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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뱃살공주 Feb 07. 2024

날마다 춤추듯이

지구도 돌고 있으니깐^^

아리스토텔레스는 움직임을 두 종류로 구분했다.

카네시스(kinesis)와 에네르게이아(energeia)이다.

카네시스는 시작점과 종착점이 있어 최대한 효율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딘가 도달하기 위한 운동이라 도중에 중단되면 불완전한 것이 된다. 마라톤을 상상하면 된다.

에네르게이아는 어딘가 도달해야 하는 운동이 아니다. 춤을 추는 것을 상상하면 된다. 우리가 춤을 추는 건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음악이 끝나면 춤도 끝나며 지금 여기서 춤을 추며 즐기는 그 순간만이 의미가 있다. -기시미 이치로 『아직 긴 인생이 남았습니다』 중에서-    


창밖 하늘을 바라보며 난 어떤 움직임 속에 살고 있는지 아니 살아야 하는지 생각에 빠져들었다.

내 발 옆에 정리되지 않은 이름도 모르는 식물들이 서로 자신의 키가 더 크다며 살랑거린다. 유기묘 유기견을 입양하듯이 아파트 화단에 버려진 것들을 데려다 '너도 귀한 화초다'라며 키웠다. 이 아이들도 내가 어떤 움직임으로 살아갈지 궁금한 모양이다. 고개를 쳐들고 햇빛을 바라보던 잎사귀들이 조금씩 내 쪽으로 눈길을 돌린다.


‘퇴직’이란 목표만 바라보고 왔다면 허망했을 ‘퇴임식’. 2월 마지막 주에 있을 ‘퇴임식’이 기다려지고 설레는 걸 보면 지금까지 난 출발과 끝이 있는 삶을 추구한 건 아닌듯하다. 그동안 난 나와 함께 한 모든 것을 사랑하고 순간순간을 다. 행복한 기운으로 지내다 보니 '퇴직'이 왔다. 이제 매 순간순간 더 즐기며 지내겠다. 지금부터의 시간은 온전히 내 것이다. 인생 1막을 마무리하고 이제 2막 커튼을 열어젖히며 난 두 번째 움직임인 에네르게이아를 확실한 손놀림으로 꾹 누른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보단 선선한 바람과 햇빛 속에 찬찬히 걷다 보면 목표가 항상 나와 함께였으니깐.


입춘도 지난 오늘 난 유명한 쇼팽 왈츠 1번인 ‘화려한 대 왈츠’를 찾았다. 최대한 볼륨을 올리고 거실 가운데 서서 피아노 소리에 맞춰 난 두 발과 손을 이리저리 흔들어 본다. 마치 발레리나처럼.

해야 할 일을 마무리하고 새로움을 향해 가는 날 위해 이제 춤을 추려한다. 날마다 이렇게 춤을 추듯이 살다 보면 분노, 고통, 우울, 괴로움, 외로움 등 내 곁을 떠나가길 바란 감정들이 연기처럼 사라질지도. 온 집안이 햇빛과 귀한 화초들, 피아노 소리, 내 움직임으로 가득 찬 행복한 날이다.

https://youtu.be/Tueuh9QJnjs?si=vIkCOwXQh3N4pE-u

<유튜브 쇼팽 화려한 대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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