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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아에서 맞이한 생일

사리아(Sarria)

by 양작가

사실, 나는 한국에서 생일을 특별하게 챙기는 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생일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이제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시기가 다가왔기 때문이다. 나이라는 것은 결국 책임과도 연결되는 것 같았다.

나는 '지천명'이 되면, 정말 어른이 되어 독립하고, 버젓이 내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나는 여전히 방황하고 있었고, 한국 사회가 여성에게 기대하는 삶의 모습이 도무지 내게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빠의 부고와 엄마의 교통사고는 더 이상 인생의 숙제를 미룰 수 없다는 신호 같았고, 결국 나를 삶의 한가운데로 떠밀었다.

그렇게 나는 순례길을 걷게 되었고, 마치 짜인 각본처럼 모든 일이 흘러가며 이곳에서 생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순례를 일부만 마친 후, 약간의 스페인 여행을 하고 파리에 있는 언니 집으로 돌아가 조용히 생일을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사리아에 도착해 있고, 산티아고까지 남은 100km의 여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리아(Sarria)
사리아는 인구 13,500명의 번화한 현대 도시이다. 순례길에 합류하여 순례 증명서를 받기 위한 마지막 주요 도시로, 시간이 부족한 순례자들이 사리아에서 출발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의 100km 구간을 걷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리아는 새로운 순례자들과 이곳에서 잠시 머무는 순례자들로 인해 늘 북적이는 곳이다.

사리아에서 시작하는 순례자들을 위한 팁

사리아는 순례자들이 가장 많이 출발하는 지점이다. 그 이유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순례 증명서(콤포스텔라)를 받기 위해 반드시 걸어야 하는 최소 100km 거리 내에 있는 첫 번째 주요 도시이기 때문이다.

1. 순례 증명서를 받으려면 하루에 최소 두 번 크레덴시알 도장을 받아야 한다. (알베르게, 카페, 성당 등에서 받을 수 있다.)

2. 상업화와 혼잡함을 피하려면 신중한 계획이 필요하다. 성수기에는 숙소 예약이 어려울 수 있으므로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2023년 10월 23일 저녁 /마리아, 지넬, 다리아와의 저녁 식사

나는 다리아, 지넬과 저녁 7시 30분에 함께 식사하기로 약속했고, 마리아도 사리아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지넬이 사리아에 머물 수 있었던 이유는 버스를 타고 일정 구간을 건너뛰었기 때문이었다. 날씨는 흐리고 습했으며, 빨래는 좀처럼 마르지 않았다.

우연이겠지만, 우리 네 명은 러시아, 미국, 스페인, 한국이라는 전혀 다른 나라에서 왔음에도 불구하고 순례길에서 만나 저녁을 함께하는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되었다. 아마도 이런 만남은 순례길이 아니었다면 경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식사를 하며 사리아로 오는 길에 어떤 길을 선택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만 빼고 모두가 San Xil로 가는 빠른 길을 선택했다고 했다. 나에게 Samos 길에 대해 묻길래, 7km를 더 돌아가는 대신 Triacastela까지의 길처럼 온화하고 고요했다고 대답해 주었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San Xil 길을 걸었기 때문에 그곳에서는 앞뒤로 다른 순례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반면, 나는 걷는 내내 거의 순례자를 마주칠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 순간, 이곳에서는 우리 각자의 출신과 인종이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오롯이 '순례자'일 뿐이었다.

길 위에서의 자유로움은 특별했다. 사회에서 각자가 지닌 여성으로서의 역할이나 사회적 지위는 이곳에서는 그저 '길을 걷는 사람'이라는 단순한 정체성 속으로 녹아들었다.

순례자 조개를 배낭에 걸고 걸을 때의 자유로움은, 도시의 때를 잔뜩 묻히고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출발하던 그때와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아마도 우리는 모두, 이 길을 걸으며 각자의 껍질을 깨고 나오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사리아에서 네 명이 함께 식사를 나누는 것, 그리고 마침내 생일까지 맞이하면서 함께 저녁을 즐길 수 있었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한 순간이었다.


약국 상담

식사를 마친 뒤 약국에 들러, 트리아카스텔라에서 추천받은 캡사이신 발열 연고를 찾았다. 그리고 오른쪽 두 번째 발가락 상태를 확인받았다. 발톱이 자라지 않는 게 이상해서였다.

약사는 내 발가락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발톱이 죽은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압박 붕대로 세게 감아주면 다시 살아날 수도 있다고 했다.


"세상에나, 발톱 안에 물집이 잡혀서 그런가 했는데... 죽었다고?"


순례길에서 별일을 다 겪는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약국에서 연고와 꼼피드, 그리고 소형 압박 붕대를 구입했다. 그리고 근처 마트에서 내일 아침까지 먹을 만한 간단한 식료품을 챙기기로 했다.

가는 길에 ATM에서 80유로를 인출했는데, 수수료로 3유로가 빠져나갔다. 점점 더 시골 마을로 가고 있으니, 보일 때마다 현금을 인출해 두는 게 낫겠다 싶었다.



사리아의 밤, 장보기

마트에서 장을 봤다. 바나나, 황도 복숭아, 오레오 밀카 초콜릿, 레이 감자칩, 샐러드, 종합영양제, 그리고 에스텔라 맥주.

길을 걸으며 몸이 점점 지치는 게 느껴졌다. 영양소가 부족한 듯했다. 그래서 약국에서 종합영양제를 구입했다. 사실 프로폴리스나 비타민, 프로바이오틱스까지 싹 쓸어오고 싶었지만, 짐을 최소화해야 하니 적당히 타협했다.


사리아는 마치 순례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도시처럼 보였다. 유럽의 다른 도시들과는 느낌이 달랐다. 하지만 많은 순례자가 머무는 덕분인지, 1인실 방을 겨우 4만 원 정도에 구할 수 있었다. 화장실까지 딸린 방인데, 이런 가격이라니!


숙소로 돌아와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맞은편 방에서 누군가 들어가고 있었다. 아니, 이게 누구야? 만실라 데 라스 물라스와 빌라프란카 델 비에르소에서 만났던 프랑스 아저씨였다! 우리 둘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여행길에서 다시 마주치는 인연은 언제나 묘한 감정을 남긴다.


방에 들어가니 집에 온 것 같은 고요함이 밀려왔다. "드디어 도착했구나." 이곳이 지금 내 집이다.

자연스럽게 TV를 켜고, 장 봐온 맥주와 감자칩을 꺼냈다. 아무 생각 없이 TV를 보며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며 걸어서 그런지, 몸은 힘들지 않았는데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하긴, 트리아카스텔라에서 잠을 제대로 못 잤으니까.

오후 4시에 널어둔 빨래가 아직도 덜 말랐다. 숙소에 비치된 드라이기로 조금 말리고 나서야 침대에 몸을 뉘었다. 아마 머리를 대는 순간 그대로 잠들어버릴 것 같다.




2023년 10월 24일 아침, 따뜻한 응원

아침부터 한국에서 연락이 쏟아졌다. 가족들은 내 소식이 궁금하다며 안부를 물었고, 친구들도 메시지를 보내왔다. 엄마는 카카오페이로 돈을 보내주며 걱정 섞인 응원을 건넸다.

꼼꼼 작가님도 "맛있는 거 사 먹으라"며 돈을 보내줬고, 다현님과 램 작가님도 생일선물을 보내줬다. 조용하던 내 카톡 창이 오랜만에 북적였다. 스페인 한복판에 있는데도 바로 돈을 주고받을 수 있다니, 정말 좋은 세상이다.

이 길을 묵묵히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내 여정을 지켜봐 주고 있었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 한국이 아니라 스페인에서 더 깊이 와닿는 순간이었다.


고요한 방에서 맞이한 여유로운 아침 조용한 1인실에서 눈을 떴다. 급하게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아침.

알베르게에서 잠을 잘 때는 상상할 수 없는 여유이다.

한국의 지인들과 통화를 할 때마다 그들은 내 목소리에서 "자유로움이 묻어난다"라고 했다. 하지만 정작 순례길을 걷고 있는 나 자신은 그 말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어쩌면 한국에서 무겁게 가져온 짐처럼 내 마음의 어떤 부분들도 떨어져 나갔을지 모르겠다. 그저 하루하루 길 위를 걸어갈 뿐이었으니까.

전날 잠을 설쳐 신경이 곤두서 있었지만, 푹 자고 나니 모든 게 너그러워졌다. 이 조용한 아침, 그리고 멀리서도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오늘도 길을 나설 힘을 주고 있었다.




Cafetería OREIRO café té chocolate

로닛과 저녁을 함께하진 않았지만, 길을 떠나기 전에 아침 식사를 하자며 연락이 왔다.

8시면 꽤 여유로운 시간이었고, 카페도 숙소에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이었다. 덕분에 로닛이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바쁜 아침, 길을 나서기 전 시간을 내어 함께해 준다는 것이 참 고마웠다.


이 카페는 초콜릿과 추로스로 유명한 곳이었다. 배낭 없이, 고어텍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비를 맞으며 카페로 향했다. 제발 이제 그만 내렸으면 좋겠는데, 과연 가능할까? 8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해는 보이지 않고 하늘은 잔뜩 흐렸다. 앞으로의 걷기가 어떨지, 걱정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제발!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는 날 맑은 날씨가 되게 해 주세요.


잠시 하늘에 기도를 올리며 마음속으로 바랐다.

로닛은 사리아에서 묵는 숙소에 공용주방이 있어 어제 샌드위치를 해 먹을 예정이라고 했다. 트리아카스텔라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고, 조난자를 함께 구했던 로닛과 이렇게 사리아에서도 아침을 함께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어 순례자들은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나는 로닛의 아침까지 계산하려 했지만, 로닛은 생일을 축하한다며 아침을 사주셨다.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비쥬와 허그를 보냈다.

짧은 아침을 나누고, 로닛을 배웅한 후 우리는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한 아침을 마쳤다. 그리고 나는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복숭아와 함께한 잠깐의 여유

숙소로 돌아와 어제 장을 봐 두었던 복숭아를 꺼내 먹었다. 여름에만 잠깐 먹을 수 있는 복숭아를, 이곳에서는 다양한 종류를 일 년 내내 즐길 수 있어 정말 좋다. 게다가 가격도 너무 저렴해서 더 이상 안 사 먹을 수가 없었다. 진짜 내 주먹 두 개를 합친 것만큼 커다란 복숭아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지던 중, 마침 수잔에게서 연락이 왔다. "10km 전 구간에서 오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10시가 넘어서 다시 연락이 오면, 그때 나가면 될 것 같았다.




수잔

나는 사리아에 도착하는 23일과 24일에 사리아에서 하루 생일 휴가를 가질 예정이라고 미리 이야기해 두었었다. 수잔은 이미 어제 사리아를 지나친 곳이었지만, 나를 위해 다시 버스를 타고 사리아로 와서 사리아부터 13km 거리인 Morgade까지 걸을 계획이었다.

솔직히 이렇게 과분한 생일 축하를 받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에, 어제저녁부터 정신없이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수잔은 대부분 대도시를 벗어나 숙소를 잡으며 길을 걸었다. 초행이 아닌 순례자일 경우, 좀 더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게 수월한 것 같다. 레온에서도 그렇고, 대도시를 좋아하지 않는 듯했다.

우리는 오전 시간에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마치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처럼 기념사진을 찍었다.




Cafetería 14 Cero Tres


솔직히 이날은 정말 많은 카페를 다녔는데, 영수증이 별로 없었던 이유를 찾아보니 그날이 생일이라서 거의 모든 카페에서 생일 축하의 의미로 커피와 추로스를 사주었기 때문이다. 이곳도 숙소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카페였는데, 마침 이날 아침, 수잔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었다.

참고로, 추로스는 스페인에서 아침에 주로 먹는 메뉴다. 오후가 되면 추로스를 메인 메뉴로 판매하지 않는 곳도 있다.

나는 카페 콘레체를, 수잔은 초콜릿과 추로스를 주문했다. 우리는 함께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카페는 현지인들만 오는 곳이라 북적이고 시끄러웠다.

수잔은 항상 지친 기색 없이 밝은 표정으로 걷는 모습이 참 마음에 든다. 어쩌면 나보다 20살이나 나이가 많지만, 체력은 오히려 더 좋을 것 같다. 하루에 30km를 걷는 게 일상이라니, 정말 대단하다.

바쁜 순례길 중에도 시간을 내어 나와 함께 해줘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수잔은 추로스를 다 먹고, 순례길로 가는 길목까지 배웅을 해주었다.



우연히 다시 만난 피아와 가족들 Ousá Pastelería Cafetería


순례길 입구에서 인사를 나눈 후, 돌아오는 길에 홀로 편집샵 내부를 구경하고 있던 중, 갑자기 옆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며 인사를 건넸다. 그 주인공은 바로 새벽길에서 나를 구해준 피아와 그녀의 가족들이었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오늘이 내 생일이라며 하루 사리아에 머물고 있다고 얘기했다.

피아와 그녀의 가족들은 내 시간이 괜찮다면 커피숍에 가는 길이라며 함께 가자고 제안해 주셨다. 이렇게 로닛과 수잔에 이어, 3차 브런치 시간이 시작됐다.


피아의 가족들을 소개하자면, 피아의 첫째 딸 가브리엘은 갓 대학교를 졸업한 20대 초반의 영국 아이였다. 써니는 피아의 영국 친구로, 런던에 거주하고 있다. 피아는 생장 피에드 포흐트에서부터 프랑스 길을 완주한 후, 사리아에서 그녀의 가족들과 마지막 합류를 계획하고 있었다. 가브리엘과 써니는 오늘 성당 투어를 통해 스탬프를 더 받으러 갈 예정이었다.

그때, 가브리엘과 써니가 피아와 내가 어떻게 만났는지 궁금해하며 물었다.


가브리엘 & 써니:
"둘은 어떻게 알게 됐어요?"

나 & 피아:
"말하자면 긴데,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


피아는 우리의 첫 만남을 회상하며 침을 튀기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피아는 라바넬 델 까미노로 가는 새벽길, Ermita del Ecce Homo 예배당에서 내가 잘못된 길에 들어서서 걷고 있던 나를 소리 질러 구해준 일화를 가족들에게 영웅담처럼 늘어놓았다.

그 당시에는 서로가 누구인지 몰랐었지만, 후에 카카벨로스를 가는 길, 캄포나라야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함께 들어섰던 레스토랑 Mesón el Reloj에서 우리는 각자 다른 이야기를 나누다가, 구해준 사람이 피아였고 길을 잃었던 사람이 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급격히 친해졌던 일이었다.


사리아가 꽤 큰 도시였기 때문에, 내가 갔던 숙소 근처의 블록이 아닌 순례길로 가는 길목에 있는 편집샵과 상점이 많은 블록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베이커리 샵에 들어가 브런치를 즐기게 되었다. 나는 3잔째 카페 콘레체를 마시고 있었고, 써니는 생일 축하한다고 하며 케이크와 빵, 커피를 계산해 주셨다.

가브리엘과 써니는 처음 만났는데도 불구하고, 생일을 축하한다고 하며 내가 부담을 느끼지 않게 배려해 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생일이니 이제 몇 살이냐며 내 나이를 듣고는, "정말 좋은 나이라"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점심/A Cantina Pulpería Luis

스페인의 점심시간은 보통 14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피아 가족들은 오늘 시간이 괜찮다면 함께 다니자며 제안을 해주셨다. 우리는 사리아에 여행온 여행자들처럼 편집샵에 들어가 옷을 입어보면서 옷구경을 다녔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돌고 돌아 우린 A Cantina Pulpería Luis라는 갈리시아 요리 전문점을 현지인에게 추천받아 들어가게 되었다. 이곳은 어제 음식을 먹었던 곳과도 가까웠고, 현지인들이 가득 차 있어서 정말 시끄럽고 정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신기하게도, 피아의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많았다. 그날, 피아와 함께 걸었던 미국인 할아버지 순례자, 게일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게일과 나의 첫 만남이었다.

게일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온 순례자였다. 나는 가끔씩 그를 간달프라고 불렀다. 피아와 게일은 서로 잘 맞는 친구여서, 긴 시간의 순례길에서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만약 내가 영어를 더 잘했다면, 아마 게일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었을지도 모른다.

190cm 가까이 되는 장신의 게일은 하얀 수염과 큰 키로, 왜인지 나의 아빠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더 친근하게 느껴졌고, 덕분에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갈리시아의 맛, 점심 메뉴

드디어 갈리시아의 대표 메뉴인 문어요리 뽈뽀를 먹어봤다. 그와 함께 스페인 치즈 위에 양갱 비슷한 달달한 전통 디저트인 Postre Queso Con Membrillo도 맛봤다. 여럿이 마시다 보니, 후하디 후한 와인을 3잔째 연거푸 마시게 되었다. 식당이 굉장히 정신없어서 먹을 때도 어떻게 먹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한국에서도 해산물을 잘 먹지 않지만, 이곳에서는 거의 모든 해산물을 다 먹어보게 되었다.


하지만 초장이 없으니 뭔가 아쉬워, 식초와 후추를 달라고 요청해 숙회처럼 쳐서 먹었더니, 훨씬 익숙한 맛이 올라왔다. 확실히 영국 사람인 써니와 가브리엘은 뽈뽀를 즐기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들도 내 음식을 한번 먹어봤지만, 그다지 좋아하는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뭔가 하루가 길게 지나갔는데, 아직도 하루가 끝나지 않은 느낌이었다. 세 잔 이상의 와인을 마시고 나니 대낮인데도 머리가 핑핑 돌았다. 다행히 오늘 아침에는 날이 흐렸지만, 점심때쯤 해가 쨍쨍 내리쬐어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잠시 휴식

피아는 잠시 쉬었다가 오후에 성당 투어를 갈 예정이라며, "너만 괜찮다면 함께 가자"라고 제안했다.

나는 피아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다면 함께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때 게일은 숙소로 돌아갔고, 피아 가족들은 잠시 피아가 빌린 에어비엔비 아파트에 들러 가족들이 쇼핑한 물건들을 두고, 스탬프가 있는 성당과 수도원으로 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사리아에 있는 성당을 구경하며 오후 시간을 보냈다.



성당 투어 1.Igresia Parroquial de Santa Mariña

Iglesia Parroquial de Santa Mariña, 즉 산타 마리아 성당은 아까 순례길을 따라 배웅을 하면서 마주쳤던 교회였다. 그때는 피아 가족들과 입장을 하려고 했으나 문이 열려 있지 않았고, 예배 시간에 맞춰 와야 한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점심을 먹고 잠시 피아의 집에서 휴식을 취한 뒤, 우리는 다시 산타 마리아 교회를 향해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시끄럽던 도시의 풍경에서 벗어나 외곽으로 나오자, 구름이 걷히듯 고요하고 아득한 풍경이 펼쳐졌다.


이 교회에서 재미있었던 점은 예배의 엄격한 교리와 예절을 따라야 한다고 배워온 가톨릭 교리 시간이었으나, 성당 안은 마치 성당 부설 유치원 같았다. 아이들은 의자에 앉아 장난을 치며 소란스럽게 떠들었고, 신부님은 거의 보모처럼 아이들을 돌보는 모습이었다. 사리아 동네의 아이들과 엄마들이 모두 이곳에 몰려 있었던 것 같았다. 나는 조셉님에게 한국에서도 이렇게 스페인처럼 예배가 자유로운지 물어보았고, 그는 한국에서는 절대 엄숙하고 엄격한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를 듣고 보니 쇠퇴해 가는 가톨릭이 유럽에서 새로운 형태로 변화하고 있는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당 스탬프와 함께하는 여정

산타 마리아 성당에서 미사를 마친 후, 가브리엘과 써니는 처음으로 스탬프를 찍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숙소가 에어비엔비여서 알베르게 스탬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두 군데 성당을 꼭 다녀와야 했다.

나와 피아는 성당 스탬프를 아끼며 찍고 있었다. 처음에는 앞면만 찍으면 되겠지 했지만, 이제는 뒷면까지 찍어야 하기에 자리가 부족할까 봐 걱정이었다. 가브리엘과 써니의 스탬프 투어를 핑계로 우리는 부지런히 카페와 성당을 들러 스탬프를 모으며 도시를 돌아다녔다.





성당투어 2. Albergue Monasterio de La Magdalena

Albergue Monasterio de La Magdalena는 사리아의 마지막 순례길 입구에 위치한 성당 부설 알베르게이다. 이곳에서 박물관 겸 성당 투어를 하려면 시간대를 맞춰야 하고, 입구에서 종의 긴 줄을 당겨 손님이 왔음을 알린다. 잠시 기다리면 마침 관리자님이 나오셔서 내부로 안내해 주셨다. 내부는 햇살이 들어오는 앞마당과 사각형 모양의 길을 따라 걸으며 명상하기 좋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문이 열리지 않더라도 그냥 가지 말고, 인내심을 가지고 관람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성당은 규모는 작지만, 성당이 소유하고 있는 보물들을 전시하는 방들도 있었다. 마치 창경궁의 비원을 구경하듯 고요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또한, 내부에는 세인트 제임스의 작은 이미지도 배포하고 있었다.

오늘의 일정 중에서 생일을 축하하며, 그간의 여정을 돌아볼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장소였다고 생각한다. 특히 교회에 들어갈 때 종을 당기면 예전 방식으로 종이 울리는 퍼포먼스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우리는 일과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내리막길에서 오랜만에 예쁘게 번지고 있는 붉은 노을을 감상하며 숙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침부터 쉼 없는 일정은 나뿐만 아니라 피아 가족에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오늘은 도착해서 낮부터 쇼핑과 성당 투어까지 쉴 틈이 없었으니 말이다.


저녁 장보기 /MARCADONA

피아 가족의 아파트와 내가 묵은 숙소가 우연히도 가까운 곳에 있어, 마지막 숙소에 가기 전에 MARCADONA SUPERMAKADO에 들러 장을 보고 내일 걸을 준비를 했다. 진지하게 치즈를 고르는 써니와 피아의 모습을 보고 나는 서양 사람들에게 치즈가 매우 중요한 식재료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답했다. 거의 한국 사람들이 매일 먹는 김치와 비슷한 거겠지? 우리는 각자 간단하게 장을 보고 내일 괜찮다면 함께 걷자며 서로 인사를 나눴다.


피아는 내일 8시 15분쯤 마켓 앞에서 보자며 인사를 마치고 각자 숙소로 헤어졌다.

조셉 아저씨 역시 사리아에 와 계시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다른 일정들이 있어 다음 도시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자고 약속을 했다.



드럭스토어 Arenal Pefumerías

피아 가족과 헤어진 후, 숙소로 돌아와 보니 여행용 치약과 바디샤워가 거의 다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다시 GADIS 마트로 향했다. 마르카도나에서 샀으면 좋았겠지만, 대형 마트에는 대부분 대형 사이즈가 많아 아쉬웠다. 2리터짜리 샴푸와 작은 여행용 사이즈 가격 차이가 거의 없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결국 가볍게 떠나기 위해서는 작은 사이즈로 선택했다.

드럭스토어에서 더 디테일한 목욕용품을 찾을 수 있었고, 도브 바디 샤워와 피에롯 미니 치약을 구매했다. 여분의 먹을 것도 가디스에서 더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이제 100km만 남은 후반부 여정이 시작될 준비가 되었다.

짐을 정리하며 마트에서 구매한 멀티비타민을 병에서 꺼내 지퍼락에 옮겨 담았다.

새로운 시작

하갈언니는 레온에서 좋은 1인실 숙소를 구했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여행 중 몸이 안 좋으면 얼마나 괴로운지 잘 알기에 언니가 하루빨리 회복하기를 바랐다. 언니와 나는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이어서 서로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사리아에서의 마지막 밤이 지나갔다. 짐을 줄여서 걷고 싶었지만 계속 내리는 비로 판초, 의료용품, 비상식량까지 추가로 짐이 늘어나게 되었다.

비 맞는 것보다 추위도 피할 수 있는 판초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 생각한다.

사리아에서 맞이한 생일선물로 나 자신에게 건넨 카미노의 길은 지금의 나에게, 그리고 앞으로의 인생에서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되었다고 자부한다. 결국 내가 스스로 변하고자 선택했기에 다가온 선물이었을 것이다.

이제 아늑한 방도 안녕이다. 내일은 Portomarin이라는 도시에 도착할 예정이다. 거리는 22.3km, 배낭을 메고 걸을 것이다.

내일을 위해 이제 자야 할 것 같다.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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