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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숙아보카도 Jul 20. 2024

6시 30분이다.

<질투>에세이

칠흑 같은 어둠과 귀가 따갑게 울어대는 귀뚜라미 소리가 지금 정원과 테라스와집 주위 사장으로 다시 한번 퍼진다. 질투. 144


  혼란스러운 소설이다. 질투라는 제목을 가진 소설인 만큼 남녀 간의 갈등, 사랑과 전쟁의 피 튀기는 역동을 기대했는데 막상 책을 읽어보니 생각했던 전개와 많이 달랐다. 하지만 저자는 누구보다 질투라는 감정을 사실적이고 역동적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이 책은 그의 아내인 A와 프랑크의 미묘한 기류 사이에 질투에 눈이 먼 남자(A의 남편)를 화자로 등장시켜 그의 내면 역동을 가감 없이 표현한다. 화자는 직접 그 둘 사이에서 갈등을 조장하고 감정을 분출하는 등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담담했다. 두 남녀 사이에서 그는 그들의 목소리, 말투, 표정까지 치밀하게 관찰하며 작은 귓속말도 놓치지 않고 묘사해내는데 스포츠 중계사 못지않다.


책을 읽는 독자로서 나는 아프리카 농장에 사는 저택의 주인이 친절하게 자신의 집을 구경시켜주는 듯했다. 그리고 그 주인은 참 친절하게도 저택에서 함께 사는 와이프의 외도 상황까지 엿보고 관찰하게 해 주었다. 이것이야말로 과잉 친절이 아닌가?


둘이 주고받는 은밀한 무언가를

화자는 가장 오른쪽 끝 의자에서,

혹은 창문 너머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웃 너머 불구경도 아니고 내 와이프의 외도를 이렇게나 침착하게 기술한다니. 그는 그들의 ‘썸씽’과 더불어 집안에 있는 온갖 식기와 정원의 나무들, 그림자의 각도, 벽에 짓눌린 지네까지 각도와 위치까지 세세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이는 아내의 외도로 인해 찢어지고 파편화된 그의 내면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화자는 식사 자리에서 외도남에게 짓이겨진 지네 얼룩과 같은 존재였다. 분명 존재하지만 애써 외면하고 싶고 가능하다면 깔끔하게 없었으면 하는 존재 말이다.


화자가 곁에 있을 때 그들은 더 은밀하게 대화했다.(그들은 화자가 알아듣지 못하게 소설 속 내용을 은유적으로 사용했다.) 침묵과 눈빛, 스치듯 빠르게 지나치는 미소. 그들의 따돌림이 화자의 마음속에 생채기를 내면 낼수록 그의 질투는 들끓어 올랐다. 하지만 명색이 이 저택의 주인이자 A의 남편인 화자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미 자신에게 몸을 돌린 아내의 표정을 확인하기 위해 몸을 힘껏 젖히고 그들의 대화를 이해하기 위해 끙끙 앓는 것뿐이었다.


화자는 절대 자신에 대해,

자신의 감정에 대해 서술하지 않는다.

자신의 저택임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의자 하나, 식기 하나 맘대로 할 수 없었고

아내 A의 유일한 애인일 수도 없었다.


이들과의 식사자리에서도 그는 그저 가장 어두운 구석에 앉아 침묵을 지켰다. 따라서 셋의 식사 장면에서 화자의 대사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그의 서술, 즉 그의 시선은 오로지 저 두 남녀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아내가 골짜기만을 바라보며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때, 프랑크가 자신에게 변명할 때조차 석연찮은 태도를 보였을 때 그가 느꼈어야 할 분노와 무력감, 절망감, 수치심과 같은 감정들은 모두 억압되었다. 그는 가녀렸다. 너무도 가녀린 존재였기에 화자는 이런 절망스러운 마음을 누구에게도 표현할 수 없었다. 무엇이 두려웠던 걸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는 속담이 화자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프랑크가 자신을 향해 귀찮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을 때 그는 마치 밟으면 그대로 으스러지는 지네와 같았다. 화자는 그녀를 잃는 것보다 지금의 비참함이 낫다는 판단을 했던 걸까?


우연히라도 자신을 다시 봐주길 간절하게 기다리며 창틀에 서있던 화자를 A는 또다시 차갑게 외면한다.


화자는 절박한 심정으로 창문의 공간을 분석한다.


이렇게 해서 창문의 공간은 높이가 같고 폭이 비슷한 세 개의 면으로 나뉜다. 가운데 면은 열린 공간이고 양쪽 옆은 세 개씩의 판유리로 이루어진 유리창이다. 각각의 면은 하나의 풍경, 즉 자갈이 깔린 안뜰과 무성한 바나나 나무 잎사귀를 일부분씩 담고 있다.
질투.51


바나나 나무의 개수를 세고 짓이겨진 지네의 다리를 세며 화자는 자신을 애써 달래 왔다. 그의 주절거리는 듯한 건조한 묘사는 차마 꺼낼 수 없던 그의 처참한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아내와 프랑크가 외출해서 며칠 동안 돌아오지 않았을 때, 화자는 그녀가 돌아올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주절주절 토해낸다. 집안의 모든 식기와 아내가 집에 없어 비어있는 방, 테라스, 거실을 하나하나 체크한다.


줄거리는 사실 간단하다.

화자의 아내는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졌고

그를 두고 여행에 다녀왔다.


하지만 그의 내면세계는 그녀가 떠났던 시간,

6시 30분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그녀가 프랑크에게 던진 미소가

그저 나방의 그림자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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