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뱃살공주 Apr 02. 2024

이제는 도서관이다.

카페순례를 마치다.

구례 섬진강 변에 '섬진강 책 사랑방'이란 곳이 있다. 날마다 집을 나서는 날 위해 친구가 추천해 준 곳이다.

3층 모텔 건물을 개조한 곳이다.  나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진열된 책더미에 놀랐다. 헌책들이었다.

난 주문한 커피 한잔을 들고 쌓인 책들을 피해 계단을 올랐다. 오래된 책에서 나는 냄새가 거리를 헤매던 내게 따뜻한 아랫목을 제공해 준다. 부모님 돌아가시고 사라져 버린 친정집에 온 것 같다. 난 깊은 들숨으로 묵은 냄새를 들이마시며 살며시 눈을 감는다. 창에 반사된 햇살에 눈을 뜬 난 빛이 길게 들어온 창가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창 밖으로 섬진강이 보인다. 도도하게 반짝거리며 물이 흐르고 있다. 한참 강물을 바라보던 난 벽 쪽에 있는 책장 앞으로 가 이 책 저책을 뒤적거리다 『죽기 전에 논어를 읽으며 장자를 꿈꾸고 맹자를 배워라.』 를 집었다. 오래된 책 냄새와 커피냄새를 등에 업고 한 권에 들어와 있는 논어, 장자, 맹자에게 빠져들었다.  

    

난 2월 퇴직 후 그동안 바쁘게 살았으니, 한량처럼 빈둥거려도 된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카페’를 다니며 놀았다. 마치 초등학생 때 여름방학이면 개학 전날까지 숙제를 미루고 놀던 것처럼 놀았다. 특히 그때의 나는 동네 냇가에서 물놀이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지난 한 달 동안 모습이 ‘딱’ 초등학생 때의 내 모습이었다. 집에 있으면 ‘학교 종소리’가 들린다는 이유로 날마다 ‘카페’ 2~3곳을 다녔다. ‘카페’를 동네 냇가 삼아 과한 물놀이를 한 거다. 물속에 뛰어들어 첨벙첨벙 놀다 보면 귓속에 물이 들어가 중이염이 되거나. 과한 물놀이 후유증으로 감기를 달고 살아야 하는데. 물속에 오래 있었다. 난 매일 촉촉한 음료를 빨대로 쪽쪽 빨아먹으면서 통장 잔액 확인엔 눈을 감았다. 현실을 외면한 거다. 한잔 두 잔 큰 소비는 아니었다. 날마다 모이고 모이다 보니 1 급수인 섬진강처럼 넓고 깊은 지출이 되었다. 난 오늘 카페를 다녀온 후 깨끗하게 오랫동안 손을 씻었다.


오늘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 속에 있는 공자님 말씀이다.  '이미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 다가올 일은 잘할 수 있다.' 난 통장 잔액을 확인하고 처진 내 눈과 늘어진 뱃살에 한껏 힘을 줬다. 이젠 쉬엄쉬엄 카페를 가야 한다. 날마다 갈만한 곳이 어디지? 걸어 다닐만한 곳이면 더 환영이다. 머릿속에 번쩍 불이 켜진다.

약 3개월 전 전남에서 가장 큰 도서관이 아파트 후문 쪽에 개관을 했다. 3층 건물로 이뤄진 최신형 시설을 자랑하는 곳이다. 난 살짝 살펴만 보고 나왔던 곳이다. '유레카!' 나는 소리 지른다. 내일부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야겠다. 따뜻한 커피 넣은 텀블러를 들고 가야겠다. 책을 읽다 잠이 오면 넓은 잔디밭을 걸으며 늘어진 뱃살을 위한 걷기 운동을 하면 된다. 사람일은 모른다고 혹시 그렇게 걷다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날지도. 난 삐질삐질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는다. 넘치는 사심 꾹꾹 누르며 난 내일부턴 도서관이다.  

작가의 이전글 3월 25일 1시 22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