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온 Leon
이테로 데 라 베가 다음으로 맞은 휴가였다.
부르고스 이후의 걷기는 체력 저하로 컨디션 조절을 잘 못했었다. 하지만 그때와는 또 다른 복병은 레온 이후 급격히 바뀐 날씨였다.
바로 “비”인 것이다.
매일 비를 맞는 것이 내리쬐는 뜨거운 태양을 받으며 걷는 것과 어느 것이 낮으냐고 물어본다면 태양이 좋았다 얘기 할거 같다. 앞으로 격을 일들은 이 길의 생활과 20km 걷기에 익숙해진 순례자들의 이야기니 말이다.
정말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더니 딱 그 말이 맞았다.
그런 부분에서 레온에서의 휴식은 꼭 필요한 쉼표였다.
젠트릭 숙소에는 개인 샤워실에 목용 용품이 비취되어 있었다.
샤워부스 바닥도 시멘트가 아니라 깨끗한 타일이다.
이런 평범하면서도 당연한 것들이 당연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된다.
지넬과 방 안에서
지넬은 유튜브에 카미노 여행기를 항상 촬영을 하며 업로드하기 때문에 핸드폰 충전을 자주 해야 했다.
충전잭을 잘못 구매해서 다시 사러 가야 한다고 하다. 우리는 이제 옆집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스몰톡을 즐기는 사이가 됐다.
미국인 여행자
만국 공통어가 영어인 상황에서 미국인들은 제2외국어인 영어로 소통하는 외국인들에게 천천히 말하는 법이 잘 없다. 그래서 호주여행자가 남아프리카 공화국 그리고 필리핀, 영국 여행자들보다도 말을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
나는 샤워를 마치고 향기로운 샴푸향을 뽐내며 방으로 들어왔다.
젖은 속옷과 빨래를 꺼내 방에 걸어놓았다.
아까 레온에 도착하기 전에 연락이 닿았던 조셉 아저씨는 나에게 레온에 있는 아시안 슈퍼마켓 정보를 알려 주셨다.
저녁에 안나를 만나기 전에 도시를 돌아보며 장을 봐야겠다.
나는 공용주방에서 가지고 다녔던 순라면을 꺼내 먹고 도시 구경을 할 겸 아시아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숙소에서 1.2km 정도 되는 골목 건물숲을 헤치며 찾아가야 한다. 씨에스타 시간이라 대부분 문이 닫혀 있었다. 열려 있는 곳들은 체인점인 LUPA market이나 아시아 슈퍼마켓 같은 다국적 음식점들이 다였다.
숙소의 위치가 메인 시가지였다면 아시아 슈퍼마켓들의 특징은 항상 시내 외곽의 후미진 곳에 위치한다. 그래서 성곽을 벗어나 한참을 찾아야지만 그곳에 슈퍼마켓이 있을까 싶은 곳에 슈퍼 마켓이 있다.
나는 가는 길 볼거리가 많아서 시간이 더 지체됐다.
안나와 만나기 전에 서둘러 길을 가야 한다. 슈퍼마켓에는 한국과 중국에서 볼법한 현지 조달 음식들이 가득했다.
나에게 필요한 건 비상식량으로 가지고 다닐 라면 한 개면 충분하다. 아까 급하게 먹은 라면이 매웠는지 속에서 불이 나는 것 같다.
나는 이곳 레온에서 이틀을 푹 쉴 계획이니까 서두를 필요가 없다.
안나는 오늘 레온대성당에서 기념 콘서트가 열릴 거라고 그곳에 가자고 얘길 했었다.
나는 전혀 모르는 정보였으나 문화행사를 무료로 즐길 수 있으니 언제나 대환영이다.
도시 성곽 주변을 돌아다닐 때마다 나타나는 거리의 음악가들이 보였다.
그들의 음악이 있어 이 오래된 도시를 더 낭만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 같았다.
나는 평상시처럼 얇은 셔츠를 한 개만 걸치고 밖으로 나왔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날이 추워지고 있다.
Muralla medieval de León
도심 안에 자리 잡은 이 독특한 성곽 건축물은 14세기에 건축된 성벽의 일부였다. 로마 군사 건축물과 달리 직사각형레이아웃을 따르지 않고 벽으로 둘러싸인 지역에서 시작하고 끝나는 불규칙한 호를 묘사한다. 내부에서는 당시 어떻게 건물을 만들었는지 설명하는 박물관과 도시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무료로 개방돼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순례자들이 구경을 하고 있다는 걸 바로 눈치로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계절에 맞지 않은 낡은 옷과 슬리퍼 그리고 근육통과 물집때문에 어정쩡한 걸음걸이 때문에 바로 티가 난다.
플라멩코 연습실
우연히 문 열린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을 듣다 보니 그곳은 플라멩코 레슨장이었다. 관광으로 스페인을 왔다면 체험도 해봤을 텐데 앞을 기웃 거리며 춤연습하는 사람들을 밖에서 한참을 구경했다.
나는 익숙지 않은 새로운 이야기들을 발견하는 것을 즐긴다. 이런 우연성 때문에 도시의 여행은 언제나 새롭고 즐겁다.
Claustrode la Catedral de León
이 성당은 레온 대성당 뒤편에 현지인 분들이 미사를 볼 수 있는 작은 성당이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미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레온은 온 도시가 유네스코 지정 무화유적지이기 때문에 가는 마다 볼거리가 풍성했다.
레온대성당
드디어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가장 크고 화려한 고딕 양식의 레온 대성당이 보이는 골목 사이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스코트랜트 백파이프 전통 악사의 버스킹이 레온 광장과 어우어져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마치 레온이라는 이름처럼 사자가 표호 같은 느낌이었다고 할까? 나와 안나는 성당 앞에서 바로 알아보고 반갑게 비쥬 인사를 했다. 안나는 얇은 패딩을 입고 있었다. 도대체 안나의 배낭 안에는 없는 게 없는 느낌이 들었다. 늘 필요한 걸 이야기하면 꺼내서 도움을 주었으니 말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안나는 12년 동안 휴가 때마다 부분 부분 산티아고를 걸어 다닌 베테랑 순례자였다.
El TOPO 레스토랑
8시에 있는 대성당 콘서트 전에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
대성당 바로 앞에 있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이다. 나는 여전히 라면이 안 내려고 가고 있었지만 분명 저녁에 배가 고플 것이다. 피자와 띤또 데 베라노를 시켰다. 안나는 마리앤이 올 거라고 한다.
안나는 늘 마리앤을 챙겼다. 마리앤은 연세가 꽤 있음에도 젊은 사람들처럼 많은 짐을 항상 짊어지고 빠르게 걸었었다. 그래서 늘 컨디션 안 좋았다.
나는 마리앤의 상태가 괜찮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피자가 꽤 커서 다 먹을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마리앤까지 합류하고 나자 추가로 피자를 한판 더 시켰다.
유럽 사람들이 언제 식사를 하는지 보면 거의 대부분 저녁을 거하게 먹는 것 같다. 늘 풍성하게 먹는다. 나와 마리앤이 피자를 들고 레온대성당을 배경으로 안나가 인증숏을 찍어 주셨다.
레스토랑에서 다시 만난 호주 순례자 레이철 역시 이 콘서트를 모르는 눈치였다.
나는 안나가 보여준 팸플릿 사진 파일을 보고 사람들을 따라 대성당 입구에 길게 늘어선 줄을 따라 서기 시작했다.
긴 줄이 골목까지 일렬로 이어졌다. 공연을 보기 위해 안내하는 스태프들은 특별한 행사를 위해 슈트를 입고 입구부터 좌석마다 배치가 돼있었다. 낮에 보던 성당의 빛과 달리 밤의 대성당은 조명과 어둠이 휩싸여 좀 더 비밀스럽고 음산한 분위기가 피어났다.
https://www.instagram.com/reel/CyY7_srNt6C/?igsh=MTh0MjIzbnZuMnAzNQ==
공연
연주자가 보이는 메인자리는 이미 부지런히 움직인 관람객들로 자리가 꽉 찬 상태다.
뒷 머리 라도 보이는 근접한 자리에 앉고 싶었지만 내 앞에서 자리가 다 채워져서 다른 왼쪽으로 틀어서 연주자들은 아예 안 보이는 자리로 배정을 받았다.
아무래도 지안 아저씨에게는 공연이 늦게 끝나서 한잔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연락을 드렸다.
오르간 연주는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클래식 연주 중에서도 가장 하이레벨의 인간의 깊은 내면을 굵게 울리는 오르간 연주로 표현하고 있었다. 듣기가 쉽지 않았지만 이런 공연은 내가 또 언제 한번 들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끝까지 공연을 관람했다.
우리는 10시가 다 돼서야 공연을 다 감상하고 밖으로 나왔다.
밤공기가 선선하다.
안나는 레온에 개인 아파트를 렌트해놓았다고 한다.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되길 인사를 나누고 마리앤과 안나와 헤어졌다.
알베르게에 묵었다면 10시 전에 꼭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젠트릭 호스텔로 결정한 것이 다행이었다.
10시가 넘었음에도 밤을 즐기기 위해 광장에는 인파가 끊임없이 밀려 들어왔다.
열쇠
나는 아까 숙소 안내를 받으며 받았던 열쇠가 방키만 있는 줄 알고 숙소에 열쇠를 두고 외출을 나왔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키가 숙소 입구도 출입할 수 있는 열쇠였다.
다행히도 밤 외출을 나가는 호스텔 숙박객이 우연히 서로 마주쳐 무사히 숙소로 들어갈 수 있었다. 3층으로 올라가 문을 두드렸는데, 소리를 듣고 한국인 순례자 아저씨가 문을 열어 주셨다. 아까 출입구에서 마주쳤던 커플은 알고 보니 같은 방을 쓰는 포르투갈 여행자들이었다. 낮시간에 오자마자 시에스타를 해서 얼굴을 제대로 못 봤는데 밤늦은 시간에 잘 차려입고 좋은 곳에 갔나 보다.
내일 계획
숙소에 들어와 방에 혼자 있던 지넬과 내일 계획 얘기를 했다.
2023년 10월 15일은 일요일이라 대부분 문이 닫혀 있는 데다 핸드폰 유심칩 매장들도 다 휴무였다. 지넬은 내일 늘 붙어 다니던 미국인순례자 친구 안드레아를 만날 거라고 했다.
지넬 역시 내일도 이곳에서 휴식을 취할 예정인가 보다. 나는 이곳이 급하게 잡은 숙소라 다른 숙소로 이동할 예정이라고 얘길 해줬다.
레온에서의 둘째 날이 밝았다.
나는 일전에 만났던 독일인 순례자 사빈이 추천한 레온의 숙소를 예약했다.
레온 성당 근처에 있는 캡슐형 대형 호스텔이다. 가격은 젠트릭의 반값이다.
아침 일찍 레온에서 다들 서둘러 움직이는 순례자들 사이로 여유롭게 나는 공용주방으로 향했다. 어제 아시아 슈퍼마켓 근처 슈퍼에서 구매한 요구르트와 샐러드를 먹기 위해서이다. 숙소에서 그날 유일한 아시아 사람인 나와 아저씨는 아침을 함께 먹게 되었다. 아저씨는 내가 영어를 써서 외국교포인 줄 알았다고 한다. 오래간만에 듣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웃음이 나왔다.
아저씨 소개를 하자면 두 번째 산티아고로 레온에서 북쪽 길을 걸을 예정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함께 알게 된 사실은 일기예보가 일주일 내내 비예보 80퍼센트 이상이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아저씨는 나에게 먹으라며 주신 우유와 다른 식료품들을 나눠 주셨다. 아직 기차 시간이 남아서 다른 곳에 가서 시간을 때울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아침에 요구르트와 샐러드 우유까지 먹고 났더니 배가 너무 불렀다. 숙소 거실엔 브라이언, 벤, 피터, 호주여자 커플 그리고 지넬, 한국 아저씨까지 창가의 분수 풍경을 바라보면서 여유로운 하루가 시작됐다.
나는 숙소 체크인 시간이 아직 남아있어서 혹시 짐을 맡아 줄 수 있는지 물었으나 호스트는 단호하게 체크아웃 시간이 끝나면 짐을 맡아 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곳이 두 번째라는 한국인 순례자 아저씨한테는 기차를 타기 전까지 짐을 맡아 주겠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물어봤던 건데 그녀의 엄격한 사감선생님 같은 분위기가 그렇게 편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방에 들어가 짐을 정리하고 거실로 나와 잠시 않아 있었다.
어느새 남은 사람은 지넬과 아저씨 그리고 나뿐이었다.
나: 지넬 아침식사 했어?
짐을 맡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나는 체크아웃해야 할 것 같아.
아무 카페에 가서 체크인 전까지 기다려야지 뭐.
지넬: 곧 안드레아를 만날 거야.
근처 카페에 앉아서 체크인까지 기다릴 예정이야.
그러면 내려가서 같이 커피나 한잔 할까?
안드레아는 지넬과 아나처럼 순례길을 시작하면서 알 수 없는 알레르기 증상이 심해져서 걷기를 멈추고, 지넬과 레온을 관광 후 미국으로 돌아갈 거라고 지넬이 말해줬었다.
El Valenciano
우리는 숙소 바로 아래에 있는 카페테라스에 앉았다.
오늘 날씨가 언제든 비가 내릴 것처럼 흐리고 서늘한 날씨이다.
카페테리아에는 아주 큰 개와 커플이 앉아 있었다.
지넬도 개를 키운다며 강아지에게 인사를 하고 본인 강아지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침부터 리코더를 불며 카페에 들어와 노래를 연주하는 잡상인이 보인다.
나와 지넬은 가볍게 커피를 시켰는데 아침 메뉴인 추로스가 서비스로 몇 개 나왔다.
안드레아가 합류 후 우리는 추로스를 추가로 더 시켜 함께 먹었다. 순례자가 아니라 관광객으로 여기 있으니 마음이 이상하다고 안드레아가 말했다. 중간에 길을 멈춘다는 게 어떤 마음인지 가늠이 안되지만, 만약 내가 부상 때문에 걷기를 중단하게 되는 상상을 하곤 했었다. 길 초반에 걸린 식중독도 그렇고 넘어짐 사고까지 그래서인지 더 공감대가 컸다.
본토의 추로스
역시 본토 추로스가 정말 맛있었다. 갔튀겨 나온 뜨끈한 추로스와 진하게 녹인 초콜릿을 찍어 먹으니 꿀맛이다. 11시즘 이었던 것 같은데 새로 예약한 속소에 전화를 걸어 사정을 이야기 했다. 일찍 도착해서 아직 체크인 시간이 아니지만 짐을 미리 두고 와도 되는지 물었다.
숙소에서는 친절하게 미리 짐을 두고 2시 넘어 체크인을 하면 된다며 안내를 해주었다. 지넬과 안드레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나는 숙소로 이동을 했다.
Hostel Quartier León Jabalquinto
젠트릭 호스텔이 개인 아파트 같은 곳이었다면 여기는 전문 호스텔로 방안에 캡슐 침대가 줄지어 있고, 아침도 무료로 제공되는 곳이었다. 그리고 여성전용방이라 소음도 덜 할 거라 기대하며 숙소로 이동했다. 젠트릭은 고급 상점과 호텔이 쪽에 위치해 있다면, 호스텔 팔라치오 자발콴토 바이 쿼터 레온 은 대성당 근처에 위치한 구시가지로 들어가야 했다.
배경이 완전 다른 동네였다.
프런트에는 직원부터 하우스키퍼들도 대형 숙소인 만큼 체계적으로 보였다. 서비스에서 가격대까지 호스트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돼서 이곳이 더 마음이 편했다.
나는 짐을 숙소에 맡겨두고 밖으로 나와 필요한 물품을 사러 중심가로 다시 걸어갔다.
여행을 다니며 내가 가진 철칙이 있다면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바로 구매하기이다.
왜냐하면 다시 돌아와서 사야지 하고 생각하고는 절대 그 장소 그 자리 돌아가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곤 숙소에 돌아가 후회하고 했었다. 그래서 모든 기회는 정말 원하는 것이라면 ”지금 여기“에서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ALE-HOP 12:14
레온 성당을 지나 중심가를 가는 길에 있는 ALE-HOP이라는 젖소 동상이 있는 편집샵이 보인다. 지넬은 이곳에서 무료 마사지기 체험을 할 수 있다고 알려 줬었고, 이 매장은 한국의 아트 박스 정도로 보면 좋을 곳이었다. 잡다한 생필품부터 아기자기한 소품들까지 판매하는 곳이다. 나는 정말 생각지도 않게 마사지 체험을 하며 아이쇼핑을 즐기다가 부서진 선글라스와 비슷하게 생긴 선글라스를 봤다. 그 선글라스를 보는 순간 구매해야겠다는 마음이 번뜩 들었다.
아나가 줬던 이테로 데 라 베가에서 누군가 버리고 갔던 패션 선글라스를 쓰고 다녔지만 너무 무거웠고 내 것 같지 않았다. 부서져서 다리를 테이프로 동여맨 선글라스는 비실비실 다리에 힘이 없었다. (여전히 버리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그 선글라스는 10년이 넘었기 때문에 버릴 때가 되긴 했었다.
Micazo Ramen
비를 맞고 우중충한 날씨가 계속되자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었다. 나는 한식에 그렇게 목매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면 요리를 매우 좋아한다. 길을 가다 보니 찾은 일본 라멘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이곳에서 돈코츠 라멘을 시켰다. 시식 평을 해보자면..... 음...... 그러니까......
이 것은 돈코츠 라기 보단 Rament onkotsu 이다.
돈코츠 미역 라멘이라는 표현이 맞았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유럽사람들이 다시마와 미역의 차이를 모르기 때문에 찾기 쉬운 미역을 넣은 듯하다. 뭐 그렇지만 이것도 유럽땅에서 감지덕지 아닌가?
와인 한잔을 시키고 감사히 먹었다. 유럽에서 라멘 역시 특별한 날 먹는 별식일 테니까.
일본인 순례자 모모짱에게서도 이곳에서 먹었다는 피드가 왔었다. 그냥 먹는다고 한다. ㅋㅋㅋ
Mercado dominical “Rastro” 벼룩시장
어쩌다 기분 좋게 선글라스를 사고 골목에서 라멘을 먹고 벼룩시장이 열리는 기차역과 버스 터미널이 있는 곳까지 걸어가게 됐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라멘을 먹고 지나는 길에 유기농 상점도 보고 과일 과게도 마주치며 슬렁슬렁 걷기 시작했다. 내가 주말에 열리는 벼룩시장이 있다는 걸 알고 그곳에 갔던 것이 아니라 정말 운 좋게도 그날이 일요일이었고, 마침 장이 열려서 맛있는 통닭냄새로 인해 사람들이 인산인해였기 때문에 이끌려 그곳으로 가게 되었다.
나와 함께 어딘가 다녔던 친구들은 내가 어딘가를 돌아다닐 때면 왜 그렇게 힘들어하는지 말로만 들었을 때는 몰랐으나 몇 명은 지쳐서 급체를 하거나 앓아누웠던 걸 보면 내가 정말 구석구석 많이도 보고 다닌다는 걸 가끔 그럴 때 깨닫게 되곤 한다. 나는 그렇게 지도에도 잘 나오지 않는 길들을 직접 걸어 다니며 유기농 식품 판매점과 아시아 음식점 그리고 길거리 통닭구이를 시작으로 해서 벼룩시장을 우연히 들러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조금 따뜻한 옷을 샀어야 했는데 한 바퀴를 돌아보고 사야겠다는 마음으로 가볍게 보다가 보니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시장은 파장 분위기로 돌아섰다.
아직까지도 아주 크고 화려한 패턴의 보자기와 가을 겨울용 후리스 자켓을 못 산 게 가끔 생각 날 때가 있다.
비가 내리는 도심을 한 바퀴를 삥 돌아 다시 레온 대성당 쪽으로 돌아 걷기 시작했다.
이렇게 내일도 비가 내린다면 나는 버스나 기차를 탈것이다.
하갈언니가 레온에 내일 기차를 타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버스에 기차까지 생각을 더 하게 되었다.
굳이 그럴 필요 없었지만 머릿속에 자리 잡은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에 자리 잡으면서 마드리드 여행과 같은 두 번째 포상이라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도시의 풍경
조셉님과 저녁 약속을 하기 위해 레온 대성당으로 서둘러 돌아가 광장 레온 이니셜 동상 근처에서 조셉님을 기다리면서 버스킹 공연을 구경했다.
우중충한 날씨와 어울리는 멜로디언 라비앙 로즈가 어느새 익숙해진 레온이라는 도시를 더 나에게 친숙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 봤었던 스페인 시위하는 모습도 그렇고 자연스러운 도시의 민낯을 나에게 보여주는 것 같아 인상 깊게 기억에 남는다. 레온이라는 도시는 항상 그곳에 있지만 모두 다르게 기억할 수 있는 이유는 이렇게 다른 경험이 더해져서 그곳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살아 숨 쉬고 있는 레온의 모습이 활력이 넘쳐 보였다.
조셉님과의 저녁
오래간만에 조셉님을 만나 어제 안나와 갔었던 엘 토포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다시 가서 피자와 샐러드를 먹었다. 어제와 다르게 너무 추웠기 때문에 식당 안으로 들어가 음식을 주문했다. 안으로 들어온 손님들로 식당 안은 정말 소란스럽고 정신이 없었다.
이제 더 이상 초보 순례자가 아닌 우리는 그간의 안부를 물었다.
조셉님은 레온 전까지 한국인 지인들과 함께 무거운 짐을 메고 30킬로미터 이상을 행군했다고 한다. 그분들은 이미 몇 차례 순례길을 경험한 베테랑 이기 때문에 아마도 본인들의 몸 상태 파악을 잘했겠지만 함께 걸으며 무리를 한 탓인지 발목을 접질르는 사고가 있었다고 전해 주셨다. 그래서 조셉님 얼굴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몇 구간 점프를 하고 레온에서 며칠을 쉬었다고 하셨다.
다쳤던 구간부터 레온까지 다시 점프구간으로 돌아가 짐은 레온 숙소에 두고 걸으셨다고 한다. 나는 조셉님의 성품이 어떤지 알기에 안타까우면서도 걱정이 앞섰다. 무사히 이 길을 걸을 수 있기를 바랐다. 많이 회복한 상태라 앞으로 후반부는 짐을 보내고 걷기를 하실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 둘 다 길 초반에 호언 장담했던 것들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였다.
중요한 것은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고 빠르게 대처해나가야 한다. 최악의 상황은 안드레아처럼 순례길을 포기하고 길을 못 걸을 수 있으니까.
순례길 중간에서 캐시를 만났던 이야기와 패드로는 이미 자전거를 타고 완주한 이야기 등 팜플로나에서 만났던 순례자들에 대한 소식을 주고받았다. 간만의 회포를 풀면서 나는 내일 비가 온다면 버스나 기차를 탈거라고 말씀을 드렸다.
일종의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말과 함께!
그리고 내일 아침에는 새로 갈아 끼울 유심칩도 구매해야 하니까 바쁜 하루가 될 듯하다. 버스로 이동하면 오후 즈음 출발해도 될 듯싶다는 생각이다.
장보기
숙소로 가기 전 헤어지면 조셉님과 함께 마트에 가서 내일 먹을 음식 장을 봤다.
저녁을 매번 사주셨어서 내가 장본 음식들을 사드렸다.
분기별로 이렇게 만날 수 있다니 보통 인연은 아니다. 점점 기온이 더 떨어지니 내일은 떠나기 전에 따뜻한 옷을 한 개 구입해야 할 것 같다.
조셉님과 마트에서 인사를 나누고 또 다음에 만나길 기약하며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 가는 길
내가 밤문화를 잘 안 즐기고 순례자라서 일찍 잠에 들다 보니 클럽을 처음 봤다. 저녁 시간 주말이라 그런지 역시 즐기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 북적였다.
도시의 밤은 낮보다 기니까 간만의 도시의 활기를 느끼며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 도착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공유주방에 앉아 한숨 돌리면서 앉아 있던 관광객과 스몰톡을 하게 됐다. 어제 오르간 콘서트 스태프로 레온에 왔다고 한다. (어제 콘서트가 유럽에서도 꽤 큰 행사였었나 보다.)
프랑스 사람이었는데 이숙소가 가격도 저렴하고 평이 좋아서 도전해 봤다고 한다. 그리고 순례자들이 이렇게 많이 묵는 곳인 줄 몰랐다고 했다. 간단한 이야기를 마치고 방으로 올라가 오늘 하루를 정리해 보니 그렇게 많이 걸어 다녔는데 비가 와서 땀도 안 흘린 하루였다.
배부르게 먹은 피자가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 내일 레온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과 더 쉬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건 내일이 돼 보면 알 것이다. 다들 내일 출발을 위해 일찍 잠 잘 준비를 한다.
내 자리는 긴 통로 방 끝 구석에 위치한 일층 침대였다. 고개를 돌리면 바로 벽이기 때문에 1인실을 쓰는 기분이 들었다. 화장실이 가운데 자리 쪽에 있어서 새벽에 이동하면 시끄럽겠지만 자켓으로 가림막을 치고 가림막을 만들었다. 운동량이 줄어서 인지 조금 늦게 잠들고 잠을 설쳤다. 하루종일 라멘과 피자에 기름진 고열량을 먹었는데 기록을 보니 만보밖에 걷질 못했다.
내일의 계획
하갈 언니가 레온으로 온다고 했고, 언니를 만나고 걷든 타고 가든 결정할 생각이다.
유심칩도 보러 가야 한다. 아까 걸었던 벼룩시장 건너에 터미널을 기억하고 있었다.
추우니까 자켓도 사야할것 같다.
몇 시에 가봐야 할지 동선 체크를 해야겠다.
Buen Cam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