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ondary Investment
운용사에 다니면서 검토하고 마무리하지 못한 건들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LP (Limited Partner, 투자자) 쪽인 국민연금에서는 대부분의 투자 건을 종결(Closing)까지 잘 마무리했다. 전 세계적으로 캐나다의 CPPIB (Canadian Pension Plan Investment Board), 싱가포르의 GIC (Government of Singapore Investment Corporation), 아부다비의 ADIA (Abu Dhabi Investment Authority)와 같은 쟁쟁한 연기금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만큼 빠르지도 유연하지도 못했다. 막 해외투자를 시작한 투자자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운용사에게 투자하겠다고 약속한 것을 지키는 것뿐이었다. 투자에 대한 빠른 판단과 약속은 LP의 가장 큰 덕목이기도 하다.
국민연금에서의 첫 실패는 해외부동산을 담당하던 시절이었고, 생각보다 빨리 왔다. 프로젝트 문(Project Moon)이라는 이름의 세컨더리(Secondary) 투자 건이었다. PE와 부동산 같은 사모시장 펀드의 경우, 일반적으로 한 번 펀드에 투자를 하면 해당 펀드 지분은 매매할 수 없다. 하지만, 세컨더리는 말 그대로 펀드 지분을 중고로 사고파는 것을 의미한다. 세컨더리 투자는, 1) 투자자들이 경제 상황에 따라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시장 유동성이 없는 펀드 지분 매각을 시도하거나, 혹은 2) 펀드 만기 시 추가적으로 가치가 올라갈 가능성이 있을 때 운용사의 주도로 투자자를 변경하면서 발생한다.
실제 사례를 통해 설명하는 것이 더 쉽다. 2011년 2월 말, 함께 일하고 있는 글로벌 자문사 중 한 곳에서 이메일을 받았다. APAC 기반의 물류 펀드가 보유한 물류센터 펀드의 지분거래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최대 투자자 중 한 곳이 펀드 지분을 매각 중에 있고, 매각 규모는 약 1억 불('24년 3월 10일 기준, 1,320억 원)이다. 대략적인 내용은 그랬다. 나는 이 프로젝트의 이름을 "Moon"이라 지었다.
아시아권의 현대화된 물류센터는 지난 10여 년 간 가장 큰 성공을 거둔 투자처 중 하나였다. 대도시에 인구가 집중된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은 물동량이 일부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고, 노동집약적인 물류업이 예전 방식으로 지속되기에 노령화는 너무 빨리 진행되고 있었다. 아마존으로 대변되는 물류의 현대화는 물류창고에 높은 층고와 현대적인 물류시설을 갖출 것을 요구했는데, 과거 공급된 소규모 창고들은 이런 조건을 맞출 수가 없었다. 목적에 맞춰 지어진 (Purpose-built) 대규모 물류센터가 필요했다. 내가 투자를 제안받은 펀드는 홍콩 최대의 물류센터 중 하나를 소유하고 있었다.
펀드지분의 중고거래는 일반적인 중고거래와 반대로 더 좋은 물건을 사게 된다. 첫째로, 이미 일정 수준 이상의 투자가 진행된, 혹은 투자가 완료된 펀드의 지분을 사게 된다면, 펀드가 어떤 건에 투자했는지 확인하고 펀드 출자를 진행할 수 있다. 블라인드 펀드(Discretionary Fund) 출자 시에 투자 건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프로젝트 투자와 유사하다. 두 번째로, 일반적으로 10여 년의 만기를 가진 펀드에 시간이 지난 후 투자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내에 회수할 수 있다. 사모펀드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J-Curve 효과(투자 초기 펀드 비용 등으로 인해 손실로 시작하게 되는 현상)를 줄이면서 단시간에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유동성이 없는 사모시장 펀드 지분의 특성상, 일반적인 중고거래처럼, 공정가액 대비 할인 거래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많은 경우, 세컨더리 투자는 시장에 대한 역발상(Contrarian) 전략이 된다.
프로젝트 문이 성공적으로 종결되지 않았던 이유는 간단했다. 해당 펀드의 다른 투자자들이 모두 우선매입권(Preempitive Right)을 행사해 버린 것이다. 사모펀드는 기존 투자자들이 지분 매입에 우선권이 있다. 1억 불은 1주일이 지나니 9천만 불로 줄어 있었고, 몇 주가 더 지나니 우리가 매입가능한 지분은 남지 않았다. 투자 건은 투자위원회로 가기 이전에 달나라로 가 버렸다.
내 두 번째 세컨더리 투자는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4년 초 Lexington Partners의 펀드에 대한 구조화된 투자였다. 최초의 세컨더리 펀드 중 하나이자 최대의 펀드 운용사인 Lexinigton Partners(이름 그대로 뉴욕 맨해튼의 Lexington Avenue에 있다)는, 오랜 기간 투자자들에게 좋은 수익률을 안겨주었다. 우리는 큰 금액의 출자를 검토하고 있었지만, 워낙 인기가 많은 펀드이다 보니 우리를 특별하게 만들어준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조건이 절대적으로 우호적인 조건이 되기는 어려웠다. 결혼 후 첫 크리스마스도, 연말도 그렇게 사라졌다. 제주도에서 컨퍼런스콜을 하면서 새 신부의 눈치를 보고 있었지만, 서울을 떠나지도 못한 변호사들보다는 나은 처지였다.
결국 기분이 상해 다른 운용사를 저울질하고 있던 그때, 해외대체실장이던 이윤표 실장님으로부터 "우리가 세컨더리에 투자하는 이유를 다시 생각해 봅시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세컨더리는 어려운 투자이다. 투자자가 파는 지분을 운용사가 산다. 그 운용사에게 매도인인 투자자는 고객, 특히나 포트폴리오 조정이 필요할 정도로 규모가 큰 자산을 운용하는 고객일 가능성이 크다. 투자자인 LP가 포트폴리오 조정으로 펀드 지분을 매각하는 경우, 적어도 수백 개가 넘는 포트폴리오를 담고 있는 수십 개 펀드의 지분을 매각한다. 빠르게 검토하고 거래를 종결하면서, 고객님께 양보해서는 안된다. 펀드 수수료를 깎지 못하더라도, 내가 불편하더라도, 복잡한 거래 경험이 많고 높은 실적을 증명했다면, 그 운용사와 일해야 한다. Lexington은 그런 회사였다.
전략도 시장 상황에 따라 유행이라는 것이 있다. 특정 섹터에서 성공적인 운용사는 다른 섹터에 진출하게 되고, 규모가 커진 운용사는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운용사도, 투자자도, "Contrarian"의 관점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아야 한다. 세컨더리 전략에 투자하는 운용사, 특히 Fund of Funds 운용사들이 계속해서 세컨더리 영역으로 진출하고 있다. 이제는 세컨더리 투자를 하지 않는 LP가 드물다. 계속해서 생각하고, 새로운 전략을 발굴해 나가야 한다.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