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보단 보통
밤 12시쯤 2주 만에 현관문 비밀번호를 눌렀다. 난 깔끔하게 정리된 현관 바닥에 놓여있는 슬리퍼가 반가웠다. 고개를 쑥 내밀어 들여다본 거실엔 적막함과 낯섦이 가득했다. 난 현관에 ‘Heavy’라는 딱지가 붙은 26킬로나 되는 여행 가방을 둔 채 거실로 들어섰다. 거실 창을 등지고 있는 화려한 색깔의 큰 잎사귀를 자랑하는 ‘크로톤’과 눈이 마주쳤다. 묵직한 그레이 색깔의 화분 위로 늘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있던 잎들이 2주 만에 만나는 나에게 45도 각도로 인사를 한다. 떠나기 전 듬뿍 물을 줬었는데 더운 날씨에 목이 말랐나 보다. 난 2주 동안 함께 했던 운동화를 벗어던지고 부엌으로 달려갔다. 꼬들꼬들하게 말라있는 커피포트 뚜껑을 열고 가득 물을 받아 ‘크로톤’에게로 갔다. 화분에 물을 주며 그러데이션 된 넓적한 잎사귀들을 쓰다듬었다. 휑한 거실 벽에 부딪쳐 울리도록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보고 싶다고 많이 울었구나. 울음 끝엔 목이 마르니 물을 마셔야 하는데. 미안해. 물이 늦어서. 어서 마시고 기운 차리자.”
거실과 베란다에 있는 몇 안 되는 화분들도 하나하나 살펴봤다. 애플민트가 처량한 모습으로 날 기다렸다. 난 처량한 애들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고, 피곤함과 늦은 시간을 이유로 그대로 잠들었다.
내 집. 내 침대. 난 깊고 깊은 잠을 잤다. 2주 동안 집을 비웠으니 2주 동안 집안에서 뒹굴었다. 나와 대화를 충분히 할 수 있는 텔레비전과 함께 했다.
여행동안 자연을 충분히 담아 온 내 두 눈에게 사람이 만든 장면만 보여줬다. 사람의 힘으로 만들 수 없는 자연 앞에 소리 지르던 난 어디론가 사라지고 사람이 만든 장면에 웃고 울었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어 그들이 듣지 않을 대답을 하면서 난 2주를 보냈다.
뉴질랜드 북섬을 거쳐 남섬. 그리고 호주 도시 몇 군데를 보고 돌아왔다. 딸과 둘이만 하는 여행이 아닌 단체여행으로 떠난 길이었다. 일정을 마치고 인천공항에서 2주를 함께했던 일행들과 ‘잘 가라’는 인사를 나눌 땐 서로 아쉬워했다. 이번여행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지만 2 주면 情이 들만한 시간이기도 하다.
딸과 난 인천공항에서 광명역까지 함께 한 후 헤어졌다. 난 순천행. 딸은 마산행. 내가 7분 먼저 출발했다. ‘Heavy’ 딱지가 붙은 가방을 들고 기차에 힘들게 오르는 내 뒷모습을 바라만 봐야 했던 딸이 기차 출발 후 문자를 보내왔다.
‘엄마. 미안해. 가방이 무거운데 들어주지도 못하고. 내가 더 늦은 시간 기차를 탈 걸 그랬나 봐. 미안. 난 도착하면 오빠가 기다리고 있는데. 엄만 순천에 도착해서도 혼자 해결해야 할 건데. 내가 같이 갈 걸 그랬나? 특히 이번 여행 팀들이 모두 부부여서 더 마음이 그래. 내 마음도 이런데 엄마는…’
문자 안에 딸 눈물이 함께했다. 그 문자에 나도 울컥했다. 혼자 살아온 시간만큼 두껍게 입혀진 ‘괜찮아’가 딸 문자에 무너지려 했다. 난 한 겹 한 겹 벗겨지려는 마음을 다시 단단히 동여매고 딸에게 문자를 보냈다.
‘한두 번 한 것도 아니고. 괜찮아. ㅎㅎ 난 이미 선수야. 걱정은 광명역에 버리고 넌 오빠가 기다리는 그곳으로 후다닥 달려가. 난 씩씩하게 내 집으로 갈게. 함께해 줘서 2주 동안 즐거웠다. 딸. 안녕’
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2주를 보내고 오늘은 팔다리 벌려 내가 좋아하는 기지개를 쫙 켰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비가 내릴 것처럼 흐린 날이지만 오래간만에 꽃단장도 했다. 2주 동안 푹 빠졌던 텔레비전에서 이젠 활자 속으로 뛰어들 시간이다. 난 2주 동안 충전을 충분히 했다. 이제 현관문을 열고 나서면 된다. 원영적 사고로 가득 찬 나는 날개 달린 운동화에 두발을 넣는다. 통통 튀는 내 특유의 걸음으로 한발 두발 엘리베이터 앞으로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