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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스스로 길을 만든다.

리바디소 가는 길(Ribadiso/Arzua)

by 양작가 Mar 2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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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우리는 왜 이런 고생을 하며 순례길을 오르는가?
일상으로 돌아와 쉽게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짜증이 날 때마다 대뇌 인다.
가치 있는 것은 누군가의 피와 땀, 눈물이 쌓여 천천히 만들어진다.

오늘의 나를 위해 선대의 순례자들이 그 길을 닦아놓았다.
우리는 천 개의 사랑의 결과이다.
-Linda Hogan
자료출처: 까미노 가이드북 원서에 나온 내용을 보고 내가 느낀 질문과 함께 편집함.



브런치 글 이미지 1

출발: palas de Rei> San Xuliàn do Camino 3.6km> A Graña 4.1km > Ponte Campaña 4.7km > Casanova 5.9km > O Coto 8.7km > O Leboreiro 9.8km > Furelos 13.3km > Melide 14.9km > Boente 20.7km > A Castañeda > Ribadiso 26.0km


출발시간:8시 30분

도착시간:17시 29분

총 거리: 26.0km

브런치 글 이미지 2


2023년 10월 27일 아침 8시 15분/여전히 비


센도이라 숙소에서 아직 덜 말라 무거워진 등산화 안에 비닐봉지를 감고 신발을 신었다.

피아의 숙소인 Pension A Hontas까지는 650m를 걸어가야 했다. 다행히 피아가 있는 숙소가 순례길 길목에 있어 만나기가 더 수월했다.

오늘부터 배낭을 메고 걸어야 했기에, 마음가짐도 단단히 다잡고 신발 끈을 단단히 묶었다. 아침부터 기합이 잔뜩 들어간 상태였다. 우리는 어제저녁을 먹었던 레스토랑에서 가볍게 빵과 커피로 든든하게 아침을 챙긴 후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 도착할 도시는 거리가 꽤 길었지만, 아기자기한 지형과 풍경 덕분에 길이 지루하지 않았다.

어쩌면 풍경보다도 마음의 짐이 덜어져서 길이 가볍게 느껴졌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길 위의 떠돌이 개들

갈리시아 지방의 길에서는 유독 주인 없는 개들이 많이 보였다.

이 친구들은 사람 손을 많이 탔는지, 들개라기보다는 순례자들에게 동냥을 하며 배를 채우는 듯했다.

마을을 빠져나오자 산길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브런치 글 이미지 4

이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60km밖에 남지 않았다. 여정을 향한 만족감과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더 많이 기록하고 남기고 싶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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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lesia de San Xiao do Camiño

성샤오 교회는 원래 18세기에 개혁된 12세기 교회인 산챠오도 카미노에 있으며, 로마네스크 기원은 abside의 머리와 창문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주변에는 묘지가 있다. 산샤오 산 줄리안 병원은 환대의 패턴, 여관 주인, 여행자, 어부, 서커스 예술가입니다.
자료 출처: 구글 지도 지역 가이드

Sab Xulián do Camino까지 3.9km를 걸었을 때, 모두가 빠른 걸음으로 앞서 나갔고, 나 홀로 천천히 걷던 길에서 예배당 겸 공동묘지에 들러 도장을 받았다. 이곳은 아침에만 내부 문을 여는 아주 작은 교회였다.

아담한 순례자 공동묘지를 지나 팜브레강을 따라 걷는 동안, 비는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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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무지개

오락가락하는 갈리시아의 날씨 속에서 하늘에는 무지개가 피어올랐다.

무지개는 길을 걷는 순례자들에게 마치 자연이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 그리고 에너지를 채워주는 파워 젤 같은 존재였다.

습한 갈리시아의 날씨 탓인지, 지나치는 가정집들마다 벽에 화분을 걸어놓고 아기자기하게 장식해 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집 앞에는 난쟁이 길상이 마치 집을 지키듯 서 있었다.


아멜리에

저 난쟁이 길상을 유심히 바라보았던 이유는, 영화 아멜리에에서도 그렇듯 서양에서 난쟁이 길상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집을 지키는 신과 같은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아멜리에에서 주인공 아멜리의 아버지는 어머니의 부고 이후 집에 틀어박혀 세상을 등진 채 살아간다. 그러나 아멜리는 꾀를 내어 아버지의 난쟁이 길상을 승무원 친구에게 맡기고, 길상이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인증샷을 계속해서 아버지에게 보내게 한다. 마치 어머니의 영혼이 난쟁이 길상에 깃들어 세계 여행을 떠난 듯한 느낌을 주면서 말이다. 아버지에게 집은 어머니가 머물렀던 공간이자, 동시에 그를 가두는 울타리가 되었다. 하지만 난쟁이 길상의 여행 사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흔들었고, 결국 그는 집을 떠나 여행을 결심하게 된다.

우리는 종종 익숙한 공간 안에 머물며, 과거의 추억과 두려움에 스스로를 가둬버린다. 하지만 아멜리에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는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맡기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순례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맞이하는 고난과 슬픔 속에서도, 결국 계속 걷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난쟁이 길상이 놓인 집을 지나치며, 내가 사랑하는 영화 아멜리에의 메시지가 다시금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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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곳곳에 자리 잡은 폐 석조건물들은 이끼와 덤불과 어우러져 자연과 하나가 된 듯한 멋스러움을 자아냈다. 마치 세월이 덮어준 초록빛 이불속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는 듯했다.

울창한 수풀은 마치 내 여정을 안내하듯 길을 따라 펼쳐져 있었다. 나무들이 서로 뒤엉켜 터널을 만들고, 그 사이로 희미하게 비치는 빛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했다.

팔라스 데 레이로 향하던 어제의 폭우는, 평소 누구보다도 잘 걷던 가브리엘과 써니에게도 쉽지 않은 시련이었나 보다. 그들 역시 나처럼 멀리서도 한눈에 띄는 새파란 스머프 판초를 걸치고 길을 걷고 있었다.

영국의 이슬비처럼 가볍게 내리는 정도라면 ‘신사적인 비’라 부를 수도 있었겠지만, 어제의 폭우는 그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거칠고 강렬했다. 결국 그들 역시 도착하자마자 판초를 구입했다고 했다. 순례길에서는 누구나 비 앞에서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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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panilla a Cafe-Bar

Campanilla a Cafe-Bar에 도착했을 때까지 나는 7.8km를 걸었다. 그동안 줄곧 혼자 길을 걸었기에 피아의 가족과 게일은 이미 훨씬 앞서 나갔을 거라 생각했다.

카페는 녹색 천막을 씌운 막사 같은 형태로, 테라스를 넓게 꾸며놓아 비를 피하며 쉬어가기 딱 좋은 공간이었다. 순례자들은 저마다 젖은 옷을 말리거나 따뜻한 차를 마시며 잠시 숨을 돌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다시 마주쳤다. 센도이라에서 함께 묵었던 중국 순례자와 조셉 아저씨, 대만 순례자, 그리고 길을 지나치며 함께 포도를 따먹었던 브라질 순례자까지. 마치 순례길이 다시금 우리를 이곳으로 불러 모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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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습관

써니는 영국인답게 쉬는 시간마다 밀크티를 시켜 마셨고, 가브리엘은 설탕을 듬뿍 넣은 카페 콘 레체를, 피아는 늘 진한 아메리카노를 즐겼다. 게일은 언제나 물과 바나나를 챙겨 드셨고, 중국 순례자들은 이곳에서도 녹차를 마셨다.

나는 베이컨이 들어간 샌드위치와 카페 콘 레체, 그리고 갓 짜낸 신선한 오렌지 주스를 주문했다. 배가 든든해야 걸을 힘도 나니까.

이미 대부분이 식사를 마친 분위기라 다른 곳에 앉으려 했는데, 함께 앉으라며 자리를 내어 주었다. 사리아부터 리바디소까지 3일째 함께한 동행들이었다.

배낭까지 짊어진 나는 원래도 느린 걸음이 더욱 더뎌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길은 결국 혼자 걷는 것이니까. 함께 걷는 길이라 해도 이제는 더 이상 속도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떠돌이 강아지

내가 식사를 하는 동안 다들 대화를 나누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때, 떠돌이 강아지 한 마리가 막사로 들어와 꼬리를 흔들며 식사를 구걸하기 시작했다. 모두 그 강아지의 배를 쓰다듬으며, 꼬리를 흔드는 애교에 잠시 피로가 사라지는 듯 보였다. 쓰다듬어도 도망가지 않는 걸 보니, 동네에서 방치된 강아지일 거라며 다들 이야기했다.

나는 피아와 가족들, 그리고 게일에게 초반 길에 갔었던 공동묘지 교회에서 스탬프를 받았는지 물었으나, 그들은 그냥 지나쳤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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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Coto 단체사진

우리는 O Coto 8.8km 지점에 나타난 순례자 석조 동상 앞에서 함께 원정대 사진을 찍었다.

비에 젖어 물에 빠진 생쥐처럼 푹 젖어 있었지만, 모두 즐겁게 발걸음을 떼었다.

순례자 동상과 게일이 너무 닮아서 볼 때마다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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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Leboreiro9.8 km

마을에서 만난 오리들이 귀여워 철조망 사이로 사진을 찍어 기록해 놓은 자료를 찾았다.

조금이라도 자료를 찾을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다.

그날의 조각처럼 나눠진 잃어버린 퍼즐들을 찾는 기분이랄까?



물은 스스로 길을 만든다. Furelos

세코강을 지나면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나타난다. 규코는 큰 강이라기보다는 개울에 가까웠다. 하지만 비가 많이 내려 돌로 지어진 다리 길 위까지 물이 범람해 거의 발목까지 물이 차올랐다. 우리는 피할 길조차 없을 정도로 물이 차올랐고, 결국 물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발을 힘껏 디디고 걸을 수밖에 없었다. 물 입장에서 보면 이곳은 어쩌면 본래의 물길이었고, 사람들이 편하게 다니기 위해 길을 만든 것일 뿐이었다. 원래부터 자연의 것이었고, 잠시 인간은 그 자연을 이용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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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lide

많은 순례자들이 멜리데에서 머물거나 갈리시아로 가는 길의 꽤 규모 있는 도시인 이곳에 머물며 문어요리를 먹거나 아쉬운 순례의 여정을 짧게 끊으며 숨 고르기를 한다. 멜리데 입구에는 다리가 있었고, 마을이 입구부터 아기자기한 느낌을 주어 마음에 들었다.


뽈뽀 요리


우리는 이미 사리아에서 스페인 문어요리 뽈뽀를 먹어봤기 때문에 지나치기로 했다. 조셉님과 대만 아저씨, 그리고 중국인 순례자 친구들이 전문 뽈뽀 음식점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순례길을 가는 길에는 줄지어 이어진 문어 맛집들이 마치 장충동 족발 골목처럼 연달아 문어 찜통을 찌는 풍경을 자아냈다. 길은 친절하지 않았지만, 도시와 시골길, 그리고 산길을 번갈아 가는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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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orada 아이스크림 

문어찜 요리 음식점들을 지나 젤라토 아이스크림 전문점이 나타났다. 얼마 만에 본 고급 젤라토인지, 매일 먹는 아이스크림보다도 고급스러운 도시의 맛과 잠깐의 휴식을 즐기고 싶어서 아이스크림을 먹자고 제안했다.

피아는 어제 일이 있었던 탓인지 모르겠으나, 좀 더 나를 챙기는 느낌이 들었고, 우리는 함께 테이블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잠깐의 휴식이 꿀맛 같았다. 비를 맞고 허기로 지친 몸이 충전되는 듯했다.

잠시 이곳 테라스에 앉아 초코와 딸기 맛 아이스크림을 먹고, 이제 다시 출발!

멜리데에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50km 밖에 남지 않았다는 비석과 갈림길이 있었다.

더 이상 순례자에게 갈림길의 선택은 그렇게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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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rexa de Santa María de Melide

우리는 마을을 떠나기 전 예배당에 들러 오늘 길의 무사 안녕을 기원했다. 나는 오늘 길에서 마주친 이렇게 작고 아담한 예배당이 더 내 취향인 것 같고, 따뜻하게 느껴져서 좋았다. 성당 안내자는 우리에게 도장을 찍어주었고, 피아는 기부금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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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astañeda(A Fraga Alta) 갈림길
좌측에 순례길의 새로운 변형 루트가 시작된다. 이 루트는 상점이 거의 없고, 300m 더 길지만, 그만큼 순례자가 많고 아스팔트 길이 적다. 정면에 있는 길은 공식 루트로, 피게로아 교구가 운영하는 음식점이 있는 아 폰테 프라타와 카스타녜다 교구가 운영하는 음식점이 있다. 아 폰테 프라타는 알타를 지난다. 두 루트는 모두 오 리오길에서 만난다.

자료출처: 부엔까미노 앱


멜리데를 지나 파라시스포, 보엔테를 지나 카스타녜다에서 갈림길 앞에 섰다. 이곳에서 게일은 미리 예약한 경로가 우리와 달라 다른 갈림길로 가면서 내일 보자고 인사를 나눴다. 우리는 변형 루트로 가지 않고 원래 길로 걸었다. 왜냐하면 300m 더 빨리 숙소에 도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피아와 나는 같은 숙소를 예약했다.

 

나는 같은 숙소의 알베르게 벙커 침대를 예약했고, 피아는 3인실 펜션을 예약했다. 우리는 서로 같은 숙소를 예약했다며 기쁨의 환호를 터뜨렸다.

비가 오다 말다를 반복하는 변덕스러운 날씨 속에서 숲길과 마을을 지날 때, 피아와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피아와의 대화

삶의 어려운 숙제들과 2022년 아빠가 돌아가신 일, 그리고 인간관계 문제에 대해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두렵고 무섭다는 이야기들을 두서없이 주저리주저리 고해성사를 했다. 허심탄회한 자리였지만, 갑자기 시끄럽게 내리기 시작한 빗소리에 서로의 말소리조차 귀를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말하는 내내 눈물이 또 터져 나올까 봐 꾹꾹 참으며 한참을 애썼다. 내가 왜 그렇게 눈물을 참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우는 것이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는 게 몸에 배어 있는 것 같았다. 나보다 남을 걱정할 때가 아닌데도 말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나 자신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것이 더 시급한 일이었다.

배낭 사건 때도 그랬지만, 만약 한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아마 "네가 부주의했으니 그렇지?" 등의 잔소리를 한 바가지 들었을 것이다.

사실 피아와 나는 이날 함께 걸으며 처음으로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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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nsión Albergue Los Caminantes Ribadiso  17시 29분

리바디소는 언덕길을 한참 내려가 숲길을 지나 다리를 건너면 바로 나타나는 돌로 지어진 휴식처 같은 곳이었다. 이곳에 여름에 왔다면 분명 강에서 수영을 했을 것이다. 숙소는 돌로 지어진 대형 벙커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어 많은 순례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26km를 걸었으니 꽤 긴 여정이었다. 빨리 씻고 쉬었다가 저녁식사를 해야겠다.

10월 27일, 축축하게 젖은 옷가지를 빨고 몸을 말려야 한다. 후반부 갈리시아에서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은 빨래가 마를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10월 말 추위와 허기에 빠져 몸을 씻고 몸을 눕히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함께 또 같이

나는 한국에 돌아와 이날 게일에게 리바디소에서 숙소가 어디였는지 여쭤보았다. 그러자 게일은 다음 도시로 먼저 가서, 그다음 날 아침 우리가 도착하기를 기다린 후 함께 길을 걸었다고 했다. 우리가 후반부를 발맞춰 잘 걸었던 이유는 함께 반드시 걸어야 한다는 것에 맞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로 또 같이, 헤어졌다 합쳤다를 반복했다.

게일은 오늘 함께 식사를 하지 않았다.



안나의 소식

안나는 28일 내가 묵은 숙소의 1인실에 묵었다고 얘기해 주었다. 나는 내 걸음이 늦다고 생각했으나, 그 기준은 누군가보다 빠를 수도 있고, 사실 '진짜 늦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레온에서 아스토르가까지 50km의 점프 덕분에 2~3일 정도 시간이 단축되었다. 9월 19일부터 함께 걷던 사람들과 길에서 계속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 후반 길의 즐거움이었다.


캐티의 소식

초반부와 중후반부 동안 여러 차례 함께 길에서 마주치며 여러 번 같이 걸었던 캐티와 후반부 길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대했으나, 결국 마주치지 못했다. 캐티는 후반부에 내렸던 많은 비와 컨디션 난조로 고생을 많이 하며 길을 걸었다고 했다.

모든 구간이 쉽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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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on Ribadiso / 저녁식사 6시 10분

피아와 6시 10분에 숙소 앞에서 만나기로 톡이 왔다.

피아는 3인실 펜션을 예약했기 때문에 독채 건물에 따로 묵고 있었다.

우리는 리바디소 초입에 있는 유일한 음식점, Meson Ribadiso에 들어가 일찍 자리를 잡았다.

이곳은 유일한 음식점이라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고, 혼자서 많은 손님을 감당해야 하는 웨이터는 다소 불친절했다.

보통 8시에서 9시에 저녁 식사를 하는 스페인에서 6시 10분은 매우 이른 시간이었다. 안쪽 깊숙이 있는 커다란 자리에 우리 네 명이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서 리바디소에 머물고 있는 모든 순례자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었다.


낯익은 얼굴도 있었고, 처음 보는 얼굴도 있었다. 식당의 웨이터는 큰 홀을 혼자서 바쁘게 주문을 받기 위해 뛰어다녔다. 그는 점점 혼자서 버거워져 홀 안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우리 음식 역시 주문한 지 한참이 지난 뒤에야 나왔고, 물건을 던지듯이 서빙을 했기 때문에 피아와 써니는 매우 그의 서비스에 불만을 느꼈다. 내가 먹었던 메뉴는 써니와 같은 뽀모도로 스파게티였다. 심지어 면이 너무 불어 있어 점잖은 영국인들도 화가 난 듯 보였다. 하지만 나는 배가 너무 고팠고, 서비스보다 음식이 빨리 나와서 먹을 수 있기를 고대했다.

순례길에서는 항상 배가 고프다.

카미노 길에서 갈리시아 산행 중에는 카페와 휴게소가 자주 나타나지 않았다.

게다가 피아와 게일은 자주 쉬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가브리엘은 그저 엄마를 따라 조용히 걷고 있을 뿐이다.

적극적인 엄마 뒤에 차분하고 조용히, 빠르게 철이 든 자식들이 있으니 말이다.


피아 가족들과의 식사는 늘 와인과 함께였다. 나는 어느새 자연스럽게 그들과 매일 한두 잔의 와인이 일상이 되었다. 우리는 디저트까지 다 먹고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어떤 벙거지 모자를 쓴 이탈리아 사람이 나에게 아는 척을 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는 빌라카자르 데 시르가에서 만났던 이탈리안 무리 중 대머리 아저씨였다. 모자를 쓰고 있어서 못 알아본 것이었다. 그리고 길에서도 다시 마주쳤었는데, 나는 한참 후에야 기억을 해냈다.

 

멕시코 순례자 마리안

리바디소 레스토랑을 나올 때, 팔라스 드 레이에서 만났던 피아의 지인, 멕시칸 순례자 마리안을 다시 만났다. 그녀는 이제는 괜찮냐며 나의 안부를 물었다. 우리는 서로의 일정을 확인했다. 나는 이때 길이 끝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길을 천천히 즐기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만약 더 쉬고 싶다면, 내가 길 중간에 예약해 놓은 숙소가 있는데, 원한다면 거기서 묵으라"라고 선뜻 제안을 해주었다.

길이 끝나가는 것이 아쉬워서 마리안의 제안을 받아들일까 고민했지만, 결국 길을 계속 걸어가기로 했다

아무런 조건도 없이 마음의 위로와 호의까지 베풀 수 있는 곳이 바로 순례길이다.

내가 마음을 열었던 만큼 순례길도 더 크게 보답을 해준다.

나는 아쉬움이 남지만 숙소 제안은 너무 고맙다며 감사함을 표하고, 다시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 안

숙소는 역시나 9시부터 소등을 했다.

숙소 안에는 엄마와 함께 걷고 있는 모녀, 레게 모자를 쓴 히피 커플, 한국인, 캐나다인, 독일인 등 많은 순례자가 있었으나, 점점 산티아고가 가까워질수록 큰 규모의 순례자용 알베르게는 자리가 많이 남는 것 같았다.

길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이 길을 더 느끼고 머물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미 이틀이나 사리아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기 때문에, 마리안의 제안은 그냥 계속 길을 걷는 걸로 결론이 나왔다.

숙소의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는 길게 늘어선 침대들을 지나야 한다.

밤새 켜져 있는 화장실 불빛을 따라 조심스럽게 헤드렌턴을 켜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이제는 새로움보다 이 풍경이 익숙하고, 얼마 남지 않은 순례자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소중하게 느껴졌다.


산티아고까지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알베르게 숙박 비용도 함께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15유로에 숙소 예약을 마치고 잠에 들었다.

술을 마시고 자면 항상 간밤에 잠에서 깨곤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길을 걸으면서 냄새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은 정말로 없었다.

왜냐하면 씻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땀을 많이 흘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내 옆자리 외국인 남자가 정말 오랜만에 암내가 심하게 났다.

그 불쾌한 냄새가 잠을 깨웠던 것 같다. 그래서 남자 쪽으로 마주치지 않고 바깥쪽으로만 움직였던 기억이 있다.

 

여전히 내 빨래는 전혀 마르지 않아 축축했다.

내일 가는 도시는 O Pedrouzo, 22.3km. 도착하자마자 숙소를 찾아 헤매고 싶지 않아서 잠들기 전 부킹닷컴으로 예약을 마쳤다.

이제 다시 잠에 들어야 할 것 같다.

내일을 위해!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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