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아 가는 길(Sarria)
트리아카스텔라의 밤은 순례길에서 보낸 밤 중 가장 나를 시험에 들게 한 순간이었다. 계속되는 궂은 날씨와 추위는 쉽게 지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사리아에 도착하면 생일을 기념해 하루 더 쉬기로 했고, 1인실 숙소도 예약해 두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총 거리: 25.8km
오르막: 914m 내리막: 692m
출발:
1: Samos 길: 19.73km
특징: 천천히 명상하며 가길 원한다면 이 길을 추천한다.
7km를 더 돌아가야 한다.
완만한 경사와 아기자기한 풍경이 걸었던 길 중에 가장 고요했던 산길이었다.
사모스 수도원을 방문할 수 있다.
주변에 상점이나 화장실을 찾기가 어려운 단점이 있다.
Triacastela> San Crisovo do Real(Por Samos) 3.8km> Renche(Por Samos) 4.4km > Lastres(Via Samos) 4.4km > Renche(Via Samos) 5.5km> Freituxe(Via Samos) 7.2km > San Matiño do Real(por Samos) 8.3km> Samos 10.1km > Pascais(Via Samos) 13.4km > Gorolfe(Por Samos) 15.3km > Sivil(Por Samos) 18.6km > Perros(Por Samos) 20.6km > Aguiada (길이 합쳐지는 지점) 20.6km > San Mamede(O Camino) 21.8km > Sarria25.5 km
2.San Xil 길 : 12.53km
특징: 가파른 경사와 오르막이 있는 대신 7km 거리와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Triacastela> A Balsa(Via San Xil)> San Xil> Montán(Via San Xil)>
Fontearcuda(Via San Xil)> Furela(Por San Xil)> PinTín(Via San Xil)>
Calvor(Via San Xil) > Aguiada (길이 합쳐지는 지점) > San Mamede(O Camino) > Sarria
베드버그 소동
겨우 선잠이 들었다가, 새벽 가장 먼저 움직인 순례자의 소리에 잠에서 깼다.
내 침대 아래층에 미국인 순례자가 가장 빠르게 방을 빠져나갔다. 아마도 나뿐만 아니라 그 방에 스페인 순례자 무리들 외에 대부분이 잠을 제대로 이루질 못한 것 같다. 미국인 순례자가 떠난 1층 침대로 내려가 짐을 정리하던 중, 벽을 기어가는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사실 이제껏 내가 베드버그를 만나지 않은 것은 거의 순례길에서 행운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갈리시아 지방으로 넘어오면서 습하고 따뜻한 나무를 좋아하는 베드버그에게 알베르게는 최적의 장소였다. 아마도 저렴한 숙소를 다니던 누군가에게서 옮겨 오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늘 자기 전 진드기 패치와 캠핑용 벌레퇴치스프레이를 매일 뿌리고 잠에 든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벌레에 물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옆에 있던 아르헨티나 커플은 이 숙소에서 뭔가에 물린 것 같다고 얘기를 건넸다.
새벽부터 내리던 비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천장에서 새는 빗물을 받으려는 듯, 바구니 하나가 놓여 있었다.
대만 부자
나는 화장실에 가려고 0층 주방을 지나치는데, 한 아버지와 아들 순례자가 아침을 먹고 있었다.
이전에 이들이 중국어를 쓰는 걸 본 적이 있어서, 중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했다. “사실 처음엔 한국인인 줄 알았어요.”
아들은 말수가 적었고, 바게트를 잼이나 우유도 없이 퍽퍽하게 씹어 먹고 있었다.
나는 비상식량으로 챙겨 둔 여분의 잼을 가지고 다시 주방으로 갔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가 화를 내기 시작했다.
"대만과 중국은 엄연히 다릅니다!"
나는 당황했다.
아저씨는 내게 어디서 중국어를 배웠냐고 묻더니, 내가 "중국에서 배웠다"라고 하자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얼굴이 새빨개진 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묵묵히 빵만 씹어 먹었다.
나는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싶었지만, 그냥 잼을 놓고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순례길에는 다양한 국적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다. 그래서 종교나 정치 이야기는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
내가 다른 실수를 한 것도 아닌데, 어쩐지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것 같았다. 아무 잘못이 없어도 괜히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단지, 빵이 너무 퍽퍽해 보이길래 잼을 주려고 했던 것뿐인데.
내일은 내 생일이었다. 괜히 아침부터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 빠르게 방으로 돌아와 짐 정리를 마쳤다.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가. 오늘 아침은 사람들 분위기도 왠지 뒤숭숭한 것 같다.
체크아웃
0층 로비에서는 브라질 순례자가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가볍게 아침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다 귓속말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여기서 베드버그를 발견했어요. 주인장에게 꼭 알려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곳의 호스트는 꽤 친절했고, 서비스도 좋았다. 그래서 그냥 지나치기보다 알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떠나기 전, 나는 주인장에게 작은 쪽지를 남겨 두었다.
그리고 어제 체크인할 때 추천받았던 신생 동키 서비스 업체를 이용해 보기로 했다. 이 업체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나오겠지만, 처음으로 이용해 볼 기회였다.
게다가 신생 업체라 그런지 보통 6유로인 가격보다 1유로가 저렴했다. 그 점도 매력적이었지만, 무엇보다 이 업체는 여성들이 운영하는 운송 서비스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자연스레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름은 Hola Mochila.
이 업체는 순례길 전 구간을 운영하는 것은 아니었다. 후반부 폰페라다(Ponferrada)부터 포르토마린(Portomarín) 구간까지만 운영하고 있었다. 순례길 후반으로 갈수록 새로운 신생 업체들이 꽤 많이 보였다.
나는 짐을 Hola Mochila에 맡기고, 오랜만에 가볍게 걷기로 했다.
출발: 아침 8시 19분
조난자를 구하고, 로닌을 알게 되며 보람찼던 어제와 달리, 오늘 아침은 우당탕 소란스럽게 시작되었다.
외형부터 정겨운 트리아카스텔라의 아침. 짙은 군청색 하늘 아래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지만, 사리아로 향하는 발걸음만큼은 가벼웠다.
일어난 일들을 마음속에 오래 담아 두지 않는다. 길 위에선 그저 걸으며 흘려보내고, 비워내며 나아갈 뿐이다.
아침부터 생일 상
알베르게 아트리오를 나와, 어제 로닌과 저녁을 먹었던 Parrillada Xacobeo Restaurante 입구로 다가가자 많은 순례자들이 아침 식사를 하며 출발 준비로 분주했다.
비가 내린 탓에, 모두 음식점 입구에서 판초를 벗고 입느라 더욱 정신이 없었다. 나도 판초와 지팡이를 입구 안쪽에 정리해 두고, 복잡한 순례자들 틈을 헤치며 주문을 마쳤다.
겨우 한자리를 찾아 앉았는데, 마침내 테이블 뒤에서 캐나다 노부부가 식사를 하고 계셨다.
월레스 부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들은 '월레스와 그로밋' 속 월레스 부부와 참 많이 닮았다. 그래서인지 더욱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월레스 부부'라고 부르기로 하겠다.
우리는 아침 인사를 나누었고, 나는 사리아에서 이틀간 쉬어갈 계획과 함께 내일이 생일이라 오늘 다시 뵙게 되어 반갑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월레스 부부는 생일 축하 인사와 함께 서양식 허그와 비쥬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갑자기 다가오더니, "오늘 아침 식사는 우리가 계산했어요. 생일 축하해요!"라고 말씀하셨다. 다시 한번 따뜻한 포옹을 해주신 후, 부엔 까미노! 인사를 남기고 길을 떠나셨다.
정신없는 아침 소동으로 마음이 무거웠는데, 그분들의 따뜻한 배려가 마치 한 그릇의 뜨끈한 수프처럼 마음을 녹여 주었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트리아카스텔라 이후로 월레스 부부를 더는 마주치지 못했지만, 그분들이 내게 건넨 든든한 믿음과 사랑은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다.
카미노에서의 모든 순간이 특별한 이유는 단 하나, 다음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스토르가부터 트리아카스텔라까지 함께 걸었지만,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인지 지금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고, 익숙해지지 않는 감사함이 늘 길 위에서 찾아왔다.
오늘의 아침은 평범한 토스트가 아니었다. 사랑과 애정이 담긴 한 끼 식사 덕분에, 간밤의 소란은 어느새 잊히고 마음까지 든든히 채워졌다.
북적이는 음식점에서 식사를 마친 후, 화장실을 다녀오고 길을 나설 준비를 했다. 어느새 추적추적 내리던 빗줄기가 더 굵어지고 있었다.
러시아 순례자 다리아
레스토랑에서 나와 트리아카스텔라를 240m 더 가로질러 걷다 보니, 까미노 길 초입의 갈림길이 나타났다.
그때 길을 걷던 중, 어딘가 익숙한 얼굴을 마주쳤다. 안경을 쓴 백인 여성이었는데, 서로 긴가민가하며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엘 부르고 라네로에서 만났던 다리아였다!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중반부 길에서 스쳐 갔던 사람을 후반부 길에서 다시 만나게 되다니, 이건 우연일까?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감정은 반가움이었다. 마치 비에 젖은 빵처럼, 우리도 순례길에 흠뻑 젖어 이제는 이 생활이 너무나 익숙해진 상태였다.
사실 다리아와 나는 엘 부르고 라네로에서 몇 마디 나눈 사이였을 뿐, 연락처를 교환하지도 않았다. 지넬처럼 여러 번 마주친 것도 아니었고, 단지 같은 식당에서 두 번 우연히 함께 식사했던 게 전부였다.
그래서 이번에야말로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확정된 약속은 아니지만, "오늘 사리아에 도착하면 함께 식사하자"라는 말을 남겼다.
다리아는 내가 방금 식사한 식당 쪽으로 아침을 먹으러 가고 있었고, 나는 반대로 순례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인사를 나눈 뒤, 마을 끝 갈림길에 다다랐다.
처음에는 비가 내리고, 7km를 줄일 수 있다는 생각에 오른쪽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많은 순례자들이 그 길을 선택했기에, 나도 자연스럽게 그 흐름을 따랐다. 그러나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천천히 조용히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른쪽 길도 아름다웠지만, 나는 안개가 자욱한 산길을 따라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고 싶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빠른 길을 택해 오른쪽으로 향했지만,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방향을 돌렸다. 이제부터는 나만의 속도로, 조금 더 고요한 길을 걸어가기로 결심했다.
다시 갈림길 비석으로 돌아와 왼쪽 길에는 뿌연 안개를 헤치고 순례자들을 기리는 순례자 동상이 나타났다.
Adios! Hasta da Vista!(안녕! 또 만나요!)
오른쪽 산실 길과 달리 왼쪽 사모스 길을 선택한 순례자들은 많지 않아, 정말 누군가 고독하게 걷기 명상을 원한다면 상상하던 그 길을 걸을 수 있겠다는 예쁜 풍경이 펼쳐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남쪽 사모스로 이어지는 7km는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가는 길이었다.
사람이 없어 조용하고 차분하게 걸을 수 있었지만, 음식점과 식수대가 없어 배가 고플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걸었던 길 중 가장 완만하고 편안한 숲길이 었다. 트리아카스텔라에 들어설 때처럼 고요하고 명상적인 느낌이 들었다.
구불구불 아기자기한 돌담을 지나니, 닭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담은 지브리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세모 모양의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하얀 벽 앞에는 습기를 가득 머금고, 화분들과 함께 만개한 수국이 길을 걷는 내내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이 굴다리를 지나니, 다리 아래에는 한 그라피티 아티스트의 제3의 눈이 그려진 작품이 눈에 띄었다. 그렇게 길을 걷다 보니, 129.8km가 남았다는 순례길 비석이 나타났다.
"25km를 배낭 없이 이런 길을 간다면 10km는 더 갈 수 있을 것 같아."
길 중간중간 보이는 Samos 표지판만이 이곳이 순례길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러나 오전 내내 내가 만난 순례자는 한두 명에 불과했다.
계속 비를 맞으며 10km 정도 걸으니 배가 출출해지기 시작했다.
사모스에 도착했을 때, 산 중에 폭 쌓인 사모스 수도원이 눈에 들어왔다. 안개와 구름에 싸여 더 아름답고 신비롭게 느껴졌다.
나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열려 있는 Café-Bar España로 향했다. 판초를 벗고 카페로 들어가니, 트리아카스텔라에서 다시 만났던 한국인 모녀가 마침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려 준비 중이었다.
이 모녀와 나는 걷는 스타일이 비슷해 자주 마주쳤고, 앞으로도 길에서 다시 만날 거라고 늘 믿게 됐다. 한국인 딸 역시 출출해서 식당을 찾아봤지만, 문 연 곳이 이곳뿐이라 간단하게 빵으로 배를 채웠다고 했다.
하긴, 12시도 되기 전에 도착했으니 점심을 먹기에는 애매한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2시까지 이 마을에서 식사를 기다리는 것도 말이 안 되었다. 내 짐은 사리아에 이미 도착해 있을 테니, 사모스의 고즈넉하고 동화 같은 풍경을 더 즐기고 싶었지만 그 생각은 접어두기로 했다.
Atra Monumento ao Peregrino
혹시나 해서 카페 주인에게 이 동네에 일찍 문을 여는 레스토랑이 없는지 물어보니, 위쪽으로 올라가 보라며 길을 안내해 주었다.
카페에서 다시 만난 한국인 모녀와 가볍게 인사를 나눈 후 길을 떠났다. 그 인사가 마지막이 될 줄 몰랐던 나로서는 연락처도 교환하지 못한 것이 지금 정말 아쉽고 그리운 느낌이다. 카페 맞은편에 문을 닫은 시청 건물 처마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순례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순례자들끼리 가벼운 눈인사를 나눈 뒤 길을 덧나가다 보니, Atra Monumento ao Peregrino 순례자 석상이 비를 맞으며 길 위에서 순례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사모스를 벗어나면 더 이상 식사를 할 만한 곳이 없다는 안내를 받았기에 남은 10km는 비상식량만으로 걸어야 했다. 길을 떠나기 전에 조금이라도 배를 채워야 했다. 물론 보조 가방에는 바나나와 초콜릿, 설탕, 잼이 있었지만, 그런 것만으로는 배가 채워지지 않았다.
빨리 식당을 찾아야 한다. 만약 여기서 먹을 것이 없다면, 다시 아까 카페로 돌아가서 따뜻한 우유와 빵을 먹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마지막 한 군데 호스텔이 보여 비를 피할 겸 들어가 보았다.
Hotel A Veiga Restaurante 12:21
이곳에 비를 피해 들어가자, 내 지팡이에 다들 관심이 쏠렸다.
나는 비에 젖은 생쥐처럼 지쳐서 식사가 가능하냐고 물었지만, 역시나 2시에나 점심이 가능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때, 마침 그곳에서 몸을 녹이고 있던 미국 부부 순례자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
순례자: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여기서 차 한 잔이라도 하면서 몸을 녹이고 가는 게 어때요?"
나: "그게 좋을 것 같아요."
나는 미국인 순례자의 말에 동의하며, 잠시 휴식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갖구운 빵은 없었지만, 오렌지 주스와 카페 콘 레체, 그리고 빵 오 쇼콜라를 시켜서 앉아서 먹기 시작하자 이제 좀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허기가 가신 기분이 들었다.
사모스 길을 택한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추구하는 성향이 비슷했을 것이다.
한국인 모녀도 한 발, 한 발 순례길을 몸과 마음으로 천천히 소화시키며 담고 싶어 했으니, 7km나 둘러가야 하는 느린 길을 선택한 것이리라.
이곳에서 만난 미국 커플 역시 그렇게 차분하게 이 길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역시나 낮부터 카페에 앉아 술을 드시는 마을 아저씨들은 어딜 가나 계시는 듯하다.
지하에 있는 커다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후, 다시 판초를 입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길을 나섰다.
ÁREA DE DESCANSO
순례길 앱과 구글 지도 속에는 이 호텔을 지나면 식사를 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 있다고 적혀 있어서 약간의 희망을 품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LU-633 도로를 강을 따라 850m를 걸어가다 보면 ÁREA DE DESCANSO가 나타난다. 돌로 만들어진 순례길 비석과 휴게실인데, 이 지역이 얼마나 돌이 많은지 보여주는 듯 의자도 비석도 모두 돌이었다.
물이 나오는 흔적이 있었으나, 이곳으로 가는 내내 보이는 것이라곤 폐업했거나 비가 와서 영업을 하지 않는 곳뿐이었다.
곧 사모스를 지나 만나는 작은 마을 Teiguín 이 나타났는데, 여름 순례길을 걷는다면 이곳은 정말 천국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길을 끼고 흐르고 있는 사모스 강과 물놀이를 위해 설치된 야외 수영장이 있어서, 시원한 물줄기가 많은 순례자들의 더위를 식혀주고 수영을 하며 즐거움을 주었을 것이다.
생장에 첫 발을 들였을 때 두려움을 뚫고 꿈이 현실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피레네를 넘으며 윈도우 프레임으로 넘어왔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큰 자연 안에 들어왔다고 실감했었다. 하늘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매와 독수리가 길을 안내하며 지켜주었으니까.
지금 사모스에서의 풍경은 그때와 사뭇 달랐지만, 강과 산, 그리고 산중에 파묻혀 있는 이 작은 마을의 풍경이 이곳에 잠시 더 머무르다 가도 좋을 것 같았다.
호텔에서 나를 멈추게 했던 미국 부부와 업치락 뒤치락하며 비슷한 템포로 사리아까지 자주 길에서 마주쳤다. 그나마 여기 사리아를 걸으며 위로할 수 있는 것은 아름다운 풍경과 물소리였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줄기는 싱그러운 풀냄새와 더불어 적당히 기분을 상쾌하게 하는 듯하다.
걸으며 들은 생각
길 중간중간 만나게 되는 순례자들의 묘비들을 보면서 아빠가 떠올랐다. 태어나서 10대와 20대를 거치기까지 부모님과의 시간은 인생의 대부분에 영향을 미치며 성장하게 된다. 20대에서 30대는 홀로서기를 준비하며 직장에 다니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터득하는 시기다.
그리고 30대에서 40대는 부모님과 완벽하게 분리되어 가정을 꾸리거나 새롭게 나만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렇다고 해도 부모님이 살아계시는 한, 함께 인생의 길을 걸어간다. 그런데 30대 이후 앞으로의 이야기를 아빠와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생각이 떠오르며 슬픔이 차올랐다.
한국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 눈물이 차오를 때 감정을 분출하기보다는 습관처럼 감정을 누르고 눈물을 보이려 하지 않는다. 사실 살아생전에도 여느 한국 가정처럼 아빠와 나는 그렇게 친하지 않은 사이였다. 하지만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빈자리는 큰 법이다. 나는 눈물을 훔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길을 걷게 된 동기 부여 역시 아빠였고, 등산을 유난히 좋아했던 아빠를 떠올리며 마음속에서 아빠와 함께 이 길을 걷고 있다.
Teiguín부터는 계속된 숲길이다. 인적이 드물다 보니 순례길 표식이 없고, 한참을 숲길에서 길을 헤매다 네비를 켜고 겨우 제대로 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들판에는 소들이 여유롭게 풀을 뜯으며 쉬고 있었다. 그 여유로움이 나까지 잠시 울적했던 마음을 풀어지게 만드는 듯했다.
스페인은 소가 많아, 매일 소를 보면서 동화를 만들고 소몰이 축제와 투우로 동네 소 잡는 날을 만드는 스페인 사람들과 페르디난도 동화에 나오는 황소는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걷는 내내 사모스를 지나면서 안내된 대로 식수대나 음식점은 나타나지 않았다. 있었다 해도 폐점된 지 오래였고, 오래된 유적지와 폐가, 그리고 지나가는 순례자들을 지켜보는 소들뿐이다.
갈리시아의 숲길은 한국의 산처럼 습하고 수풀이 많이 우거져 있다. 밤송이들이 비와 순례자들이 지나간 자리에 터지고 짓이겨져 있다.
Teiguín에 대해 할 말이 많긴 한데 부엔까미노 앱과 카미노닌자 앱에서는 Teiguín을 기점으로 길을 가로질러가는 길을 안내해 준다.
그런데 까미노 프렌치웨이앱을 보고 아래쪽으로 가는 LU-633길을 갈 수 있다 착각했으나 그곳에는 길을 갈 수 없다는 표지판만 볼 수 있었으니 길을 걷는 길치 순례자라면 꼭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위로 올라가는 길은 산길로 들어서면서 표지판이 없어지거나 보수가 안돼서 안 나타날 때가 있으니 항상 앱으로 다름 도착지를 파악을 하면서 길을 걸어야 한다.
한순간에 길을 놓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제대로 된 길로 들어섰다.
그렇게 Pascais와 Gorolfe를 지나 Sivil에서 작은 알베르게의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길을 걷다가 그곳으로 향했다. 길을 걸으며 바나나도 먹고 초콜릿도 먹었지만, 그 정도로는 허기가 채워지지 않았다.
비가 오고 쌀쌀한 날에는 따뜻한 수프가 제격이다. 이 외딴 알베르게는 조금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지만, 숙소 입구부터 꾸며진 화려한 장식과 조형물 그림들을 구경하면서 진입로를 따라 한참을 들어가야 했고, 그 모습이 조금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장 아줌마는 영어를 전혀 못하셨고, 다들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온 음식을 보니 왠지 국밥집 같은 비주얼이었고, 비가 오는데도 유독 이곳에만 파리가 너무 많아 갑자기 입맛이 싹 달아났다. 마치 영화 마틸다에 나오는 사감 선생님이 있는 한 교실의 분위기처럼 느껴졌다.
나는 음식을 보고 그냥 발길을 돌려 비상식량인 남은 초콜릿을 꺼내 먹으며 식사를 할 마음을 비우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뒤이어 알베르게에서 식사를 하던 무리들이 다시 걷기 시작하면서, 고요하게 걷던 순례길이 어느새 왁자지껄하게 시끄러워졌다.
Sivil을 지날 때 길 분위기는 마치 덕수궁 돌담길을 걷는 것처럼, 왼쪽 벽면에 돌벽이 층층이 쌓여 있고 오른쪽에는 나무와 수풀이 아름드리를 만들어 고요함만 유지되었다면 더 아름다웠을 길이었다.
Aguiada는 대부분이 소들의 목초지인 시골 농가였다. 길이 합쳐지면서 조용했던 순례길이 다시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길을 걸으며 아까 사모스 이후로 한 번도 화장실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위기가 찾아왔다. 118.665km의 거리만 남은 상황에서, 사리아와의 거리가 좁아질수록 지대가 낮아지고 구름이 걷히며 해가 나타났다.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거의 길게 쭉 뻗은 대로가 나타났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려 들어와도 그렇게 빡빡한 정체나 소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사리아로 가는길
사리아로 가는 길에 10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고목이 서 있었다. 번개를 맞은 건지, 윗둥이가 날아가고 구멍이 뚫려 있는 그대로 길 한복판에 서 있었다.
이제 오늘 걷기가 5km도 안 남은 상태에서 구름이 거치면서 무지개가 카메라 앵글에 잡혔다. 염소와 양목장에서 염소들이 지나가는 순례자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 누구를 구경하는 걸까?
마을 가까운 거리에 숲이 우거져 있었는데, 도무지 음식점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보이는 곳들은 대부분 문이 닫혀 있어, 나는 어쩔 수 없이 숲속으로 달려가 볼일을 보고 나왔다. 이제는 뭐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긴 하다.
질문
대형 캠핑카에 오토바이를 매달고 영어로 붙인 질문 표지판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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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en Camino”
당신은 당신의 삶에서 영적 해답을 찾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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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함은 공짜입니다.
부엔까미노
구름이 거치고 나타난 햇살처럼, 사리아는 상쾌한 기분을 안겨 주는 풍경이었다. 사리아는 순례길의 마지막 합류 지점으로, 관광객과 순례자가 몰리는 도시이다. 오래된 건물들로 가득한 유럽에서 이곳은 유럽의 어느 도시보다 새 건물들이 많이 보였다. 마치 강원도의 작은 마을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사리아에는 유서 깊은 유적지가 많아, 내일이 생일인 만큼 하루 더 쉬어 갈 생각에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내 숙소는 1인실이 있는 Casa Matìas라는 팬션형 호텔로, 도심 속으로 한참 들어가야 찾을 수 있었다.
나는 16시 42분이 되어 숙소에 도착했다.
꾸물꾸물한 날씨에 비가 다시 내릴 것만 같았다. 숙소에 도착하니 문이 닫혀 있어 앞에서 서성거리자, 기념품 가게 주인이 나와 체크인하라고 안내해 주었다.
나는 23일부터 25일까지 이틀 동안 묵기로 예약했는데, 숙박비는 64.98유로였다. 하루에 알베르게에서 평균 15유로 정도를 지출하니까, 1인실 치곤 꽤 저렴한 곳이었다.
개인 화장실에 더블 침대까지 있으니 컨디션도 만족스러웠다.
3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열쇠를 받아 방으로 들어갔다. 욕조는 없지만 텔레비전도 있고, 360도 돌면서 자도 될 만큼 큰 침대와 절대적으로 고요한 이 공간이 너무 감사하고 만족스러웠다.
이제 비에 젖은 옷들을 빨고, 저녁에 다리아와 지넬, 그리고 마리아까지 사리아에서 합류해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지넬은 나보다 걸음이 늦었는데, 사리아에 같은 날 도착했다는 소식에 조금 놀랐다. 물어보니 버스를 타고 왔다고 한다. 날이 굳었기 때문에 현명한 선택이었다.
우리는 서로 각자 따로 알게 되었지만, 이렇게 한 장소에 모여 함께 식사할 생각을 하니 사리아까지 걸은 26킬로미터의 거리가 피곤하기보다는 기대감과 설렘이 더 컸던 것 같다. 저녁 이야기를 쓰면 사모스 길의 고독함을 느끼기 어려울 것 같아 샤워를 마친 후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부엔까미노!
나는
아침부터 비
생일 축하 아침밥
선택의 갈림길
배고품
고요한 산길
드디어 사리아
1인실 숙소
저녁 모임(지넬, 마리아,다리아,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