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토마린 가는 길 (Portomarín)
길을 잘못 들어서 헤매고 있던 나에게 올바른 길잡이가 되어준, 이렇게 눈덩이처럼 커져가는 좋은 인연들이 나에게 찾아왔다는 것을 나는 지금도 믿고 있다. 이것이 바로 순례길의 기적이다.
신비로운 길: 두 고대 수도회가 이 강 반대편을 점령했지만, 그들의 거점은 오래전에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세대의 끝없는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건설된 댐의 홍수 아래 묻혔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살 수 없으며, 미래의 황금기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살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현재뿐입니다. 나머지는 환상이며, 일부는 고통스럽고 유쾌합니다. 잘못을 저지른 것은 인간,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신성합니다. 알렉산더 포프.
자료 출처: A Guildebook to the Camino de Santiago -John Brierley
출발 : Sarria> Barbadelo 3.7km> Rente 5.1km> A Serra 5.9km > Marzán 7.3km > Leimán > Paruscallo 9.1km > Morgade 12.4km> Ferrellos 13.8km> A Pena 14.2km> Momientos 16.3km > Mercadoiro 17.3km> Moutrás> A Parrocha 18.6km > Villachá 20.4km> Portomarín 22.4km
자료 출처: A Guildebook to the Camino de Santiago -John Brierley, Buen Camino app, Camino ninja app
총 거리 :22.7km
출발시간: 7시 30분
도착시간: 15시 30분
1인실 숙소도 이제 안녕이다.
알베르게의 소란스러움이 없는 고요한 방에서 짐을 정리하고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잠바를 껴입고, 고어텍스 재킷을 걸친 뒤 배낭을 멨다. 마지막으로 카키색 판초까지 얹어 입고 거울을 보니, 영락없는 거지꼴이다. 역시 카키색이 한몫했다.
밖을 보니 언제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씨였다. 판초를 입었다 벗었다 하기 쉽게 허리에 꾸겨 넣고는 나갈 채비를 마쳤다.
단 하루 쉰 것뿐인데도, 어제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아서인지 마치 일주일은 지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침 식사 – Cafeteria Polo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카페 겸 햄버거 가게에서 아침을 해결하기로 했다. 왼쪽으로 꺾으면 마르카도나 대형 슈퍼마켓이 있고, 조금만 더 걸으면 피아의 아파트가 있는 곳이라 위치도 적당했다. 피아는 아침을 먹고 출발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곳은 햄버거를 파는 술집이라 그런지 실내에 고기 냄새가 가득했다. 한국이었다면 투다리 같은 선술집 분위기랄까?
동네 아저씨들은 이른 아침부터 자리를 잡고 신문을 읽거나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꾸물꾸물한 흐린 날씨 속에서 다시 길을 나설 생각을 하니, 마음과는 다르게 몸이 천근만근 더 무거워지는 기분이다.
피아 가족과 출발 – 아침 8:15
카페 폴로에서 카페 콘 레체를 마시고, 피아 가족과 만나기로 한 Mercadona 슈퍼 앞에서 그들을 기다렸다. 마침 순례길을 지나던 친절한 순례자들이 내가 길을 잃고 헤매는 줄 알고, 이쪽이 맞다며 함께 걷자고 손짓했다. 나는 고마운 마음으로 미소를 지으며 친구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어느새 순례자들의 옷차림도 달라졌다. 짧은 팔 티셔츠 대신 긴소매 옷을 입은 사람이 늘었고, 아침 공기가 제법 쌀쌀하게 느껴졌다.
잠시 후 피아 가족이 도착했고, 우리는 아침 인사를 나누며 출발했다. 오늘부터 117km의 여정이 시작된다. 첫 목적지는 사리아에서 포르토마린까지, 22.4km를 걸을 예정이다.
이틀을 푹 쉰 만큼 배낭을 메고 걷기로 했다. 어제저녁, 포르토마린의 숙소 Albergue Pensión Manuel을 예약해 두었는데, 저렴한 가격에 공용 주방이 있어 요리가 가능하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오늘 길의 특징은 산길을 넘는 것이지만, 중간중간 마을이 있어 초반에는 완만한 경사길을 따라 명상을 즐기며 걷기 좋다. 하지만 사리아 이후부터는 새롭게 순례를 시작한 후발주자들까지 합류하면서 길이 붐볐다. 어느새 까미노는 혼자만의 길이 아닌, 수많은 순례자들이 함께 걷는 긴 행렬이 되었다.
산길을 오르는 동안 날씨는 변덕스러웠다.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가 안개가 짙어지기를 반복했다. 빗길이라 길이 미끄러웠고, 조심조심 발을 내디뎌야 했다. 비에 젖은 길 위로 종종걸음을 하며 산길을 따라 걸었다.
게일과 왓츠앱으로 사리아에서 포르토마린까지 걸었던 길에 대한 초안을 작성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가 사리아부터 함께 걸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중간에 합류했던 게일의 여정이 사리아에서 출발한 길 이야기 속에 구체적으로 담기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가 다시 만나 함께 걷기 시작한 곳은 사리아에서 약 3.6km 떨어진 Vilei였으며, 게일이 묵었던 숙소는 Albergue - Pensión Casa Barbadelo였다.
게일은 따뜻하고 자상한 사람이었지만, 약간의 냉소적인 면과 차가움을 지닌 분이기도 했다. 그는 그곳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는데, 개인적인 감상이 담긴 이야기였지만, 내가 길을 걷다 보았던 기억 속의 풍경과도 맞닿아 있었다. 내가 합류했을 때 보았던 방갈로 형태의 작은 숙소들은 마치 스머프 마을처럼 아기자기해 보였지만, 게일의 경험은 전혀 달랐다.
그가 직접 머물렀던 숙소는 매우 협소했고, 침대는 불편했으며, 방 안에는 땀과 젖은 옷에서 나는 쉰내가 가득했다. 게다가 같은 방을 쓰던 남자 무리들 때문인지 편히 쉬지 못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피로가 몰려오는 듯했다. 아마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을 것이다. 트리아카스텔라에서 스페인 무리들 때문에 잠을 설쳤던 내 경험과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이런 불편한 기억들은 어쩌면 산티아고 순례길이 끝난 후에도 꿈속에서 반복될 악몽 같은 순간들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피아와 게일이 어떻게 처음 알게 되었는지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두 사람은 팜플로나에서 각자 다른 무리들과 어울리고 있었다. 게일의 말에 따르면, 어느 날 피아가 식당에 여권을 두고 갔는데, 이를 발견한 게일이 직접 건네주며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내가 길을 잃었을 때 친절한 순례자들이 나를 도와주었듯이, 피아에게도 게일이 결정적인 순간에 도움을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인연은 또 다른 인연으로 이어졌다. 마치 선한 영향력이 대물림되듯, 게일이 피아를 도왔고, 피아는 또 나에게 영향을 주었다. 순례길 위에서 서로를 돕는 이러한 연결이야말로 길을 잘못 들어서 헤매고 있던 나에게 올바른 길잡이가 되어준, 이렇게 눈덩이처럼 커져가는 좋은 인연들이 나에게 찾아왔다는 것을 나는 지금도 믿고 있다. 이것이 바로 순례길의 기적이다.
단체로 아침서부터 함께 걷는 것도 처음이고 피아는 정말 신기한 것은 걷는 대부분의 순례자가 피아에게 인사를 건넸다. 어제 점심을 함께 먹었던 미국인 할아버지 게일도 길에 합류하면서 “까미노 원정대”가 꾸려진 것 같았다.
써니와 가브리엘은 처음 시작이라고 하지만 정말 잘 걸었다. 가브리엘은 낯가림도 있고 조용한 성격이었으나 천천히 잘 걷는 듯 보였다. 원래 단체행동이란 것이 서로 배려와 애정이 없다면 언제든 어그로 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피아의 배려와 애정에 감사하고 받아보지 못한 친절에 몸 둘 바를 모르며 함께 이 그룹과 걷게 만들었다.
중반부 라바넬 델 카미노에서 나를 길에서 구하고 이제는 후반부 길을 함께 걷고 있는 피아는 나에게 정말 특별하게 다가왔다.
사리아부터 10km 구간, Morade까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숲길을 걷고 카페에 들러 식사를 했지만, 그 길에서 특별한 기억은 많이 남지 않은 것 같다.
사리아 도시를 빠져나오자 나타난 까미노 비석에는 정확히 108.74km가 새겨져 있었다. 그곳에서 목장 우리 앞에 서 있던 말이 순례자들을 구경하던 중, 사과나무에 달려 있던 사과를 따서 말에게 건넸다. 말은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으며 맛있게 먹는 모습이 참 시원해 보였다. 이 지역은 비가 많이 오는 곳이라 그런지 소와 말의 발은 진창에 빠져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Mirador da Brea에서 점심
성큼성큼 나를 지나가는 유러피언들은 아직도 볼 때마다 신기하다. 먼저 사라졌던 써니와 가브리엘이 카페에서 식사를 먼저 하고 있었다. 우리가 함께 여정을 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것이다. 무조건 같은 템포로 걷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템포로 걷다가 중간 식사시간이나 마지막 도착지점 숙소에서 만나 저녁을 함께하는 방식이었다. 그것이 각자의 거리감과 순례길을 걸으며 느낄 수 있는 각자만의 장점을 살려주는 그룹이었다.
나는 줄곧 무리와 떨어져 홀로 걷다가 마침 나타난 카페에 들어섰다. 가브리엘과 써니를 마주하곤 피아가 당신들을 찾고 있다고 얘기해 줬다. 나는 피아가 나타날 때까지 더 걸으려다 이곳에서 짐을 풀고 카페콘레체와 토스트에 잼을 발라 잠시 숨을 고르며 배를 채웠다.
피아의 걱정과는 별개로, 써니와 가브리엘은 순례길 첫날의 감동과 풍경을 여유롭게 즐기는 듯 보였다.
Casa Morgade
식사를 여유롭게 마치고 조금 더 걸어가니 피아와 게일이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 아늑한 난로가 있는 카페에서 우리는 다시 모이게 되었다.
좁은 길을 지나야 했고, 피아와 게일이 멈춰 있던 까사 모르가데 내부에서 피아는 가브리엘과 써니에게 이곳에서 스탬프를 받으라고 당부했다.
우리는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하는 동안, 게일과 피아는 여전히 대화 중이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 걸까?
A Pena
아빼나에 도착했을 때 비석에는 산티아고까지 100.707km가 남았다고 알려주었다. 대략 7km를 사리아에서 걸어온 상태였고, 오전 10km 걷는 것은 이제 우리에게 식은 죽 먹기처럼 빠르게 해결되는 일이었다. 갈리시아 지방의 시골 풍경이 길게 뻗은 길가의 나무들과 농가들이 가는 길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 주었던 초반 길이었다.
드디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의 거리가 100km가 되는 순간이었다. 비가 한바탕 쏟아내고 간 자리를 내 비옷이 몸 안은 젖지 않게 지켜주었다.
피아는 그래도 몇 번 식사를 함께 하고 길에서 마주치며 인연을 쌓았지만, 게일이나 써니, 가브리엘의 경우 우리는 특별한 이야기가 없는 사이였다. 각자 길을 걷다 가끔씩 함께 걸을 수 있었다. 나는 게일에게 지금의 갈리시아 지방의 길이 특히나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길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게일
특히 그의 흰 수염은 간달프를 떠올리게 한다고 덧붙였다. 사리아를 떠나 초반에 마주친 미국 UCLA 영화과 교수직을 은퇴했다고 소개한 미국인 순례자가 있었다. 그분들은 진짜 지식이 엄청 많으셔서 대화 주제가 끊이지 않았다. 피아와 길을 함께 걸을 때 마주쳐 그분들의 대화를 옆에서 함께 발을 맞추며 들었었는데, 정말 지식이 풍부한 분들 같아 보였다.
가브리엘
가브리엘은 대학을 졸업하고 독립을 준비하는 중이라 그 시간을 엄마 피아와 함께 순례길을 걷고 있다고 말했다. 갈리시아 지방의 습하고 미스트를 뿌리는 듯한 날씨를 꽤나 영국 스럽다고 이야기해 줬다.
그래서 순례길이 그렇게 낯설지 않다고 말했다.
써니
써니의 경우 정말 가볍게 잘 걸으셨다. 항상 그룹의 선두에 있었으니까. 우선 피아와 써니 그리고 가브리엘은 세 사람 짐을 한 개로 합쳐서 매번 동키서비스로 보내고 항상 가벼운 보조가방을 들고 걸었다. 그랬기 때문에 더 잘 걸었던 것도 있다. 써니는 나에게 잠시 티타임을 가질 때마다 한 개씩 영국 사람의 특징과 예절을 알려주셨다.
나의 상태
나의 경우, 비가 오는 날과 특별한 날, 혹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짐을 보내자는 나름의 규율을 만들어 놨었는데, 후반부로 넘어오면서 거의 매일 비가 오는 날씨가 계속되다 보니 그 규칙은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였다.
비가 오는 날에는 화장실 가는 것도 불편해서 영 곤란하긴 하지만, 포르토마린까지 가는 길에는 꽤나 많은 카페와 음식점이 초중반부까지 있어서, 불편함 없이 원정대들과 주거니 받거니 수다를 떨며 길을 걸을 수 있었다.
가장 이 그룹에 고마운 부분은, 영어 실력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예의 없게 보일 수 있었던 부분을 너그럽게 보살펴 주며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는 것이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는 핸드폰만 들여다보거나 말하고자 하는 사람은 많은데, 진짜로 듣는 사람이 없어져 가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고립감을 느끼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룹에서 겪은 환대와,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몸과 마음으로 대화하는 시간을 체험한 것이, 앞으로 내가 살아갈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것 같았다.
단순히 순례길을 걷는 목적이 지금 그곳에서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함이라면, 아마도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생장-피에드-포흐트 땅을 밟기 전의 두려움과 피레네를 넘으며 창공을 가르는 독수리, 산길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하얀 소와 양 떼들, 여유롭게 풀을 뜯는 말들, 말도 안 될 정도로 아름다운 대자연, 그리고 지천에 피어나는 싱그러운 허브들.
나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까? 그런 물음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의 내 삶의 여정에 순례길은 하나하나 사람을 만나고 자연을 접하며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다.
들을 줄 아는 사람, 현재에 집중할 줄 아는 사람, 과거를 보듬고 앞으로의 두려움을 뚫고 나아가는 사람.
그리고 분명 한국에서 지친 영혼을 이끌고 도착했던 파리에서의 그 사람과 지금의 나는 완전히 탈피하듯이 다른 나로 변했다. 아니, 두려움이라는 껍질을 깨고 나온 "진정한 나"였던 것 같다.
100km 비석을 기념으로 사진을 찍고, 이렇게 글을 적고 있으니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나 보다.
빌라차와 포르토마린 사이에 93.713km가 남았음을 표시하는 돌 이정표에는 벨레사르 저수지까지 갈 수 있는 세 가지 루트가 나타나 있다.
-첫 번째 길 1.1km : 공식루트이자 전통적인 루트가 있다.
자전거로는 갈 수 없으며, 도보 또한 경사 및 계단으로 쉽지 않은 길이며 특히 우천 시에는 권장하지 않는다.
-두 번째 길 1.4km : 보완 루트는 복잡한 길을 피할 수 있고 아스팔트가 깔려 있으며, 공식 루트와 이어지는 LU-633
도로와 만나게 된다
-우측으로 직진하면 오늘날 보조 또는 대체 경로로 표시된 기존 경로가 있다.
총 거리 1.05km 벨레사르 저수지까지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정식 루트
우리는 Vilachá에서 자전거 루트와 보완 루트, 대체 루트 중 가장 공식 루트를 선택해 가장 빠르고 위험한 협곡 길을 지나갔다. 비가 내려 좁고 험한 바윗길을 내려가야 해서 위험했지만, 좁은 협곡길을 서로 도우며 포르토마린 LU-633 도로가 나올 때까지 서로를 의지해 걸어 나아갔다. 벨레사르 저수지에 내린 비로 인해 주변은 물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며, 해리포터의 호그와트 성에 도착한 듯한 으스스한 분위기가 신비롭게 느껴졌다.
고대 다리와 라 비르헨 데 라스 니에베스 예배당으로 가는 계단
중세 다리의 아치 계단은 망막에 새겨질 만큼 매우 인상적인 모습을 지니며, 포르토마린 마을에 도착하기 위해 계단을 올라야 하는 순례자들의 다리에도 피로감이 두드러지게 남을 것이다.
다리 위에는 간소한 형태를 지닌 비르헨 데 라스 니에베스 (Virgen de las Nieves) 예배당이 있다.
예배당은 예루살렘 성 요한 수도회의 후원을 받아, 도무스 데이(Domus Dei) 병원이 있던 자리에 지어졌다.
오늘도 우리 순례자들은 22킬로미터를 걸었고, 처음 그 길을 성공적으로 완주한 써니와 가브리엘에게도 뜻깊은 하루였다. 우리는 포르토마린 저수지 다리를 지나 유적지 입구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사리아 가기 전, 사모스 길에서 함께 걸었던 고독한 순례자와도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그분 역시 피아의 친구였다. 고독한 순례자의 이름은 스티브, 미국인이었으며, US NAVY에서 은퇴하신 분이었다. 우리는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몸은 지쳤지만, 사진 속 표정만큼은 오늘도 해냈다는 성취감과 만족감이 가득 차 있었다. 지친 몸과 비에 젖어 무거워진 발걸음을 뒤로하고, 각자 숙소로 해산하지 않고 바로 포르토마린 마을 입구에 보이는 고급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포르토마린의 저수지 다리를 건너자마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O Mirador
천근만근 무거운 배낭과 비에 젖은 판초를 한쪽에 벗어두고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만약 피아네 가족과 원정대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런 고급 음식점에 들어갈 생각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순례길에서 함께 걷는 이 순간들이 모든 것 하나하나가 나에게 잊지 못할 추억과 경험이었다. 그리고 예전에 마리아와 피아와 함께 먹었던 음식점들처럼 맛집을 잘 고른다는 것에 동의하며, 그 음식점에 함께 들어섰다.
늦은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도착한 시간은 3시 30분경. 음식 냄새를 맡자마자 정말 무장해제가 된 기분이었다. 음식을 정신없이 먹고 나서도 대화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배가 부르자 졸음이 몰려왔다. 피아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나는 피아에게 숙소에 체크인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하며 먼저 들어가겠다고 인사를 하고, 점심 식사가 마무리되었다.
Albergue-Pensión Manuel
포르토마린은 꽤 큰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지대가 높고 넓게 분포된 마을의 분위기가 다른 마을들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을 주었다. 숙소는 마을 중심 성당에서 조금 더 외각 쪽, 학교 앞에 위치한 Albergue-Pensión Manuel이었다. 숙소 앞에는 애꾸눈에 험상굳은 표정을 나폴레옹 모자와 순례자 표식이 있는 순례자의 그라피티가 그려져 있었고, 그 모습은 밤에 보면 무서울 것 같았다.
만약 사리아에서 필요한 장비나 물품을 구매하지 못했다면, 포르토마린은 준비하기에 충분한 여건이 되는 도시라고 생각했다. 사리아와는 달리 초등학교와 뛰어노는 아이들이 일상적으로 보이는 거리가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순례자와 관광객을 위한 마을들에 대해 농담을 주고받았지만, 그 마을들은 잘 꾸며진 세트장처럼 보여 유럽이라기보다는 무언가 다른 느낌을 주기도 했다.
숙소 풍경
비에 젖은 생쥐꼴로 숙소에 들어와 체크인을 했다. 나는 1층 침대를 원했다. 늘 언제나 그렇듯, 첫 번째로 고려하는 것은 화장실과의 거리였다.
내가 배정받은 침대는 화장실로 가는 문 바로 앞에 있었다. 비가 계속 내린다면 내일 짐을 동키로 부쳐야겠다고 생각했다. 방 구조는 기다란 형태로, 가로로 출입문을 두고 5~7개 정도의 침대가 줄지어 배치되어 있었다.
숙소마다 성향이 다르지만, 다행히 마뉴엘 숙소의 순례자들은 조용히 고요함을 유지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건물이 꽤 큰데도 불구하고 소란스러운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짐 풀기
나는 생쥐꼴을 하고 있는 젖은 옷가지를 벗어 판초를 샤워실 앞에 걸어놓고, 신발도 습기를 없애기 위해 신문지로 구겨 넣어두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친 후, 날씨는 추웠지만 숙소 안은 아늑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오늘 6시 30분에 조셉 아저씨와 저녁을 먹기로 약속을 잡았기 때문에, 남은 시간은 짐을 정리하고 침대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피아에게 연락을 해보니, 가브리엘과 셀리(써니)에게 첫날이라 꽤나 고단했는지 저녁은 함께 먹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조셉 아저씨와 약속을 잡으면서, 아저씨는 수요 미사를 갈 거라며 미사를 마친 후 만나자고 연락을 주셨다.
그 소식을 듣고 나는 미사를 들으러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나갈 준비를 했다.
내 옆 침대에는 서로 인사도 하지 않았지만 분명 한국인임이 확실한 한국인 순례자 아저씨가 계셨다. 말을 하지 않아도 바로 눈에 띄는 건 어쩔 수 없다. 지금까지 알베르게에서 만난 한국인 아저씨들은 조셉 아저씨를 제외하고는 여러모로 민폐객들이 많았어서 조금 날이 서 있긴 했지만, 사람에게 편견을 갖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마음을 비우려고 노력했다.
Igrexa de San Xoán ou San Nicolao
숙소에서 정리를 마친 후 축축한 고어텍스 재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비가 내려 돌아다니기 힘든 날씨였다.
이제는 도시에 도착하면 자연스럽게 메인 광장이 있는 성당으로 가는 것이 순례의 일상이 되었다.
순례길의 하루 여정은 끝났지만, 그 안에서 또 다른 도시 구경이라는 여정이 남아 있었다.
한 발 한 발 밟는 걸음이 너무 소중해서, 남은 길을 더 천천히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얼마 남지 않은 이 길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리고 싶었다. 그래서 피곤했지만 미사에 참석하고 동네 구경을 하며 순례길 마을의 분위기를 느끼려고 더 노력했던 것 같다. 마침 미사가 시작되었다. 나는 순례자 여권을 챙기지 않았지만, 남은 여정과 무사 순례를 위해 미사를 들으며 내 몸과 마음을 정화했다.
라틴어로 암송하는 신부님의 목소리와 바스락거리는 성당 안, 그리고 예상외로 많은 신도들. 이번 성당도 붐비는 모습이었다.
정말 나와서 잘했다!
비록 힘들었지만, 미사가 나에게 정신적인 도움이 된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맨 앞쪽에서 미사를 듣고 있는 조셉님이 보였다. 차분한 얼굴로 정갈하게 기도를 드리는 모습이었다. 나는 한 블록 뒤의 의자에서 신도들과 함께 일어나 앉으며 뜻 모를 라틴어 기도문을 포르토마린 마을 신자들과 함께 암송했다.
개인적 성찰의 시간
잠시 현실 이야기를 해보자면, 포르토마린에 도착한 글을 기고하고 있는 지금, 나는 순례길 700km를 걷는 것처럼 지치고 힘든 상태이다. 그와 동시에, 포르토마린에 도착했을 때처럼 이 글도 얼마 있으면 끝이 날 것이라는 목표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순간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순간인지를 깨닫는 순간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쓰는 순간과 순례길을 떠올리며 순례글을 쓴다고 표현했다. 멀찍이서 개인전을 열고 출판을 하며 빠르게 나아가는 작가들을 보며, 이 또한 나만의 속도와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포르토마린 입구에 쓰여 있는 "Estrela dos desejos"를 번역해 보니, 두 개의 별이 합쳐진 성스러운 별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이곳이 가톨릭 신자들에게 중요한 성지임이 틀림없었다. 라바넬 델 까미노 때처럼, 사람들로 가득 찬 성당 안에는 순례자들과 성지 순례 관광객, 그리고 현지 마을 사람들로 북적였다.
성 니콜라스 성당을 빠져나왔을 때, 조셉님과 바로 마주쳤다. 늘 느끼지만, 그는 진중하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조셉님
조셉님과는 레온에서 만난 이후, 후반부 길에서 처음 다시 뵙게 되었다. 우리는 팜플로나부터 레온을 지나 이곳 포르토마린까지 서로 비슷한 템포로 걷고 있었고, 이제는 서로에 대한 낯가림이 사라지고 친구처럼 편안한 사이가 되었다. 아저씨는 나에게 늘 성당 미사에서 나올 때마다 가톨릭 신자냐고 물으시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의 대답은 항상 "순례자의 길을 걷고 있으니 그 정신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성당에 와서 미사를 참여하며 구원과 속죄, 그리고 은혜를 받으며 순례길을 안전하게 걷기를 기원한다"라고 말씀드렸었다.
늘 이야기를 했지만,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던 듯싶다.
양모 양말
나는 손미나 씨를 비롯한 지넬과 카르멘 순례자들이 추천한 양모 양말을 사고 싶었지만, 왜인지 내 눈에는 100% 울 양모 양말을 파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양모 양말에 집착했던 이유는 흡수, 통풍, 완충 작용 등 장시간 트레킹에 적합하다는 칭찬이 자자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르토마린의 순례자 기념품샵을 돌아다녀 봐도 도무지 보이질 않았다. 나 역시 여전히 오른쪽 뒷발꿈치와 왼쪽 새끼발가락 등 크고 작은 물집들이 계속 생기고 있었기에 해결책이 필요했다. 여전히 나의 고집스러운 발은 평생 이렇게 걸어본 적이 없던 몸이라, 한 달간의 이 여정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하루를 완주한 후 숙소로 돌아오면 발바닥은 불덩이처럼 열이 오르고 부풀어 있었다.
결국 양모 양말을 찾지 못한 채 저녁 식사를 하러 성당 주변의 음식점으로 향했다.
저녁식사 Meson Rodriguez
저녁식사를 하러 나온 순례자들의 행렬 덕분인지 식당은 사람들로 붐볐다. 우리는 겨우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앉아 주문을 했다. 저녁에 먹었던 메뉴를 기억해 보자면, 나는 돼지고기와 감자튀김, 샐러드를 먹었고, 조셉님은 장조림 같은 고기를 드셨다. 사람들이 너무 붐벼서 정신이 없었던 기억이 있다. 생일이 하루 지나긴 했지만, 조셉님이 밥을 사주셨다.
앞으로의 일정을 공유하며, 발목이 레온 가는 길에서 꺾였던 상태였던지라 건강 상태를 물었다. 조셉님은 짐을 보낼 수 있는 구간까지는 짐을 보낼 계획이라고 했다. 팜플로나에서 함께 걸을 때, 조셉님은 완고하게 절대 짐을 100% 매고 완주할 거라고 보장했었지만, 현재의 조셉님은 그때의 모습과는 달리, 인상부터 마인드까지 내가 느끼기에 완전히 다른 분이 된 느낌이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순례길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길을 통해 누군가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밥을 먹으며
나의 사람에 대한 불신과 혐오 트라우마도 길을 걸으며 만난 순례자들을 통해 치유되어 가고 있었다.
조셉님은 짐을 보내다 보니 업체 VIP가 되었다며, 오늘 있었던 해프닝을 얘기하며 하루를 정리했다.
조셉님은 원래 짐을 공공 알베르게 주소로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그곳이 시즌 마감을 하며 문을 닫은 곳이라 운송업체에서 근처 다른 알베르게에 짐을 맡겼다고 연락이 왔다고 한다. 다행히 운송업체와 왓츠앱으로 소통하고 있었고, 빠른 안내 덕분에 고생을 덜었다고 했다. 소소하지만 이런 소통은 만약의 사고 방지를 위해 꼭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내가 그 피해자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 선비 같은 젊고 차분한 아저씨가 순례길에서 산전수전을 겪고 계시구나 생각하며, 동병상련의 전우애가 느껴졌다.
그다음 날, 내가 겪을 일은 생각도 못한 채 말이다. 누가 누굴 걱정했던 건지...
와인을 마시고 디저트까지 먹고 나니 눈꺼풀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우리는 각자 숙소로 돌아가며 또 연락하자며 인사를 나눴다.
마지막 파트도 함께 할 수 있기를!
브엔 까미노!
케티와 페드로 소식을 공유하면서 숙소로 돌아왔다.
다시 숙소
나의 숙소는 중심가에서 떨어져 있었고, 비가 다시 퍼붓기 시작하면서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고 골목길이 스산해졌다. 차가운 가을비가 몸을 움츠러들게 한다. 내일은 가방을 보내야겠다 생각하며 숙소로 돌아와 젖은 고어텍스를 털고 잠잘 준비를 했다.
1층 침대 양옆에 벽처럼 막기 위해 바깥에 말려둔 판초와 노락 고어텍스 잠바를 벽으로 치고는 침대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숙소는 불을 켜지 않은 채 모두 침대에 누워 취침을 하고 있었다.
짐을 붙일 거니까 내일 동키봉투를 어떤 걸로 해야 하는지 확인하다가 갑자기 불현듯 그런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다.
미친 생각
트리아카스텔라에서 추천받은 신생 업체 봉투를 여분으로 가져온 게 생각났다. 호스트가 앞뒤로 무슨 얘기를 해줬었는데, 나는 1유로 더 저렴하다는 것만 기억이 났다. 이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모른 채 하루를 마치고 잠잘 준비를 했다.
내일은 포르토마린에서 팔라스 드 레이라는 도시까지 24.8km를 걸을 계획이다. 오늘처럼 흐리거나 비가 내리다를 반복한다면 무난하게 걸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Buen Cam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