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J Mar 17. 2024

잘 알지 못하는 무엇

The Specialty Sectors

새로운 분야가 세상에 등장할 때, 우리는 기존에 있던 것들을 전통적인 것으로 분류하고, 그 외의 것들에 다른 이름을 붙인다. 한동안 PE, 부동산, 인프라스트럭쳐, 헤지펀드 등을 "대체 (Alternative)" 자산이라고 지칭하던 시절, 전통자산은 주식과 채권이었다. 지금은 부동산과 인프라스트럭쳐와 같은 실물자산 군이 기관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미국 대학재단들의 경우 PE의 비중이 매우 높다. PE, 부동산, 인프라스트럭쳐 같은 섹터들을 여전히 대체자산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부동산에 있어 스페셜티 섹터(Specialty Sectors)는 전통적인 섹터로 분류되는 아파트, 오피스, 리테일, 물류 및 호텔을 제외한 상대적으로 새로운 분야를 의미한다. (호텔이 전통섹터로 분류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Student Housing (대학생 등을 위한 아파트형 주거시설), Senior Living (노년층을 위한 주거 및 의료시설), Medical Office (병원 및 의료시설), Self-Storage (개인형 보관창고) 등이 대표적인 스페셜티 섹터들이다. 


이들 스페셜티 섹터는 i) 대부분의 전통적인 섹터 대비 운영에 전문성이 필요하고, ii)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아 한 건 한 건으로는 기관투자자들이 투자할 수 있는 규모의 자산이 되기 어렵다. 이 분야의 투자자들은 a) 운영 경험이 풍부한 오퍼레이터와 함께 투자하며, b) 규모가 작은 여러 개의 자산을 모아 잘 분산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기관투자자들이 선호하는 규모의 코어 자산 (Core Asset, 규모가 크고 위험의 정도가 낮은 실물자산군을 지칭)을 만들어낸다.  

 

한동안 주변에 21세기에 가장 성공한 투자 플랫폼은 해리슨 스트릿 Harrison Street 이라고 얘기하곤 했다. (시카고가 본사인 해리슨 스트릿은 미국과 유럽에서 약 560억 불을 운용한다.) 2011년 해리슨 스트릿의 창업자들을 만나 처음 스튜던드 하우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땐, 나름 신선한 충격이었다. 대학교 혹은 대학원 인근, 학생들을 위한 민간 아파트인 스튜던트 하우징의 수요는 경기변동과 무관하거나, 경기가 안 좋을 경우 대학원 진학이 많아질 수 있으니, 경기상황과 반대로 움직인다. 순위가 높고 규모가 큰 학교일 수록 안정적인 수요를 만들어 낸다.   


우리나라에서는 2023년 건축법 시행령 개정으로 "임대형 기숙사"가 제도화되었다. 사실 국내 건축법 시행령은 코리빙(Co-Living)을 제도화한 것으로, 코리빙과 스튜던트 하우징은 다르다. 코리빙이 도시에 사는 젊은 직장인에게 피트니스, 라운지 등 다양한 서비스를 결합하여 제공하는 주거양식이라면, 스튜던트 하우징은 명확하게 한 대학교의 학생들을 목표로 한다. 예를 들어, 국내 대표적인 코리빙 시설 중 하나인 에피소드 강남은 강남역 인근에 있지만, 서울대학교 학생을 목표로 지어진 스튜던트 하우징은 강남역에 있을 수 없다.   


대학생을 목표로 하는 부동산 시설은 다분히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무엇보다 집기가 부서질 확률이 높고, 밤엔 술에 취한 학생들이 돌아다닌다. (시설위험 및 임차인위험) 학생들의 신용도는 매우 낮기 때문에 언제 돈을 떼일지 모른다는 문제도 있다. (신용위험) 게다가, 기숙사처럼, 방학 때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 아파트가 비어있게 될 가능성도 있다. (공실위험) 이러한 사항들을 고려해 학부모들이 포함된 계약서가 구비되어야 하고, 보증금 구조가 확립되어야 하며, 즉각적인 시설관리가 가능한 팀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다만, 대학교 인근의 부지는 직장인이 선호하는 지하철역 인근 대비 가격이 저렴하다. 동일한 금액의 돈이 있다면, 훨씬 큰 자산을 확보할 수 있다. 나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 대학생 대상의 주거시장은 매우 파편화되어(Fragmented) 있어, 일단 통합이 시작될 경우 쉽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이 섹터의 시장이란 특정 대학교에서 일정 시간 이내에 있는 입지만을 포함한다. 천억 원을 들여 오피스 빌딩을 사지 않고, 대학교 인근의 원룸 건물들을 사들인다고 가정해 보자. 시장을 독점할 수 있지 않을까? 


유학시절, TPG가 투자했던 시니어 리빙 업체인 Enlivant에서 인턴을 하며 회사의 운영이 정상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았다. 스페셜티 섹터의 부동산들은 운영이 중요하다. 캐나다의 연기금인 CPPIB, 네덜란드 연기금인 APG, 싱가포르의 국부펀드인 GIC 등은 운영사에 대한 직접 투자를 통해 부동산 포트폴리오를 확보하기도 한다. 호텔업체들이 직접 부동산을 소유하는 것과 동일하다. 국내에는 이미 다양한 셀프스토리지 스타트업들이 존재한다. 


지난 십여 년 간 많은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미국을 중심으로 스페셜티 섹터에 대한 투자를 집행했다. 스튜던트 하우징은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투자자산이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스튜던트 하우징과 시니어 리빙 모두 전통자산에 편입될 수 있다. 특히, 충분한 기간 통계가 쌓인다면 머지 않아 그렇게 될 확률이 높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새로운 이름으로 등장하게 되지 않을까?    


이전 07화 펀드 지분의 중고거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