹은 “칼자다 데 로스 페레그리노스“로 알려져 있으며, 칼자다 델 코토와 칼자디야 데로스 헤르마니요스를 지나간다.
첫 번째 루트(좌)는 32.15km로 더 짧고(후자는 32.8km),
두 번째 루트(우)는 보존이 가장 잘된 길 중 하나인 로마 도로를 지나간다.
이 두 루트 모두 대부분의 구간에 그늘이 없다.
참고 자료: 부엔 카미노 앱, 프렌치: 카미노웨이 앱
그때는 짐을 부치는 것도 도착도 꼭 책자에 나온 루트대로 하라는 대로 움직였다. 길을 걷다 보면 한두 개씩 안내서에는 안 나오는 숙소가 꼭 나타난다. 우연성에 때라 그 길에 멈춰 쉬는 것도 정말 재밌고 멋진 일이었을 텐데 말이다. 나는 부르고스 이전의 빌라바나 비아나 때처럼 우연성을 가지고 묵었던 숙소에서 더 재미있고 좋은 인연들을 만들었었다.
하지만 초반의 길에 비해 중반부의 평탄한 사막의 길에서 그런 우연성은 많았던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공립숙소나 기부제 숙소에 머문 기억들이 더 많다. 여전히 나오지 않는 음식을 기다리다 지칠 때 즈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음식이 나왔다.
이미 지넬과 나머지 분들은 음식을 거의 다 먹고 난 후였다.
여기서 컴플레인은 크게 소용이 없다 빨리 먹고 터는 게 낮다. 지넬은 내가 먹을 동안 앉아서 기다려 주었고, 실비와 러시아 순례자는 먼저 자리를 떠났다.
사하군에서 발 마사지 하는 곳을 알려주었던 미국인 순례자는 내 옆에 앉아서 옆에 같이 걷던 동양인 뉴요커 남자분과 쉼 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미국인들은 안면을 트고 나면 정말 많이 많다. 스페인 사람들의 시끄러움과는 다르다. 평상시는 아주 조용히 고요를 즐기는 사람들 같다가도, 축제나 술을 마시면 정말 시끄러워지는데 비해 미국인들은 일단 말을 트고 나면 말이 끊기지 않는 달까?
이 미국 순례자는 렐리에고스까지 30km를 걸을 예정이라고 한다. 나는 거한 브런치를 먹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시 길을 떠났다.
내가 오늘 견뎌야 할 무게는 뜨거운 햇볕과 지루함 뿐이다.
길은 계속 한쪽에는 그늘을 만들어주는 가로수들과 작은 도로가 나있어서 길이 어려운 길은 아니었다.
그 덕에 나는 일찍 엘 부르고 라네로에 도착할 수 있었다.
10시에 브런치를 거하게 먹었음에도 엘 부르고 라네로에 도착했을 때 보였던 라면을 파는 스페인 음식점에서 발길이 멈춰 섰다. 사실 12시가 가까워지는 시간
내 발은 더 걸어갈 수 있을 만큼 상태가 좋았다. 거의 반나절 만에 엘 부르고 라네로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낮시간에 그것도 한국 라면을 파는 한국어 간판을 보고 나니 나는 고민 없이 식당으로 들어갔다.
끼니를 시간에 맞춰 먹기는 하지만 계속 하루종일 걷는 순례자들은 항상 배가 고프다. 정말이다.
캐티가 알려준 단어 “Hangry”라는 단어처럼 나는 항상 배가 고파서 화가 나 있었으니까. 먹을 거 주는 사람이 제일 여기선 좋은 곳이고 좋은 사람인 것이다.
Hangry라는 뜻은 캐시와 걸으며 우리가 늘 배고파한다는 이야기를 한창 하며 알려준 슬랭이다.
Hungry+angry=Hangry라는 용어였다. 나는 이 단어를 듣자마자 나에게 찰떡으로 입에 붙어 늘 말을 했다. 실제로 배가 고프면 화가 났기 때문이기도 했다.
La Costa Del Adobe, El Burgo Ranero/ 12시 35분
엘 부르고 라네로는 칼자딜라만큼이라 죽은 도시였다. 소수의 현지인들과 오직 순례자만 남은 마을이었다.
전통 가옥인 흙벽돌로 지은 2층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나는 순례자들이 몰려 있던 음식점에 쓰인 라면 메뉴를 보고는 바로 음식점으로 들어가 메뉴를 시켰다. 식당 안쪽에 마당에 마련된 테라스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아까 베르시아노스에서 만났던 러시아 순례자가 혼자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다시 인사를 나누며 통성명을 했다.
이름: 다리아
국적: 러시아
사용언어: 러시아, 독어, 불어, 스페인어, 영어
채식주의자
다리아: 나 한국에 여행한 적이 있어.
나: 어디?
다리아: 대구와 서울
다리아는 차가운 인상이긴 했지만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곳에서 한국식 라면을 팔아서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하고는 마침 바로 라면이 나왔다.
다리아는 야채볶음 같은 것을 먹으며 자신을 채식주의자라고 얘길 해주었다.
해가 너무 뜨거워서 그늘 천막이 있는 곳이 아니면 눈을 제대로 뜰 수 없기 때문에 그늘 천막자리에서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라면은 파스타처럼 기다란 볼에 젓가락과 함께 나왔다. 정말 설명서 대로 정직하게 끓인 라면이었다.
순례자를 위한 시
다리아는 식사를 거의 마쳤고, 다음 종착지인 렐리에고스까지 10km를 더 걸어야 하기 때문에 바쁘게 몸을 잃으키려고 하는데, 갑자기 식당 안에 어떤 수도사 복장을 하신 분이 나타났다.
그분은 안에 있는 순례자들을 살피더니 나에게 다가와 쪽지를 건넸다.
쪽지내용은 순례자를 위한 시였다.
길을 걸으며 별별 신기한 일들이 많기 때문에 마침 지루하던 참에 겪게 된 재밌는 이벤트 같이 느껴졌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말도 안 되는 경험을 많이 하곤 하니까. 그렇지만 나는 아직까지 캐티처럼 작은 성당에서 나눠 주는 작은 펜던트라던가 세족식 같은 이벤트를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 건네어 받은 쪽지는 마치 순례길에서 경험한 영화 같은 이벤트로 느껴졌다.
어떻게 받아들이면 상점에 들어온 잡상인 일수도 있었을 이벤트에서 쪽지에 건넨 시를 읽어봤다.
내용을 번역해 보자면
세인트 제임스의 길은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천 명의 순례자들이
걸어 다니는 먼지와 진흙, 태양과 비입니다.
순례자,
누구의 목소리로 당신을 부르나요?
어떤 숨겨진 힘이 당신을 이끌고 있습니까?
은하수의 별도 아니고,
위대한 대성당의 유혹도 아닙니다.
나바라의 야생 중심지도,
풍부한 리오잔 와인도,
갈리시아의 조개류도,
넓은 카스티야의 들판도 아닙니다.
순례자,
누구의 목소리로 당신을 부르나요?
어떤 숨겨진 힘이 당신을 이끌고 있습니까?
가는 길에 있는 사람들도 아니고, 땅의 관습도 아닙니다.
역사나 문화가 아닙니다.
라 칼자다의 수탉도 아니고,
가우디의 궁전도 아니고,
폰페라다의 성도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을 기쁘게 보고,
본 후에는 지나갑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전화가 오는 목소리가
내면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나를 이끄는 힘
저는 절대 설명하거나
보여줄 수 없습니다.
나를 끌어당기는 힘
위의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유지니오 가리베이(거래자 존 라이언)
내가 인상적으로 들어온 문구는 “ 당신은 누구의 목소리가 당신을 부르고 있나요? 어떤 숨겨진 힘이 당신을 이끌고 있나요?“ 지나가는 수도사가 건네준 쪽지의 내용에서 내가 생각한 건 긴 시간 등을 돌리고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나 자신과의 대화의 시작이었다.
때마침 나온 라면과 쪽지가 조금 웃긴 상황이긴 했지만 많은 질문을 건네었던 것은 사실이다.
5유로나 되는 비싼 라면을 불게 놨둘수는 없는 노릇이니 다리아와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길로 헤어졌다.
Albergue Municipal Domenico Laffi 13시 04분 도착
두시 체크인 시간 전에 도착한 부지런한 순례자들이 이미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아까 봤을 때만 해도 아무도 없었는데 역시나 기부제 공립 숙소는 예약이 불가능한 선착순 제도로 일찍 도착하는 사람들만 숙소에 묵을 가능성이 높다.
숙소는 아까 라면을 먹었던 식당 뒤 블록 외곽에 있다. 건물은 역시나 흙과 목조건물로 지은 전통 건물이었다.
도미니코 라피 알베르게는 굉장히 유서 깊은 순례자의 이름 따서 지은 알베르게이다.
도미니코 라피는 자신의 순례를 기록한 순례자였는데 특별한 점은 300년 전에 했다는 것이다.
300년 전에는 고어텍스도 없고 워터푸르프 방수 배낭도 없었을 텐데 그 비와 더위를 다 맞으며 걸었을 것 을 생각하니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이 기부제 알베르게는 자원봉사자들이 순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알베르게를 관리한다.
체크인
긴 줄을 서서 드디어 빨간 베스트를 착용한 자원봉사자분이 체크인을 하고 도장을 찍어주셨다.
보통 자원봉사를 하시는 분들 역시 순례길을 완주한 경험이 있는 분들이 자원봉사 교육을 거쳐 알베르게 자원봉사를 하기 때문에 그분들에게 길에 대한 안내를 받으면 팁을 많이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숙소는 기부통에 돈을 넣는 것을 자원봉사자 분이 감시? 하듯이 지켜보고 있다. 나는 기부금 10유로와 시트를 추가로 구매해서 1유로를 더 내고 2층 숙소 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룸메이트
내가 갔던 숙소 중에 가장 오래되고 자연적인 숙소였는데 나는 숙소에 짐을 풀고 씻고 나오자마자 갑자기 잊고 지냈던 알레르기가 돋았다. 아마도 이곳에 베드버그, 각종 먼지인지 일단 알 수 없는 원인으로 내 알레르기가 올라와 약을 먹어야 했다.
흙과 나무 목조로 지은 건물 천장이 다 보이는 구조였다. 천장엔 아주 오래 묵은 먼지와 거미가 보였다.
나는 2층 침대만은 안 쓰길 원했으나 이미 도착해 짐을 푼 부지런한 순례자들이 이미 1층을 차지 한지 오래였다.
방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보인다.
침대는 8인실 벙커침대였고, 방원들은 모두 여자였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게 가벽으로 설치한 벽 옆에는 말하는 숨소리까지 다 들릴 정도로 윗 천장 구조가 뚫려 있어서 오픈된 공간이었다.
나와 같은 침대 1층을 쓰는 지넬, 맞은편 2층에 누워 여전히 타자를 치고 있던 세네카, 그리고 퉁명스러웠던 발바닥 왕물집이 잡힌 시카고 순례자 이 세 명이 내가 길을 걷던 중 가장 특이했던 순례자 들이었는데 한꺼번에 만나게 될 줄이야.
침대에 짐을 풀고 1층 샤워장에 가서 샤워를 했다.
이곳은 다행히 버튼식 샤워 버튼이었으나 따뜻한 물도 잘 나오고 그렇게 화장실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인 아저씨 순례자들
씻고 뒷마당에 가서 속옷과 옷을 말리는데 며칠간 못 봤던 한국인 아저씨 순례자들이 보인다.
꼭 특정해 아저씨를 붙이는 이유는 모든 한국인 순례자가 그렇지는 않다는것을 표현하고 싶어서이다.
특히 한국인 아저씨 순례자들은 대부분 비싼 숙소에는 잘 머물지 않는다. 대부분 공립 알베르게나 프렌치 웨이 앱에서 안내하는 숙소에 주로 묵는 편이라 이곳에서도 역시나 많은 한국인 순례자들이 머물고 있었다. 특히 아저씨들의 경우 걷기의 목적이 술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낮부터 아저씨들끼리 모여 술을 마신다. 거의 아침부터 술을 마시는 국적의 사람들을 보면 아일랜드 혹은 한국 “아저씨” 들이다.
아 맞다! 나는 체크인을 마치고 기부금을 넣기 전 짐이 안전하게 이곳에 도착했는지 확인을 마쳤다.
알레르기 때문에 몸을 벅벅 긁으며 돌아다녔다.
중학교 때 산골 기숙사 학교에 살면서 근처 경험한 흙집은 사람에게도 열린 공간이었으나 그만큼 벌레나 동물들에게도 열려 있었다.
처음 사귄 아시아 순례자들
방에 있던 중국인 순례자 리야와 일본인 순례자 모모카상이다.
길을 걸으며 대만 순례자들은 종종 봤지만 중국인 순례자는 이번이 두 번째인 만큼 귀하다. 게다가 이 친구는 스페인 그라나다라는 지역에서 유학을 마치고 순례길을 걷고 있다고 했다. 모모카상은 일본 순례자로 칼자딜라 이후 아야상과 안면을 트고 두 번째로 알게 된 일본 사람이었다. 모모카 역시 배낭에 벚꽃 팬던트를 매달고 다닌다.
조금 아는 일본어와 영어보다 중국살이와 조금 길게 배웠던 중국어로 리야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 친구는 갑자기 중국어를 하니 경계를 금방 쉽게 풀었던 것 같다. 길 초반에 심하게 넘어져서 무릎을 다친 상태였다. 모모카상은 어릴 적 남미로 교환학생을 가서 리야와 모모카상 둘 다 스페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상황이었다. 이 둘은 익숙하게 영어와 스페인어를 자유롭게 썼고, 중국어와 일본어가 뒤섞여 수다를 떨었다.
한방에 한중일이 이렇게 대통합되는 것도 드문 일인데 내가 중국어까지 하니 리야는 굉장히 신기해하며 이야기를 열어나갔다. 이 둘은 스페인 생활이 익숙한 듯 시에스타를 준비 중이었다. 우리의 대화가 신기해 보였는지 세네카는 어느새 2층 침에서 내려와 다가와 인사를 나눴다. 리야는 무릎 상태가 많이 안 좋아서 무릎에 붕대를 하고 있었는데, 내일 이곳에서 기차를 타고 레온까지 갈 예정이라고 한다.
나는 샤워를 마치고 몸을 말릴 겸 바깥으로 다시 나왔다. 시에스타 시간이라 상점이고 슈퍼마켓도 다 닫혀 있다. 별수 없이 숙소로 돌아와야 했다.
지넬과 숙소 얘길 했다. 샤워실 하수구가 막혔는지 물이 넘쳤다고 한다.
다행히 나는 일찍 샤워를 해서 하수구 사고를 겪지 않았지만 지넬 역시 길 초반부터 이유 모를 알레르기로 고생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 숙소도 상태를 계속 수시로 주시하고 있었던 것 같다.
무니시팔 알베르게가 좋은 점은 늘 보던 사람들이 아니라 처음 만나는 순례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슈퍼마켓 16시 34분
일찍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면 여유시간이 많다. 그만큼 휴식시간도 길기 때문에 여가를 보내기에 좋은 것 같다.
대부분 문이 닫혀 있는 마을 상점 사이로 유일하게 문이 열려 있던 슈퍼마켓 앞에 순례자들이 진을 치고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곳에 들어가 과일과 맥주 한 캔 그리고 초콜릿과 비상식량을 구매했다. 이곳은 카드가 안된다. 후덕한 인상의 주인 아줌마는 참 친절했던 걸로 기억이 남는다.
아이스크림을 너무 먹고 싶었는데 여기 스페인의 재미있는 구조는 슈퍼마켓에서는 생필품 위주의 물건들만 팔고 과자 사탕류는 과자전문점에서만 팔아서 슈퍼에 아이스크림 판넬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래서 나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아이스크림을 찾아다녔는데 판넬이 있는 레스토랑에 들어가 아이스크림 문의를 해봐도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나는 어차피 돌아다니다 보니 저녁시간이 가까워지기도 하고 다시 점심에 갔었던 레스토랑에 가서 거한 저녁을 시켜 먹기로 했다.
거한 저녁/19시 00분
야채샐러드 11유로+ 콤비네이션 세트(감자튀김+돼지고기+야채) 7유로+잔 와인 3.50=21.50유로
나는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먹지 못했다.
아이스크림을 사 먹지 못한 채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 0층에 공유공간에는 저녁 식사를 직접 해 먹거나 핸드폰 충전 때문에 테이블에 앉아서 쉬고 있던 순례자들이 있었다. 그중에 모모카상은 저녁을 먹고 있었고 독일인 순례자가 핸드폰 충전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찾고 있는데 어디에도 팔지 않는다는 얘기로 모모카상과 이야기를 시작하며 자리에 합석했다.
저녁식사시간이 한참 지나 거의 8시가 지나서 숙소에 왔기 때문에 주변은 이미 어두워진 상태였다.
와인을 한잔 한 상태에서 숙소로 돌아와 아까 슈퍼에서 샀던 맥주 한 캔을 따서 마셨더니 취기가 올라왔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영어가 술술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 둘은 상당히 조용한 스타일에 원래도 말이 많지 않은 나라 사람들이다. 나는 초반에 취기에 아이스크림이 마을에 팔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떠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더위와 섞어마신 술기운이 한꺼번에 올라온 듯했다.
독일인 순례자 사빈 /instagram @holistic_soul_life
사빈은 뮌헨 근처 Buchenberg라는 곳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다고 한다. 보통 하루에 30km를 걷는다고 했다. 수잔도 그렇고 전에 만난 독일인 젊은 청년도 그렇고 내가 만난 독일 사람들은 죄다 집에서부터 걷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게다가 나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사빈은 나와 또래라는 걸 알게 되고 나서 좀 더 친해 졌던 것 같다. 독일인들 특유의 차가움이 조금씩 녹아드는 게 느껴졌다.
(옆나라가 붙어 있으면 이런 일이 가능한거겠지? 우리나라도 통일이 되면 대륙을 횡단할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지나갔다.)
모모카상
모모카상은 대학을 졸업하고 순례길을 걷고 있다고 했다. 내일은 25km 이상 걸을 예정이라고 한다.
Say Hi 통역앱
나는 재미있는 앱이 있다고 소개를 하며 본인들 나라말로 자기소개를 통역앱에 마이크를 통해 이야기를 시도해 봤다.
확실히 영어를 할 때 목소리와 모국어를 쓸 때 느낌이 훨씬 더 자연스러웠다. 우리는 여고생들처럼 저녁 취침시간이 다 되었음에도 키득거리며 민폐를 끼쳤다. 만약 그 둘도 그 상황이 불편하고 혼자 쉬고 싶었다면 아마 자리를 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셋은 한 테이블에서 통역앱 하나로 각자의 나라 언어로 자기소개를 하며 서로 마음을 열어나갔다.
사빈은 나처럼 길에서 구한 나무지팡이를 가지고 다녔다.
나도 내 지팡이를 보여주며 서로의 지팡이를 자랑했다.
아마도 다들 내일은 각자 다른 도시에서 쉬게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왓츠앱으로 연락처를 교환하고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잠잘 시간
방에 들어와 천장구조물을 보고 있자니 어제의 안락한 숙소가 떠올랐다. 약을 먹어 망정이지 아마 알레르기 약을 안 먹었다면 지금도 계속 긁고 있었을 것이다.
천장 위로 어느 방에선가 울리는 코 고는 소리가 천장에 공명한다.
나는 흙집인 것보다는 위생이 좋지 않았다고 평하고 싶다.
구글리뷰에는 저렴한 가격에 잘 수 있어 좋았다는 리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리뷰를 보면 순례자들의 기본적 숙소에 대한 기대치가 얼미나 낮은지 보여주는 기본 사례가 아닌가 싶다. 오늘은 배낭을 보내고 완만한 경사의 거리를 17킬로밖에 걷지 않았기 때문에 내일은 나 역시 배낭을 메고 25km 정도를 걸을 예정이다.
엘 부르고 라네로를 기억하라고 한다면
순례자를 위한 시, 흙집, 천장구조물, 순례자, 가벼운 발걸음, 알러지, 좋은 사람들로 모모카 상이나 사빈 지넬과 종종 소식을 물을 때마다 기억 속에 묻혀 있던 엘 부르고 라네로가 되살아나는 것 같다.
내일은 비예보가 있고 잠이 잘 오지 않지만 어제 캐티가 줬던 강력한 귀마개를 꽂고 잠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다. 기온이 떨어질 거라는데 피레네를 지나 수비리 가는 길 빼고는 비가 오질 않았어서 내일 상황이 돼 봐야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두 잠자리에 들었지만 한참을 핸드폰을 보고 뒤척이다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아두고 비로소 잠을 잘 시도를 했다.
내일은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Buen Cam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