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언제라도 나비를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꽃 주위를 맴돌거나 혼자 무심코 날아가며 날개를 퍼덕이는 모습이 그리워하는 것들을 나에게 안겨줘서다. 여러 종류의 나비 중 특히 노랑나비를 만나면 더 반갑고 사랑스러워 콧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이런 나를 위해 친구들은 종종 나비 사진과 문자를 보내왔다. ‘오늘 길거리에서 뱃살 공주 최애를 만났어. 잘 살고 있지 친구!’ 나비를 보며 날 생각했다는 친구들 문자에 난 어깨를 들썩이며 '덕분에 오늘도 행복하다^^'라고 답을 보냈다.
며칠 전 복숭아를 사러 마트에 갔다 오는 길에 ‘순천 비어 페스타’를 알리는 포스터를 봤다. 더운 여름밤을 시원하게 날릴 공연도 한다는 내용이었다. 난 널찍한 공연장소 근처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했다. 공연 내용을 알려주며 포스터를 찍어 사진으로 보냈다. 우린 가끔 맥줏집에서 만나 '삶은 고통이 아니라 즐기는 거'라며 어쭙잖은 철학을 수다로 푸는 여고 동창이다. 포스터 앞에서 한 손엔 복숭아 봉지를 든 채 한참을 떠들다 페스타 장소인 오천 그린광장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집으로 돌아온 난 드레스코드가 'YELLOW'라는 문구에 맞춰 옷장 대청소를 했다. 눈을 비비고 더 크게 뜨고 찾아봐도 노랑에 가까운 옷은 없었다. 문득 보자기 생각이 났다. 다용도실 한쪽에 얌전히 누워있는 황금색 보자기를 찾았다. 난 드레스코드를 맞추고 맥주 바가 줄줄이 늘어선 광장을 누빌 생각에 들떴다. 보자기를 망토처럼 두르고 거울 앞에 섰다.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살찐 황금색 나비였다. 팔을 벌려 위아래로 흔들었다. 어깨부터 발끝까지 땀이 주르륵 흐르며 나일론 보자기는 나와 한 몸이 돼버렸다. 나는 땀을 뚝뚝 흘리며 그렇게 한참을 날다 힘든 어깨를 위해 바닥으로 내려왔다.
친구와 난 그저 '비어'라는 단어에 홀려 그날을 기다렸다. 분수대를 중심으로 세워진 무대에서 진행될 공연들과 그린광장에 줄줄이 사탕처럼 있을 맥주 바. 생각만 해도 하루하루가 흥겨웠다. 난 친구에게 공연 전까지 몸 관리를 열심히 하라 했다. 그놈의 맥주가 뭐라고. 친구는 무덤덤했지만 난 공연을 보며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목에 넘기는 그 순간이 기다려졌다. 떠들썩했던 주변이 조용해지며 머리 위로 '펑펑' 조명 터지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그런 기분을 혼자가 아닌 친구랑 함께 느끼고 싶었다.
드디어 공연 당일 친구는 노란 티를. 난 황금색 보자기를 슈퍼맨처럼 어깨에 둘렀다. 빙그르르 돌며 간드러진 목소리로 친구에게 말했다.
“친구야! 난 오늘 하늘로 날아가 버릴 거야.”
“안돼! 내 친구 가지 마!”
친구는 내 보자기 망토를 붙잡았다. 친구는 혹시 내가 날아가 버릴까 봐 걱정이라며 보자기를 벗겼다. 대신 가방에 넣어온 노란색 바람막이를 내 허리에 묶어줬다. 닳을 대로 닳아진 보자기가 민망하기도 했던 난 콧소리를 내며 다시 한번 빙그르르 돌았다. 돌고 도는 날 피하는 친구에게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튀어나온 뱃살도 예쁘게 봐주세유~~우”
우린 서로 바라보며 배를 잡고 웃었다. '맥주 교환권'을 배부한다는 방송에 우린 본부석 앞으로 뛰었다. 본부석에서 나눠준 '맥주 교환권'을 들고 맥주코너로 갔다. 내가 꿈꾸던 줄줄이 늘어선 코너가 아니었다. 맥주 바는한 곳만 있었다. 온몸을 흔들며 즐겁게 뛰어다니던 우린 실망이란 단어를 숨기고 길고 긴 줄에 섰다. 드레스코드를 맞춰 입고 온 사람만 무료로 한 잔을 준단다. 나머지 사람들은 계산 후 맥주 한잔을 받고 있었다. 맥주는 수제 맥주인 '순천 맥주'였다.
포스터만 보고 사전 지식 없이 참가한 ‘비어 페스타’는 이랬다.
노랑 운동화를 신고 마이크를 잡은 시장님이 인사말과 함께 설명했다. ‘유난히 더워 지쳤을 시민들과 어려움에 부닥친 자영업자를 위해’ 행사를 진행했다. 행사 취지에 자영업자들도 흔쾌히 동참했다. 행사장인 오천 그린광장 주변 '치킨집'은 배달이 무료였다. 수제 맥주인 '순천 맥주'는 절반 가격에 판매 중이었고. 설명을 들은 친구와 난 아쉬움을 안주 삼아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공연을 봤다. 비록 내가 상상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과 함께 즐기며 행복한 시간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우린 잔디밭을 걸었다. 어린이 놀이터엔 아이들과 부모님이 함께하고 있었다. 달도 밝고 조명도 밝은 그곳은 무척 환했다. 흙길을 걷던 친구와 난 천막에 앉아 그저 사랑스럽고 건강하기만 한 아이들을 바라봤다. 그때 방송이 들렸다.
"잠시 후 잔디밭 스프링클러가 작동될 예정입니다. 시민 여러분들께서는 물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맥주를 마셔 눈이 가늘어진 난 눈이 번쩍 떠졌다. 마치 심봉사가 심청이를 만날 때처럼.
"친구야 가자."
난 친구 손을 잡고 잔디밭으로 뛰었다. 스프링클러 작동이 시작되어 물줄기가 시원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뜨거움과 사람들로 고생한 잔디는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물을 마시고 있었다.
난 그동안 나를 휘감고 있던 무거운 옷들과 신발을 벗어던지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쏟아지는 거센 물줄기를 맞으며 날개 없는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았다. 흘러내려 코끝에 매달린 안경도 그대로 둔 채 난 소리 지르며 물속을 뛰어다녔다. 모래밭에서도 함성이 들렸다. 그네 타고 모래 던지며 놀던 어린 노랑나비들이 나와 같이 소리 지르며 하늘로 날고 있었다. 밤이 늦도록 난 그들과 함께 별빛을 따라 하늘로 끝없이 날아올랐다 내려왔다를 반복하며 놀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